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미래에셋 성공신화 대해부

대한민국 금융 좌지우지 “적수가 없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국내 금융투자시장은 미래에셋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축의 시대를 투자의 시대로 바꾼 미래에셋은 최근 대우증권마저 손에 넣으며 자본금 8조원대의 압도적인 1등 증권사로 우뚝 섰다. 설립 18년 만에 금융투자업계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박현주 회장이 중심에 서 있다.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증권가의 맏형이자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던 대우증권의 새 주인으로 미래에셋증권이 낙점됐다. 대우증권의 풍부한 투자은행(IB) 경험과 미래에셋증권의 해외 네트워크가 맞물려 글로벌 대형 IB 탄생의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역동성이 떨어진 금융투자시장에 신선한 충격으로 작용할지 기대가 높다.

대우증권 인수
시너지 기대

지난 12월24일 대우증권 최대주주이자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미래에셋컨소시엄(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선정했다. 산은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금융자회사 매각추진위원회는 매각가치의 극대화와 조속한 매각, 국내 자본시장 발전 기여라는 3대 기본원칙과 국가계약법상 최고가 원칙에 따라 매각을 결정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는 업계 판도를 재편성하는 계기나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증권의 2015년 3분기 말 기준 자기자본은 업계 4위인 3조4620억원. 여기에 대우증권(4조3967억원)을 더하면 7조8587억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초대형 증권사로 탈바꿈한다. 통합 후 총 고객수는 300만명에 육박한다. 기존 1위였던 NH투자증권(4조6044억원)은 현격한 격차가 실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이로써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생명 등을 포함한 미래에셋그룹의 자기자본은 10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미래에셋은 대주주 변경과 금융위원회 출자 승인 신청에 이어 계약금 납부와 확인 실사 등 모든 인수 절차를 순차적으로 마무리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대우증권이 지닌 상징적 가치를 얻은 것만으로도 미래에셋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다. 1970년 이래 대한민국 증권가의 산 증인으로 자리매김했던 대우증권은 그간 수많은 위기와 풍파 속에서도 증권가를 지켜왔다.

‘증권가 맏형’ 대우증권 새 주인 낙점
자기자본 8조원 초대형 증권사 탄생

대우증권은 1997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1999년 대우그룹의 부도로 계열 분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증권은 결국 1999년 워크아웃을 선언했고, 2000년 새 주인으로 나선 산업은행의 관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2013년에는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의 양적완화 후폭풍이 증시 침체로 이어지면서 매매수수료 수입 급감과 채권 투자 손실이 커진 탓이다.

고된 풍파 속에서도 대우증권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산관리·해외투자에 강한 미래에셋증권과 투자은행(IB)·리테일 부문에 강점이 있는 대우증권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B분야에서 대우증권은 명실공히 업계 최고로 손꼽힌다. 국내 102곳의 점포를 기반으로 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역시 대우증권의 강점이다.

IPO시장에서 대어급들의 상장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DCM(채권발행시장)에서도 수위권이다. 대우증권은 2014년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였던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상장을 단독으로 대표 주관한 데 이어 호텔롯데의 대표 주관을 맡는 등 IB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발휘해왔다.
 

미래에셋그룹은 2003년 국내 최초의 해외 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출범하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에 주력해 왔다. 여기에 해외 법인 실적 1위인 대우증권의 네트워크가 융합된다면 해외 진출 계획이 한층 탄력 받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IB 분야에서는 업무 중복이 거의 없고 서로 다른 분야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우수 인력을 활용해 해외IB영역 및 해외자본 투자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샐러리맨 신화
박현주의 18년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인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일군 작은 회사가 45년 전통의 명문 증권사를 품에 안았다는 점에서 여타 M&A와 의미를 달리한다.

광주광역시 시골 마을에서 자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0년대에 동양증권에 신입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던 박 회장은 32세에 국내 증권사 최연소 지점장 기록을 갈아치우며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점장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해당 지점을 전국 1등으로 만드는 등 엄청난 수익률로 단박에 시선을 휘어잡았다. 은행 적금이 서민들의 유일한 재테크 수단이었던 시기에 돈 있는 사람을 주식시장으로 끌어 모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절정의 명성을 구가하던 1997년, 박 회장은 돌연 사표를 내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오늘날 미래에셋의 시작이다. 미래에셋캐피탈 설립과 함께 밑그림을 그린 박 회장은 이듬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만들어 국내에 간접투자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펀드라는 개념이 알려진 게 이 무렵이다.

