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걸린 동물원 동물들 '실태보고서'

빙빙 도는 코끼리 “도대체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동물원 동물들의 행동이 이상하다. 제자리를 맴도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일종의 자폐증인 ‘정형행동’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동물원 설립과 관리에 대한 부분이 미흡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동물원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의 실태와 동물원법의 주요 내용을 알아봤다.

 
유치원 교사 최모(28)씨는 얼마 전 원아들을 데리고 수도권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그림책에서만 봤던 동물들을 실제로 접한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방 뛰었다. 최씨는 이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울한 동물들
불편한 관람객
 
그러던 중 한 여아가 최씨에게 다가와 “코끼리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며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코끼리의 행동은 최씨가 봐도 이상해보였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코끼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발견됐다. 한 아이가 의문을 제기한 뒤로 수십여 명의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달라붙어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최씨와 동료교사들은 무어라 대답해줄 수 없었다.
 
동물원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로 손꼽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얼마 전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기대를 품고 동물원 곳곳을 구경했지만 동물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진한 어두움이 묻어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의 흔적이 역력했다. 동물들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씨는 동물들을 촬영하기 위해 챙겼던 카메라의 셔터를 차마 누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랬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월 1095명에게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96.6%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돌고래 하면 돌고래가 물 밖으로 뛰쳐나와서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는 돌고래의 이상행동이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간사에 따르면 돌고래는 야생에서 물 밖으로 뛰쳐나와 뭍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 같은 모습은 오로지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동물을 억압하는 동물원의 환경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동물 전문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17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공영동물원의 위기와 한국 동물원의 발전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년6개월간 대구, 전주, 대전, 광주, 청주, 진주 등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국내 공영동물원 6곳과 민영동물원 7곳을 조사해 작성했다.
 
종일 제자리 맴도는 이상행동
불안한 사육환경에 자폐증까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보고서에서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공영동물원은 만성적인 재정·전문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설물도 30년 이상 낙후돼 있다”며 “대부분 동물원에서 동물을 작은 시멘트 상자 안에 가둬둔 탓에 이들은 전시관 내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고 전했다.
 
단체 측은 “조사 과정에서 이상행동이 심각한 동물들은 고양이·곰·개과, 영장류 등 고등동물들이었다”며 “무료하고 정형화된 작은 공간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상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 관계자는 현재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원법과 관련해 “그동안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동물원을 법과 제도로 끌어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법이 동물쇼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원래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 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사육하면서 관람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동물의 습성 등 생태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야생동물의 보호 및 증식 등 종의 보존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일부 동물원의 경우 동물쇼에 이용하기 위하여 동물을 가혹한 방법으로 훈련하거나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최소한의 사육환경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 사육동물들을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동물원 내 동물의 복지와 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털 뽑는 타조
정신적인 고통
 
현행법상 동물원 내 사육동물에 대한 적정한 사육환경 제공 등 동물의 복지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의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물과 관련된 현행법은 야생동물을 다루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가축 및 반려동물을 다루는 ‘동물보호법’, 해양동물을 다루는 ‘해양생태계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등이 있다. 이들 법은 각각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소관이다. 현재는 동물학대가 발생해도 당국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에 동물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사항과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적정한 사육환경 조성 등 사육동물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동물원의 올바른 운영과 사육동물의 복지 구현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동물원법’을 지난 2013년 9월에 대표발의 했지만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하나 의원의 발의안에 따르면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뒤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동물쇼 금지, 동물원에 적응할 수 없는 동물은 사육·전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이 들어 있다. 동물원법은 지난 4월 회기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같은 달 28일 국회에서는 동물원법 제정안을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는 사육사 및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동물원법의 방향성, 해외 동물원 동향과 국내동물원 운영현황,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동물원법 제정안의 과제 등 동물원법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동물원과 관련된 법률로는 ‘동물원법’(장하나 의원 대표발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 ‘동물원 관리·육성에 관한 법률안’(양창영 의원 대표발의) 등이 계류 중이다.
 
