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뛰는 사람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

“대구도 바뀌고 변할 때 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총선이 다가올수록 예비후보자들의 호흡도 가빠지고 있다. 지난 4년의 노력이 그 결실로 이어질지 아니면 공염불에 그칠지, 모든 것을 판가름 지을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 <일요시사>는 지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는 후보들을 직접 찾아가는 코너를 기획했다. 그 네 번째로 대구 수성구갑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의 얘기를 들어봤다.

도통 쉬운 길을 가려하지 않는다. 이 고집스런 야당의 3선 중진은 적지 한가운데서 밤낮으로 뛰고 있다.

대구행을 선언한 지 4년,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滴水穿石, 적수천석)’는 말처럼 서서히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외침을 멈추지 않는다. 두 번의 실패, 그리고 세 번째 도전.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온전히 도전을 선택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김부겸’이다.

다음은 김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수성구갑 지역 현안 중 가장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린벨트 해제, 종 상향, 송전탑 지중화 등 거주자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들, 그리고 오랜 불황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책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기에 대구 전반의 경제 상황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일도 큰 과제다.

- 현재 대구민심은 제2의 IMF를 우려할 정도다.
▲경제 문제는 비단 대구뿐만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도시에는 소득을 보전해줄 수 있을 만한 제조업이든 혹은 기타 기반산업이 있는데 반해, 대구에는 그런 것이 없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16개 광역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한 게 20년째다. 도시에 생산기반, 즉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이 1년에 1만 명에 이르는데, 이것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 경제 활성화를 위한 청사진이 있나?
▲수성구 차원의 공약과 대구시 공약을 적절히 결합하겠다. 대구시에는 차세대 먹거리, 즉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수성구에 있는 ‘수성의료지구’, 정보통신 쪽의 ‘아이시티지구’와 대구시의 성장 동력을 잘 연결시키겠다. 또한 정부에서 하는 ‘스타트업’ ‘창조경제’와 어떻게 연계할지도 생각중이다.

수성구는 지적산업과 교육·문화에서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지역의 좋은 인재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문화·관광·예술·체육·의료 등 서비스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라 어떤 사회적 인프라를 이곳에 구축할지는 관련 자료들을 모으는 중이다.

- 몇몇 후보자들은 대기업 유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그 얘기는 20년 전부터 했다. 대기업을 유치하면 좋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입지를 고려했을 때 대기업이 여기 왜 와야 되냐는 문제에 봉착한다. 내륙 도시의 치명적 약점이 물류다. 물류에서 경쟁력이 없는데 계속 대기업 유치 얘기만 하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

지난 대구시장 선거 때 권영진 시장과 논쟁을 벌였던 것도 이 부분이다. 당시 권 시장 후보가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라고 해서 내가 말했다. “(대기업 유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대구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기계공업, 공구공업과 같은 몇 가지 부분에 집중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클러스터화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견기업을 대구에서 몇 개 키워내자”라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 저절로 크길 바라면 안 된다. 산업 정책적으로 지원,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집적화’하고 동시에 지역의 17개 대학에서 나오는 인력과 결합해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 2017년 조성되는 ‘수성의료지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수성의료지구는 의료에 관광이 더해진 ‘체류형 의료관광지구’로 개발된다. 의료관광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에이전시, 의료관광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의료기관과 관광유치업체 간의 과도한 경쟁에 따른 가격 덤핑과 불법 브로커를 통한 환자 유치 등을 막고, 차별화된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 안경·디자인·미용 등 인프라가 탄탄한 뷰티산업, 그리고 의료지구 주변의 대구 스타디움, 삼성 라이온즈 파크 등 스포츠 산업과 잘 접목시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 소속이 야당이다 보니 과연 대구시, 그리고 다른 대구지역 국회의원들과의 협업에 문제가 없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오히려 정부와 야당을 이어줄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대구시는 ‘물산업 클러스터’ ‘대구광역권 철도망 구축’ 사업 등 국가적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을 국회에 올렸다. 처음에 야당은 전액 삭감하겠다고 세게 부딪혔다. 그래서 내가 권영진 대구시장과 손잡고 홍의락 의원과 함께 우리당(더민주)을 설득했다. 그 결과 전혀 삭감 없이 통과됐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야당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그러진 프로젝트가 많았지 않나. 이번에는 우리(김부겸·홍의락)가 직접 나서 브릿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은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이런 역할을 못한다. 딱 필요한 타이밍에 누군가는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오히려 더! 야당 의원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진영으로 갈라져서는 답이 안 나온다.

야당 간판 달고 여당 안방서 3수
협업에 문제? ‘브릿지’ 역할 자신

-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긍정적인 신호가 보인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나?
▲아무리 여론조사 결과가 좋아도, 여기는 대구다. 이건 실제 지난 시장 선거 끝나고 들은 얘기다. “나는 분명히 김부겸 이름 밑에 찍는다고 찍었는데, 찍고 보니 1번 밑에 찍혀 있더라….”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분들이 워낙 오랫동안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1번 당을 찍다보니 1번을 안 찍으면 뭔가 이상하달까, 마치 배신했다는 죄책감이 들 정도라고 한다. 거기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있다. 전통적 여당 지지에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의리까지 있어서 정말 쉽지 않다.

