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4) 한일관계가 변수

외교와 실리, 대통령의 결정은?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힘들겠습니까?”

“지금 상황으로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윤대중 납치사건 여파 때문에 그러합니까?”

“그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수상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실지 그 부분이 걱정입니다.”

김 총리가 잠시 다나까 수상을 생각한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지금 윤대중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진행해야 할 일들이 발목을 잡혀 곤경에 처해 있음을 장관께서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물론입니다. 수상께서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장관님!”

간곡하게 부르는 소리에 오히라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김 총리가 심호흡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윤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 본인이 이 사건과 관련 없다는 부분도 있지만 그분 마음은 오로지 경제발전에 쏠려 있습니다.”


오히라가 가만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박 대통령께서 계속 이 일이 일본과 한국 관계에 발목을 잡는다면 일본 측이 원하는 대로 즉 윤대중 씨를 원상복구 하라 하십니다. 물론 그런 차원에서 윤대중의 가택연금도 해제하였습니다.”

“원상복구라면?”

“원래 있던 자리로 데려다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시 일본에!”

순간 오히라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화되었다.

“그런 경우 일본은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라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장관께서도 그러시겠지만 수상께서도 결코 그런 일을 원치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야 물론입니다.”

“아울러.”

김 총리가 말하다 말고 주위를 살폈다.


“박 대통령께서 두 분의 노고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라 외상의 밝은 표정을 확인한 김 총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다나까 수상이 직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상견의 예를 갖추고 집무실에 들어서자 김효 대사의 말대로 오히라 외상과 다카하시 외무성 아주국장만이 배석했다.

숨 막히는 외교전, 일본의 양보
결정 미루는 한국, 긴장감 고조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허허, 고생은요. 마치 내 집 오는 듯했습니다.”

김 총리가 내 집이라는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이번 일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였다니 지금도 차마 믿기지 않습니다.”

다나까 대신 김 총리와 밀접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오히라 외상이 아쉽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두 분의 인연은 참으로 오래 이어집니다.”

다나까가 부럽다는 듯 김 총리와 오히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히라 외상은 겉으로는 일본 외상이지만 실은 우리 대한민국의 주일 대사시지요.”

김 총리의 농에 참석자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그런데 이것 참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웃음이 멈추자 김 총리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입니까?”

“외상께서는 지금도 외상이신데 저는 총리직에 있으니 참으로 민망할 일입니다.”

재차에 걸친 김 총리의 농에 다시 한 번 파안대소가 이어졌다.

“오래지 않아 이 자리에 올라서시지 않겠소이까?”

마치 다나까가 오히라를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말을 꺼내자 오히라가 슬그머니 고개 숙였다. 순간 김 총리가 상의 안 주머니에서 소중하게 편지봉투를 꺼내 다나까에게 전했다.

“이번 윤대중 사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께서 각별하게 수상께 전하라 당부하신 서신입니다.”

다나까가 김 총리가 전한 편지를 즉석에서 개봉하여 내용물을 펼쳐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순간순간 다나까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마침내 읽기를 마쳤는지 소중하게 접어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런 서신을 받고 보니 오히려 송구하기 그지없소이다.”

“수상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다나까의 치사에 김 총리가 은근한 투로 화답했다.

“그리고 오히라 상.”

“말씀하십시오, 각하.”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김운정 총리께서 직접 가지고 방문하여 주셨는데 이쯤에서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저희야 당연히 그를 원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본인의 적극성에 따라 일의 성과가 이루어진다 이 말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잠시 침묵에 빠진 다나까를 향해 김 총리의 간곡한 말투가 이어졌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하도록 합시다.”

운을 뗀 다나까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먼저 윤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수사를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야당과 경시청이 쉽게 물러설까요?”

“야당은 지금 김운정 총리께서 가져오신 박 대통령의 서신으로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시청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나까가 말하다 말고 김 총리의 얼굴을 주시했다.

“김 총리, 이 부분은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일본 정부도 윤대중 씨가 일본에서 활약하는 일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또 하나의 조총련 세력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바와 진배없는 일입니다.”

김 총리가 오히라에게 말한 협박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아울러 더 이상 윤대중 건으로 일본과 한국 간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께서도 바로 그 점을 중시 여기고 계십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사건과 한국의 경제협력 부분은 철저하게 별개로 진행하면서 잠시 멈추었던 한일각료회담은 바로 다음 달 실시하도록 합시다.”

“역시 수상 각하께서는 비범한 인물이십니다.”

김운정 총리가 가만히 고개 숙였다. 아마도 그 순간 김운정 총리는 다나까의 입지전적인 과거를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이 전부인 다나까의 인생역전의 한 편의 드라마를 회상하는 듯했다.

“저희도 수상의 선처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이 사건과 연루되었다고 하는 주일 대사관에 근무했던 이성원 서기관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억울해하지 않을까요?”

“비록 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의심살 만한 행동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취해야지요.”

“고맙소. 그러면 우리는 이제 이 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다나까의 손을 잡은 김 총리의 손에 은근히 힘이 들어갔다.

“한국 영사관 폭파보다 이 새끼 먼저 죽여버리고 말테야!”

이코노구의 한 선술집에서 문석원이 잔을 비우고 소리 나도록 탁자에 내려놓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래, 사무실은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냐. 내가 제명된 마당에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사무실을 굳이 유지할 필요 있겠냐?”

“그런데 형은?”

“형이라고 하고 싶겠니. 동생인 내가 제명되었는데.”  

“하긴.”

힘없이 말을 받은 박상철이 천천히 잔을 들어 비워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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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