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너는 어떻게 할래?”
“사무실도 없어질 텐데, 뭘 어떻게 하냐. 나도 이쯤에서 그만 손 접고 내 살 도리 해야지.”
“윤대중 선생은 구출하지 않고?”
“이미 남조선에 가 계신 분을 어떻게 구출하냐?”
마치 그 말의 의미라도 생각한다는 듯이 석원이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잔과 상철의 잔을 채웠다.
“속담에 이런 말 있지 않냐.”
“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래서, 네가 남조선에 가서 윤대중 선생을 구출해오겠다는 말이냐?”
“바로 그 이야기다.”
상철이 물끄러미 석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네가 무슨 수로 구출해오겠다는 말이냐. 아마 모르긴 몰라도 경비가 엄청 삼엄할 텐데.”
“그러면 정말 그렇게 할까?”
“그게 무슨 소리냐. 좀 시원하게 이야기해봐라.”
석원이 동문서답하자 상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를 살피며 석원이 다시 잔을 비워냈다.
“내가 일전에 고영진 그 새끼에게 했던 말 기억 안 나냐?”
“남조선의 박정희를 죽이겠다고 한 말 말이냐?”
“박정희를 죽이는 일이 오히려 더 간단할 듯도 싶다. 아무래도 윤대중 선생을 구출해서 일본으로 모셔오는 길보다는 그저 간단하게 박정희를 죽이면 굳이 일본으로 모시고 오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되면 남조선에서 윤대중 선생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이 되니 오히려 그 편이 간단할 것 같은데.”
상철이 술잔을 비워내며 여운을 길게 남겼다.
“네 이야기 들어보니 차라리 그 편이 수월하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냐. 일본도 아니고 남조선인데.”
석원이 슬그머니 미소를 보였다.
“왜 그러냐?”
“조금 있으면 이호룡 부장께서 이리로 오실거야. 그 분과 한번 상의해봐야겠다.”
이호룡을 언급하자 박상철이 이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상철이 답에 앞서 잔을 기울였다.
“석원아,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야겠다.”
“그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방금 이야기했듯 나는 내 살 길 모색해야겠어. 너와는 차원이 다르니‥‥‥. 그리고 나 먼저 일어날게. 괜히 두 사람 이야기하는 데 개입하고 싶지 않아.”
말을 마친 상철이 석원이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며 스스로 잔을 채우고 비우는 중에 저만치서 이호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원이 잔을 비우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출현을 반겼다.
“오래 기다렸지.”
“먼저 마시고 있었습니다.”
호룡이 탁자를 살피다 천천히 자리 잡았다.
“동행이 있는가?”
“저희 지부 박상철 사무국장이 지금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장님 들어오시기 전에 급한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났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급히 만나자고 한 사유나 들어볼까?”
호룡이 석원이 정중하게 따른 잔을 들었다. 석원도 급히 자신의 잔을 채워 들었다.
“부장님, 저희 아니 제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잔을 내려놓기 바쁘게 석원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한청에서 축출되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그 무슨 소린가? 자네처럼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축출되다니!”
석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초지종을 말해보게.”
비밀리에 모여 대통령 암살계획 모의
결국 선택은…좌익 과격파 결단 임박
석원이 지난 캠핑 시 한청 중앙위원장인 고영진과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호룡이 병을 들어 두 개의 잔을 채웠다.
“참, 그 사람도 그렇다고 제명까지 시키다니.”
이호룡이 가볍게 혀를 찼다.
“부장님,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정작 중요한 실수는 본인이 해놓고.”
“그러게 말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윤대중 선생 납치를 막을 수 있었는데. 백주에 납치당하다니.”
호룡이 말하다 말고 다시 혀를 찼다.
“그런데 자네가 한청 이름으로 영사관에 공갈 협박한 일은 잘못되었어.”
“왜요?”
“지금 일본 정부에서 한청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치 않아. 일본 정부는 좌익 과격파 세력들에 대해 모종의 트집 잡을 구실을 마련하고 있거든. 그런데 한청 이름을 사용했으니 마음이 좋을 리 없지.”
석원이 그 뜻을 헤아린다는 듯이 침묵을 지켰다.
“그건 이제 지나간 일이고 향후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가?”
“그래서 생각해보았는데.”
석원이 말하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호룡 역시 호기심이 일었는지 석원의 행동을 따라했다.
“윤대중 선생 구출을 실리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실리적이라.”
“제가 남조선으로 건너가서 윤대중 선생을 구하는 방법이지요.”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어차피 윤대중 선생을 구출한다 해도 일본으로 모셔오기 힘든 만큼 이참에 남조선의 박정희를 암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라!”
이호룡이 하도 기가 찬지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왜요, 아니 되겠습니까?”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급작스러운 이야기라 그러네.”
흡사 그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호룡이 급하게 술을 들이켰다. 술이 넘어가다 목구멍에 걸렸는지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석원이 급히 찬물을 따라 건넸다.
“너무나 허황된 이야기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네.”
“하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네.”
석원의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실은 그 문제로 부장님께 상의 드리려 했습니다.”
호룡이 잔을 들어 천천히 들이켰다.
“정말 각오되어 있는 건가?”
“당연합니다, 부장님. 그 일이 윤대중 선생을 위하고 결국 우리 조선을 위하는 길이라면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한 목숨 던지렵니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하는 석원의 얼굴에 결연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접근해보도록 하세.”
“임자, 고생했어.”
김운정 총리가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하여 두 사람만이 자리했다.
“각하의 압박이 주요했습니다.”
“윤대중 돌려보내주겠다고 한 말 말이지.”
“그 이야기를 꺼내니까 그쪽에서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여하튼 오히라도 그렇지만 다나까도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야.”
“특히 오히라 그 사람 정말 고맙지요.”
“그런데 그들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