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고모' 김경희 근황 확인

“죽었다고? 알코올중독 치료받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그동안 생사여부에 대해 무수한 추측이 오갔던 김경희(70) 북한 노동당 전 비서가 현재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경희 전 비서는 북한정권이 내세우는 백두산 혈통의 유일한 적자이자, 현재 북 정권의 1인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다. 그동안 그녀의 생사와 건강상태를 두고 무성한 말이 오간 가운데 그녀의 생존이 최근 새롭게 확인됐다.
 

대북 소식통에 의하면, 김 전 비서는 현재 평남도 모 특각에서 군보위사령부의 관리 하에 치료 중이다. 현재 조울증, 알코올중독, 치매, 신부전증, 당뇨 등을 앓고 있다. 김 전 비서는 2013년 12월, 남편 장성택이 ‘반당종파’로 몰려 처형 당하고 줄곧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았다. 현재 북한 고위층 내부에선 김 전 비서가 여러 병이 겹치고 치매로 인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여서 곧 ‘자연사’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사람 못 알아봐
“곧 자연사할 듯”

해당 정보는 약 20년간 대북사업을 진행해온 한 군 출신 인사가 최근 북한을 방문했다가 한 한국계 미국인을 만나 확인한 내용이다. 이 인사는 20년간 대북사업을 해오며 북한 내 최고위층 인사와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남도 내엔 안주시 연풍호 제2별장, 온천군 온천리별장, 와우도 영남리별장 등 3개의 특각이 있는데, 현재 김경희는 이 3개소 중 한 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이 김정은 제1비서를 두고 ‘후지산 곁가지 혈통’이라고 폄하하는 가운데, 북 정권은 권력 안정을 위해 백두산과 만경대 혈통으로 세습되는 혈족계 최측근을 권력 주변에 배치해왔다. 백두산 혈통으론 고모 김경희, 이복누나 김설송, 손위 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 등이 핵심이다. 측근연합의 또 다른 한 축으로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 최룡해 등 항일 빨치산 2∼3세들을 요직에 배치해 기용해왔다.


김경희는 김일성 주석의 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한 혈육으로 김정일 사후에도 변함없는 위치를 과시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해 대장 계급장을 달고 활보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그러나 김경희는 2013년 12월12일, 남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반당종파' 혐의로 처형 당하고 같은달 17일 오빠 김정일의 2주기 추모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처형, 자살, 병사 등 각종 설 난무
‘독살’ 김정은 지시 살해설도 제기

김경희가 2014년 말 싱가포르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나돌았고, 2014년 11월엔 국내 모 탈북자단체가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후 5일만에 음독자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산케이신문>은 그녀가 2014년 10월 지병으로 사망했고,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망 직후 김정은이 직접 ‘직절한 시점이 올 때까지 공표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엔 CNN까지 나서 한 고위급 탈북자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김정은에 의한 ‘독살설’까지 제기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2014년 5월5일 또는 6일에 김정은이 직접 김경희를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탈북자 강명도씨도 2014년 11월 CNN 방송에 출연해 “김경희가 장성택이 처형되고 며칠 뒤 김정은 제1 비서와 전화통화를 하던 도중 세 번째 뇌졸중을 겪었다”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곧바로 숨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NHK는 김경희에 대해 “치료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망설을 부인하는 보도를 냈다. 가장 최근엔 지난 1월 초, <조선일보>가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권력층 내부에 김정은이 김경희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까지 언론이 자살설, 독살설, 피살설 등을 보도하면 국정원 혹은 통일부 측은 해당 내용에 대해 ‘사실 확인 불가’ 혹은 생존해 있다고 확인해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이후에 공식적인 모든 직함에서 이름이 사라졌고, 은퇴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리을설 인민군 원수가 사망했을 때 최룡해와 함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 것이 확인됐고, 2014년 초부터 북한 각종 주요기관·단체 인명록에서 이름이 사라진 것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김여정? 김설송? 
핵심부 세대교체

앞서 밝혔듯, 집권 초기 김정은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의 어머니와 친일파 설이 제기되는 외조부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자기 주변에 백두산 줄기로 대표되는 고모 김경희와 항일 빨치산 후손을 적극적으로 배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가 고모와 고모부 등 최측근을 배제한 것이 권력이양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측근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권력이 공고해졌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북한지도부감시(North Korea Leadership Watch)의 운영자인 마이클 매든은 “이렇듯 최측근들이 배제되면서 김정은 정권의 앞날이 더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희와 같은 측근들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정권이 정책을 수립하고 국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최근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을 갑자기 취소한 일을 예로 들면서 “김경희가 정계에 남아 있었다면 김정은에게 그 같은 성급한 행동을 하지 말도록 충고했을 것”이라고 썼다.

김경희가 더 이상 북한 지도부의 일원이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가 정말로 사망했다면 북한정권 입장에선 공식적으로 부고를 내고 국장으로 예우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 및 탈북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일성의 직계를 일컫는 백두혈통이 사망했다면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카인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정치적 생명이 끊기고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고모를 굳이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북 소식통 “살아있다” 증언
치매까지…평남도 특각서 보호

김경희와 마찬가지로 배우자가 ‘반당종파’로 몰렸음에도 살아남아 북한의 최고위직까지 오른 예가 하나 있다. 허정숙(1908∼1991)은 1956년 일어난 ‘8월 반당종파 사건’의 주모자이자 연안파 리더였던 최창익(1896∼1956)의 아내였으나 수백 명의 관련자가 숙청 당하는 와중에도 처벌을 면했다.

당시 최창익을 중심으로 한 연안파는 김일성이 동유럽 순방을 나간 사이에 소련의 지지를 배경으로 김일성 독재를 비판했는데, 이 일로 인해 수년 동안 관련자가 죽임을 당하거나 숙청 당하는 등 현재까지도 북한주민 입에 오르내리는 가장 대규모의 숙청사건으로 북한정치사에 기록됐다.

‘8월 종파’ 사건으로 인해 북한에 최초의 정치범 수용소가 설치됐을 정도였고 관련자 중 처벌을 면하고 살아남은 자는 허정숙과 정률성이 유일했다. 정률성이 처벌을 면한 것도 당시 중국에 나가 있었고 그가 중국 공산당의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의 사위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 허정숙은 최창익과의 이혼을 조건으로 숙청을 면했다. 그녀가 숙청을 피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며 ‘민족변호사’로 이름이 높았던 허헌(1885∼1951)이었기 때문이다. 허헌은 북한정권 수립 후 딸 부부를 따라 월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초대 의장, 김일성종합대 총장을 지냈다.

허정숙은 그 후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여맹중앙위 서기장,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의장 등을 지내며 권력 핵심부에 잔류해 노동당 비서에까지 올랐다. 1991년 6월 사망했을 때 북한정권은 그녀의 죽음을 국가장으로 예우했다.

피살설 진상은?
정부 “확인불가”

이 같은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김정은 정권이 김일성의 유일한 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사망을 공식화하지 않고 쉬쉬한다는 것은 북한체제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경희가 모든 공식 직책에서 물러난 것이 확실시된다”며 “김경희의 자리는 김여정이나 이복누나인 김설송이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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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