실제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당지지율이다. 지금 조사에서 대개 새누리당은 50% 이상, 더민주는 10% 선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절대 여론조사 수치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더 겸손하게 진심으로 다가가 설득하고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사람은 괜찮은데 당이 별로다”라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인물이 아닌 정당 대결로 가면 불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는데...
▲그렇다. 상대 후보 측도 그걸 알고 ‘당 대 당’ 대결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무조건 이기는 곳이 대구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엄청나게 네거티브를 한다. 선거가 아직 80여일 남았음에도 벌써 공격을 해대는 건 인물은 지우고 정당만 남기자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 사투리로는 ‘사람은 좋은데 마, 당이 영 파이다’라고 한다. 그런 어르신들한테는 이렇게 호소한다. “물건이 좋으마 일단 한 번 써 보이소, 공장 나쁘다고 좋은 물건을 버릴 낍니까?”라고.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속한 ‘공장’에 대해서도 나의 구상을 밝힐 생각이다. 공장의 기계나 기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면 과감히 폐기 처분하고 신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하여간 그 문제는 좀 더 지금 당의 변화 노력을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힐 것이다.

제 지지층 중에 1/3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분들이다. 난 그 분들이 왜 더민주를 싫어하면서도 저를 지지할까 곰곰이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어깨가 무겁다. 우리 당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겸손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대구 사람들은 쉽게 말을 바꾸거나, 자기가 뱉은 말에 대해 책임을 안 지거나, 소위 ‘싸가지’ 없이 함부로 말 하는 사람을 절대 안 믿는다. 딱 그 부분이 우리 당이 지금까지 제일 잘못해온 지점이다. 우리 당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도 그런 태도는 당장 고쳐야 한다.

- 불편한 질문 하나 드리겠다. 새누리당의 고정 지지자 중에는 “에이 설마”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다. 대구는 30년 동안 여당의 텃밭이었다. 30년이면 관성이 있다. 그렇지만 호소한다. 지금 새누리당을 계속 도와주고 짝사랑한 결과가 대구에 무엇으로 돌아왔냐고.

경제 침체, 섬유·자동차 산업이 몰락했고, 지금 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 공업은 부가가치가 너무 적다. 1차 밴드들의 마진폭이 5% 정도고, 2차 밴드까지 가면 2~3%에 그친다. 열심히 일했는데, 자산가치는 서울의 1/3이다. 대구에서 열심히 애 키워서 경북대·영남대 보냈는데, 지방대라는 이유로 취업전선에서 얼마나 고생하나. 경북대·영남대는 괜찮은 대학이다.

1년에 1만명이 떠난다. 한 도시에 젊은 두뇌들이 1만명이 떠난다고 생각해봐라. 10년이면 10만명이다. 도시가 확 늙어졌다. 저녁에 밖으로 나가보면 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보기가 힘들다. 그 사람들이 경제·사회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 아닌가.


여론조사에서 나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김부겸 개인에 대한 호감이라기 보다 대구 시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특히 30·40·50대는 대구가 가진 환경에 대한 분노가 있다.

- 요즘 야권에서는 탈당이 최대 이슈다. 김 전 의원도 탈당을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면?
▲나는 정치도 경쟁을 해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구에 왔다. 즉 정치적 지역주의, 싹쓸이 투표 행태를 극복해보자는 명분을 갖고 나의 고향인 대구로 온 것이다. 하나의 당만 있으면 경쟁 할 필요가 없다.

정치인들이 그냥 특권층 행세를 하고 군림하려 든다. 그런데 두 개 이상의 당이 서로 경쟁하면 절대 그렇게 못 한다. 정당 간 경쟁을 주장하는 내가, 지금 와서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탈당을 하고 무소속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민주를 떠나 신당으로 가는 것 또한 명분이 없다고 봤다. 아주 냉철하게 보면 지금 탈당 러시는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 간 불신이 원인이다. 그 불신 때문에 수많은 야당 지지자들까지 편이 갈려 서로 비난하고 막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문·안 두 사람은 이번 탈당 사태를 빚은 당사자로서 국민 앞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 판에 내가 휩쓸릴 이유가 어디 있는가?

- 문재인 대표가 사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야권으로서는 마지막 절박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몰렸던 지난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 하에 이루어진 정치 행위니 문 대표가 앞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과거 야당의 정치 문법과 다를 것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프리핸드(재량권)를 준 것이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 더민주 박용진 전 대변인이 이번 총선에서 주목해야 될 두 곳으로 자신이 출마하는 강북구을과 김 전 의원의 수성구갑을 꼽았다. 김 전 의원도 한 번 꼽아본다면?
▲역시 순천·곡성이다. 호남민들이 이정현 의원의 정치적 태도와 일하는 자세, 이 두 가지 각기 다른 면에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 궁금하다. 그 다음 대구 동구을이다. 박 대통령과 소위 진박, 그리고 대구에 뿌리가 있는 유승민 의원 간의 갈등을 대구 시민들이 어떻게 풀어낼지, 그 결과는 향후 대구 정치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chm@ilyosisa.co.kr>



[김부겸은 누구?]

▲경북 상주 출생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제16·17·18대 국회의원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전 대구시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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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