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박근혜정부 외교 성적표

계속되는 굴욕 협상 '못 먹어도 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12월, 전격 타결됐던 위안부 협상 후폭풍이 거세다. '굴욕 협상'이란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실익 없는 외교가 도마에 올랐다. 국정수행 지지율 40%를 웃도는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무기'는 외교였다. 잇따른 국내 실정에도 불구하고 해외순방으로 지지율을 끌어 올렸던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차 들어 중대 고비를 맞았다.

한국은 바다 건너 일본과 인접한 국가이자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사실상의 '섬' 나라다. 서해로는 중국과 마주하고 있고,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과는 반세기 넘게 갈라져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미국과는 적대관계를, 중국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대국들 틈에서 한국은 필연적으로 균형 있는 처세를 요구 받는다. 냉전체제 종식 후 특정국가에 편중된 외교정책은 국제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팽창 속에 더는 친미외교만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때문인지 역대 대통령은 저마다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균형'을 언급했다.

일본-D등급
"굴욕 외교"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다. '통일대박'을 대표 브랜드로 앞세운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외교성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실제 성과는 어떨까. 박근혜정부 4년차를 맞아 '외교 성적표'를 뽑아봤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 중국 열병식 참석 등 굵직한 사건들을 변수로 놓고 성적을 매겼다. 각 국가별(일본·미국·중국) A~F등급까지 주관적인 기준을 반영했다. 첫 번째 국가는 일본이다.

지난 28일 한·일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안을 도출하고 협상결과를 언론에 공표했다. 그러나 "위안부 소녀상 철거의 대가로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97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면서 이른바 '굴욕 협상' 논란이 확대됐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교도통신, 도쿄신문, 산케이신문 등 주요 외신들이 한목소리로 한국 정부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지난 29일 "더는 사죄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빌미는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협상 내용에 '불가역적·최종적'이란 문구를 삽입한 탓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아베 총리가 '앞으로 이 문제(위안부)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겠다. 다음 일·한 정상회담 때도 말하지 않겠다. (박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말해뒀다. 어제(28일)로 끝이다'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박근혜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소녀상 철거 보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까지 한 이상 한국이 약속을 어기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라는 등 며칠 새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과 대조적이다.

또 일본 정부는 합의문에 명시된 '책임'이란 표현과 관련해 "법적책임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모든 보상이 끝났다는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언행들이 없길 바란다"라고 답했지만 일본 정부의 대응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도 미뤄질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28일 "한국이 신청에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협상 직후 기시다 외무상이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자신한 배경이다.

국내 여론은 이번 합의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 결과에 따르면 '잘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50.7%로 '잘했다'고 응답한 43.2%보다 7.5%P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 가운데 60세 이상은 71.3%가 '잘했다'고 응답했다.

60세 이상의 '콘크리트' 지지는 박근혜정부가 '미완의 협상'을 밀어붙인 원동력이란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외교 실무자들에게 직접 위안부 협상 연내 타결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집권 초 박 대통령이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공언한 것과 대비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12·28 한일 위안부 협상 후폭풍 거세
미국은 환영…사드 배치 강수 이어질까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으로부터 1년이 지난 2014년 3월25일에야 아베 총리와 첫 환담을 나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미국 측의 요구로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당시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과 눈을 맞추고 한국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이때만 해도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의 '구애'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대일 노선 변화는 임기 반환점을 돈 지난 9월 무렵 가속화됐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중국 전승 70주년 기념식 참석 당시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가 계기였다. 일본은 10월8일 일본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를 통해 친서를 전달했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이다.

냉랭했던 한·일관계는 11월2일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일본 당국자는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에 소녀상 철구를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양국 정상간 협의내용을 밝히지 않겠다"라고 브리핑했다.

결과적으로 위안부 소녀상 철거 여부는 합의문에 적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못한 반쪽짜리 합의문이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와대는 31일 브리핑에서 '굴욕 협상'이란 비판에 대해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라고 반박했다. 재계에선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로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사회적 갈등이 커졌다는 점에서 낙제점인 D등급 이상은 매기기 어렵다.

