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 핑계를 대보자. 일전에 <일요시사>를 통해 언뜻 내비쳤지만, 오래전부터 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5‧16이 발생했던 시점부터 서거하신 지난 1979년까지 필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나라를 경영했던 18년 동안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아울러 그 작품을 탈고하면서 내친김에 제목도 ‘박정희를 위한 변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최순실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에 그 원고를 가지고 여러 출판사들과 출간을 위한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어느 출판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물론 현 시국상황 때문이다. 박 대통령 때문에 책이 팔리겠느냐는 의미다.
속된 표현으로 박근혜 때문에 엿 된 경우다. 그러나 비단 이 현상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으로 인해 그녀의 부모인 박 전 대통령도 또 육영수 여사도 도매금으로 격하되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에 실린 내용 그대로 인용해본다.
『제주에선 박 전 대통령 유산인 ‘5·16도로’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라산을 횡단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31지방도였는데 5·16 군사정변 이후 정비해 흔히 5·16도로라고 한다.
또한 지난달 29일 충북 옥천관성회관서 열린 박 대통령 어머니 육 여사 탄신 축하 숭모제는 시민단체가 시위를 벌여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예년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0여명만 참가한 가운데 열린 숭모제는 문화공연이나 기념행사 없이 서둘러 제례만 치르는 방식으로 30분 만에 끝났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이게 온당한 처사인가. 딸로 인해 그 부모가 함께 폄훼되는 일이 정상일까. 과연 우리 역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를 위해 시간을 조선조로 돌려보자.
조선에서 성군 중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과 성종을 실례로 들어보자. 먼저 세종의 경우다. 세종은 그의 아들인 수양대군, 즉 세조에 의해 자신의 아내인 혜빈 양씨,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등 여러 아들들 그리고 손자인 단종을 위시하여 자신이 수족처럼 거느렸었던 수많은 충신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사실로 살피면 세종은 참으로 불행한 임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종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수양대군과 연계하여 평가 절하하고 있지 않다. 세종은 세종이고 세조는 그저 세조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은 성종의 경우를 살펴보자. 성종의 아들은 조선 역사에서 폭군 중 폭군으로 기록되고 있는 연산군이다. 연산군의 패악질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종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성군이라 칭송하고 있다.
이제 시선을 박 대통령에게 돌려보자.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최태민 일가에 의해 철저하게 사육되어진 그녀의 행위는 현대인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이나 연산군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시대는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에게 연좌의 죄를 묻는가. 물론 그녀로부터 받고 있는 깊은 상실감 때문임을 알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러하니까. 그러나 그녀로 인해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를 폄훼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터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