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걸린 동물원 동물들 '실태보고서'

빙빙 도는 코끼리 “도대체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동물원 동물들의 행동이 이상하다. 제자리를 맴도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일종의 자폐증인 ‘정형행동’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동물원 설립과 관리에 대한 부분이 미흡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동물원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실태와 동물원법의 주요 내용을 알아봤다.

 
유치원 교사 최모(28)씨는 얼마 전 원아들을 데리고 수도권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그림책에서만 봤던 동물들을 실제로 접한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방 뛰었다. 최씨는 이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울한 동물들
불편한 관람객
 
그러던 중 한 여아가 최씨에게 다가와 “코끼리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며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코끼리의 행동은 최씨가 봐도 이상해보였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코끼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발견됐다. 한 아이가 의문을 제기한 뒤로 수십여 명의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달라붙어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최씨와 동료교사들은 무어라 대답해줄 수 없었다.
 
동물원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로 손꼽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기대를 품고 동물원 곳곳을 구경했지만 동물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진한 어두움이 묻어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의 흔적이 역력했다. 동물들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씨는 동물들을 촬영하기 위해 챙겼던 카메라의 셔터를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월 1095명에게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96.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돌고래 하면 돌고래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서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는 돌고래의 이상행동이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간사에 따르면 돌고래는 야생에서 물 밖으로 뛰쳐나와 뭍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모습은 오로지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동물을 억압하는 동물원의 환경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동물 전문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17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공영동물원의 위기와 한국 동물원의 발전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년6개월간 대구, 전주, 대전, 광주, 청주, 진주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내 공영동물원 6곳과 민영동물원 7곳을 조사해 작성했다.
 
종일 제자리 맴도는 이상행동
불안한 사육환경에 자폐증까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보고서에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공영동물원은 만성적인 재정·전문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설물도 30년 이상 낙후돼 있다”며 “대부분 동물원에서 동물을 작은 시멘트 상자 안에 가둬둔 탓에 이들은 전시관 내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고 전했다.
 
단체 측은 “조사 과정에서 이상행동이 심각한 동물들은 고양이·곰·개과, 영장류 등 고등동물들이었다”며 “무료하고 정형화된 작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상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 관계자는 현재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원법과 관련해 “그동안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동물원을 법과 제도로 끌어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법이 동물쇼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원래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 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사육하면서 관람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동물의 습성 등 생태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야생동물의 보호 및 증식 등 종의 보존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일부 동물원의 경우 동물쇼에 이용하기 위하여 동물을 가혹한 방법으로 훈련하거나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최소한의 사육환경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 사육동물들을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동물원 내 동물의 복지와 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털 뽑는 타조
정신적인 고통
 
현행법상 동물원 내 사육동물에 대한 적정한 사육환경 제공 등 동물의 복지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의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물과 관련된 현행법은 야생동물을 다루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가축 및 반려동물을 다루는 ‘동물보호법’, 해양동물을 다루는 ‘해양생태계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등이 있다. 이들 법은 각각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소관이다. 현재는 동물학대가 발생해도 당국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에 동물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사항과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적정한 사육환경 조성 등 사육동물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동물원의 올바른 운영과 사육동물의 복지 구현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동물원법’을 지난 2013년 9월에 대표발의 했지만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하나 의원의 발의안에 따르면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뒤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동물쇼 금지, 동물원에 적응할 수 없는 동물은 사육·전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이 들어 있다. 동물원법은 지난 4월 회기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같은 달 28일 국회에서는 동물원법 제정안을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는 사육사 및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동물원법의 방향성, 해외 동물원 동향과 국내동물원 운영현황,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동물원법 제정안의 과제 등 동물원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동물원과 관련된 법률로는 ‘동물원법’(장하나 의원 대표발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 ‘동물원 관리·육성에 관한 법률안’(양창영 의원 대표발의) 등이 계류 중이다.
 
