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재건’ 박삼구 잃어버린 6년 풀스토리

먼길 돌아 제자리 “화해만 남았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갈림길을 두고 원하든 원치 않던 선택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 무작정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란 보장은 없다. 탁월한 선택으로 칭송받던 결단이 엄청난 고통을 주는가 하면 그릇된 선택이 ‘신의 한수’로 둔갑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중분해 된 그룹을 찾고자 긴 시간 험준한 길을 돌아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전남 나주 출신의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했다. 1971년 금호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면서 어느덧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11위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또 한 번 대담한 도박을 단행한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이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재계 순위는 11위에서 8위, 다시 7위로 뛰어올랐다.

덩치불리기 후유증
유동성 위기 몰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자 현금 유동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약 3년이 흐른 2009년에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돈줄이 말라버린 탓이다.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각각 4조6000억원과 1조6000억원 수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축이던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각각 6800억원, 8500억원, 6900억원에 불과했다. 


과도한 빚은 머지않아 골칫덩어리로 되돌아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면서 전체 지분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2009년 말까지 인수 당시 주가 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될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대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3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풋백옵션 행사하며 대우건설을 3만원에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무려 4조2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 이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우건설은 형제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9년 당시 불거진 경영권 분쟁에서 심각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갈등의 시작은 역시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박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에 나서자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마저 묵살하자 이후부터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이 커졌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업계 불황 등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지난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박 회장은 같은 해 7월 ‘지분공동보유’ 규칙을 깬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채 본인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진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 방도마저 찾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된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나마 다행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후 금호그룹 재건에 나선 박 회장에서 두 가지 요건은 결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한다.

시간 돌린다면…
꺾지 않은 의지

급하게 남은 자산을 수습하고 그룹 재건 의지를 천명한 박 회장은 일단 사재 333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경영 일선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를 중심으로 내실 다지기에 힘을 쏟는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어림짐작으로 약 6년이다.


그 사이 옛 영광의 한축이던 금호산업이 다시금 매물로 나왔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금호산업을 주의 깊게 바라본 건 비단 박 회장만이 아니었다.

지난 3월2일 금호산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호반건설과 사모펀드 4곳(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자베즈파트너스, IMM PE)을 입찰적격자로 선정했다. 매각대상은 채권단이 금호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감자·출자전환으로 갖게 된 지분 57.5%, 약 1955만주였다.

대우건설 인수 삐거덕 승자의 저주 현실로
배탈난 무리한 투자…형제간 우애까지 금가

당시 채권단이 금호산업 매각대금으로 설정한 금액은 약 1조원 수준이었고 실제 인수금액 역시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측됐다. 매각 소문이 흘러나온 직후 7000억∼8000억원으로 예상되던 금호산업에 1조원이라는 금액이 매겨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금호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반증한다. 호반건설이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호반건설은 지난해 도급순위 15위를 기록한 알짜 중견건설사로서, 도급순위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금호산업(20위)보다 우위에 있다. 금호산업에 대한 호반건설의 의지는 지난 3월25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대한상의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상열 회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우리의 자산이 2조원 가량인데 채권단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1조원 조금 안되는 수준이라고 들었고 이를 두고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단독입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호산업에 대한 의지는 호반건설보다 박 회장이 훨씬 굳건했다. 금호산업은 박 회장에게 그룹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시점에서 두 회사는 경영권이 분리됐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결점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한축을 담당해왔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30.08% 보유한 상태였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단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는 금호산업 인수가 아시아나항공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산하 계열사의 경영권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찾는다
인수금은 어떻게?

결국 금호산업 인수전은 좌충우돌 끝에 박 회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난달 24일 채권단이 제시한 금호산업 지분 50%+1주를 박 회장이 7228억원에 인수키로 동의한 것이다. 지난 4월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던 호반건설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인수전 중간에 이탈한 상태였다.

이제 자금을 조달해 채권단에게 쥐어주면 6년 만에 다시 그룹의 주인이 된다. 다만 박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매각에 동의한 채권단도 박 회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인수 대금 7228억원을 12월30일까지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박 회장 자금 여력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박 회장은 3년 전 우선매수청구권을 받기 위해 금호산업에 2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현재 박 회장의 가용 자산이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보유분을 포함한 금호산업 지분 9.9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IB업계에서는 3개월 전 되찾은 금호고속을 다시 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 주식 100%(1000만주)를 칸서스HKB 사모 펀드에 3900억원을 받고 재매각한다고 밝혔다. 칸서스HKB는 칸서스자산운용이 8월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고속을 매각한 대금으로 금호산업 지분을 살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출자 전환 주식 매각 준칙에 따라 계열사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라 이마저 녹록지 않다.
 

칸서스자산운용이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자 받아 박 회장의 재무적 투자자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인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바 있는 칸서스자산운용은 박 회장과 지역 연고가 같은 김영재 회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과 사실상 동맹관계인 칸서스자산운용이 백기사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칸서스자산운용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박 회장과 함께 인수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된 빚잔치 시련의 회생기
금호산업 재인수 마무리 단계


여기서 최근 박 회장의 지원군으로 또 다른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던 금호석유화학이다. 최근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사이에 어딘지 모를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24일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했던 어음대금 90억원과 이자 30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금호피앤비화학은 소송을 취하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이고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이다.

금호그룹은 계열 분리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대상으로 각각 90억원, 3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CP)을 매입토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초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CP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어음금 청구 소송을 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소 제기 이후 CP 대금을 갚았으나 금호산업은 금호석화와 금호피앤비화학 등을 상대로 상표권 지분이전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법원은 금호산업이 제기한 상표권 소송 1심에서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양측에 모두 공동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해 사실상 금호석화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1건의 소송취하로 둘 사이 쌓인 앙금이 전부 해소됐다고 보는 건 확대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금호산업이 어음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석유화학에서 소송을 취소한 과정은 상표권 소송 판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던 모습은 일정부분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상처가 너무 깊다
동생과 화해 수순

하늘 높이 치닫던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원대한 이상은 산산조각난지 오래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거대한 채무만 남긴 채 남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형제 간 우애마저 쉽사리 회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의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룹 재건이라는 큰 목표아래 일정부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영광을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만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남들에겐 큰 교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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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