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신 지형도' 선거판 흔드는 야인들 백태

‘불출마≠정계은퇴’ 포석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 지형도가 재구축되고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무게추가 기우는 모습. 쏠리는 쪽은 친박, 반대편에는 비박이 울상을 짓는다. 갑작스레 힘의 기울기가 한쪽을 향한 데는 일찍이 불출마 선언을 한 인사들의 활약이 크다. 이들은 청와대·친박계의 손을 직·간접적으로 들어주고 있다. 나날이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불출마 인사들의 행보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새누리당이 공천 문제로 시끄러울 때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들은 제 할 말 다 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공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의 눈치를 덜(?) 본다는 게 정가의 중론. 그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노림수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어 흥미롭다.

불출마 인사
친박 확성기?

한 비박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외견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다”며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불출마가 정계 은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불출마라는 것은 선거의 유불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계산해 결정하는 것이다. 불출마 이후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지금 보이는 행동들을 포석에 두고 진행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까지 여권 내 불출마 선언을 한 현역은 5명(이한구·강창희·손인춘·김태호·김회선).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합치면 총 6명이다. 이들 중 비례대표인 손 의원을 제외한 5명은 총선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지금, 오히려 총선 정국을 이끌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연 태풍의 영향권은 어디까지이며,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정가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을 한 명 고르라면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꼽을 것이다. 공천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거머쥔 이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당 대표의 영향력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단, 공천 룰을 정하는 데 있어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는 점, 공천장에 당 대표의 도장이 필요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 위원장이 공천권을 완벽히 거머쥐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2월 현역 국회의원으로서는 가장 먼저 불출마 선언을 했다. 4선 의원의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정가에서는 즉시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진용퇴 압박을 받았다’부터 ‘입각을 노린다’까지 다양한 해석이 붙었다.

이한구·김회선
공천 칼자루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이 남았다. ‘시점’이 총선을 1년하고도 2개월이나 남겨뒀다는 점, ‘지역’이 여당의 텃밭인 점이다. 이 위원장의 지역구는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갑)이다.

이 위원장은 정계 은퇴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회견장에서 기자들이 ‘정계 은퇴를 의미하는 것이냐’라고 질문하자 이 위원장은 “정계 은퇴가 뭐냐. 난 어떻게 해야 정계를 은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앞으로 1년간은 중요한 문제에 좀 더 시간을 쓰고 싶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의원실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출마 선언 직후 의원실을 찾았을 때 관계자의 입을 통해 “아직 (계획이) 없는 상태”라며 “(이한구) 의원께서 평소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그쪽으로 계획을 잡고 있을 수도 있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이 위원장은 친박계 중진으로 통한다. 그러나 불출마 선언 후, 지금의 위원장이 되기 전까지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비박계에 가까웠다. 지난해 9월 정부세종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박근혜정부의 4대개혁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로 불렸던 그가 오히려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당시 기자들에게 뿌려진 60매짜리 장문의 보도자료에는 “각 부문별 핵심과제가 누락돼 알맹이 없는 개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혹독한 평가가 포함돼 있었다.

새누리 불출마 5인, 총선 앞두고 부각
국민 위해 쓴소리? “노림수 있을지도”

친박계에 대한 날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 장례식을 찾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입을 통해 ‘TK(대구·경북) 교체설’이 나와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이 위원장은 해당 논란에 대해 “정치라는 것이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자꾸 쓸데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국민을 혼란하게 만들고 자꾸 정치권 이미지만 나쁘게 한다”며 “박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불출마, 그리고 계파를 가리지 않는 모습은 그를 공관위원장 적격 후보로 만들었다. 비록 김무성 대표가 반대 의사를 폈지만, 비박계 전체에서 반대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친박계는 이한구 의원이 위원장이 되는데 적극 지원했고, 결국 원했던 그림이 만들어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의 상황은 이 위원장과 김 대표 간 극한의 갈등구도로 전개된다. 팽팽할 것 같던 힘 싸움은 그러나 서서히 김 대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한다.
 

‘필리버스터’ 대응을 위한 의원총회가 있던 지난 23일, 현장에 있던 새누리당 관계자는 “의총에서 처음과 끝은 당 대표가 연설을 하지만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회의장 안 분위기도 김 대표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라며 “이전보다 (비박계의) 호응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김회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한 후 공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일 김 대표는 당내 인사 5명, 외부인사 6명으로 구성된 공관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당내 인사로는 황진하 사무총장이 부위원장 겸 간사로 임명됐으며 공관위원에는 홍문표 사무1부총장과 박종희 사무2부총장, 그리고 김회선 의원이 임명됐다. 김 위원의 직책은 ‘클린공천지원단장’이다.

김태호·강창희
친박 세몰이?

김 위원은 지난해 10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회 대정부질문이 있던 날 그는 “20대 총선을 꼭 6개월 앞둔 오늘, 저 김회선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밝힌다”며 “열정과 능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애국의 방법”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있을 정도로 총선 준비에 여유가 있었다는 점, 깃발만 꽂아도 된다는 서울 서초(갑) 현역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이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회선 논개론’까지 나왔다.

