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험대 오른' 10월 북 도발 시나리오

미사일? 핵? 터지긴 터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북한이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8·25합의 한 달도 못가 나온 '강경 발언'에 우리 정부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노린 '협상용 멘트'로 해석되는 가운데 내부 결속을 위한 무력시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핵심 변수는 한반도 밖에 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추진하고 있다. 핵실험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등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14일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군조선의 위성'들이 우리 당 중앙이 결심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지를 박차고 창공 높이 계속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09년과 2012년에도 각각 광명성 2·3호기를 쏘아 올리며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장거리 미사일 발사체'로 간주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초읽기

이날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매체는 <조선중앙통신>의 인터뷰를 인용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일은 10월10일이다.

북한은 우선 개발 중인 발사체가 '인공위성'이라는 입장이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우주 개발은 세계적 추세이며 많은 나라가 통신 및 위치측정, 농작물 수확고 판정, 기상관측, 자원탐사 등 여러 목적으로 위성들을 제작, 발사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위성발사 역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국가과학기술 발전계획에 따르는 평화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도발'로 보고 있다.

지난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이)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 (로켓)발사와 같은 도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을 언급한 당일 기자들의 질문에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행위가 북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답했다.

다음날 북한은 "핵무기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연구와 생산에서 연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지난 15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의 핵보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이라며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핵무기)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에 따라 우라늄 농축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5MW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됐으며 재정비돼 정상 가동을 시작했다"라고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꺼내면서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간 핵실험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핵실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단골 제제 대상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국이다. 비상임이사국은 핵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결정권이 없다.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협의 급물살
노동당 창건 70주년 앞두고 다시 경색

때문에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은 한반도 밖에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일부 '전쟁론자'들이 주장하는 무력에 의한 대북 제제는 불가능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은 미국의 '허가'가 있어야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결국 국제정세에 따라 외교로 위기를 해소해야 할 운명이다.


우선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다만 임박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분석한 결과 이동식 정비탑에서 움직임이 없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38노스는 "과거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북한이 10월10일까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준비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서해 동창리 외에 제3의 장소에서 로켓 발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할 부두를 강원도 원산에 새로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장거리 로켓 발사 시점은 여전히 미궁이다. 단 국내외 여론은 북한의 '으름장'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간보기'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앞서 북한은 광명성 2·3호를 발사했을 당시 자신들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중·러
일제히 반대

예를 들어 광명성 2호 때는 "위성 발사 준비가 완료됐으며 곧 위성이 발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광명성 3호 때는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4월12일부터 16일 사이에 발사된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는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여론을 본 뒤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중국이 북한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는 언급할 문제가 아니지만 중국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관련 조항에 근거해 안보리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데 같은 입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국제사회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반응을 내놨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국민과 북한 체제가 국제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한 결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고 공언했다.

핵실험 카드
내부 결속용?

북한 입장에서 뼈아픈 것은 중국의 냉담한 반응이다. 경색된 북중관계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양국의 동맹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당장 중국은 오는 25일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언급은 단기적으로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미·중 정상회담의 의제로 묶으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미·중 정상과의 대화 및 체제 보장에 대학 약속이다.

만약 정상회담의 결과가 북한에게 불리하다면 북한으로서는 10월10일과 10월16일 가운데 도발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 10월16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다.


가능성은 10일10일 직전이 더 높다. 북한은 그간 중요한 기념일을 앞두고 로켓을 쏘아 올렸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1주기(12월17일)를 앞두고 각각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노동당 70주년'이란 상징성을 고려할 때 현재로선 미사일을 발사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관건은 핵실험의 확률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무력 도발이 가능한지 여부다.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제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실제 이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금껏 북한의 핵실험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해 유엔 안보리가 제제안을 내놓고 북한 외무성이 이에 반박하며 핵실험을 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 2013년 3차 핵실험까지 전개는 같았다.

북한에게 핵실험은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국제사회에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전쟁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압박이 전부다.

변수는 북한이 가진 천연자원 '희토류'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 17일 인도정부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력시위"
정부 선제대응 두고 고민

인도뿐만이 아니다. <연합뉴스-월간 마이더스> 9월호에 따르면 중국은 일찌감치 북한 조선대양총회사와 '대양-중당국제합영집단공사'를 설립하고 장진몰리브덴광산 개발에 착수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철도 개보수 공사 사업권을 따내면서 북한의 광물을 유럽으로 유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즉 북한으로서는 유엔이 금융 등에 제제를 가하더라도 민간 협력을 위장해 경제교류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리면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다. 정보 당국 핵심 관계자는 지난 16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수일 내로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알렸다. 또 이 관계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정만 남았다고 전했다.

핵실험이 어렵다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도발 또한 감행할 여지가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지난 14일 미국 현지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 때 다른 형태의 도발을 꾀할 수 있다"라며 "핵과 미사일 등 물리적 수단 외에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차 석좌는 "김 위원장이 사이버 공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은행이나 전력망, 언론사에 대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사이버 테러
NLL 포격 대비

지난 10일 우리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까지 북한의 도발 사례는 모두 64차례로 집계됐다. 지상 13회, 해상 47회, 공중 4회로 해상이 가장 많았다.

해상 도발 가운데 군사분계선(MDL) 침범은 8회, 총·포격을 이용한 도발은 5회였다. 지난달 4일 있었던 목함지뢰 도발은 MDL 침범으로 분류된다.

만약 북한이 10월10일을 전후로 한국과 군사적 충돌을 원한다면 그 장소는 지상보다 해상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2010년 2회, 2011년 5회, 2012년 2회, 2013년 9회였지만 2014년에는 13회로 늘었다. 올해는 지난 8월까지 모두 10차례 침범했다.

더구나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의 군사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대응을 시사했다. 경고사격에서 시작한 충돌이 대규모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같은 시기 북한 경비정은 53회, 어선은 115회 NLL을 침범했다.

다만 남북은 10월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예고하고 있는 까닭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 당국은 '한반도 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상봉 준비를 약속대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변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다. 박근혜정부는 8·25합의 성사로 국정 지지도 반등에 성공한지 불과 보름 만에 또다시 험난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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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