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발 ‘TK 살생부’ 추적

선택받을 ‘진실한 사람’은 누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진실한 사람만 선택받게 해 달라.” 최근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들썩이는 모습이다. 전후사정 알 길 없는 뜬금발언에도 마치 옥석을 가리는 감정사처럼 ‘진박’이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명단 추리기에 나섰다. 일각에서 돌고 있는 ‘찌라시(사설정보지)’를 가리켜 ‘살생부’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진박’이라고 들어봤는가. ‘진짜친박’의 줄임말이다. “진실한 사람만 선택받게 해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중 ‘진실(眞實)’에서 파생됐다. 경우의 차이는 있으나 정치입문 단계부터 지금까지 줄곧 ‘친박’이었던 사람을 일컫는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진박에 대한 설들이 무성하다. 간택 받지 못하면 ‘토사구팽’ 당할 수 있다는 불안함의 발로로 보인다.

여의도 덮은
‘진박’ 논란

‘칭박’도 있다. ‘자칭 친박’이라는 것이다. 친박·비박의 경계선에서 시류에 따라 흔들렸던 사람을 일컫는다. 지난 12일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은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이런 원론적인 말씀만 들어도 제 다리가 저린 사람들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가박’이라는 단어가 이와 유사하게 쓰인다. 가짜친박의 줄임말이다).

기존 ‘친박·비박’에 ‘진박·칭박’까지, 박의 자가분열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제 ‘탈박·멀박’이라는 단어는 언론보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야권과는 다르게 ‘박 시리즈’가 새롭게 나타날 때마다 유독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이유는, 살아있는 권력과의 거리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번 진박 사태 또한 다가오는 제20대 총선에 맞춰 공천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선거개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총선 승리”라는 건배사로 구설수에 올랐던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장관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게 관련 쪽 사람들의 생각이다. 지난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조선일보>를 통해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논란은 이미 점화된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야권에서는 ‘탄핵’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대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누가 날 감히 탄핵소추하겠냐는 자신감의 표현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부디 유신의 밀실에서 나오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비박계에서는 직접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진 않겠다는 분위기다.

배신·진실 이어
‘은혜론’ 대두

해당 사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박 대통령의 비박계 죽이기 전략 아니냐는 해석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통해 ‘배신의 정치’를 언급했고 결국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최근 부친상을 당한 유 전 원내대표에게 청와대가 ‘근조화환’을 보내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가능성을 높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족 측에서 조화와 부의금을 받지 않는다고 알려왔다”며 “그런 경우 보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익명의 친박계 의원 중 한 명은 지난 11일 <중앙일보>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6월 말 국회법 파동 당시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했던 것의 연장선”이라며 “박 대통령의 ‘정치용어 사전’에 진실의 반대말은 배신”이라고 전했다. 즉 박 대통령의 진실 발언은 유 전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11일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라며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은혜를 갚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은혜론’은 ‘배신’ ‘진실’과 함께 정가를 강타했다.

그렇다면 소위 ‘진실하다’고 평가받는 친박은 누가 있을까. 중진급 선두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있다. 7선 의원인 그는 자타공인 친박계 좌장이다.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라는 제목으로 평전을 냈을 정도로 ‘의리’를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박 대통령은 서 최고위원의 이런 부분을 특히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박’ 솎아내기 본격화, 누가 이름 올렸나?
홍문종 “제 발 저린 사람 있을 것” 시사

3선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박 대통령 뒤를 잇는 권력의 2인자로 통한다. 정부 예산을 쥔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가 쌓아온 관계가 돈독하다는 말이다. 또한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당시 후보자의 비서실장을 맡아 승리로 이끈 능력까지 인정받고 있다.

같은 3선인 홍문종 의원은 ‘박심의 대변인’으로 꼽힌다. 홍 의원은 최근 당내 주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일례로 박 대통령의 진실 발언에 ‘제 발 저린 사람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바 있으며, 개헌을 언급하면서 ‘반기문 대통령(외치)-친박 총리(내치)’ 시나리오에 대해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는 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믿음 없인 불가능한 발언”이라고 정가는 보고 있다.

신박(새로운 친박) 3인방(이인제·원유철·이주영)도 진박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최근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박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외 인사들을 포함하면 중진급에서는 10~15명 정도가 진박으로 통한다.

재선 의원 중 선두에 선 인물은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김재원 의원이다. 그 중 윤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13·14대) 빈소에 조문을 와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을 언급해 논란을 낳았다. 윤 의원은 당시 자리에 있던 기자들에게 “20대 총선에서 TK 공천을 잘 해야 한다”며 “19대 때 대구에서 (현역) 60%를 바꿔 그 힘이 수도권으로 이어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넘긴 게 아니냐”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박근혜키즈
전략공천

그 외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 장관직을 내려놓고 여의도로 돌아온 유일호 의원 등 5~6명 정도의 재선 의원들이 진박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이장우·김태흠·김도읍·정용기·김진태 의원 등 초선의원 10~15명까지 합하면 그 세가 대략 30~35명 정도로 추정된다.

