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제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국감)가 지난 8일을 기점으로 마무리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국감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았던 이유는 제20대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키워드’별로 지난 한 달간 있었던 국감 이야기를 <일요시사>가 정리해봤다.
‘예측불허, 일촉즉발’. 제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을 관통했던 단어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된 국감은 추석연휴를 끼고 1·2차로 나눠 진행됐다. 소위 ‘분리국감’으로 진행됨에 따라 준비하는 보좌진들은 추석 연휴를 제쳐두고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고성·막말이 어김없이 오갔다. 지난 8일에 끝난 제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은 숱한 화제와 이슈를 몰고 왔다.
예측불허
일촉즉발
▲기업인 =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인’의 증인 출석이 활발했던 국감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국정감사의 본질과 남용: 증인신문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이번 19대 국회 국감 때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의 수는 지난 16대 때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57.5명이던 것이 19대 들어서는 평균 124명으로 뛰었다. 비율로 따지면 2.1배 상승한 수치다.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일반인 증인 중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났다. 제18대 국회였던 지난 2000년에는 22.2%였던 것이 제19대 국회인 2014년에는 35.2%로 증가했다. 기존 일반인 5명 중 1명이 기업인이었다면, 2014년에는 3명 중 1명꼴이 된 것이다.
수도 증가했지만 면면도 화려했다.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지난달 17일 10대 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조대식 SK주식회사 대표,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김한조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등 굵직굵직한 기업인들의 출석이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기업인 출석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김수연 한경연 연구원은 “올해 국감에서도 기업인에 대한 무더기 소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증인신문은 경영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 감사안건 수(피감기관 수), 안건 당 채택 가능한 최대 증인 수 등이 명시된 ‘국정감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안했다.
반면 다음 국감에서는 오히려 지금보다 강한 증인채택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야권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언론에서) 무분별한 증인채택이라 말하지만, 실상은 이런저런 핑계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마치 (국회의원이) 갑질을 하며 기업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얘기가 나오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 전·현직 ‘공기업’ 회장에 대한 국감 증인채택도 빠지지 않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는 지난달 21일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변종립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등을 증인으로 세웠다.
그러나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에 대한 증인 출석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무위원회(정무위)는 정 전 회장과 전우식 포스코 전무이사 등을 지난 7일에 있었던 종합국감에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무위 관계자는 지난 6일 “정 전 회장, 전 전무이사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을 고가에 인수한 배경에 대한 질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정 전 회장은 지난달 21일 일반국감에서도 “검찰 수사 중이어서 어렵다”며 증인 불출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1인당 심문시간
30.6분→17.4분
▲정쟁 = ‘정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등 소위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국감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감에서는 여·야 대표 잠룡의 자녀 문제가 핵심 쟁점사항으로 다뤄졌다. 김 대표는 사위의 마약 사건으로 야권으로부터 증인 출석을 요구받을 정도로 진통을 겪었다.
대표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이 이 사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고검장 출신으로 대검 마약과장을 지낸 이력이 있는 임 의원은 김 대표 사위에 대한 수사가 축소·은폐됐다고 보고 재수사를 요구했고, 검찰은 가능성을 시사했다.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의 서울시 국감, 국방위원회(국방위)의 병무청 국감, 그리고 법사위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문제가 다뤄졌다. 특히 법사위 대검찰청 국감에서는 박원순의 아들 박모씨를 검찰이 직접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1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박모씨의 소환조사 필요성을 적극 피력했다. 김 의원은 증인으로 나온 김진태 검찰총장을 향해 “(구강 엑스레이 사진 등) 문제가 되니까 본인이 와서 다시 검증을 해야 한다. (중략) 오지 않으면 (검찰이) 불러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두 거물들이 자녀문제로 진통을 겪자 정가 일각에서는 ‘대선주자 흠집내기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도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지인을 특별채용시켰다는 의혹과 함께 태도 논란이 일었다.
