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걸린 동물원 동물들 '실태보고서'

빙빙 도는 코끼리 “도대체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동물원 동물들의 행동이 이상하다. 제자리를 맴도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일종의 자폐증인 ‘정형행동’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동물원 설립과 관리에 대한 부분이 미흡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동물원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실태와 동물원법의 주요 내용을 알아봤다.

 
유치원 교사 최모(28)씨는 얼마 전 원아들을 데리고 수도권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그림책에서만 봤던 동물들을 실제로 접한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방 뛰었다. 최씨는 이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울한 동물들
불편한 관람객
 
그러던 중 한 여아가 최씨에게 다가와 “코끼리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며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코끼리의 행동은 최씨가 봐도 이상해보였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코끼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발견됐다. 한 아이가 의문을 제기한 뒤로 수십여 명의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달라붙어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최씨와 동료교사들은 무어라 대답해줄 수 없었다.
 
동물원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로 손꼽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기대를 품고 동물원 곳곳을 구경했지만 동물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진한 어두움이 묻어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의 흔적이 역력했다. 동물들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씨는 동물들을 촬영하기 위해 챙겼던 카메라의 셔터를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월 1095명에게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96.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돌고래 하면 돌고래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서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는 돌고래의 이상행동이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간사에 따르면 돌고래는 야생에서 물 밖으로 뛰쳐나와 뭍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모습은 오로지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동물을 억압하는 동물원의 환경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동물 전문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17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공영동물원의 위기와 한국 동물원의 발전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년6개월간 대구, 전주, 대전, 광주, 청주, 진주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내 공영동물원 6곳과 민영동물원 7곳을 조사해 작성했다.
 
종일 제자리 맴도는 이상행동
불안한 사육환경에 자폐증까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보고서에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공영동물원은 만성적인 재정·전문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설물도 30년 이상 낙후돼 있다”며 “대부분 동물원에서 동물을 작은 시멘트 상자 안에 가둬둔 탓에 이들은 전시관 내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고 전했다.
 
단체 측은 “조사 과정에서 이상행동이 심각한 동물들은 고양이·곰·개과, 영장류 등 고등동물들이었다”며 “무료하고 정형화된 작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상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 관계자는 현재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원법과 관련해 “그동안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동물원을 법과 제도로 끌어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법이 동물쇼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원래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 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사육하면서 관람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동물의 습성 등 생태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야생동물의 보호 및 증식 등 종의 보존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일부 동물원의 경우 동물쇼에 이용하기 위하여 동물을 가혹한 방법으로 훈련하거나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최소한의 사육환경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 사육동물들을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동물원 내 동물의 복지와 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털 뽑는 타조
정신적인 고통
 
현행법상 동물원 내 사육동물에 대한 적정한 사육환경 제공 등 동물의 복지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의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물과 관련된 현행법은 야생동물을 다루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가축 및 반려동물을 다루는 ‘동물보호법’, 해양동물을 다루는 ‘해양생태계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등이 있다. 이들 법은 각각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소관이다. 현재는 동물학대가 발생해도 당국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에 동물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사항과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적정한 사육환경 조성 등 사육동물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동물원의 올바른 운영과 사육동물의 복지 구현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동물원법’을 지난 2013년 9월에 대표발의 했지만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하나 의원의 발의안에 따르면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뒤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동물쇼 금지, 동물원에 적응할 수 없는 동물은 사육·전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이 들어 있다. 동물원법은 지난 4월 회기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같은 달 28일 국회에서는 동물원법 제정안을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는 사육사 및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동물원법의 방향성, 해외 동물원 동향과 국내동물원 운영현황,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동물원법 제정안의 과제 등 동물원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동물원과 관련된 법률로는 ‘동물원법’(장하나 의원 대표발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 ‘동물원 관리·육성에 관한 법률안’(양창영 의원 대표발의) 등이 계류 중이다.
 
