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별기고> 영화 <사도>로 보는 정치심리학

권력은 결코 나눠 가질 수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권력은 ‘양분(兩分)’될 수 없다. 원한다고 ‘양도(讓渡)’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무턱대고 ‘양보(讓步)’하다간 손안에 있던 것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영화 <사도>를 관통하는 권력의 속성은 참혹하리만큼 무자비하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혈육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다. 1762년 7월,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을 그렇게 갈라놓았다. <일요시사>는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과 함께 부자지간이지만 정치판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두 인물을 들여다봤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콩 하나도 나누어 먹으라 배웠다. 그런데 그 콩이 눈덩이만큼 커지면…심지어 아비도 아들과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좌에 올랐다. 반대로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광인(狂人)’으로 몰아 뒤주에 가둬 죽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과 세자, 권력자와 후계자는 애증과 의심과 모략의 소용돌이 안에서 서로의 진심을 전달하지 못한 채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신·구 파워게임

이 점은 현재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사의 정치판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도세자와 그 아비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왜 그토록 반목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가. 영화에서는 이를 ‘부자유친(父子有親)’의 문제로 가족 드라마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당파를 등에 업고 서로 다른 개혁을 꿈꾸며 반목을 시작한다.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리며 ‘노론’의 도움으로 즉위한 영조는 당파에서 벗어난 인재 등용을 평생의 숙원 사업으로 정했다. 반면 사도세자는 ‘소론’의 입김이 강했던 후궁과 환관들의 손에서 자라났다. 아비는 나름의 탕평을 시도했다고 자부하지만,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역시 ‘개혁’의 대상이자 ‘보수’의 상징인 것이다.

실상 영조는 권력의 안전장치와도 같은 노론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반면 사도세자는 왕의 권력을 나눠가지려는 노론 세력이 기득권을 지니고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노론-소론’의 싸움은 결국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싸움을 상징한다.

영화 <사도>를 둘러싼 당파 싸움과 영조와 사도세자의 개혁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은 최근의 새누리당 주변을 둘러싼 오픈 프라이머리와 계파 갈등을 비교해보면 일종의 기시감마저 든다. 새누리당 내에는 총선 룰 결정과 관련해 ‘친박-비박’간의 갈등이 치열하다. 거국적 차원에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또한 마찬가지다. ‘친노-비노’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투표를 철회하면서 두 세력 간 갈등은 봉합되는 듯 보이지만, 뇌관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정가는 내다본다.

결국 권력자와 후계자는 서로 다른 계파싸움의 대표 주자로 거시적으로는 서로의 권력 창출을 위한 동지이기도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당파를 대표하는 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영화 <사도>는 정치적 계파가 때로 핏줄의 정마저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 모든 가족관계가 정치적인 해석과 관점 안에서 생존권을 확보해야 하는 슬픔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영조는 진정 왕위에서 물러나고 싶어했는가.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임금의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궁궐을 옮긴 적이 있을 정도이다. 많은 권력자들이 재위동안 이러한 양위의 제스처를 취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5년 1월경 유신헌법에 대한 신임투표를 제안했고, 같은 해 2월12일 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천명했다.
 



영조가 아들의 효심을 확인하기 위해 ‘선위 쇼’를 벌였듯 정치인들은 신뢰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재신임을 묻는 행위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권력에 눈이 멀어 이복 형(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서 벗어나려 한 영조의 자기 합리화일 뿐, 그는 실질적으로 왕권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즉 권력자가 권좌에서 물러나더라도 막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을 벗어던질 수 없을 때, 후계자에 대한 시험과 질타는 더욱 혹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영조는 끊임없이 공부를, 즉 실력을 기를 것을 사도세자에게 권유한다. 이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외우지 못해도 시험에 불합격 처리하는 영조의 모습을 통해 확인된다. 후계자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무시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친박-비박’ ‘비노-친노’ 역사의 반복
권력자-후계자, 계파 내에선 그들도 적