펀드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에 박 회장은 지점 근무 당시 떨친 유명세를 십분 활용해 본인의 이름을 딴 국내 첫 펀드인 ‘박현주 1호’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펀드의 성공은 저축에서 투자로 자금을 이동시키는데 일조했다. 뒤이어 국내 첫 부동산펀드 및 PEF 등을 내놓으며 미래에셋은 금융투자 역사를 새로 써갔다.

그사이 샐러리맨에서 금융그룹 창업자로 성공신화를 써내려 간 박 회장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돋보이는 실행력으로 국내 최고 투자전문가 자리에 올랐다. 박 회장과 함께 성장을 거듭한 미래에셋 역시 불과 18년 만에 국내 최대 금융그룹사로 발돋움했다.

“금융투자 패러다임 바꾼다”
‘미다스의 손’ 박현주 뚝심

미래에셋그룹은 이미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 미래에셋캐피탈, 부동산114 등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춘 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전체 직원 4800명, 운용자산(AUM) 186조4515억원이다. 미국, 영국, 홍콩, 중국 등 글로벌 12개국에 총 20여개 법인·사무소를 운영할 만큼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탄탄대로만 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설정한 ‘인사이트펀드’는 박 회장의 커리어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미래에셋의 인기 덕에 국민펀드로도 불리던 인사이트펀드는 국가, 주식, 채권 등 특정 지역 및 자산에 얽매이지 않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를 표방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박 회장도 인사이트펀드의 실패를 굉장히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평가받던 미래에셋의 파격적인 시도들은 “너무 앞서간다”는 비난으로 돌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향후 행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마저 더해졌다.
그렇지만 미래에셋은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글로벌 빌딩, 호텔 등 대체투자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결정된 대우증권 인수는 글로벌 금융투자회사를 지향하는 미래에셋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는 규모의 경영을 이루고 한국경제 투자활성화의 절실함에서 출발했다”며 “투자금융을 통해 해외 진출을 선두해온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쳐진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투자기회를 찾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지각변동 예고
창창한 앞날

미래에셋의 활발한 행보는 어느덧 금융투자시장 전반의 분위기마저 바꿨고 대우증권 인수는 또 다른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초대형 증권사로 발돋움한 미래에셋-대우증권 체제에 대항하기 위한 국내 증권사 간 M&A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대형증권사들은 해외 IB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몸집불리기가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현재 종합금융투자사로 지정된 곳은 NH투자증권, KDB대우증권(4조2581억원), 삼성증권(3조5705억원), 한국투자증권(3조2580억원), 현대증권(3조2100억원) 등 5곳이다. 일본 노무라증권과 중국 중신증권의 자기자본이 각각 28조원, 1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증권사 간 인수합병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통상 자기자본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인수합병이나 증자를 선택할 수 있는데 증자로 덩치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를 증권가 빅뱅의 신호탄쯤으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올해는 리딩투자증권, LIG투자증권 등의 매각이 예정돼 있어 증권업계의 지형이 새롭게 짜일 것으로 보인다. LIG투자증권의 경우 대주주인 KB손해보험이 지난 12월22일 우선협상대상자인 케이프인베스트먼트와 지분 매각 계약을 체결해 내년 상반기 안에 매각 절차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잠재 매물도 대기 중이다. 현대증권은 지난 10월 인수를 추진하던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의 지분 계약 해제 통보로 현재는 매각이 무산된 상태다. 

물론 불안요소도 있다. 미래에셋이 당초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2조4500억원 가량을 써낸 사실이 알려지자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의 인수를 반대해 온 대우증권 노조와의 협상 여부도 관심거리다. 노조측은 본 실사 원천 봉쇄 방침을 내세운 데다 최악의 경우 총파업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합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위 포부
박현주의 열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의 앞날은 어느 때보다 창창하다. 일단 여타 회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회사를 키우고자 하는 박 회장의 열의가 돋보인다. 이미 박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룹 실질 자기자본을 3년 안에 10조원 수준으로 확충할 것임을 천명한 상황이다. 창립 18년만에 자산규모는 7000배, 조직규모는 1200배 커진 미래에셋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자서전을 통해 밝혔듯이 박 회장은 미래에셋을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와 견줄만한 회사로 키울 생각”이라며 “미래에셋의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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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