이날 진술인으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이항 교수는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적정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라며 “동물 허가제를 반드시 실시해서 자격미달인 동물원, 수족관이 양산되는 것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많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로 ‘정형행동’ 즉, 정신적 질병(사람에게는 자폐증에 해당)을 앓고 있다”며 “많은 동물원이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동물에게 인위적 행동(바다사자 윗몸일으키기, 원숭이 자전거 타기 등) ‘동물쇼’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장하나 의원은 “동물공연의 이면에는 학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동물원 임의등록제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동물원의 동물복지를 위한 규정이나 자정능력이 없다. 동물원에 관한 규정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며 “종·개체 숫자별 사육면적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규정한 해외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의 사육기준을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은 없고
인력도 부족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가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시한 ‘동물보호 및 동물원법 제정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동물원 허가제에 대해 95.1%가 찬성했으며 관람 목적의 인위적 훈련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58.9%로 나타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법을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물쇼 및 훈련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며 “동물공연에는 학대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동물 공연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에서 사단법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녹색당, 동물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카라 등 3개 단체는 동물원법 제정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한 데 이어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3개 단체 의견서는 ▲모든 유형의 야생동물 수용시설 의무 등록 ▲종 보전 등 현대동물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원에 대한 예산 지원 및 기부금품 모집 허가 ▲동물쇼의 원천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생태적 특성 고려한 환경조성 요구
허가제로 자격 미달 공원 관리해야
 
이처럼 일부에서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관련 법령 제정에 소극적이어서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언제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동물원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만큼 찬성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동물원법 제정에 관심이 필요한 현실이다.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동물 사육기준 및 제도’에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동물원 동물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도 영국은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운용중으로 알려진다. 동물원의 허가 및 조사는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다. 중앙정부가 이에 필요한 법적 기준 및 근거를 제시한다. 영국 동물원의 목적은 동물이 가장 정상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데 있다. 동물원의 핵심역할은 동물 보전이다.
 
 
영국의 동물원은 온도, 환기, 조명(강도 및 분광분포) 및 소음수준은 동물의 특정 종이 항상 안락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동물원내 적정 환경에 관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임신한 동물의 경우 특별관리해 보호하고 수생동물의 경우 적절한 공기공급과 적정 개체수 및 수온 유지가 되도록 환경을 관리한다. 야외 우리의 동물들에게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한 충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도피 영역도 있다.
 
때문에 영국 동물원의 각 우리들은 동물의 일반적인 방어 반응과 적절한 질주 또는 도피 거리를 허용하도록 디자인하도록 돼 있다. 우리와 장벽은 동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안돼야 하며, 동물 탈출을 막는 구덩이는 동물이 돌아갈 수 있는 도피로를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사육 동물의 복지증진 방안’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이 없다. 심지어 국내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원시설중 교양시설로 분류돼 있다.
 
일부 지자체 동물원 관련 조례상에는 동물원에 관한 정의가 제시되고 있으나,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 등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없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의 경우에도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인위적 훈련금지
복지도 고민할때
 
국회에서 열린 동물원법 제정 공청회에서 장하나 의원은 “어른들이 돈벌이나 유희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방치해왔다. (동물원법 제정은) 동물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간 동물학대국가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이번 기회에 동물학대국이 아닌 모범적인 동물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애견 대여업 논란 “3일에 5만원”
 
애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해 논란이다. 애견을 대여해주는 업체들은 말티즈, 토이푸들, 포메라니안 등 소형견을 2박3일 정도 대여해주는데 5만원에서 7만원을 받는다. 원한다면 1주일에서 한 달까지도 연장이 가능하다. 주문 시 업체를 직접 방문하거나 자동차 퀵서비스를 통해 강아지를 받는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지하철택배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이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애초에 판매, 대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 21일 국회에 따르면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조항을 신설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려동물 대여업을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단,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보조견의 대여는 예외로 했다. 개정안은 또 동물학대행위에 동물을 경품으로 주는 행위를 추가했다. 소싸움과 같은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동물학대 행위에서 제외된다.
 
애견 대여 서비스는 200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인기를 얻으며 영국 런던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동물을 물건과 똑같이 취급, 학대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2008년 미국, 영국 정부가 모두 대여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해당 업체들은 1년 만에 모두 문을 닫았다. 일본 등에선 여전히 성업 중이다. 특히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여하는 비율이 늘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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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