진박·칭박 선별 작업에 들어간 것을 두고 정가전문가들은 친박계의 ‘전략공천 시나리오’가 발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추천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 그 예라는 지적이다.
 

정가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앞서 언급된 진박 수뇌부 명단은 비박계 의원들에겐 중요치 않다고 한다. 그들에겐 이미 자신의 지역구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와대와 정부기관에서 내려오는 ‘박근혜키즈’ 명단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전언이다.

시나리오상 진박계 수뇌부가 전략공천을 관철시키면, 박근혜키즈들이 당선에 유리한 자리로 내려올 것이란 예상이다. 키즈들이 내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구 의원들은 살생부에 이름을 오린 것과 진배없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30~35명 진짜 중의 진짜, 진박 수뇌부?
TK 겨냥한 살생부, 청와대 출신 ‘주의보’

TK지역에 복수의 청와대·정부 인사들의 출마선언이 가시화되고 있다. 비박계인 박민식 의원은 지난 10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런 지역(TK)에 이른바 청와대 무슨 비서관, 행정부장관 했던 사람, 이런 사람들, 후보를 낙점한 듯 보인다”고 비판했다.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은 윤상현 의원이 빈소에서 발언한 TK 물갈이론에 대해 “(TK) 정치인들이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행정자치부에서 나온 정종섭 전 장관은 출마가 확실시 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선 국회가 중요하다”며 “그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거론되는 지역구는 대구 ‘동구갑’이다. ‘동구을’이 유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동구을은 현재 류성걸 의원의 지역구다. 류 의원은 정가에서 ‘친유승민계’로 분류된다. 따라서 청와대 의중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 전 장관의 출마 지역으로 고향인 경주 대신 동구을이 예상된다는 측면도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지난달 7일 새누리당에 복당하면서 출마가 가시화된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도 친유승민계를 겨냥한 카드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 전 관장은 대구 북구갑 출마가 예상되고 있다. 이곳은 비박계이자 친유승민계로 통하는 권은희 의원의 지역구다.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당초 대구 서구 출마가 유력시됐다. 그러나 최근 중·남구 출마로 바뀐 모습이다. 윤 전 수석 측은 지난 12일 <대구신문>을 통해 “윤 전 수석의 본가가 서구와 인연이 있는 관계로 서구 출마로 이름이 올라 많이 당황하고 있다”며 “나오려면 출신고교가 위치한 중·남구가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서구는 김상훈 의원이, 중·남구는 김희국 의원이 맡고 있는 곳이다. 두 사람 모두 정가에서는 유승민계로 불린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또한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총선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달성군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달성군은 이종진 의원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의원 또한 비박계이자 유승민계로 분류된다. 여기에 윤상직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의 대구 출마설도 들려오고 있다.

진박에 숨은
변절자들


‘배신의 정치→유승민 사퇴→TK 물갈이론→친·비박 공천전쟁→진박 사태→2차 TK 물갈이론’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흡사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 청와대발 TK 장악 시나리오라는 정가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비박계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제19대 총선을 통해 TK지역도 얼마든지 권력자에 의해 재편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소위 진박이라는 것에 대한 허상도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즉 현재 분류되는 진박 수뇌부 인사 중 MB정부부터 활약하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것처럼 진박도 결국엔 일시적 현상일 뿐이란 분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열흘간 떠나는 박근혜
또? ‘이슈 투척→순방길’ 패턴 반복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아세안+3(한·중·일)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참석차 출국한 박 대통령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정치에 이슈를 던진 후 해외순방길에 오르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부터 열흘간 해외일정을 소화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진실한 사람’ 발언을 정가에 던졌다. “대통령의 총선 개입 아니냐”는 지적이 야권에서 제기됐다. 이전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고, 이후 한·일·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비록 회담이 국내에서 진행됐지만, 현안에서 멀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4월경에는 ‘성완종 리스트’가 정가를 강타했는데, ‘이완구 전 국무총리 사의’ 문제를 김무성 대표에게 일임하고 떠나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정치보다 해외일정을 소화하는데 더욱 힘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편,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위안부문제와 북핵문제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지난 13일 아시아·태평양지역 통신사 기자들과 만나 가진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아베 일본총리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밝혔으며, 북한에 대해 “북핵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관계 개선에 진척이 이뤄진다면, 정상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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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