이날 진술인으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이항 교수는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적정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라며 “동물 허가제를 반드시 실시해서 자격미달인 동물원, 수족관이 양산되는 것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많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로 ‘정형행동’ 즉, 정신적 질병(사람에게는 자폐증에 해당)을 앓고 있다”며 “많은 동물원이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동물에게 인위적 행동(바다사자 윗몸일으키기, 원숭이 자전거 타기 등) ‘동물쇼’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장하나 의원은 “동물공연의 이면에는 학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동물원 임의등록제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동물원의 동물복지를 위한 규정이나 자정능력이 없다. 동물원에 관한 규정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며 “종·개체 숫자별 사육면적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규정한 해외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의 사육기준을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은 없고
인력도 부족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가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시한 ‘동물보호 및 동물원법 제정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동물원 허가제에 대해 95.1%가 찬성했으며 관람 목적의 인위적 훈련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58.9%로 나타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법을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물쇼 및 훈련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며 “동물공연에는 학대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동물 공연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에서 사단법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녹색당, 동물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카라 등 3개 단체는 동물원법 제정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한 데 이어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3개 단체 의견서는 ▲모든 유형의 야생동물 수용시설 의무 등록 ▲종 보전 등 현대동물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원에 대한 예산 지원 및 기부금품 모집 허가 ▲동물쇼의 원천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생태적 특성 고려한 환경조성 요구
허가제로 자격 미달 공원 관리해야
 
이처럼 일부에서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관련 법령 제정에 소극적이어서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언제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동물원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만큼 찬성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동물원법 제정에 관심이 필요한 현실이다.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동물 사육기준 및 제도’에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동물원 동물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도 영국은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운용중으로 알려진다. 동물원의 허가 및 조사는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다. 중앙정부가 이에 필요한 법적 기준 및 근거를 제시한다. 영국 동물원의 목적은 동물이 가장 정상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데 있다. 동물원의 핵심역할은 동물 보전이다.
 
 
영국의 동물원은 온도, 환기, 조명(강도 및 분광분포) 및 소음수준은 동물의 특정 종이 항상 안락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동물원내 적정 환경에 관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임신한 동물의 경우 특별관리해 보호하고 수생동물의 경우 적절한 공기공급과 적정 개체수 및 수온 유지가 되도록 환경을 관리한다. 야외 우리의 동물들에게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한 충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도피 영역도 있다.
 
때문에 영국 동물원의 각 우리들은 동물의 일반적인 방어 반응과 적절한 질주 또는 도피 거리를 허용하도록 디자인하도록 돼 있다. 우리와 장벽은 동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안돼야 하며, 동물 탈출을 막는 구덩이는 동물이 돌아갈 수 있는 도피로를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사육 동물의 복지증진 방안’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이 없다. 심지어 국내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원시설중 교양시설로 분류돼 있다.
 
일부 지자체 동물원 관련 조례상에는 동물원에 관한 정의가 제시되고 있으나,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 등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없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의 경우에도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인위적 훈련금지
복지도 고민할때
 
국회에서 열린 동물원법 제정 공청회에서 장하나 의원은 “어른들이 돈벌이나 유희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방치해왔다. (동물원법 제정은) 동물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간 동물학대국가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이번 기회에 동물학대국이 아닌 모범적인 동물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애견 대여업 논란 “3일에 5만원”
 
애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해 논란이다. 애견을 대여해주는 업체들은 말티즈, 토이푸들, 포메라니안 등 소형견을 2박3일 정도 대여해주는데 5만원에서 7만원을 받는다. 원한다면 1주일에서 한 달까지도 연장이 가능하다. 주문 시 업체를 직접 방문하거나 자동차 퀵서비스를 통해 강아지를 받는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지하철택배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이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애초에 판매, 대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 21일 국회에 따르면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조항을 신설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려동물 대여업을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단,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보조견의 대여는 예외로 했다. 개정안은 또 동물학대행위에 동물을 경품으로 주는 행위를 추가했다. 소싸움과 같은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동물학대 행위에서 제외된다.
 
애견 대여 서비스는 200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인기를 얻으며 영국 런던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동물을 물건과 똑같이 취급, 학대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2008년 미국, 영국 정부가 모두 대여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해당 업체들은 1년 만에 모두 문을 닫았다. 일본 등에선 여전히 성업 중이다. 특히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여하는 비율이 늘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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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