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④그들은 어디로?

혈세로 먹여주고 재워준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김일곤 살인사건이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살인범에 대한 법적인 잣대가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량, 시효, 사형미집행 등을 두고 적절성 논란이 부각되면서 법의 개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양철한)는 수원 광교산 몽둥이 살해범 신모(47)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신모씨는 지난 2월 광교산 등산객 B씨에게 아무 이유 없이 이른바 ‘묻지마 폭력’을 휘둘러 숨지게 만든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느슨한 잣대
 
검찰은 신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신씨가 과거부터 정신분열증을 앓아왔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벌였다는 점을 참작해 극형을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며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살해범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심신미약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법원은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량을 감해 주기도 한다. 형법 10조2항에 따르면 심신미약 판단에는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법원의 평가가 객관성을 담보로 하고 있는지 여부는 의문이다.
 
심신미약은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마법’과 같다는 것을 살해범들도 잘 아는 모습이다. 최근 흉악스러운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이 잇달아 심식미약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70대 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여행용 가방에 담아 유기한 유모씨도, 지난해 4월 ‘김해여고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모씨와 허모씨도 각각 심신미약을 이유로 최근 항소를 했다.
 

최근에는 심신미약에 대한 인식이 나빠 형량이 줄어드는 일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나올 때마다 시민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심신미약 및 심신상실로 인한 감형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법조계에서는 피고인이 정신병, 술 등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이 줄어드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지만, 국민들은 멀쩡한 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가능성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분노하고 있다.
 
자수로 인한 살인죄 형량 감형도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살인에 대한 형량은 통상 20∼30년에서 최고 사형까지 선고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수의 경우 잔혹한 수법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12년 수준에서 정해진다.
 
사람 죽이고 ‘호의호식 감방생활’
보통 20∼30년형…자수시 10년대
 
따라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형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05년 5월 평소 연모하던 직장후배를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A씨는 자수를 통해 형량이 12년 선고되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 살인범이 형량을 낮추기 위해 자수를 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다. 2007년 최모씨는 유통회사에 금품을 훔치러 들어갔다 잠에서 깬 주인을 살해했다. 그는 이후 자신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경찰에 살인형량을 묻다 적발됐다.
 
 
법원이 살인범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내려도 논란은 남아있다. 사형이 선고돼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인 1997년 12월 23명에 대해서 사형을 집행한 이후 18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알제리, 카메룬, 남아공, 케냐, 러시아, 몽고, 모로코, 튀니지 등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가 인정한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다.
 
하지만 최근 잔혹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사형 집행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일고 있다. 사형제 집행은 대통령의 재가가 나지 않으면 집행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 이후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가 되자 이후 대통령들은 사형제 집행을 미루는 모습이었다. 굳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특히, 사형수가 교도소에 수감되면 노역활동도 하지 않고, 특식까지 챙겨먹는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세금을 사형수를 먹여 살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다만,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형집행에 대한 의견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 살인범에 대한 법이 개정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 즉, 살인을 저지른 후 15년동안 법망을 피해나가면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떠들고 다녀도 법적인 제재 수단이 전무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살인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태완이 법’이 지난 7월31일 발효되면서 지난 2005년 8월 이후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끝까지 간다
 
경찰은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로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발생한 지 5년이 넘은 살인사건은 지방경찰청의 미제사건 전담팀이 넘겨받아 수사한다. 5년 더 수사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수사 중지 여부를 심의할 계획이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제 살인사건은?
 
국내 살인 사건 검거율은 높은 편이다. 96.5% 수준으로, 이는 미국(75.9%), 영국(81.0%)보다 높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 못한 5년 이상 장기 미제 살인사건은 256건에 달한다.
 
지역별로 충청권에서는 2001년 12월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과 2006년 대덕구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2013년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 등이 미제로 남았다. 전라남도에서는 ‘나주 간호사 알몸 살해사건(2000년 8월)’,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해사건(2001년 2월)’, ‘광주 내방동 임산부 살해사건(2001년 9월)’, ‘대인동 식당주인 살해사건(2008년 10월)’, ‘목포 여대생 살해사건(2010년 10월)’ 등이다.
 
한편, ‘태완이법’이 발효됐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들은 영구미제로 남아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실종된 지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이형호(당시 9세) 유괴·살인사건’ 등 이른바 3대 미제사건은 영원히 법적인 처벌을 할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 ‘태완이법’을 만든 태완이 살인 사건도 1999년에 발생해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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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