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에너지공기업 상당수가 공석으로 남아있는 기관장 자리를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 경영공백 장기화에 따른 우려가 커지는 데다 갖가지 소문마저 떠도는 까닭이다. 내년 초까지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마저 계속되는 형국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공기업 가운데 아직까지 기관장 임명이 이뤄지지 않은 곳은 석유공사,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등 4개 기관이다. 오는 16일로 만료되는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의 임기를 고려하면 최악의 경우 에너지공기업 5곳이 기관장을 찾지 못한 채 해를 넘겨야 한다.
곳곳에 빈자리
기관장 내정이 이뤄지지 않은 에너지공기업들은 임시방편으로 대신하고 있다. 앞서 석유공사는 서문규 전 사장이 지난 8월16일부로 퇴임했고 동서발전은 장주옥 전 사장이 지난 7일까지 임기를 채웠다. 그러나 기관장이 아직 내정되지 않은 관계로 임기가 끝난 석유공사와 동서발전의 전임 기관장들은 여전히 직무를 맡고 있다.
최평락 전 사장이 지난 6월 29일 퇴임한 중부발전은 5개월째 대행체제로 운영 중이다. 중부발전은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에 3명의 사장 후보를 제출했지만 모두 부적격하다는 통보를 받은 바 있다. 지난 9월 김태우 전 사장이 퇴임한 남부발전 역시 후임자 내정이 이뤄지지 않아 두 달이 넘도록 기관장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둔 상태다. 반면 비슷한 처지에 내몰렸던 광물자원공사는 지난 24일 김영민 전 특허청장이 제17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경영공백을 메우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5곳 모두 올해 안에 신임 사장 선임을 위한 공모절차를 계획 중이라는 점이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로부터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모절차에 들어가라는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중부발전은 공모기간이 다음 달 2일부터 16일까지로 확정된 상태고 나머지 에너지공기업도 순차적으로 공모가 예정돼 있다.
다만 공모절차가 즉각적인 사장 선임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공모가 완료되더라도 기관장 선임까지 시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후보자를 추려내고 적격 심사를 거치는 동안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5곳 사장 공석…총선 전후 내정 가능성
정치인·고위관료 출신들 상륙 초읽기?
문제는 공모절차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공기업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상황에서 후속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던 진짜 이유가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 때문이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여당 내 인사 가운데 일부가 낙하산 형식으로 에너지 공기업 사장에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공기업 사장 임기가 3년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사가 현 정부에서 이뤄지는 마지막으로 기회인 셈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지금껏 공기업 기관장은 유력 후보자를 낙점한 후 공개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졌던 게 사실”이라며 “공모가 진행되더라도 기관장 선임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기관 출신 퇴직 관료가 낙하산으로 올 수 있다는 주장도 계속된다. 수개월간 기관장 선임을 방관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뒤늦게 공모에 나선 모습이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 경우 흔히 ‘관피아 척결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가 핵심이다.
지난해 12월31일 국회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관료 출신 인사의 낙하산 임명을 막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3월31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취업제한 대상을 기존 사기업체에서 시장형공기업, 안전감독·인허가·조달 등을 담당하는 공직유관단체, 대학법인, 종합병원, 사회복지법인 등으로 확대, 퇴직 고위공무원의 경우 업무관련성 범위를 기존 부서에서 기관으로 확대 등이다. 개정안 시행으로 퇴직 공직자들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한층 어려워진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개정안의 틈새를 파고든 관피아 논란은 여전히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다른 정부부처의 산하기관으로 교묘히 넘어가는 변종 관피아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얼마전까지 동서발전 기관장에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산업부 고위 공무원이 퇴임 후 미래부 산하 기관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나돈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
속타는 직원들
이렇게 되자 속이 타들어가는 건 에너지공기업들이다. 경영공백이 장기화되면 당장 내년 사업 계획이 제대로 이뤄질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공기업 관계자는 “경영공백이 장기화될수록 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는다”며 “해외 자원개발, 부채감축 계획 등은 물론 연말연초 조직개편, 정기인사 등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기사 속 기사> 공기업 낙하산 ‘관피아’ 실태
공기업 기관장 10명 가운데 8명은 주무부처나 정계 등 권력기관에서 선임된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CEO스코어가 국내 340개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현직 기관장·감사 689명의 출신 이력을 전수 조사한 결과 공공기관에서 자체 승진한 기관장·감사는 125명으로 전체의 18.1%에 불과했다. 기관장은 326명 가운데 93명으로 28.5%에 달했으나 감사는 전체 363명의 8.8%인 32명에 그쳤다. 이는 낙하산 인사가 기관장보다 감사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관료 출신 인사는 총 221명으로 전체의 32.1%에 달했다. 사실상 현직 기관장·감사 3명 중 1명은 ‘관피아’인 셈이다. 기관장은 116명, 감사는 105명으로 각각 35.6%, 28.9%의 비중을 나타냈다.
관피아 기관장과 자체 승진 기관장의 비율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감사의 경우 관피아가 내부승진자의 3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관피아 중에서도 기관장은 해당 기관의 직속 주무부처 출신 관료가 75명(64.7%)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감사는 청와대 등 비직속 주무부처 낙하산이 74명(70.5%)으로 다수를 이뤘다.
부처별로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 기관장 12명, 감사 3명 등 총 15명(6.8%)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산하기관 기관장 자리를 꿰찼다.
관료 출신 다음으로 공기업·공공기관의 단골 낙하산은 학계 출신으로 총 115명(16.7%)에 달했다. 이어 재계 60명, 세무회계 58명, 정계 40명 등의 순이었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