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GS홈쇼핑을 정조준한 SC펀더멘털의 주주제안이 허무한 끝맺음으로 일단락됐다. 뒷말이 무성하다.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차라리 ‘의도된 해프닝’ 쯤으로 바라보는 게 타당할 법 하다. GS홈쇼핑에게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주일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16일 GS홈쇼핑은 대주주인 SC펀더멘털이 배당금 증액과 자사주 매입,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SC펀더멘털은 배당금을 주당 1만원으로 늘리고, 유통주식 62만주 가량을 매입한 뒤 소각해 주가를 부양해 달라고 요청했다. GS홈쇼핑은 이달 초 열린 이사회에서 주당 5200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한 상태였다. 배당금 총액은 323억원이다.
의도된 실수
SC펀더멘털의 선택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10월 데이빗 허위츠 SC펀더멘털 사장은 GS홈쇼핑 본사를 방문해 배당 정책 강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C펀더멘털이 시기를 봐서 무력시위에 돌입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당장 GS홈쇼핑은 법률 검토를 거쳐 주주제안을 총회에 상정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15년 말 기준 SC펀더멘털이 보유한 GS홈쇼핑 지분은 1.4%. 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제안 시 안건에 반영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가올 주총에서의 팽팽한 신경전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23일 SC펀더멘털은 주주제안에 오류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기본 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게 걸림돌이었다.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우호 정책을 요구했지만 정작 주주제안 자격조차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상법상 상장사의 경우 6개월 넘게 1%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면 주주제안자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지난해 7월말까지 SC펀더멘털이 보유한 GS홈쇼핑의 지분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GS홈쇼핑 측은 “SC펀더멘털은 상법상 기준을 애초부터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주주제안 자체가 성립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안을 SC펀더멘털의 단순 실수로 봐야 할까. 굴지의 헤지펀드가 상법상 주주제안 요건을 잘못 이해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만한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주주제안을 통해 주가를 띄우고 그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렸거나 손실 회피를 도모했다고 보는 게 현실성 있다.
실제로 SC펀더멘털의 주주제안 사실이 공개된 후 GS홈쇼핑의 주가는 급등했다. 15일 종가 기준 17만8000원이던 주가는 22일 18만7700원으로 1만원 가까이 올랐다. 최근 1년간 GS홈쇼핑 주가가 하향곡선을 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이 같은 형태는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SC펀더멘털의 투자 철학과 대치되는 부분이다. SC펀더멘털은 그간 ‘가치투자 전문’ 헤지펀드임을 강조해 왔다. 대규모 지분 매입 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중을 수차례 내비쳤다.
“배당 올려줘” SC펀더멘털 통큰 요구
기본 요건도 모르고…교란행위 의혹
그러나 일련의 사태는 SC펀더멘털이 단기적인 주가부양 의도를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SC펀더멘탈은 지난해에도 3월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삼아제약, 모토닉, KTcs에 주주친화정책 확대를 요구한 바 있다.
배당성향을 감안하면 의혹은 한층 커진다. SC펀더멘털은 주주제안 명분으로 이익잉여금을 들고 나왔다. 이익잉여금을 활용하면 배당금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GS홈쇼핑이 보유한 이익잉여금은 2015년 3분기 기준 7900억 원이다.
하지만 GS홈쇼핑의 순익 대비 배당금 비율인 배당성향은 41%로 이미 경쟁사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배당성향도 42%에 달했다. 2년 연속 순익감소에도 불구하고 고배당 정책을 유지해왔다.
GS홈쇼핑 관계자는 “현재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의 비율)이 30∼40%로 이미 동종 업계 경쟁사들의 3∼4배 수준”이라며 “두 배로 늘리라는 요구 자체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들에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는 GS홈쇼핑의 지분 비율에 있다. GS홈쇼핑의 최대주주인㈜GS의 지분율이 30%에 그친다. 경쟁사들의 경우 대주주 지분율이 NS홈쇼핑 53.91%, 현대홈쇼핑 40.87%, CJ오쇼핑 43.3% 등으로 이뤄졌다. 경쟁사와 대주주 지분율 격차가 현저히 벌어진다.
게다가 GS홈쇼핑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35%로 대주주 지분을 상회한다. 이런 이유로 안팎에서 취약한 지분 구성이 헤지펀드 등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지난해 엘리엇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은 삼성물산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33%를 웃돌았던 전례가 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 의결권 행사는 헤지펀드의 대기업 공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사례였다.
단기차익 노렸나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SC펀더멘털이 주가 상승을 목적으로 시장질서 교란에 나선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해 헤지펀드가 대기업을 압박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못 믿을 헤지펀드
헤지펀드가 투자한 종목의 수익률이 시장 평균보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헤지펀드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이 포트폴리오에 많이 담은 종목으로 구성된 헤지펀드 VIP 리스트는 연초대비 수익률이 -10%로 조사됐다. 이는 S&P500지수의 6% 하락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헤지펀드가 주로 포트폴리오에 담은 종목은 ▲브로드컴 ▲화이자 ▲익스피디아 ▲밸리언트 등이 있었으며, 급락한 종목은 ▲애브비 ▲제너럴 일렉트릭 ▲브로드컴 ▲페리고 등이었다. 애브비는 연초대비 7.04% 하락했고, 제너럴 일렉트릭은 같은 기간 6.20% 떨어졌다. 브로드컴과 페리고도 각각 5.45%, 17.64% 하락하면서 전체 시장지수를 밑도는 성과를 냈다.
반면 헤지펀드들이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종목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헤지펀드들이 큰 관심을 주지 않은 주식들은 부동산 투자업체 리얼티인컴, 석유회사 엑손모빌, 제조업체 3M, 담배업체 레이놀즈 아메리칸 등이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주식 부문 수석 전략가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주식자금이 인기 종목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이동했다”며 “헤지펀드 순매수 포지션이 1년 사이에 크게 줄어들었다”고 언급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