그런 그가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돌아왔다. 클린공천지원단(이하 지원단)은 공천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비리를 ‘심사’하는 곳이다. 예비후보자들에게는 공천 시험대와 마찬가지. 상대방에 대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지원단에 탄원서·진상규명 촉구서 등이 쇄도하고 있다. 내용도 다양해 과거 상대방 후보의 해당행위·전과기록을 고발하겠다며 날아드는 문서들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기존 6명이던 소속 변호사 수를 9명으로 늘린 상황. 총선이 다가올수록 지휘를 맡은 김 위원에게 쏠리는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천? 칼쥔 이한구·김회선에 달렸다
정의화·강창희·김태호…박근혜 지원

‘미스터 쓴 소리’로 통하는 김태호 최고위원 또한 최근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불출마 인사다. 주 무대인 최고위원회의(이하 최고위)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25일 최고위에서 김 최고위원은 공천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국민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모습으로 우릴 보고 있다”며 “이렇게 백보드에 개혁을 띄고 붙이고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비판했다(새누리당은 백보드에 써넣을 새로운 문구 공모를 위해 기존 ‘경제를 살리는 개혁, 미래를 구하는 개혁’이라는 문구를 지웠다).

앞서 18일 최고위에서는 김 대표와 이 위원장 둘 모두를 겨냥해 “당의 가장 중심에서 책임 있는 분들이 막가파식 공중전을 통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비난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해 8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초심은 사라지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귀가 닫히고, 내 말만 하려고 하고, 판단력이 흐려졌다”며 “이대로 출마를 고집한다면, 자신을 속이고 국가와 국민, 누구보다 저를 뽑아 주신 지역구민 여러분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복수의 언론은 다양한 분석 기사를 통해 김 최고위원의 속내를 파악하려 애썼다. 종합해보면 ‘자기 정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함’이라는 게 당시 언론의 시각이었다. 최근 비박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김 최고위원의 입각설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 최고위원은 원유철 원내대표와 함께 요 근래 최고위를 주도하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22일 최고위에서 김 최고위원이 긴급 8인 회동(당 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공관위원장, 부위원장, 자격심사위원장 등)을 요청한 것도 커진 당내 입지를 잘 보여준다는 전언. 당시 한 사진기자의 앵글에 김 최고위원의 메모지가 잡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둘 중 하나 물러나야‘ ‘자해정치, 국가위기’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박계는 이를 다분히 의도된 노출로 보고 있다.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강창희 전 의장은 예비후보자 지원사격에 나섰다. 허용범·정윤숙·정진석 등 서울과 충청지역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찾아다니며 축사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지역 예비후보자들 사이에서는 강 전 의장이 충청권 ‘진박 마케팅’을 이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특정 후보자의 개소식에 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들과 모습을 드러내 논란을 키웠다.

정의화 의장
테러방지법

강 전 의장은 지난 4월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대전 중구에 있는 선거사무소에서 그는 “이번 19대를 마지막으로 선거에 더는 나서지 않을 결심을 했다”며 “유능한 후배들이 제 다음을 이어서 젊은 중구, 또 힘 있는 중구를 만들고 발전시켜 주길 기대하면서 불출마 결심을 당원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역할론에 있어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지만, 그때마다 강 전 의장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과 함께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됐으며, 최근에는 비박계가 내세우는 공관위원장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고사했다. 강 전 의장은 정계 은퇴를 번복하지 않고 예비후보자 지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후반기 국회의장도 최근 불출마를 결정했다. 정의화 의장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총선에 불출마할 것”이라며 “제 지역구인 부산은 물론이고, 동서 화합 차원에서 권유가 있었던 호남 등 다른 지역 출마도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출마를 말하기 전까지 정가에서는 정 의장의 출마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인이 현역 의지가 강했기 때문.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선은 변경됐지만, 결과적으로 청와대에 선물을 안겨주고 떠나게 됐다. 정 의장은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했다. 그는 “이슬람국가(IS)와 북한의 행태에 근거해보면 현재 ‘국가비상사태’ 요건이 성립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야권이 필리버스터로 저항하고 있는 가운데 변수가 있다. 300석 중 157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8석의 이탈 표가 나오면 다음 회기로 넘어간다(야권에서도 이탈 표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과연 직권상정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 정 의장의 결정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초침은 2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3월10일을 가리키고 있다. 더불어 그즈음 새누리당 경선 후보자의 모습도 윤관을 드러내게 된다. 여러모로 바쁜 3월의 여의도가 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누리 당사 현수막의 비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전 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정가에서는 탈출 전략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미 김 대표는 몇 가지 패를 던진 상황이다.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그 중 하나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와 함께 지난 23일 ‘지역 253석, 비례 47석’에 합의한 것도 탈출 전략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친박계인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쟁점법안과 연계키로 한 ‘당론’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즉 김 대표가 원내지도부와 상의 없이 독단으로 선거구 문제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공천관리위원회와 갈등을 계속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청와대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종국에는 발을 뺏던 전례를 생각한다면, 김 대표가 먼저 백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익명의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물러서면 김 대표 입장에서는 뒤가 없다. ‘공천권을 국민에게’가 적혀있는 당사 현수막을 걷어내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귀띔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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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