<충격세태> 알몸사진 파는 청소년들 천태만상

치명적인 유혹…톡스폰을 아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톡스폰’으로 불리는 불법 음란 영상 매매 행위가 채팅 애플리케이션과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채팅 메신저와 랜덤 채팅 앱 등을 이용해 음란 영상을 보내주고 돈을 받는 톡스폰. 기존의 ‘조건만남’과는 달리 영상 매수자를 법적으로 단속이나 처벌할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미성년자들까지 음란 영상 매매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10대 청소년을 위협하는 위험한 아르바이트라는 주제를 다뤘다. 이날 용돈이 부족한 10대를 위협하는 위험한 아르바이트로 톡스폰이 소개됐다. 청소년들은 “알고는 있는데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법망 사각지대
관련 조항 없어

톡스폰은 채팅 메신저상의 스폰서를 일컫는 말로 적은 돈으로 유혹이 가능한 10대들이 그들의 주요 먹잇감이다. 먼저 성별, 나이 등을 확인해 10대들에게 접근한다. 비교적 큰 금액을 제시하며 은밀한 부위의 촬영 사진을 요구한다.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당장 용돈벌이가 가능하기에 10대들은 쉽게 유혹에 빠진다.

실제로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톡스폰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받아볼 수 있다.

간단한 사진과 영상만 보내면 주급 150만∼200만원을 보장하고 추가로 선물과 성형시술 비용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채팅 앱 프로필 상에 미성년자로 설정해놔도 개의치 않는다. “조건 만남은 경찰이 단속할 경우 벌금과 전과 기록이 남는 반면 톡스폰은 조건만남에 비해 안전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톡스폰을 제안한 남성은 일단 몸과 발 사진을 보고 기본급을 정하자며 사진을 요구한다. ‘사기’를 의심하면 이제껏 자신과 톡스폰을 해온 여자들의 나체사진과 동영상 캡처사진을 보내오며 안심시킨다.

여성들의 신체 일부분이 확대된 사진과 전라에 얼굴이 반쯤 드러난 동영상 캡처본까지 노출 수위가 매우 높다. 남성은 톡스폰을 통해 온 사진과 영상은 보고 바로 지운다고 했지만 인증을 명분으로 세 명의 여자 신체 사진을 유출했다.

큰 금액 제시 은밀한 부위 촬영 요구
사진 보내주면 입금…월 200만원 수입

톡스폰을 제안한 남성은 일단 몸과 발 사진을 보고 기본급을 정하자며 사진을 요구한다. 사기를 의심하면 이제껏 자신과 톡스폰을 해온 여자들의 나체사진과 동영상 캡처를 보내오며 안심시킨다.

톡스폰은 주로 랜덤 채팅 앱을 통해 톡스폰 대상을 구하고 이후 채팅 메신저 아이디를 공유해 둘만 있는 채팅방에서 음란물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랜덤 채팅 앱에서뿐만 아니라 트위터나 텀블러 등 소셜네트워크상에서도 음란한 사진과 영상을 사고판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성인인증 절차 없이 접속할 수 있는 랜덤 채팅 앱을 통해 톡스폰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만날 필요도 없이 영상만 찍어 보내면 많게는 수백만원씩 벌 수 있다 보니 대놓고 톡스폰 광고를 하는 10대들도 생겨나고 있다. 받는 액수가 많을수록 노출 요구 수위도 더 높아진다.

한 고등학생은 “한 번 그 정도 큰돈을 벌면 다른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재미로 혹은 아르바이트 삼아 보낸 자신의 신체 영상은 타인에게 전송한 그 순간부터 유포의 위험에 놓인다. 또 이를 빌미로 다른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렇게 전송된 사진들은 음성적 경로의 음란물 거래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톡스폰을 통해 수집한 청소년들의 사진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판매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적지 않다. 자신의 신체가 담긴 영상이 유포됐을 때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경우 유포된 자신의 동영상 삭제를 의뢰한 후 못 견디고 자살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봤다”며 “한 달 평균 300건의 동영상 삭제 의뢰가 들어오는데 그중 100건은 청소년 음란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성매매보다 낫다?
가출해 용돈벌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도 “단지 그 사람과 나만의 거래니까 안전하다고 봐선 안 된다”며 “누군가에게 내 신체 일부가 담긴 사진, 영상을 건네는 순간 유포될 위험이 크고, 이런 동영상은 한 번 유포되면 평생 낙인이 되기에 찍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지난 3월 음란 채팅 사실을 알리겠다며 돈을 뜯어낸 20대 여성이 사기와 공갈죄로 징역형을 받았다.