이날 진술인으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이항 교수는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적정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라며 “동물 허가제를 반드시 실시해서 자격미달인 동물원, 수족관이 양산되는 것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많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생태와 맞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의 스트레스로 ‘정형행동’ 즉, 정신적 질병(사람에게는 자폐증에 해당)을 앓고 있다”며 “많은 동물원이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동물에게 인위적 행동(바다사자 윗몸일으키기, 원숭이 자전거 타기 등) ‘동물쇼’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장하나 의원은 “동물공연의 이면에는 학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동물원 임의등록제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동물원의 동물복지를 위한 규정이나 자정능력이 없다. 동물원에 관한 규정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며 “종·개체 숫자별 사육면적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규정한 해외사례를 참고해 최소한의 사육기준을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은 없고
인력도 부족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가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실시한 ‘동물보호 및 동물원법 제정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동물원 허가제에 대해 95.1%가 찬성했으며 관람 목적의 인위적 훈련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58.9%로 나타나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법을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한은경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물쇼 및 훈련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며 “동물공연에는 학대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동물 공연과 관련해서는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에서 사단법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녹색당, 동물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들은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카라 등 3개 단체는 동물원법 제정 의견서를 환경부에 전달한 데 이어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3개 단체 의견서는 ▲모든 유형의 야생동물 수용시설 의무 등록 ▲종 보전 등 현대동물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원에 대한 예산 지원 및 기부금품 모집 허가 ▲동물쇼의 원천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생태적 특성 고려한 환경조성 요구
허가제로 자격 미달 공원 관리해야
 
이처럼 일부에서 동물원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관련 법령 제정에 소극적이어서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언제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동물원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만큼 찬성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동물원법 제정에 관심이 필요한 현실이다.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동물 사육기준 및 제도’에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동물원 동물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도 영국은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운용중으로 알려진다. 동물원의 허가 및 조사는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의 권한이다. 중앙정부가 이에 필요한 법적 기준 및 근거를 제시한다. 영국 동물원의 목적은 동물이 가장 정상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데 있다. 동물원의 핵심역할은 동물 보전이다.
 
 
영국의 동물원은 온도, 환기, 조명(강도 및 분광분포) 및 소음수준은 동물의 특정 종이 항상 안락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동물원내 적정 환경에 관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임신한 동물의 경우 특별관리해 보호하고 수생동물의 경우 적절한 공기공급과 적정 개체수 및 수온 유지가 되도록 환경을 관리한다. 야외 우리의 동물들에게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한 충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도피 영역도 있다.
 
때문에 영국 동물원의 각 우리들은 동물의 일반적인 방어 반응과 적절한 질주 또는 도피 거리를 허용하도록 디자인하도록 돼 있다. 우리와 장벽은 동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안돼야 하며, 동물 탈출을 막는 구덩이는 동물이 돌아갈 수 있는 도피로를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하나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동물원 사육 동물의 복지증진 방안’ 관련한 사례조사를 요청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는 동물원과 관련한 별도의 법률이 없다. 심지어 국내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원시설중 교양시설로 분류돼 있다.
 
일부 지자체 동물원 관련 조례상에는 동물원에 관한 정의가 제시되고 있으나,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 등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없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의 경우에도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인위적 훈련금지
복지도 고민할때
 
국회에서 열린 동물원법 제정 공청회에서 장하나 의원은 “어른들이 돈벌이나 유희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방치해왔다. (동물원법 제정은) 동물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간 동물학대국가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이번 기회에 동물학대국이 아닌 모범적인 동물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애견 대여업 논란 “3일에 5만원”
 
애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해 논란이다. 애견을 대여해주는 업체들은 말티즈, 토이푸들, 포메라니안 등 소형견을 2박3일 정도 대여해주는데 5만원에서 7만원을 받는다. 원한다면 1주일에서 한 달까지도 연장이 가능하다. 주문 시 업체를 직접 방문하거나 자동차 퀵서비스를 통해 강아지를 받는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지하철택배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이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애초에 판매, 대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 21일 국회에 따르면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조항을 신설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려동물 대여업을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단,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보조견의 대여는 예외로 했다. 개정안은 또 동물학대행위에 동물을 경품으로 주는 행위를 추가했다. 소싸움과 같은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동물학대 행위에서 제외된다.
 
애견 대여 서비스는 200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인기를 얻으며 영국 런던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동물을 물건과 똑같이 취급, 학대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2008년 미국, 영국 정부가 모두 대여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해당 업체들은 1년 만에 모두 문을 닫았다. 일본 등에선 여전히 성업 중이다. 특히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여하는 비율이 늘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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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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