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최근 이 나라 보수논객 중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조갑제TV’를 통해 ‘보수의 고민, 홍준표냐? 안철수냐’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동 영상에서 조 대표는 “이번에 좌파가 안 되고 안철수 후보가 (당선돼) 중도정권이 탄생한다면 반쪽 정도의 선방, 반쪽의 성공은 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사드 배치 등 안 후보의 안보 공약에 대해 “사드 배치도 사실상 인정하는 등 안보 공약은 오른쪽으로 많이 왔다”며 “포퓰리스트들이 모병제나 병역 기간 단축 공약을 내세웠지만 안 후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의 한 의원이 유승민 후보에 대해 “상황(지지율)이 나아지지 않으면 유 후보에게 사퇴를 건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섰다. 덧붙여 “정치공학적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요구를 받드는 차원서 당 대 당 통합은 아니더라도 바른정당 의원들이 안 후보 지지 선언을 해야 한다. 유 후보가 사퇴하지 않고 당의 후보로 남아 있는다 해도 마찬가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마녀사냥식 접근에 일침을 가하고자 지난 시절에 경험 일부를 풀어내본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지금처럼 한 인터넷 언론에 역사소설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박근혜 대표가 가끔 내가 쓴 칼럼의 내용과 동일하게 언급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의아한 생각이 일었다. 박 대표가 내 칼럼을 도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한참 그에 대한 의문을 지니고 있는 중에 박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박 대표는 내가 품었던 의문에 대해 이실직고했다. 내가 기고하는 칼럼을 빠지지 않고 읽고 있고, 또한 흥미 있게 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털어놓았었다. 그를 통해 내 글이 박 대표의 입을 통해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전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게 됐다. 굳이 이 일을 밝히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물론 최순실과 관련해서다. 박 전 대통령의 모든 행태 특히 그녀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모든 말들이 최순실의 머리서 나온 듯이 간주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각설하고, 박 전 대통령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검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던 사건, 일명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 다시 부연해보자. 당시 그 일은 법의 심판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멍석말이나 조리돌림 정도에서 마무리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급기야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적시한 ‘회항’과 ‘항로이탈’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회항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다. 회항(回港)은 ‘돌아오다’라는 의미의 ‘회(回)’와 항구, 즉 비행기의 경우 공항을 의미하는 ‘항(港)’으로 합해 ‘공항으로 돌아오다’를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항(港)은 차치하고 회(回)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펴보자. 문을 의미하는 입 구(口) 두 글자가 합해져 한 글자가 됐다. 이는 문을 나섰다가 다시 문으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회항의 의미를 정확하게 진단하면, 회항이란 공항을 나선 비행기가 다시 공항으로 돌아옴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현아가 탑승했던 비행기가 공항을 떠난 적이 있는가. 그런데 그게 어떻게 회항인가. 다음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에 대한 칭호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 도하 각 언론을 포함 우리 사회 모두는 그녀를 전직 대통령이라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살필 때 ‘전직 대통령’이란 용어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칭호는 무사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거나 스스로 물러난 사람에게 해당되는 칭호지 중간에 강제로 쫓겨난 사람의 경우는 해당되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조선조에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한 두 사람,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공히 패륜을 일삼았고 거기에 더해 연산군은 장녹수와 전비 또 광해군은 김개시(김개똥)란 궁녀들을 앞세워 국정을 농단했다. 결국 반정으로 인해 왕의 자리서 쫓겨났다. 최순실을 앞세워 국정을 농단해 파면당한 박근혜의 경우와 너무나 흡사하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박근혜는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패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살필 때 박근혜가 저지른 패륜은 그 이상이다. 바로 최순실과의 관계에 대해서다. 