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정' 검찰 출구 딜레마

살아있는 권력 찌르는 시늉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포스코 비리’ ‘성완종 리스트’ ‘정윤회 문건’.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을 흔들어놨던 사건들이다. 시작점에서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천명했지만, 막상 도착점에서는 힘에 부쳐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 왔다. 결국 강행이냐 숨고르기냐를 결정할 때가 목전까지 온 가운데, 국민의 눈과 귀가 판결로 모아질수록 사정당국이 느낄 고뇌는 커져가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해 검찰은 결국 불구속기소로 방향을 틀었다. 3주 전만해도 수사팀에서는 구속영장 발부를 자신한 상황이었다. 복수의 언론은 하나같이 ‘용두사미’를 지적했다. 지난 3월12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외치며 호기롭게 시작된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서 흐지부지 된 것을 꼬집고자 함이다. 전 정권에 대한 ‘손보기’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붙였지만,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포스포 비리
이상득 불구속

당초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 등 이른바 ‘포스코 핵심’에 대한 소환이 이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수사팀은 이 전 의원을 포스코 비리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더군다나 돈을 받은 인물들이 이 전 의원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불법 정치자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이 전 의원과 포스코가 유착해 ‘기획법인’을 차리고 측근들에게 이권을 제공했다고 발표했다. 포스코로부터 수백억원 규모의 일감을 수주한 것으로 밝혀진 티엠테크는 이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인 박모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티엠테크 포함 3개 업체는 이 과정에서 약 30여억원의 이익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이 전 의원은 정준양 전 회장 선임과 포스코의 중단된 신제강 공장 공사 재개를 도와줬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08년 하반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임기를 1년 남겨둔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에게 사임을 요구하면서 후임으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지지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밝혔다. 박 전 차관은 이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명박정부 당시 ‘왕차관’으로 통한 인물이다.

그러나 영장 청구는 3주가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더군다나 김진태 검찰총장이 갑자기 해외일정을 수행하는 등 엇박자를 내 뒷말이 무성했다. 통상 중요한 건에 대해선 검찰총장이 직접 보고를 받고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해외 출국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지난달 27일 이 전 의원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죄’를 적용해 불구속기소한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포스코 비리의 정점에는 이 전 의원이 있다’고 누차 밝혀왔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뇌물공여죄
내부 갈등설

표면상 드러난 불구속 사유는 ‘건강’이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이 전 의원이 고령인데다 건강상태를 고려해 대검의 지시로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소환이 있었던 지난달 5일 조사를 마친 후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지난달 15일부터는 심한 저혈압과 관상동맥 협착증과 같은 증상을 보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드러난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배성로 동양종합건설 회장 등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미 기각된 상태에서 이 전 의원에 대한 영장까지 기각될 경우 후폭풍이 거셀 것이란 불안이 내부적으로 있었단 주장이다.

결국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대검) 간 ‘갈등설’로 비화됐다. 수사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영장 청구를 강력히 주장한 반면, 대검은 몸을 사렸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갈등설에 대해 “특별히 하나로 정해진 수사팀 의견은 없었다”며 “지속적으로 대검과 의견을 교환해 결정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차기 검찰총장 후보 인선 발표를 전후로 김수남 대검차장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검찰 안팎으로 뒷말이 나왔다.

드러난 건강상의 이유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검찰 출석 당시 이 전 의원은 장시간 조사가 있었음에도 조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등 건강상 우려할만한 징조가 없었다는 전언이다.

‘부관참시’라는 세간의 지적 또한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죽은 권력의 사람을 두 차례나 구속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서초동 출입기자들 중 일부에서 동정론도 들려왔다.

특정 기업을 상대로 검찰이 7개월 이상 수사를 계속한 전례는 찾기 힘들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에 공을 들였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지지부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준양 전 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 여부도 곧 결정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전 의원에 대한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문난 수사’ 세 사건 모두 흐지부지
시간만 질질 끌다 서둘러 마무리 형국

‘성완종 리스트’가 세상에 공개될 당시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회장의 자살소식도 충격을 안겨줬지만,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의 면면이 현 정권 실세라 부르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수의 언론은 수사에 나설 검찰이 부담을 느낄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 4월12일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중심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검사 13명 등을 포함한 3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팀(특수팀)을 꾸렸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었다.

리스트 내 인물들의 혐의가 이미 공소시효를 지났다는 점도 특수팀의 힘을 빼는 요소였다. 지난 7월2일 특수팀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완구 전 국무총리·홍준표 경남지사 등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확인된 두 명에 대해서만 불구속기소했고 나머지 6명은 불기소했다.

리스트를 둘러싼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면서 수사의 방향이 흐트러졌단 지적도 있다. 이 전 총리·홍 지사 등에 대한 기소 결정이 내려지기 전 이인제·김한길·노건평 등 리스트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야당 의원들과 일부 언론은 “검찰의 수사가 ‘기승전노(盧)’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 트랙으로 수정이 불가피해 진 특수팀은 한정된 인력으로 더 많은 사람을 수사해야 되는 어려움을 맞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는?

결국 지난 7월8일 문 지검장을 포함한 특수팀 소속 검사들은 원래 위치로 복귀하게 된다. 사실상 해체 수순 아니냐고 당시 언론은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특수수사팀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뿐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1∼2명이 남아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관계자의 말대로 실제 특수팀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초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를 종결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앞서 ‘특수팀 해체가 아니다’고 발표한 관계자는 “남은 인원들을 중심으로 이인제·김한길 의원의 혐의를 확인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 문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최창영 부장판사)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지만 EG회장에게 넘어간 것이 청와대 문건이라고 확신하던 수사팀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복사본은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다”고 밝혔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지난달 19일 1심 무죄판결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복사 문서가 원본과 같이 인정되고 보호되는 기존 판례에 배치된다”며 “원본과 같은 내용의 복사본이나 추가 출력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유출이 돼도 괜찮다는 논리”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전 비서관의 무죄가 당연하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이라도 무조건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밀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자신만만했던 이상득 결국 불구속
성완종·정윤회 연루자들도 ‘멀쩡’


곧 있을 재판 또한 관심의 대상이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만만회’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보수단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재판부는 박 의원에 대한 첫 공판이 다음달 14일에 열린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엄상필)는 지난달 29일 열린 박 의원에 대한 5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다음 재판은 준비기일이 아닌 본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공판이 열리게 됐다. 재판부는 “그동안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등의 진행 내용을 보려고 했다”며 “1심 판결이 나온 이상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박 의원의 재판에서 정윤회씨와 박지만 EG회장 등 당사자들에 대한 증인 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이에 두 사람의 실제 출석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박 의원 측 변호인도 “1심이 끝난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의 조서 등을 받아보고 나서 정씨와 박 회장에 대한 증인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만만회 재판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정윤회 문건 결과와 간접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사건 모두 ‘정윤회’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또한 실체 확인이 힘들다는 측면에서 검찰이 어디까지 기준을 잡고 접근했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 의원에 대한 재판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든 후폭풍이 거셀 것이란 게 법조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정윤회·박지만
증인출석 여부는?

세 사건 모두 살아있는 권력과 닿아 있다. 포스코 수사는 하명수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친박 실세들의 이름이 적시돼 있다. 정윤회 사건의 또 다른 이름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다. 또한 공통적으로 ‘봐주기 수사’, 즉 청와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치검찰’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한 사법부의 대답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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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