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장기집권 플랜

응답하라 1987 상기하라 1972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가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현 VIP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다.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당시엔 그랬다. 그러나 ‘진박’의 입을 통해 개헌론이 불거지자, 가벼운 호사가들의 입방정이라 치부하기엔 내용이 무거워져 버렸다.

지난 9월 말경부터 여의도 정가에는 괴소문이 돌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찌라시(사설정보지)’급 내용이라 당시 이를 믿는 사람은 적었다. 일부 언론에서 가능성을 언급하는 정도였다. 소식을 접한 기자가 여당의 한 의원실 보좌관에게 해당 내용을 슬쩍 물어보자 그가 웃으며 한 말이 기억난다. “기자님, 그런 일이 일어나면 국민들이 가만있겠어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장기집권
시나리오

약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정가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묘한 여운마저 전해진다. 일전처럼 야권의 한 의원실 보좌관에게 가능성을 타진하자 일전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워낙 무서우시니…새누리 내에서도 아무 말 못한다잖아요.”

가능성이 한 단계 올라간 원인은 두 사람의 발언 덕분이다. 친박계 핵심 중 핵심인(요즘 말로 진박이라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홍문종 의원은 최근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진원지가 남다르다보니 정가는 물론 언론도 해당 발언을 쉬이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신라호텔에서 SBS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13차 미래한국리포트: 광복70년-좋은 정부의 조건’ 행사에 참석해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며 4년 중임제 개헌을 시사했다.


홍문종 의원의 발언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지난 12일 KBS 라디오에 출연한 홍 의원은 “내년 총선 이후 개헌해야 한다.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를 두는 것이 5년 단임 대통령제보다 정책일관성이 있다”며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언급했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답했다.

잇따른 진박들의 개헌론, 왜 지금?
5년 단임→4년 중임, 차차기 노림수?

정가에서는 홍 의원의 발언에 대해 대체로 성급했다는 평가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16일 서청원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상식으로 이해 못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구 획정, 경제활성화법 등 주요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개헌론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김재원 의원도 한 MBC 라디오에 출연해 “현 상황은 개헌을 주장할 단계도 아니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울공항에서 박 대통령을 배웅한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홍 의원의 발언은 청와대와 무관하고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친박계 모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친박계 내에서 이러한 개헌론이 터져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지난 2014년 10월1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개헌 논의 봇물이 터지면 막을 수가 없을 것”이라며 “나도 (예전에는) 내각제에 대한 부침 때문에 정·부통령제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청와대와 친박계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친박계에서 먼저 얘기가 나왔다. 비박계 내부에서 ‘누구는 개헌을 말해도 되고 누군 안 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

정가 일각에서는 김 대표에 대항할 수 있는 친박계 후보의 부재를 이유로 든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발표한 11월2주차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대표가 전주 대비 1.0%포인트 상승한 21.8%를 기록, 20주 연속 여야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를 향한 쏠림 현상은 같은 여권 내 후보들과의 비교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여권 2위를 기록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7.9%에 그쳤고, 3위 정몽준 전 대표는 3.9%에 머물렀다(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617명을 대상으로 조사).

때문에 지난 9월16일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김무성 불가론’은 결과적으로 ‘친박계에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방증 아니냐’는 분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 의원은 당시 “내년 총선으로 4선 이상이 될 친박 의원 중 차기 대선에 도전할 사람들이 있다. 영남에도 있고 충청에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친박계가 주목하는 대선주자로 코어4(반기문·최경환·오세훈·황교안)가 거론되는 이유도 김 대표를 막을 대항마가 뚜렷하게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개헌론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 찾기라는 해석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안이 앞서 말한 것처럼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다. 각각에는 친박계가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 눈길을 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의 연임은 불가하다. 헌법 제128조 2항을 보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적시돼 있다.
 

즉 박 대통령이 임기 내 4년 중임제로 개헌하더라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최 부총리, 그리고 ‘문고리 3인방’의 이름이 등장한다.

각본은 이렇다.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성사시킨 후 친박계는 차기 대선에 소위 ‘바지 대통령’을 당선시킨다. 이후 박 대통령이 2021년에 있을 차차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설이다. 연임은 불가하지만 중임은 가능하다는데서 나온, 일종의 ‘꼼수’를 예상한 시나리오다.

4년 중임제
대선 노림수?

해당 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박 대통령의 젊은 나이를 든다. 박 대통령은 올해 64세다.

당선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에 있었던 18대 대선 당시 61세로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적은 나이였다(5대 박정희(47세), 11대 전두환(50세), 13대 노태우(57세), 16대 노무현(58세) 대통령이 박 대통령보다 적은 나이로 당선. 10대 최규하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같은 나이에 당선). 또한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의 나이는 각각 47·50·50이다. 측근의 나이도 젊어 충분히 차차기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의 동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이미 정가에서는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정의화 국회의장 등 지지자가 많은 상황이다. 야당에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왔다. 만약 개헌 작업이 시작된다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는 150명 이상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즉 분권형 대통령제 얘기도 있다(분권형 대통령제는 이원집정부제의 한국형버전이다). 앞서 홍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이 외치를, 총리가 내치를 맡는 구조다. 프랑스·오스트리아 등 해당 권력구조를 가진 국가들에서 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뽑지만, 총리는 의회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용이한 구조라는 분석이 있다.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를 의원들이 세우다보니 다수의 의석을 확보한 정당 쪽으로 권력이 치우칠 수 있다. 만약 다수당이 전횡을 부린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가 도입될 시 현 정치구도를 기준으로 친박계가 가장 유리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집권여당 내 주류 세력이기 때문에 확장성을 바탕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계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만약 앞서 말한 4년 중임제와 함께 이원집정부제가 실시된다면, 그 폭발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친박계 자생력↑
1972년 유신 개헌, 1987년 직선제 개헌

지난 18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은 전체 37.3%로 나타났다. 반대하는 의견이 39.4%로 2.1%포인트 높게 나왔지만, 오차범위 내에 있다(23.3%는 응답을 유보했다).

흥미로운 점은 개헌 찬성자 중 약 40%의 사람이 4년 중임제를 원한다는 것이다. 39.9%가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제로 가야한다고 응답했다.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4.8%로 나타났다. 논란이 됐던 ‘이원집정부제’는 3.9%를 기록, 4.7% 의원내각제보다 적은 선택을 받았다(지난 15일~16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2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 오차 ±3.1%).
 

최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제20대 총선의 목표로 제시한 180석이 개헌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얘기가 복수의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11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목표는 180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최근 개헌론과 연결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이 다가오는 2016년 180석을 확보할 경우, 그간 개헌을 주장해온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이원집정부제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헌 의결 정족수는 200석(재적 의원의 3분의 2)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시나리오라는 지적이다. 원 원내대표가 ‘신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정가는 보고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지난 1987년 처음 도입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간 개헌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개헌을 다각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사회 곳곳에 ‘독재’의 잔상이 남아있다 보니, 국민적 합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친박계 자구책?

‘중임’과 ‘독재’는 동의어가 아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중임제로의 개헌을 선언한다 해도 독재를 위한 포석이라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오히려 친박계의 권력연장 의지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꾸준히 제시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가 1948년부터 시작됐음에도, 복수의 독재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27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개헌’을 단행, 대통령 ‘간선제’를 실시하고 중임 제한을 폐지한 날이다. 1987년 10월29일, 10월 유신 이후 사라졌던 대통령 ‘직선제’가 헌법에 명시되고 지금의 단임제가 시작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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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