최순실은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손에 시해당하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그것도 탄핵을 찬성하는 여론 수치보다 훨씬 웃도는 만장일치, 100% 인용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15년부터 <일요시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권고했던, 명예로운 퇴진을 촉구했던 필자로서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각설하고, 박 전 대통령의 파면 과정을 살피며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심도 깊게 살펴보자. 이는 필자의 지론 ‘역사를 통해 긍정적인 일은 귀감으로, 또 부정적인 일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에 따른다. 즉 지금의 탄핵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법 이론을 떠나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자연인 박근혜와 그녀에게 주어졌던 대통령이란 직책에 대해서다. 먼저 개인 박근혜를 살펴보자. 누누이 밝혔지만, 박근혜란 자연인은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통합을 외치면서 통합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김기춘씨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등 공신인 최태민도 모자라 그 자식들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고, 북한의 김정
대학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아마도 ‘영미시’ 과목 시간인 듯한데, 담당 교수께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The Road Not Taken(선택하지 않은 길)’을 분석해 발표하라는 과제를 냈다. 공교롭게도 과에서 처음 발표자로 지정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 당일 열과 성을 다해 근 30분에 걸쳐 발표를 마치자 급우들이 수고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교수께서 작심하고 한마디 하셨다. 요약하자면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학생이 어떻게 대시인의 작품을 함부로 재단하느냐’였다. 필자가 발표를 마무리할 즈음 강력하게 주장했던 시의 주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아울러 미국서 오랜 기간 공부하셨던 그분의 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교육, 즉 주제 찾기에 혈안이 되었던 잘못된 습성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물론 모든 학생이 일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 조그마한 사건이 계기가 돼 이후 나의 사고에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나의 사고를 제한하는, 주제넘게 주제 찾기에 몰두하는 방식을 버리고 다양성을
지난 대선을 돌이켜보자.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나서 경쟁을 벌였지만, 그 이면을 살피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한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됐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가 전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인했던 결과에 따른다. 그 일로 결국 경제가 엉망이었던 당시에 문 전 대표는 그 좋은 호기, 이명박정권의 국정 실패를 선거에 활용하지 못하고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됐다. 그런데 차기 대선 역시 또 다른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하나의 확고한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필자가 누누이 이야기했던, 현 집권당 및 그 아류인 바른정당은 차기 대선에서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는 단언 말이다. 아울러 차기 대선은 문 전 대표와 또 다른 야당의 후보가 각축을 벌일 터인데 그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게 됐다. 문 전 대표 본인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문 전 대표의 기구한 팔자가 안쓰러워 보인다. 그러나 선거는 엄연한 현실이고 또 그 현실을 돌파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바로 제목에 등장하는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박
지난해 12월 국회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의결되기 전이다. 당시 여러 언론서 가결되기 힘들다는 반응을 내놓았을 때인 11월에 <일요시사>에 실었던 글 ‘박근령, 박지만의 읍참마속을…’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박 대통령의 하야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렇다고 탄핵이 쉽사리 통과될 것 같지도 않다. 국회서야 정치꾼들이 국민의 시선이 무서워 통과시키겠지만, 헌법재판소에선 통과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표면상으로는 국민이 아닌 정치꾼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모양새로 변질되었기에 더더욱 탄핵안이 통과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필자가 예견했던 일에 대한 징후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소위 보수 진영은 물론 심지어 탄핵에 대해 동의를 표명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박 대통령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필자가 언급한 내용에 부합한다. 박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헌재에 맡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정치꾼들의 정략 수단으로 변질됐기에 새로운 양상으로 변질된 게다. 