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정의당 심상정 대표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대안정당 길 가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야권이 들썩인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싸움으로 연일 시끄럽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1월까지 ‘천정배 신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지켜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구태의연하다”며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야권에 재편 바람이 거세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선뜻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 지경이다. 오히려 총선이 다가올수록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형국이다.

지난 20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1월을 목표로 ‘천정배 신당’을 창당한다고 선언했다. 회견장에서 천 의원은 “12월까지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월 중 창당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을 단일정당으로 맞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너나 잘해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평가절하했다. 문 대표는 즉각 “천 의원이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공방에 진보세력의 또 다른 축을 맡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나섰다. 두 인물의 설전(舌戰)에 대해 “이율배반적이고 구태의연하다”며 모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심 대표는 “두 지도자의 선의는 믿지만, 통합론도 신당론도 낡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새정치연합 문 대표의 ‘야권통합론’에 대해선 남녀 사이에 빗대 그동안 연애도 안하다가 갑자기 같이 살자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천 의원의 ‘신당론’에 대해선 농사에 빗대 ‘정치이모작’을 시도하는 광경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에 대해 각각 쓴 소리를 날린 심 대표. 그렇다면 과연 그의 머릿속에 있는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일요시사>가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심 대표와의 일문일답.


-인사가 늦었습니다. 대표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선 후 지난 두 달간 활동을 자체 평가해 주신다면?
▲제 가진 모든 정신적, 육체적 기운을 끌어올려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여당에서 허울뿐인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의 손쉬운 해고를 밀어붙이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광폭 행보를 그치지 않고 있는데요.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만들고 또 저희가 가진 방안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알리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또 국민의 투표가치가 평등하도록 교정해야하는데도, 선거제도개혁에 미온적인 양당에 맞섰습니다. 국민의 투표가치가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보장’하는 선거법 도입을 위해 끝까지 이 악물고 노력하겠습니다.
 

-현안 질문입니다.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의견이 여당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정의당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당에서는 농어촌 대표성을 강조하면서 비례대표를 줄이자고 하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은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헌재에서는 농촌, 지역대표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1인1표는 평등하다는 표의 등가성을 실현해야한다는 것이었거든요.

표의 불비례성을 줄이려면 헌재 판결정신에 따라야 합니다. 비례성을 더 높여서 비례대표제를 늘리면 됩니다. 전 세계 비례대표제 나라 중에 우리나라 비례대표 의석수가 제일 적은데, 비례를 여기서 더 줄이자는 것은 역주행입니다. 현역 국회의원들 기득권 지키기라고 생각합니다.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보시나요?
▲무작정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고, 국민께 신뢰를 얻은 후에 늘리자는 게 본래 제 주장이었습니다. OECD국가 기준으로 국회의원 한 사람당 유권자가 평균 9만명입니다. 저희는 국회의원 한 사람 당 유권자가 거의 두 배인 15만명이에요.

국민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자원외교 같은 문제들을 제대로 감시하려면 의원수가 늘어나는 게 좋습니다. 다만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드는 국민의 거부감도 백 번 이해합니다. 우선 국민을 상대로 국회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비삭감이나 과감한 혁신으로 국민을 닮은 국회가 되어야지요.

비례대표 줄이는 방안, 시대적 역주행
11월 4자 결집, 진보정당 재탄생 신호

-노동운동가 출신으로서 정부와 여당에서 주장하는 ‘임금피크제’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십시오.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을 늘린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은 이미 OECD, 한국노동연구원, 입법조사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청년일자리 만들기의 절대적 대안인 양 홍보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빈곤을 자백하는 것입니다.


평균 11억원인 대기업 등기이사 임금과 700조원에 달하는 대기업 사내유보금에는 손도 안댄 채, 성실히 회사에 다닌 죄밖에 없는 고령 노동자에게 임금피크제를 강요하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등기이사 연봉의 10%만 신규 고용에 투자해도 일자리를 1만개 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내유보금에 세율 1%만 적용해도 청년고용기금으로 7조원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고용절벽에 내몰려 절망하고 있는 청년들과 부모세대를 분열시키는 책동은 멈춰야 합니다.

-11월 초 진보정당 창당 소식이 있습니다. 기존의 정의당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는 ‘진보혁신회의’라는 이름으로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더하기 4자가 모여 진보혁신과 정강정책 등 통합논의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당원의 의견에 달려있습니다만, 진보재편을 꼭 성사시켜 유력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4개의 진보세력이 뭉치다보니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는데요.
▲진보결집은 그간 진보정치가 겪어왔던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혁신의 성과를 종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유력정당은 진짜 정당, 군소정당은 압력단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보세력 재편은 과거의 진보정당을 재현하자는 게 아니라 그동안 치열하게 혁신하고 성찰해온 성과를 종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진보정당의 압력단체 시대를 끝내고 유력정당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전통적 지지자를 모아야 합니다.

-천정배 의원을 필두로 한 ‘호남신당’과는 분리 노선인 건가요?
▲천정배 의원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구상을 구체적으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희의 기본원칙은 정치혁신에 있어서 혁신방향과 의지가 맞는 정치인 세력과 적극적으로 연대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만 선거 승리만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것은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우선 진보세력을 결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야권 전체의 혁신과 총선에서의 협력은 천 의원 쪽이든 어디든 광범위하게 협력하려고 합니다.

-정의당 내 유일한 지역구 의원이십니다. 20대 총선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올 수 있는 전략이 있으시다면?
▲첫째로 가장 큰 전략은 정의당 그 자체입니다. 정의당이 가진 당 안팎의 자원을 묶어서 국민께 정의당의 잠재력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둘째로 지난 10여 년 이상 대한민국 민생정치는 진보정당이 제시한 정책 의제를 가지고 먹고 살았습니다. 정의당 경쟁력은 그런 정책능력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정책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정책정당으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현행 20석이 기준인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자신하시는지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니까요.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거지요.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가 3분의1은 돼요. 저희 정의당이 국민에게 믿음을 준다면 새로운 대안정당으로 정의당을 격려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금피크제, 정부의 정책적 빈곤 자백
박근혜정부, 4년 만에 나랏빚 202조원↑

-정당 지지도에서 지난 7월 4주 차에 7%로 정점을 찍은 이후 4~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한국갤럽 기준). 두 자리 수 돌파를 이끌 묘안이 있으신지요?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정의당을 강하고 매력적인 정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중소상공인, 청년 등 정의당이 앞장서서 대표하고 싶은 세력에 희망과 의지가 되는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요. 그리고 진보정치 시행착오 과정에서 상처받고 지지를 유보해 오신 분들을 다시 모아내겠습니다. 진보통합은 그런 면에서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전환점을 맞은 박근혜정부를 진단해 주신다면?
▲박근혜정부 출범 직전인 2012년 말 443조원이던 나랏빚이 4년 만에 202조원이 더 늘어나 내년 나랏빚은 645조원이 넘게 됐습니다. 빚은 늘어만 가는데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임기가 전환점이 돈 시점에 그동안 경제활성화 대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정의당은 오래전부터 증가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고,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증세’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박근혜정부가 국가재정운용 정상화를 위해 건설적인 논의에 나서기를 바랍니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이한 국민들과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삶을 살아가시느라 제 한 몸 돌아볼 겨를 내는 게 쉽지 않으실 거 같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과 정말 편안히, 마음과 몸을 뉘이실 수 있는 추석 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대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심상정 대표 프로필]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 학사
▲정치바로아카데미 원장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제19대 국회의원(경기도 고양시 덕양구갑)
▲제19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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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