영화에서 함경도에 있는 진지를 옮기려하자, 영조는 당장 사도세자에게 “니가 뭘 알아. 니가 함경도에 가 봤어”라고 질책을 퍼 붓는다. 사실 영조가 이 장면에서 마음속 깊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후계자가 나의 ‘꼭두각시’가 되어 줄 정도의 충성도가 있는지의 여부이리라. 따라서 후계자는 자의식을 없애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인내해야 권력자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이 커진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반역을 꿈꾸는 그대의 아내와 장남 노부야스를 죽이시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는 아들에게 할복을 명하고 아내에게는 사약을 내려 노부나가의 뜻을 따랐다. 훗날의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장남과 아내까지 희생시키며, 지독한 괴로움 속에 참고 또 참으며 자신을 낮추었던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전형이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그 본성이 솔직하고 화살처럼 자유로운 사람으로 영화에서 그려진다. 게다가 예술가적 재능과 천분마저 지녔다. 이러한 자의식으로 인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개혁이나 자기주장은 자신의 중요성을 위협하는 크나큰 시기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표리부동함, 즉 권력자의 이율배반적 모습에 치를 떨게 된다.

이러한 권력자와 후계자의 심리적 갈등은 근대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시작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간의 갈등은 2008년 친박계가 친이계로부터 공천학살을 당하자 폭발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어록을 남기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자신이 가진 유리한 입장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한 채 친모인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어떤 결단을 촉구할 만큼 외롭게 죽어 갔다. 정치 세력화에 실패한 것이다. 일례로 영화에서 영조는 인원왕후의 상중에 술을 마시고 온 사도세자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만 궁녀 한 사람 만이 사도세자를 두둔하고 나선다. 사도는 주위 신하들에게 “아녀자도 내 편을 드는데 경들은 어찌 한 사람도 말이 없는가!”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혼자였다.

설상가상으로 총명한 세손이 등장한다. 찰스 황태자에게 윌리엄 왕자가 생긴 것처럼 조선 왕실에 대안이 생긴 것이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일말의 기대는 세손이 등장하자 서서히 없어져버린다. 냉혹한 정치 현실에서 ‘대체재’가 나타나면 기존의 것은 버려지게 마련이다. 왕은 사도세자를 “존재 자체가 역모”라며 부정하고, 사도세자도 이 즈음에는 광기에 휩싸여 어떤 증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증상의 핵심에 의대증, 즉 옷을 입지 못하는 병이 존재한다. 영화 내에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님을 제대로 매라. 상복을 제대로 걸쳐라”고 수없이 꾸짖는다. 영조에게 옷은 왕의 체통이었고 왕자의 체면이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세자는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20여벌의 의복을 찢고 버렸다고 한다. 즉 의대증은 사도세자의 전형적인 ‘역할 거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슬픔을 생각하다.

영화 말미에 영조는 죽은 세자의 시호로 ‘생각할 사(思) 슬플 도(悼)’, ‘사도’라 이름 짓는다. 슬픔을 생각함. 그러나 슬픔은 상실에 대한 애련함 뿐 아니라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일 뿐. 왕의 회고는 슬픔이지만, 사도세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나은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후계자여 새 옷을 입으라. 죽음과 분노의 궁전에서 스스로를 자해하기보다, 한 평의 뒤주 속에서 후계자를 얽어매려는 왕의 손에 있기보다, 인내하고 융통성을 발휘하고 서서히 사람들을 그러모으라.

때를 기다린 세손은 영조의 사후 1776년, 마침내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로 즉위한다. 그의 즉위 후 첫 일성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것. 입에 담지도 말고 꿈에서도 보지 말라던 아비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규정짓는 것이었다.

<chm@ilyosisa.co.kr>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평론가·심리학자·상담가이자 교수.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거쳐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대구사이버대에서 학과장을 역임 중이다.

심영섭 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씨네21> 평론상을 수상한 이래, 김기덕·박찬욱·홍상수 등 다양한 감독들에 관한 다수의 영화 평론문을 발표해왔다.


<100분토론> <아침마당>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력이 있으며, 저서로는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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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