비근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는 중에 아내가 살갑게 다가와 곁에 자리 잡고는 대뜸 한마디 한다. “이번 대선에 당신이 출마하면 안 돼?” 하도 뜬금없는 소리라 물끄러미 아내를 주시하자 다시 말이 이어진다. “당신은 짧지 않은 기간 정치판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정치현실을 잘 알고 있고 또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으니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해 사심 없이 일할 수 있잖아.” 아내의 거듭되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아내가 보아도 엉망인 이 나라의 정치판을 확 갈아엎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를 파악하고 슬그머니 미소 짓자 아내가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본다. “당신 말마따나 내가 모든 욕심 내려놓은 건 맞아. 그런데 그 때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없어. 막말로 욕심으로 똘똘 뭉친 정치꾼들이 나를 용인하겠어. 저들 밥그릇부터 빼앗아버릴 텐데.” “국민만 바라보면 되잖아.” “국민들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는 게야. 그래서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단체가 형성된 거고. 그런데 내가 정치를 하면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이 나라의 미래를 그릴 터인데 그게 쉽사
지난 2000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사표를 낸 뒤 곧바로 시험을 치르고 이듬해에 다시 서울 소재 한 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이후 지금까지 번듯한 돈벌이, 즉 경제는 ‘나 몰라라’하면서 글쓰기에 치중해왔다. 물론 그 과정에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또 간혹 정치인들의 연설문을 작성해주는 등 나름대로 내게 필요한 최저 생계비(용돈)를 마련했다. 그러던 중 필자의 사정을 파악한 동생이 산뜻한 제안을 해왔다. 내게 필요한 용돈을 제공할 테니 글쓰기에 매진하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글에만 몰두했는데, 너무 글쓰기에만 매달리다 보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하여 나이 더 먹기 전에 노동도 좀 하면서 돈도 조금 벌어보자는 심사에서 지인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마침내 그럴싸한 곳이 나타났다. ‘강강술래’란 상호의 음식점으로, 한 달 전부터 그곳에서 주말 이틀간 식기 세척하는 일을 시작했다. 나름 힘은 들지만 그래도 아직 일할 수 있다는 데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곳을 다니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힌, 우리 아이들은 그 존재도 알지 못하는 강강술래란 민속놀이에 대해
한참 전에 언급했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물론 우리 정치판에 관련해서다. 이 나라에 민주 정치가 시작되면서 정치판에 기웃거렸던 인간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능력은 겸비했지만 부패한 사람, 그리고 다른 부류는 능력은 없지만 선명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부류가 집단을 이루면서 서로가 지닌 약점은 감추고 강점, 즉 능력과 선명성을 앞장세우고 나섰다. 물론 그 과정에 민주주의의 이해가 부족해 간혹 불미스런 장면을 연출하고는 했으나,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경쟁력을 앞세워 그런대로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정치판을 이끌어왔었다. 그러던 한 순간 정치판의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능력과 선명성은 눈곱만큼도 지니고 있지 못한 인간들, 역으로 부패하고 깨끗하지 못한 부류들이 정치판을 그야말로 아사리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일찍이 노무현정권 시절을 지적한 바 있다. 학창시절 학생 운동에만 몰두했고 이후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던 부류들이 노무현정권이 들어서자 기승을 부린 데서 시작됐다고 했었다. 운동(스포츠)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자. 우리가 학창시절, 미안한 이야기지만 운동선수들 대개는 무식했다. 심지어 한문으
며칠 전 주말에 아내와 결혼한 지 29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행사를 통해 강릉에 있는 정동심곡 바다 부채길을 다녀왔다. 사실 필자는 그런 길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곳을 가는 내내 아내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동진서 심곡항까지 과거 군사지역으로 통제됐던 지역인데 최근 그곳을 개방하면서 그 구간에 산책할 수 있는 길을 놓았고 그야말로 바다와 혼연일체 될 수 있는 멋진 장소라고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당연히 구미가 당겼고 오랜만에 아내와 호젓하게 손잡고 바다를 끼고 데이트도 하며 아내가 좋아하는 사진도 원 없이 찍어줘야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지니고 정동진에 도착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챙기고 아내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저만치 펼쳐진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부푼 마음으로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육두문자와 함께 아내의 손을 놔야했다. 