미국-B등급
"Poor Park"

미국은 한·일 위안부 협상 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28일(현지시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표한 성명을 인용해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 정부가 합의를 도출한 것을 축하한다"라며 "양국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라고 보도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같은 날 "이번 합의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양국이 경제·안보 협력을 포함해 지속적으로 협력해나가길 기대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여론과 무관하게 미국 정부의 입장은 호의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 합의인 것이다.

실제 일본 도쿄신문은 29일자 사설에서 이번 위안부 협상 배경에 대해 "동북아 패권을 노린 오바마 정권이 양국의 등을 떠밀었다"라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중국을 의식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수립했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구축해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구상이 핵심이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냉각되면서 3국 공조체제 역시 흔들려왔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때문에 이번 위안부 협상은 미국의 '앓던 이'를 빼준 것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위안부 협상을 계기로 주춤했던 싸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부각될지 관심이다.

지난 10월29일 마이크 트로츠키 록히드마틴 부사장은 워싱턴D.C.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국(한·미) 정책당국자 사이에 싸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구가 없었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15일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초청된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중국을 상대로 '싸드가 한반도에 배치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엉뚱한 '북핵' 얘기로 눈총을 샀다. 지난해 10월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장에 나온 박 대통령은 현지 기자로부터 '베이징(중국)을 방문해 중국·러시아 정상과 함께 했다. 이 방문이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속내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질문 내용을 모르는지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북한 핵이 전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건 중국이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미국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남중국해 등의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국 기자의 질문을 잊어버리자 "딱한 대통령(The poor president), 질문조차 잊은 것 같네요"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침묵…한중 FTA·AIIB 성패 촉각
남북 정상회담 요원…변수는 반기문?

오바마 대통령의 '평가'와는 별개로 한국의 대미 외교는 무난한 수준(B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싸드 배치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적극 강권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방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란 발언으로 점수를 땄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한·미 관계는 최상의 상태"라고 화답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기념식 당시 박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을 자신의 옆에 세우고 중국이 '동북아의 맹주'가 될 것임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중국 동북아 정책에서 한국은 다른 의미의 '핵심축'이었던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 취임 후 시진핑 주석은 무려 6차례나 한·중 정상회담에 응하며 한·미·일 공조체제를 깨는데 공을 들였다. 리커창 중국 총리와의 회담까지 포함하면 한·중 정상회담만 무려 10차례에 이른다. 리커창 총리는 중국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중국은 박 대통령을 매개로 한·중·일 정상회의를 추진해 왔다. 전승절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가 급작스레 개선된 것이 그 증거다.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내심 정상회의를 통해 '친미' 성향인 일본을 회유 또는 압박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중국 억제정책에 힘을 보탰다. 미국으로서는 북핵을 핑계로 중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수위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을 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번 위안부 협상으로 자의든 타의든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네트워크에 협력하는 꼴이 됐다. 지난 29일 중국 신화통신은 양국 합의에 대해 "미국의 압력 속에서 만들어진 정치적인 선택으로 볼 측면이 크다"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중국-C등급
불가근불가원

그렇다고 한·중관계가 당장 악화될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당분간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0일 발효된 한중FTA와 중국 주도의 첫 국제 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성공을 위해선 일정부분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수는 북한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요원한 상황에서 중국은 박근혜정권과 김정은체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에 이어 북한과도 전면적인 경제협력을 추진하며 영향력을 높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북한에 대해 사실상의 '고립 외교' 정책을 펴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북·중관계 복원을 우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관련 대목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방북은 중국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친미 성향으로 알려진 반 총장의 방북은 미국의 간접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용으로 반 총장의 방북을 돕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경우 중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꼬일 공산이 크다. 흥미롭게도 박 대통령은 반 총장과 모두 6차례 회동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과 함께 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많은 횟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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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