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북한이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8·25합의 한 달도 못가 나온 '강경 발언'에 우리 정부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노린 '협상용 멘트'로 해석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위한 무력시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핵심 변수는 한반도 밖에 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추진하고 있다. 핵실험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등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14일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군조선의 위성'들이 우리 당 중앙이 결심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지를 박차고 창공 높이 계속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09년과 2012년에도 각각 광명성 2·3호기를 쏘아 올리며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장거리 미사일 발사체'로 간주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초읽기
이날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매체는 <조선중앙통신>의 인터뷰를 인용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일은 10월10일이다.
북한은 우선 개발 중인 발사체가 '인공위성'이라는 입장이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우주 개발은 세계적 추세이며 많은 나라가 통신 및 위치측정, 농작물 수확고 판정, 기상관측, 자원탐사 등 여러 목적으로 위성들을 제작, 발사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위성발사 역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국가과학기술 발전계획에 따르는 평화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도발'로 보고 있다.
지난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이)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 (로켓)발사와 같은 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을 언급한 당일 기자들의 질문에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행위가 북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답했다.
다음날 북한은 "핵무기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연구와 생산에서 연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지난 15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의 핵보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라며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핵무기)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에 따라 우라늄 농축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5MW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됐으며 재정비돼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라고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꺼내면서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간 핵실험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핵실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단골 제제 대상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국이다. 비상임이사국은 핵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결정권이 없다.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협의 급물살
노동당 창건 70주년 앞두고 다시 경색
때문에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은 한반도 밖에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일부 '전쟁론자'들이 주장하는 무력에 의한 대북 제제는 불가능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은 미국의 '허가'가 있어야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결국 국제정세에 따라 외교로 위기를 해소해야 할 운명이다.
우선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다만 임박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분석한 결과 이동식 정비탑에서 움직임이 없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38노스는 "과거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북한이 10월10일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준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서해 동창리 외에 제3의 장소에서 로켓 발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할 부두를 강원도 원산에 새로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장거리 로켓 발사 시점은 여전히 미궁이다. 단 국내외 여론은 북한의 '으름장'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간보기'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앞서 북한은 광명성 2·3호를 발사했을 당시 자신들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중·러
일제히 반대
예를 들어 광명성 2호 때는 "위성 발사 준비가 완료됐으며 곧 위성이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광명성 3호 때는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4월12일부터 16일 사이에 발사된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는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여론을 본 뒤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중국이 북한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언급할 문제가 아니지만 중국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관련 조항에 근거해 안보리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데 같은 입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국제사회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반응을 내놨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국민과 북한 체제가 국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한 결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공언했다.
핵실험 카드
내부 결속용?
북한 입장에서 뼈아픈 것은 중국의 냉담한 반응이다. 경색된 북중관계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양국의 동맹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당장 중국은 오는 25일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언급은 단기적으로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미·중 정상회담의 의제로 묶으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미·중 정상과의 대화 및 체제 보장에 대학 약속이다.
만약 정상회담의 결과가 북한에게 불리하다면 북한으로서는 10월10일과 10월16일 가운데 도발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 10월16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다.
가능성은 10일10일 직전이 더 높다. 북한은 그간 중요한 기념일을 앞두고 로켓을 쏘아 올렸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1주기(12월17일)를 앞두고 각각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노동당 70주년'이란 상징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미사일을 발사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관건은 핵실험의 확률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무력 도발이 가능한지 여부다.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제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실제 이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금껏 북한의 핵실험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해 유엔 안보리가 제제안을 내놓고 북한 외무성이 이에 반박하며 핵실험을 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 2013년 3차 핵실험까지 전개는 같았다.
북한에게 핵실험은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국제사회에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전쟁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압박이 전부다.
변수는 북한이 가진 천연자원 '희토류'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 17일 인도정부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력시위"
정부 선제대응 두고 고민
인도뿐만이 아니다. <연합뉴스-월간 마이더스> 9월호에 따르면 중국은 일찌감치 북한 조선대양총회사와 '대양-중당국제합영집단공사'를 설립하고 장진몰리브덴광산 개발에 착수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철도 개보수 공사 사업권을 따내면서 북한의 광물을 유럽으로 유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즉 북한으로서는 유엔이 금융 등에 제제를 가하더라도 민간 협력을 위장해 경제교류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리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 정보 당국 핵심 관계자는 지난 16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수일 내로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알렸다. 또 이 관계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정만 남았다고 전했다.
핵실험이 어렵다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도발 또한 감행할 여지가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난 14일 미국 현지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 때 다른 형태의 도발을 꾀할 수 있다"라며 "핵과 미사일 등 물리적 수단 외에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차 석좌는 "김 위원장이 사이버 공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은행이나 전력망, 언론사에 대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사이버 테러
NLL 포격 대비
지난 10일 우리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도발 사례는 모두 64차례로 집계됐다. 지상 13회, 해상 47회, 공중 4회로 해상이 가장 많았다.
해상 도발 가운데 군사분계선(MDL) 침범은 8회, 총·포격을 이용한 도발은 5회였다. 지난달 4일 있었던 목함지뢰 도발은 MDL 침범으로 분류된다.
만약 북한이 10월10일을 전후로 한국과 군사적 충돌을 원한다면 그 장소는 지상보다 해상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2010년 2회, 2011년 5회, 2012년 2회, 2013년 9회였지만 2014년에는 13회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 모두 10차례 침범했다.
더구나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의 군사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대응을 시사했다. 경고사격에서 시작한 충돌이 대규모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같은 시기 북한 경비정은 53회, 어선은 115회 NLL을 침범했다.
다만 남북은 10월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 당국은 '한반도 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상봉 준비를 약속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변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다. 박근혜정부는 8·25합의 성사로 국정 지지도 반등에 성공한지 불과 보름 만에 또다시 험난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