본격적으로 산책로에 들어서자 두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길이 이어졌는데, 반대편 쪽, 즉 심곡항 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느 지점은 두 사람은 고사하고 남성 기준으로 한 사람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간격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가 지난 9월, 필자와 아내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를 분양받아왔다. 바로 사진에 등장하는 강아지, ‘비숑’과 ‘시바’의 믹스 견으로 이름은 ‘둥둥’이다. 둥둥의 등장에 필자나 아내는 적잖이 당황해했다. 우리 부부는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뒤늦은 간청으로 인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부부가 걱정했던 부분은 시도 때도 없이 싸대는 똥과 오줌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물론 딸아이의 노력이 있었지만 2주 정도 지나자 대소변을 스스로 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베란다 하수구에다 볼 일을 보고는 했으니 그처럼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생각했다. 한동안 순조롭게 동거가 지속되던 어느 날부터 둥둥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집안에 사람만 없으면 온 집안을 휘젓고 눈에 띄는 대로 이빨로 갉아대더니 급기야 집안의 대문(출입문) 기둥을 갉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로 화가 하늘까지 치밀어 올랐다. 다른 건 차치하고 집안의 중심을 건드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
먼저 언론에 실린 내용을 인용해본다.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경선 후보의 핵심 자문그룹이었던 7인회 멤버인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박근혜가 좋은 대통령이 될 거라고, 그러니 뽑아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대통령이 됐으니 그것부터 사과하고 싶다. 어디 사과할 데가 없어서 못 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국회서 박 대통령 탄핵안이 의결되기 전, 노정객인 김 상임고문이 술회한 내용이다. 물론 그의 심정을 백번 이해하지만, 누구에게 사과하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막연하게 국민을 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하튼 김 상임고문 못지않게 박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기울였던 필자로서도 요즈음처럼 곤혹스런 때는 없다. 주변 사람들 대하기 민망할 정도다. 최근 가까운 친구 여러 명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 이야기가 빠질 턱이 없다. 술잔이 여러 번 돌자 한 친구가 기어코 염장을 지르고 나섰다. “천우 때문에 박근혜 지지했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뒤이어 박 대통령을 향한 육두문자가 이어진다. 그러자 옆에 앉은 친구가 슬그머니 내 얼굴을 흘기다 거드름 피우며 입을 연다. &ld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 핑계를 대보자. 일전에 <일요시사>를 통해 언뜻 내비쳤지만, 오래전부터 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5‧16이 발생했던 시점부터 서거하신 지난 1979년까지 필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나라를 경영했던 18년 동안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아울러 그 작품을 탈고하면서 내친김에 제목도 ‘박정희를 위한 변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최순실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에 그 원고를 가지고 여러 출판사들과 출간을 위한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어느 출판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물론 현 시국상황 때문이다. 박 대통령 때문에 책이 팔리겠느냐는 의미다. 속된 표현으로 박근혜 때문에 엿 된 경우다. 그러나 비단 이 현상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으로 인해 그녀의 부모인 박 전 대통령도 또 육영수 여사도 도매금으로 격하되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에 실린 내용 그대로 인용해본다. 『제주에선 박 전 대통령 유산인 ‘5·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지난 1990년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씨와 박근령씨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내용 일부를 인용한다. 『누나(언니)가 최태민에게 속고 있으니 구해달라. 최태민은 순수한 우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태민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다.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다.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각하 내외분뿐이다.』 근령, 지만씨가 오죽하면 노 대통령에게 이런 탄원서를 보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사실이 작금에 백일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소설가인 필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퇴진을 고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 한편으로 생각하면 필자가 박 대통령이라도 퇴진하지 않겠다는, 아니 퇴진할 수 없는 형국으로 전환됐다. 바로 정치꾼들의 개입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정적 관계에 있었던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이재명 심지어 새누리당 대표를 역임했던 김무성 등의 퇴진 개입은 박 대통령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시켜 놓은
