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창업주 조중훈 <사업은 예술이다> 출간

[일요시사 경제2팀] 김해웅 기자 =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건 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을 창업한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의 일대기를 정리한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가 전격 출간됐다.

지난 1일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진그룹은 70년 전, 신용 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청년 조중훈의 도전과 열정, 수송보국의 창업정신과 경영철학을 되새기기 위한 추모사업의 일환이자, 창업주의 업적을 통해 그룹 성장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교통·물류산업의 발전사를 조명하기 위해 2010년부터 전기 출간을 준비해 왔다.

책을 쓴 이임광 작가와 함께 ‘사업의 예술가’ 조중훈 회장이 평생에 걸쳐 닦아놓은 길을 걷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땅길, 바닷길, 하늘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절치부심 주경야독하던 식민지의 소년과 원대한 꿈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는 소년, 상하이에서 인천항으로 푸른 꿈을 싣고 돌아오는 청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 퀴논항에서 사선을 넘는 전설의 수송용사들과 항공의 불모지를 이륙한 파란 점보기가 죽의 장막을 뚫고 만리장성을 넘어 파리로 날아가는 가슴 뭉클한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성장기와 마주할 수 있다.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는 조중훈 회장의 어린 시절과 한진상사 창업 과정을 그린 <파도마저 삼킨 오디세이>, 베트남 전장에서의 숨막히는 수송작전을 담은 <퀴논의 전설>, 한진그룹 도약 계기가 된 대한항공공사 인수와 항공사로서의 발전 과정을 그린 <하늘길을 열다> <대한의 날개에서 세계의 날개로>를 비롯해 <해운왕 꿈을 이루다> <수송외길을 위한 변주곡> <열정의 민간 외교가> <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인생과 사업의 예술가> 등 총 9장 392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년은 바다를 꿈꿨고 바다는 소년의 꿈을 품었다

‘주경야독으로 단련한 소년은 기관사가 되어 중국으로 간다. 상하이에서 본 중국의 바다는 일본의 바다보다 넓었다. 세계인이 몰려드는 그곳에서 그는 '지금은 일본 배를 타고 왔지만, 언젠간 나의 배를 타고 오리라!' 다짐한다.' <파도마저 삼킨 오디세이> 중에서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해원양성소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기술을 익힌 소년 조중훈은 일본 조선소의 수습기관사로 발탁되어 열입곱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도 타고난 성실함으로 낮에는 작업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밤에는 하숙방에서 독서에 몰두했다.

이후 외항선의 선원이 되어 중국 상하이와 홍콩 등을 항해하며 '손님의 마음을 읽는' 유대상인의 장사법과 '철저한 품질관리'라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배운다. 세계문물을 접하며 사업의 철학을 마련한 조중훈 회장은 1945년 11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를 담은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전쟁과 그림은 멀리서 봐야…사업은 더 멀리서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니다. 조중훈은 그것이 기회임을 포착하고 모든 걸 걸었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전쟁과 그림은 멀리서 봐야 한다. 멀리서 봐야 한 폭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쟁도 전투만 보아서는 안 되고 전장을 둘러싼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퀴논의 전설> 중에서


한진그룹은 월남전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조 회장은 1965년 12월 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으로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순방을 하면서 사업상의 중대한 계기를 맞게 된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베트남의 퀴논 항에서 하역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외항에 정박 중인 30여 척의 화물선들을 보는 순간, 한진상사가 퀴논항의 군수품을 하역·수송하면 큰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조중훈 회장은 펜타곤을 방문하고, 퀴논에 파병중인 미군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1966년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군수물품 수송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1971년 종전 시까지 5년간 벌어들인 외화는 총 1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25~200달러 안팎으로 한진이 벌어들인 외화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생일대의 모험…세계의 하늘길을 연 '대한의 날개'

‘적자투성이 국영 항공사를 구할 사람은 조중훈밖에 없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대한항공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항공이었지만, 조중훈은 기왕할 거라면 예술처럼 하고 싶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 항공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킨다는 것은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했을 때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육중한 쇳덩어리가 새처럼 하늘을 날아오른 것처럼 그는 척박한 땅에서 고사 직전의 항공사를 이륙시켰다.’ <하늘길을 열다> 중에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는 데는 사업가로서의 자질과는 별도의, 또 다른 의미의 결단력이 필요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11번째가는 부실 투성이의 항공사였고, 당시로선 항공운송 사업의 미래도 불투명했다. 정부는 조중훈 회장이 ‘한국항공’을 설립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동안의 사업 과정 및 수송산업의 월남 진출을 통해 알려진 추진력과 애국적인 열정 등을 감안해 그를 대한항공공사 사업자로 주목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여러 번 당국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고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아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고 있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 “돈을 벌자고 시작했다가 밑지는 사업도 있고,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임을 강조했다.

