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자네가 어떻게 장담하는가, 특히‥‥‥.”
“특히 무엇을 말입니까?”
“그 사람들이 고분고분 당할 리도 없고. 또 영사관 직원들 중에서도 남조선 정보기관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터이네. 그리고 자네 성격을 한번 생각해보게.”
“제 성격이 어때서요?”
“그걸 몰라서 물어보나?”
“하기야.”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기미코가 석원을 주시했다.
“너는 또 왜 그래!”
“뭐라고!”
문석원의 신경질 적인 반응에 고타로의 눈썹이 절로 치켜 올라갔다.
“자자, 그 문제는 조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세.”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호룡이 서둘러 정리했다.
“그래서 윤대중 선생을 구출하기 위해 정식으로 단체를 만들려 하네.”
이호룡의 재차에 걸친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이호룡을 향했다.
“정식 단체요?”
“그래야 향후 우리 일이 탄력받지 않겠는가.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하고.”
“당연합니다. 그러면 단체 이름을 뭐로 하렵니까?”
문석원이 방금 전 일은 마치 남의 일이 되어버린 듯 열광하며 말을 이어갔다.
“윤대중 선생 구출위원회로 명명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윤대중 선생 구출위원회요!”
“좋습니다.”
문석원이 말을 잇자 기미코와 고타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위원장은 자네가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시선을 받은 문석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는가?”
“부장님이 계신데 어찌 제가 위원장이 될 수 있습니까?”
“나는 전면에 나설 수 없네.”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습니까?”
“순수성이 왜곡될까 그러네. 내게는 조총련 정치부장이라는 직함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운동은 순수하다는 이미지를 주어야 하네.”
모두 의미를 헤아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부장님 말씀이 옳게 느껴지네요.”
기미코가 말을 마치고 문석원을 주시했다.
“그래, 자네가 이번 일에는 적임일 듯하네. 윤대중 선생에 대한 자네의 열정은 모두 알고 있으니 말이야.”
고타로 역시 문석원에게 힘을 실어주자 문의 어깨가 가볍게 움직였다.
“그런데 부장님.”
순간 문석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는가?”
“윤대중 선생 구출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다 하지만 그를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는 일 아닌지요.”
갑작스런 제안에 이호룡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절정으로 치닫는 사건
구출위원회 설립하고 활동
“듣고 보니 자네 말이 타당성 있네. 그래,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
“이곳에도 한청 사무실을 여는 겁니다.”
“한청 사무실?”
“지금 이곳에는 한청 지부가 정식으로 설립되어 있지 않으니 정식으로 지부를 설립하고 그를 기치로 윤대중 선생 구출활동을 전개했으면 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호룡이 문석원의 손을 잡았다.
“자네 말이 옳네.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자네가 의견을 내었으니 한번 자네가 움직여보게. 위원장은 자네가 하고.”
“아닙니다. 위원장으로는 제 형을 앉히려 합니다.”
“문동원을!”
“형이 조총련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한청 일에는 적극적이니 오히려 더욱 합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석원의 설명에 호룡도 그렇지만 고타로와 기미코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님.”
김효 대사가 출근하자마자 조성호 참사관이 상기된 표정으로 집무실로 들어섰다.
“왜 그러는가?”
“이하라 의원이 기어코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성원 일등 서기관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
“세 가지 이유로 이성원 서기관을 주목하고 있다 합니다. 첫째, 이성원 서기관으로 생각되는 인물이 일본의 한 흥신소에 윤대중 씨의 소재 조사를 의뢰했다고 합니다. 둘째, 호텔 내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왔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세 번째는 현장 유류 지문과 이성원 서기관의 지문이 일치하였답니다.”
“허허, 이거 이하라 의원에게 절이라도 해야겠네.”
“당연히 그리해야 할 일입니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그 이상으로‥‥‥.”
이야기하다 말고 김효가 슬그머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보게 이 서기관.”
영문도 모른 채 대사 앞에 호출된 이성원의 표정에 호기심이 역력했다.
“자네가 큰 일 좀 해주어야겠네.”
어색하게 서 있는 이 서기관의 손을 굳세게 잡고 자리에 앉혔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지만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고마우이.”
김효가 이 서기관을 바라보며 가볍게 탄식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요?”
“금번 발생한 윤대중 납치사건은 잘 알고 있지?”
“그야 이를 말입니까.”
“지금 일본 측에서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우리 한국 대사관을 의심하고 있는 일 역시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우리 조사에 의하면 자네가 사건이 발생했던 그랜드 팔래스 호텔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던데.”
“그야 업무상 사람들 만나기 위해 그랬었습니다만.”
“그리고 사건 전날 저녁에도 그곳을 방문했었다 하던데.”
“그곳에서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했습니다.”
이야기가 자꾸 윤대중 납치사건으로 초점이 맞추어지자 이 서기관의 얼굴에 근심의 기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 아, 걱정하지 말고. 다만 우리가 그를 한번 이용하자 이 말이네.”
더욱 이해되지 않는지 그저 김 대사의 얼굴을 멀뚱히 주시했다. 그를 간파한 김 대사가 지난번 이하라 의원과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이야기를 듣는 이 서기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가벼운 한숨까지 흘러나왔다.
“그래서 저를 희생양, 아니 미끼로 주자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지 미끼, 바로 미끼네.”
순간 이 서기관의 얼굴에서 미세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말일세.”
“말씀하시지요.”
“여하튼 사건 당사자로 지목받으면 결과와는 상관없이 자네는 이곳 근무가 용이치 않을 걸세.”
“당연합니다.”
“하여 사건이 일단락되면 자네를 본국으로 보내도록 하겠네.”
“기꺼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서기관이 가볍게 고개 숙이자 김효 대사가 다시 이 서기관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