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호룡이 영웅적 행위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순간적으로 석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굳이 그런 교육은 필요 없을 텐데요. 저는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자네가 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 목숨에 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룡이 다가앉아 석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 자네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자와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네.”
“언제입니까!”
석원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조총련 본부에서는 남조선의 국경일인 삼일절 혹은 8월 15일 광복절을 염두에 두었었네.”
“삼일절은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8월 15일로 날을 잡았네.”
“그건 또 너무 멀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일정 때문에 그러하네. 평상시에는 박 대통령의 동선을 알기 힘들고 또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일을 성사시켜야 자네의 영웅적 행위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란 고려 하에 그리 정했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그런데 방식은?”
“일전에 자네가 이야기 했던 그 방식이 옳을 듯하네.”
“그러면 권총으로 저격하는 방식입니다.”
“어차피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서 암살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 외에는 없다 보네.”
순간 석원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왜 그러는가?”
“권총 저격은 제가 생각하던 바입니다.”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고. 그리고 교육 관련한 내용인데. 자네가 도쿄의 조총련 본부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여 조총련 간부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방법으로 하기로 하였네.”
“병원에 입원해서요?”
“병원은 단지 자네의 거처로 삼으라는 이야기네.”
“그러면.”
“주로 조총련 사무실 혹은 관련 기관에서 교육받을 걸세.”
“무슨 말씀인지 대충 감을 잡겠는데 왜 하필 숙소가 병원입니까?”
“자네를 위해서네.”
“저를 위하다니요?”
“자네의 심리상태 조절을 위해 부득이 병원을 선택했네. 그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살피며 자네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말일세.”
석원이 고통을 되뇌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자네 명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명의로 입원하는 걸로 기록될 걸세.”
“그거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권총 말입니다.”
“권총이 어때서?”
“사실 제 경우 권총을 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서 그 부분도 생각해 두었네.”
“병원에서 그게 가능합니까?”
“병원에서는 물론 안 되지. 하여 이번에는 사상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 다른 장소에서 권총 사격과 관련한 훈련이 실시될 것이네.”
“결국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병원 입원을 결정하신 거네요.”
“바로 그 이야기네. 그러니 조금도 개의치 말고 총련의 결정에 따라주었으면 좋겠네.”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런데.”
석원이 호룡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게.”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만 8월까지는 기간이 너무 긴 듯합니다.”
호룡이 석원의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을 살피며 가볍게 웃었다.
“임자, 안 사람의 성화가 여간 아니었네.”
“각하, 송구합니다.”
“경호도 좋지만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에게 너무 심했던 게 아닌가.”
지난 삼일절 행사 시 고강도로 경호한 데 따른 질책이었다. 그 과정에 주한 외교사절들의 부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핸드백까지 일시적으로 압수하고 오로지 손수건 한 장만 달랑 가지고 들어가도록 조처 취했었다.
그 일로 주한 외교사절단 부인들과 만남을 가졌던 육영수 여사에게 불평이 쏟아졌고 육 여사는 그 일을 박 대통령에 언급했던 터였다.
“그게, 저….”
박 실장이 뭔가 말하려다 급히 입을 닫았다.
며칠 전 정동일이 극비리에 박 실장을 찾았다.
“이번 삼일절 행사에서 경호를 철저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제 말씀은 지난 시절의 경호가 무색할 정도로 치밀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박 실장이 의혹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동일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자네가 특별하게 부탁하는 사유는 무엇인가?”
“디데이를 이번 광복절로 잡고자 합니다.”
“광복절, 그런데 그게 무슨 관계있는가?”
“현 경호 상태라면 문석원은 대통령 각하에 대한 암살 시도는 물론 행사장 진입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하여 이번 행사의 경호에 대해 불평을 토해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특히 외국인들에게서요.”
박 실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광복절 기념식장은 경호를 자연스럽게 허술하게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문석원이 쉽사리 행사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일세.”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건 알겠네만 디데이가 8월 15일이라 어찌 장담하는가?”
동일이 차주선에 관한 이야기를 은근히 내비쳤다.
“어차피 삼일절에는 힘든 문제 아닙니까. 갑자기 경호를 허술하게 한다면 냄새를 풍길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이 옳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의 일은 두 사람이 처리하는 겐가?”
“그 사람은 오로지 저희 전략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박 실장이 잠시 뜸을 들였다.
“비록 그 사람이 중정의 정보원이라 하지만 현재 조총련의 고위직 인물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영수 부장께서 직접 천거한 인물입니다.”
“물론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네. 다만 그 이중간첩 노릇하다 처형당한 이수근이 생각나서 그런다네.”
“그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 무슨 이야기인가?”
동일이 슬며시 미소를 보이자 박 실장이 정색했다.
“그 사람의 역할에 대해섭니다. 그 사람의 역할은 오직 일본 내에서만 국한되고 정작 중요한 일들은 한국에서 이루어 질 터이니 너무 그 부분은 심려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아울러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바 본인도 이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어차피 이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그 사람의 경우 일본 내에서 활동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에 따른 준비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기야 그럴 테지. 그런 경우 우리 쪽에서 도와주어야 할 일인데.”
박 실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사람에게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동일이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건네자 박 실장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