“선장이 키를 놓지 않는 한 전진하는 배는 흔들리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로 한진해운을 완전히 바꾸어야 했다. 조중훈은 하늘에서 얻은 경험을 바다에서 구현하리라 마음먹었다. 항공사의 경영기법을 해운사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 해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회기적인 구상이었다.’
 

‘기업재건이 탄력을 받으면서 휘청하던 한진호는 다시 균형을 잡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항공사의 장점으로 재무장한 한진호는 하늘을 나는 배로 환골탈태했다.’<해운왕 꿈을 이루다> 중에서

조 회장은 1987년 11월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선주를 한진이 인수할 것을 권유 받자 ‘유일한 육·해·공 종합수송기업으로서 한국의 수송업체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면서 타산적인 차원으로 관계자들의 고뇌와 업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대한선주를 인수하여 한진해운과 합병했다.


대한선주의 채무까지 떠안은 한진해운은 선박별 운항스케줄, 예약현황, 화물추적 등의 업무전산화 및 선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인수 2년만인 1989년에는 경영정상화를 이루어 126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업은 손대지 않는다. 조중훈 회장의 ‘수송외길’

‘모르는 사업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며 조중훈 회장은 수송외길을 고집했다.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수송외길을 걸으려고 해도 당시 국내 기간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조중훈은 우리나라가 물류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함을 절감했다. 인천항 건설, 공항청사 확충, 영종도 신공항 건설, 전천후 항공유 수급 시스템 구축, LPG충천소 설치는 그런 의지와 안목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한일개발은 움라지 고속도록 공사에서 큰 손해를 감수하고 신뢰를 지켰다. 이는 훗날 한국 건설업체들의 중동 진출에 밑거름이 되었다.’ <수송외길을 위한 변주곡> 중에서

한진그룹이 설립하거나 인수한 회사들은 수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조중훈 회장이 평생 한눈을 팔지 않고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수송외길 인생을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다.

배움에는 때와 장소도 없다. 배우려는 의지만 있을 뿐


‘인하공대를 인수하는 것이 수익은 커녕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모한 투자였지만 그는 교육을 두고 계산하지 않았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은 조중훈은 대학교육이 캠퍼스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며 사내대학을 설립했다.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던 조중훈에게 배움은 평생 애틋함이었다…’ <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중에서

조중훈 회장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업보국을 이룩하려는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하는 소명으로 여겼다. 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조중훈에게 일평생 가장 뜻있는 사업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었다.

마음을 낚는 리더... 인간미 있는 사람에겐 사업도 예술

‘그가 마음을 사려하면 누구라도 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고 교감했기에 가능했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환경에서도 ‘지고 이기는’ 지혜와 미덕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대성공을 거두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

‘수송외길을 고집하며 매진한 것도 자신의 사업에서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려는 장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과 사업의 예술가> 중에서
 

조중훈 회장은 평소 “사업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한진이 주한미군 용역사업에 참여한 1956년 무렵 ‘지고도 이긴다’는 조중훈 회장의 사업 신념이 빛을 발휘한 일화가 있다.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겨울파카 1300여벌을 차떼기로 남대문 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직원 한 명을 남대문 시장에 상주시키고 도난 당한 물건이 시장에 유통되면 전부 사들이도록 했다. 이는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봤지만 미군들로부터 확고한 신용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한진의 문제 해결 능력과 신용을 지키려는 열의를 본 미군들은 그 후 한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로써 조 회장은 당장 3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큰 금전적 손해를 봤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용을 얻었다.

전기에는 조중훈 회장이 ‘수송보국(輸送報國)’ 신념으로 걸어간 ‘신용의 길’ ‘지혜의 길’ ‘애국의 길’ ‘외교의 길’ ‘교육의 길’에서 신념과 창의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발자취들을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베트남 퀴논항 하역 현장 및 한일경제외교, 국산전투기 제작 등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와 진귀한 사진들도 다수 수록되어 대한민국 경제/외교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과 교분이 두터웠던 손길승 전 전경련 회장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추천사를 썼다.

손 전 회장은 “세상에 철학이 아름다운 경영서는 그리 많지 않다”며 “조중훈 전기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이야기인 만큼 사업가로서, 기업가로서, 경영자로서 길을 잃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일독을 권했다.

이 전 총리 역시 “이 책을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학생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그것은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광, 조중훈 회장의 바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조중훈의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사업과 인생의 예술가는 모든 것을 잊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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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