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 물리는’ 일최이황 권력함수

충성경쟁 종막…친박 트로이카 대충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몰고 온 것은 비단 국론분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강행과 책임이라는 파도가 정국을 강타했고, 권력구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공생하는 듯 이면에서 갈등을 보였던 3인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일최이황’(一崔二黃, 최경환·황교안·황우여)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가 지난 3일 전자관보를 통해 확정고시 되면서 국정화 ‘핵심 3인’의 역할론도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잇따른 개각 소식이 들려오면서 파장을 낳고 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오른팔·왼팔, 그리고 입으로 통했던 사람들 간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최-황 신경전
갈등의 시작

오른팔·왼팔이 따로 놀았다.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엇박자를 보였다. 그러나 책임론은 한 사람에게 쏠려있다.

두 사람의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한 때는 지난 9월23일, 황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최경환만 없으면 살겠는데”라고 말했다.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팔단)로 불릴 정도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황 부총리의 그간 모습과는 달리 파격 발언이었다. 기자들은 물론 배석한 교육부 관계자까지 놀랐다는 전언이다.

발단의 원인은 최 부총리의 말 한마디였다. 황 부총리의 파격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9월22일, 최 부총리는 <제18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10월 중 사회 수요에 맞게 대학 정원을 조정하고…(중략)…교육개혁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서 황 부총리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황 부총리는 이미 부침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난 9월10일 있었던 교육부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국정화에 대한 야당의 맹공을 받아야했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는 “교육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 부총리가 사석에서 한 “검정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검정 기준을 높여 서너 개의 교과서만 쓰는 것도 가능하다” 등과 같은 발언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황 부총리가 최 부총리에 대해 평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단 분석이다. 압박이 강했던 반면 지원은 약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 부총리가 교육개혁이 늦다고 지적하자 황 부총리는 예산이 아쉽다고 반격했다. 정부 예산을 쥔 최 부총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전에도 두 사람이 부딪힌 사례가 있다. 지난 2014년 10월경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 지원으로 할지 교육청 재량으로 할지를 두고 교육부와 기재부가 파워게임을 벌인 바 있다. 최 부총리는 해당 예산 문제를 교육청 재량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공동기자회견을 강행했는데, 당시 최 부총리가 황 부총리의 멱살을 잡듯 넥타이를 잡고 기자회견장에서 나왔다는 목격담이 정가에 나돌았다.


두 사람의 갈등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중론이다. 최 부총리의 12월 복귀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당으로 돌아오면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역전되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최 부총리는 3선 의원이고 황 부총리는 5선 의원이다. 황 부총리는 앞서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최 부총리에게 “(나중에) 당에 가서 (국회의원으로 돌아가) 보자고 했다”며 여운을 남겼다.

황 vs 황
어부지리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이번 국정화 사태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 부총리의 손익계산서를 정의할 수 있는 속담이다. 황 부총리는 국정화 사태를 거치면서 개각의 대상이 된 반면, 황 총리는 국정화를 이끈 1등 공신이 됐다.

황 총리가 지난 한 달여간 보여준 모습은 황 부총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황 총리는 반대여론이 심해질수록 더욱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통진당 해산에 이어 국정화 사태까지, 정부의 핵심과제를 해결하는 ‘청부사’로 거듭났다고 내다 봤다.

황 부총리가 주무장관임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면, 황 총리는 소위 ‘역사전쟁’에서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황 총리는 지난 3일에 있었던 대국민담화를 통해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며 “더 이상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신임을 쌓은 황 총리는 최근 대선주자로까지 분류된다. 당초 이완구 전 총리가 낙마하는 등 부담스러웠던 자리에 연착륙했다는 평이 정가에서 들려온다. 때문에 황 총리에 대한 보수 측 여론 또한 호의적인 상황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친박계가 고려할 수 있는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급부상 중이다.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황 부총리의 교체가 빠르면 이번 주 중으로 이루어 질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정화가 포함된 교육부 정책에 황 총리의 입김이 강해질 공산이 커졌다. 후임 교육부장관이 내정되더라도,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실제 교육부의 일을 맡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황 총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교육부 일을 안정감 있게 처리한다면 보수진영으로부터의 인지도는 지금보다 더욱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 총리는 지난 9월경 있었던 한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당 내 정치 지형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어 언제든지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최경환] 흔들림 없는 자타공인 권력실세
[황우여] 불의의 일격당해…총선 문제없나
[황교안] 대선후보군 급부상 ‘본인 뜻은?’