주무부처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는 물론 산자위·법사위에서는 최 부총리에 대한 여러 의혹이 주목받았다. 과거 지역 사무실에서 일하던 인턴과 4년 동안 수행한 비서를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에 채용되도록 힘썼다고 새정치연합 이원욱 의원은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14일 “(취업 청탁을 한 사람은) 최근에는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얘기하시는 분, 최경환 경제부총리다”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 측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취업과 관련한 어떠한 청탁·외압도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19대 국회 마지막…한달 일정 마무리
어김없는 정쟁·막말 ‘사라진 정책’
▲막말 = 어김없이 국감장에서는 고성과 ‘막말’이 오갔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 개정안이 기획재정부(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있다며 이를 ‘매국 행위’라 비판했다. 이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최 부총리가 “아무리 의원이지만 좀 지나친 표현이 아니냐”며 지적했고, 여·야는 고성을 주고받았다. 최 부총리는 앞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머리가 나빠서 뭘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 태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또 기업인 소환
회장들 수난도
지난달 21일 산자위 국감에서는 자원외교와 관련한 질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때 메릴린치를 대표해 김형찬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려진 바대로 메릴린치는 이명박정권의 하비스트 인수와 관련해 자문을 해준 곳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장에서 김 지점장이 “자문료 산정은 시장 관행에 따른 적절한 처사”라고 말하자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은 그를 향해 ‘야바위꾼’이라고 표현했다.
장외전쟁도 치열했다. 지난 6일 법사위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은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의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말에 따르면, 임 의원은 지난 5일 국감 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위의 마약 문제에 대해 집중 질의했는데, 국감이 끝난 뒤 이어진 사석에서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부메랑이 돼 당신(임내현 의원)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임 의원은 국감 당일 이상민 법사위원장을 향해 주의 조치를 촉구했다.
막말로 주목을 받았던 이가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화제가 됐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종합감사에서 출석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 칭했다.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고 이사장을 향해 “과거 노 전 대통령을 민중민주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민중민주주의자는 공산주의의 변형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냐”고 묻자, 고 이사장은 “나는 그렇게 봤다”고 답했다. 앞서 고 이사장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튀려는 의원들 ‘오버 질의’
코뽕·드론·몰카 퍼포먼스
▲부실 = 어김없이 ‘부실’ 국감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렵게 증인채택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는 사례가 어김없이 이어졌다.
일례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해 오후 시간 내내 대기하다 짧은 답변 시간만 받고 돌아갔다. 이마저도 “한·일전에서 한국을 응원하나”와 같이 의미 없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증인들 중 국회에 출석했어도 ‘부름’을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한경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출석한 증인 1인당 소요된 평균 심문시간은 지난 2000년 30.6분에서 2014년 17.4분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부르는 증인 수는 늘어나는 데 반해 주어지는 시간은 그만큼 짧아지고 있어 부실 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딴 짓을 하다 걸린 의원들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국감에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자신의 회고록을 작성하는 모습이 방송에 잡혔다. 김 의원은 즉시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국감 도중 소설책을 읽는 모습이 잡혔다. 신 의원은 “책을 읽은 것은 사실이지만, 질의 내용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 국감 내용과 관계없는 오피스텔 매물을 살피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감 의원은 “다음에 있을 감정원 국감에 대비해 자료를 찾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퍼포먼스 = 지난해 뉴트리아 국감에 이어 올해도 ‘퍼포먼스’ 국감이 이어졌다. 지난달 10일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국감에서 새누리당 김제식 의원의 보좌관은 셀프성형기구를 착용했다. 10대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 같은 기구들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해당 의원실은 밝혔다. 보좌관이 소위 ‘코뽕’ ‘얼굴밴드’ 등을 착용한 모습이 주목받았다.
‘뫼비우스의 띠’
왜 매년 반복?
지난달 11일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국감에서는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드론(무인비행장치)을 직접 가져와 시연했다. 이 의원은 약 10여초 간 직접 드론을 선보인 뒤 해당 사업 활성화를 주장했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은 정무위 국감에서 몰래 카메라(몰카)의 발전을 알렸다. 김 의원은 몰카가 장착된 야구모자와 안경을 직접 착용한 채 국감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