지난 2005년 1월20일 육영수 여사 피격 관련 문서가 공개되자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법률 보좌관으로 범인 문세광에 대한 조사에 참여했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전화 인터뷰를 실시한다. 당시 사회자가 김 전 실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1974년 사건 당시 문세광 조사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작업을 한 건가.” 다음은 김 전 실장의 답변이다. “당시 보좌관으로서 8‧15광복식장에서 그 사고가 나자 문세광이 정보부 수사팀에 인계돼서 왔는데, 심문을 받고도 그 다음날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도 묵비하고 일체 질문에 답을 안했다. 그러니까 당시 부장께서 나에게 혹시나 하고 한번 수사팀에 합류해서 말문을 열도록 한번 심문을 해보라고 해서 문세광에게 질문하게 됐다.” 아울러 김 전 실장은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작품 <재칼의 날>로 문세광의 자백을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지 당시의 실상을 살펴보자. 사건 발생 직후 김일두 당시 서울지검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의심한 시점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다. 방송 토론회를 시청하던 중 그녀의 초점 없는 눈과 현 시점에 확실하게 확인된 유체이탈식 언행, 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던 장면을 목격하고부터다. 이후 그녀의 언행을 관찰하면서 ‘아차’했다. 뭔가 크게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하여 한 날 그를 확인하기 위해 작심하고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비록 박 후보가 전화를 걸어올 당시에는 ‘발신자 제한 표시’가 등장했지만, 정치판에 짧지 않은 기간 머물렀던 관계로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당사자는 박 후보가 아닌 남자였다. 아마도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일 터인데, 여하튼 내 신분을 밝히고 박 후보를 연결시켜 달라 요청했다. 그러나 답변은 간단했다. 통화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그 당시 너무나 화가 나서 육두문자를 쏟아 부으면서 “왜 당신은 전화하면서 내 전화는 받지 않느냐. 그래 가지고 무슨 놈의 대통령을 하겠다는 게냐”라는 말을 전하라며 그녀에 대한 기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연산군 시절이다. 온갖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났다. 실록에는 연산군이 그곳에서 두 달만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역사 기록에 대한 이해를 위해 첨언하자. 역사 기록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건이 역병과 지진 등이다. 이런 경우 대개 진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이롭지 못한 사실들을 위장하기 위해 그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연산군이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는 차치하고, 연산군이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한 이면에는 장녹수란 여인이 있었다. 노비 출신인 장녹수는 연산군을 종 대하듯 하면서 자신의 형부인 김효손에게 관직을 주는 등 국정을 농단하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그 날 참형에 처해지고 재산을 모두 몰수당한다. 다음은 역시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한 광해군의 경우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제주도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광해군에게도 임금의 시호를 받지 못하는 과정에 혁혁한 공을 세운 여인이 있었다. 일전에 잠시 언급했던 김개똥, 즉 김개시란 여인이었다. 그녀 역시 광해군을 홀려 국정을 농단하고 인
문득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장시간 통화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모든 욕심 내려놓은 문학인의 입장에서 확고하게 부탁했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무엇보다 ‘민족 대통합’에 힘써달라고. 그 과정에 삼국시대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대비시켜 말씀 드렸었다.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로 삼등분되었던 당시와 지금에 북한, 영남 그리고 호남으로 분열된 사례를 예로 들면서 반드시 민족통합에 비중을 두어달라고 했었다. 박 대통령은 통화를 마치면서 후일 자리를 마련하여 구체적인 조언을 듣겠다고 밝혔었다. 그를 대비하여 나름 이 나라를 위한 발전 방안을 다듬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이후에 나를 부르는 일은 고사하고 전화통화 자체가 이어지지 않았다. 여하튼 필자는 박 대통령과 대화를 마치고 역할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그를 반증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장편의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지금 <일요시사>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각설하고, 지금 이 시점 정치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의 위기 나아가 나라의 위기를 저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한 호기로 치부하면서 거국내각이니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