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A씨는 회사 워크숍에 갔다가 아침식사로 나온 컵라면을 먹었다. 그가 집은 컵라면은 육개장. 표지나 디자인을 얼핏 보고 당연히 ‘농심’ 육개장인 줄 알았는데 라면을 다 먹고 나니 ‘삼양’ 육개장이었다. 그는 “짝퉁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미투 제품’이 영역 불문하고 기승을 부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라면 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방 의심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과거 한때 라면업계 1위였던 ‘삼양식품(이하 삼양)’에서 미투 의심 제품이 나와 삼양이 베끼기 기업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 소비자 사이에서 나온다.
따라하기 급급
삼양에서 제조하고 있는 육개장은 외형에서부터 농심에서 나온 육개장과 유사했다. 용기 디자인이 상당히 비슷했으며, 뚜껑은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배경에 빨간색 글씨로 ‘육개장’이라고 쓰여 있는 점도 흡사했다. 면발의 굵기나 맛 역시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가다. 삼양의 육개장을 먹은 소비자들 가운데 다 먹고 나서도 농심 육개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품 가격은 삼양 육개장이 농심 육개장에 비해 다소 저렴하게 책정됐다. 삼양 육개장의 경우 인터넷 최저가가 지난 5일 기준 550원인 반면, 농심 육개장은 560원으로 10원 가량 저렴했다. 이는 미투 제품이 흔히 사용하는 전략과 유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미투 제품은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제품을 유사하게 베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두 회사의 라면은 대형마트,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 등 모든 유통 채널을 통해 납품되고 있었다. 다만 삼양 육개장은 판매량이 농심 제품에 비해 적어 모든 유통 채널에서 접하기 어려웠다.
농심에서 1982년 출시된 농심 육개장은 ‘육개장 사발면’이란 이름으로 33년간 농심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농심의 육개장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용기면이다. 매출도 매월 50억∼60억원 수준이다. 농심 육개장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용기면 시장 점유율 60%를 점유하기도 했으며, 미국 NBC 방송에서 미국의 햄버거에 준하는 식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삼양에서 나온 육개장도 연혁은 오래됐다. 농심 육개장이 나오고 3년 뒤인 1985년 출시된 것. 그러나 출시된 지 30년차인 삼양 육개장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지 못한 채 ‘농심 육개장의 닮은 꼴’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삼양의 육개장이 자사의 제품과 유사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상품을 구매하고 향유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라며 “삼양 육개장이 농심의 제품과 유사하다고 해서 대응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시중 유통되는 짝퉁 컵라면 빈축
외형·디자인 농심 제품 판박이
삼양은 출시된 지 30년 다된 제품에 베끼기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삼양 관계자는 “삼양의 육개장은 1985년에 출시돼 전국 유통망으로 팔리고 있다”며 “30년 동안 유사제품이라는 논란은 없었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맛이 유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삼양 육개장은 소비자의 기호 및 성향을 맞추는 과정에서 수십 번 넘게 맛과 모양에 변화를 줬을 뿐”이라며 이 과정 비슷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양 육개장의 과거 디자인과 이후 변화 과정에 대한 자료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든 제품마다 맛과 디자인 변화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놓지 않는다”며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양이 우지파동 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미투 제품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 삼양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라면업계 1위 기업이었다. 그러나 1989년 11월 삼양식품은 우지파동을 기점으로 점유율 하락을 맛본다. 우지파동은 검찰이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 혐의로 삼양라면을 기소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후 삼양라면의 혐의는 무죄로 판결이 났지만 이미 회사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4000여명의 종업원 가운데 1000명의 고급인력이 회사를 떠났으며, 당시 100억원 상당의 제품을 수거하느라 회사의 경영난이 심화됐다. 요약하면 우지파동으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축소된 상태에서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삼양 육개장 외에도 미투 의심을 받고 있는 제품은 또 있다. 바로 농심 ‘튀김 우동’과 삼양의 ‘유부 우동’의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의혹이 있다. 실제 두 제품은 모두 검은색 톤의 용기에 노란색 글씨로 각각 ‘튀김’과 ‘유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서로 간 비슷한 이미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무너진 자존심
제품간 베끼기 경쟁이 삼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옹호론도 있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사의 장점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제품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취급하는 품목은 비슷한 데 경쟁사가 잘 되면 아무래도 제품에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도 업계 전체가 미투 제품을 자제해야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표절 vs 미투
미투 제품은 업계 1위 제품이나 인기 상품을 그대로 모방한 제품을 뜻한다. 보통 1위 제품의 인기에 편승해 쉽게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제품을 의미한다. 미투 제품은 보통 인기 제품의 인기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에서 나온 히트 제품의 미투 제품을 대기업에서 만들 경우 압도적인 마케팅으로 미투 제품이 원조 소리를 듣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에 따라 흔히 미투 제품을 ‘따라하기 제품’ 혹은 ‘베끼기 제품’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미투 제품이 원조와 비슷한 느낌의 제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미투 제품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