반면 황 부총리는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들려오는 개각소식에 정가의 해석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국정화가 확정고시 됐기 때문에 황 부총리가 더 이상 정부기관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원론적 반응부터 경질설까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여의도 복귀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금의환향’이냐 아니면 ‘경질’이냐의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이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황 부총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번 국정화 사태로 인해 자칫 ‘박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면 공천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론되고 있는 예상자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최근 여당 내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연수구 출마 예상자는 황 부총리를 제외하고 3명이다(새누리당 민현주 의원, 정승연 인하대 교수, 탤런트 송일국). 최근 김회선·김태호 의원 등 친박계로부터 총선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칫 세대교체 바람이라도 분다면 황 부총리 입장에선 가장 우려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본인도 직접 밝혀왔듯 황 부총리의 최종목표는 국회의장에 오르는 것이다. 이는 빠르면 20대 국회부터 가능하다. 과연 황 부총리는 뜻을 이룰 수 있을지, 그 첫 번째 관문은 국정화 사태를 털고 공천권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황-최 중심
신 권력구도

정가 일각에서는 황 총리를 ‘대독총리’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최 부총리는 ‘실세’라는 게 중론이다. 대한민국 공식 의전 서열로 본다면 국무총리는 5위, 경제부총리는 12위지만, 실제 권력은 최 부총리가 앞선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연내 ‘4대개혁’ 완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교롭게 황 총리가 대권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최 부총리와 함께 친박계 대선후보군 두 명이 이들 개혁과제를 이끌게 됐다. 새로운 투톱 체제가 형성된 모습이다.

황 총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시정연설을 통해 국정화를 언급했다. 이슈를 띄운 박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한·일·중 정상회담에 나섰다. 국정화를 맡겨놓고 갈 수 있었던 것은 황 총리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란 게 정가의 중론이다.

최 부총리는 현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일 SBS 생방송 프로그램 <제13차 미래한국리포트: 광복70년-좋은 정부의 조건>에 참석한 최 부총리는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입장을 전했다.

만약 최 부총리의 발언이 개헌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대권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발언에 대해 기재부는 “좋은 정부의 조건과 관련해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일 뿐”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국정화 사태가 불러온 정치권 지각변동
겉으론 공생…이전투구 3인 관계 주목

두 사람은 서로 업무스타일이 다르나, 보수진영으로부터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자를 끌어안을 적임자로 평가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황 총리는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대구·경북(이하 TK)에서 보냈다. 그 중 대구고검 검사장으로 1년5개월을 지냈다. 지방생활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대구였다. 때문에 지역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부총리는 알려진 것처럼 경북 경산시·청도군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의원이다. 때문에 지역 유력인사는 물론 고위 공무원들까지 꿰고 있다고 정가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5급 이상의 지역 공무원 모임을 주재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결국 최 부총리가 정가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12월까지 투톱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부총리의 경우 내년도 예산안 통과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표를 의식한 예산 책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4일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 부총리의 입김으로 내년도 TK 사회기반시설(SOC) 예산 7000억원이 증액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총선용 예산’이라는 쓴 소리 속에서도 실세 부총리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있다.

내년도 예산심사
실세 힘 실릴까?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6월경 최 부총리를 지금의 자리에 임명했다. 한 달여가 지난 7월경에는 황 부총리를 기용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러 지난 6월경에는 황 총리가 취임해 지금의 친박 트로이카를 구축했다. 이제 다시 박근혜호는 트로이카에서 투톱으로, 투톱에서 다시 황 총리 중심의 원톱 체제로의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연 이 중에서 친박계 대선후보가 나올지, 아니면 ‘반기문’이라는 외부 영입이 이루어질지 친박계 권력구도에 눈길이 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정화 사태 '막말 백태'
“종북·친일은 그나마 낫다” 

국정화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막말 전쟁으로 비화된 모습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지난 5일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검찰에 고발됐다. 법무법인 ‘진솔’의 손훈모 변호사는 같은 날 오전 전남 순천지청을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손 변호사의 고발과는 별개로 전남 순천지역에서는 지난 4일부터 ‘이 최고위원 소환 청문회 개최를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순천은 이 최고위원이 지난 재보궐 선거를 통해 당선된 곳이다.

상대 비꼬는 모욕발언
명예훼손 고발 잇달아

막말은 이 최고위원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북한이 쓰는 남남갈등 전술을 돕고 있다”며 쏘아붙였다. 앞서 지난달 26일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비밀TF 사무실을 급습한 야권 의원들을 두고 ‘화적떼’에 비유하기도 했다.

야당에서도 막말 릴레이가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달 28일 국정화 저지를 위한 버스투어에서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가”라며 국정화를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현 교과서가 전체적으로 부끄러운 역사를 담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은 무속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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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