A(22·여)씨는 지난해 SNS로 알게 된 남성에게 “350만원을 빌려주면 매달 음란 동영상을 보내주고 빌린 돈도 갚겠다”고 꾀어 3차례에 걸쳐 850만원을 챙겼다. 그는 빌린 돈을 생활비 등으로 사용해 갚을 수 없게 되자 이 남성과 나눈 음란 채팅 내용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겁을 줘 돈을 더 받아내기로 했다.

A는 자기 언니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 남성에게 “내 동생이 미성년자인 것을 아느냐. 미성년자와 음란 채팅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에게 음란 채팅 사실을 알리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겁을 먹은 남성으로부터 또다시 600만원을 송금받는 등 4차례 1350만원을 챙겼다. 지난달 29일 전주에서는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여성에게 음란행위를 강요한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모(25)씨는 지난해 5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여성인 것처럼 B(22·여)씨에게 접근해 ‘주종관계 성행위’를 약속한 뒤 B씨의 음란행위가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받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B씨가 “더는 신체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겠다”고 거부하자 이 같은 짓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개인의 성행위 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달라는 시정 요구는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2013년 1166건에서 2014년 1404건으로 20% 증가했고, 2015년 10월 말까지는 3171건으로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인터넷에 뿌려져
유출 피해 속출

청소년이 직접 자신의 신체를 찍은 사진 및 동영상을 건네받아 소지할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11조(아동·청소년 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5항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청소년과의 거래를 통해 받은 음란물을 영리 목적으로 배포할 경우에는 아청법 11조 2항에 의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청소년이 아닌 성인끼리 음란물을 주고받은 경우, 자신의 신체가 담긴 음란물을 보낸 사람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정작 돈을 주고 음란물을 구매한 사람의 경우 이렇다 할 법적 처벌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채팅세계에서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겉으로만 봐도 몇 학년인지 대강 알 수 있는 현실 세계와 달리 채팅에서는 서로의 나이를 묻는 행위를 꺼린다.


10살을 갓 넘긴 초등학생이 여대생으로 버젓이 행동하고 중3 남학생이 서른살 어른으로 둔갑해도 말리는 사람은 없다. 외모와 나이 때문에 학교와 가정에서 제약을 받는 10대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개인에게 구매한 음란물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공중에 유포할 경우에는 성폭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2항에 의거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청 성폭력수사계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음란물을 구매한 사람에 대한 법적 처벌 조항이 빠져있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음란물 구매자 법적 처벌 못해
동영상 유포 못 견디고 자살도

그는 또 “성매매의 경우, 매수자와 매도자 둘 다 처벌하고 있듯이 음란물을 산 사람도 처벌해야 이런 문제를 빨리 근절할 수 있다”며 “정부 당국 회의에서 매수자 처벌 조항 신설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개인과 개인 간에 이뤄지는 음란물 매매는 개인 간에 은밀히 행해지기 때문에 사실상 적발이 쉽지 않다. 특히 10대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비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이를 은폐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자녀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문제는 아이들의 해방감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 생활의 일부가 된 청소년들에게는 탈선의 가속페달만 존재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판매한 음란물 대금을 확인하는 10대 장사꾼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우리의 자녀들이 음란물 파도에 휩쓸려 가는 동안 어른들은 제대로 현실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고함만 질러왔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채팅 애플리케이션의 음란 대화는 분명 언어 성폭력에 해당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육체적으로) 당한 일도 아닌 말로 주고받은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손 안의 세상에서의 성폭력은 실제 현실에서 성폭력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현재 채팅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신고제로, 채팅 속 어떤 무서운 범죄가 일어나도 신고가 되기 전까지는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 전문가는 “정책을 만든 국가 역시 신고가 없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말로 회피하고 있어 애플리케이션 성폭력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적어도 아이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부적절한 돈벌이 수단이 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출 두려워
피해사실 숨겨

그는 “이젠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바꿔 국가에서도 모니터링을 해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단, 허가제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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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