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로비 창구’ 고위층 사교클럽 대해부

돈 많아도 아무나 가입 못한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사망 직전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한 호텔 휘트니스에서 10만달러를 건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이 휘트니스를 약속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닌 돈 로비 창구였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고위층들이 몰리는 사교클럽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사회에서는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부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상위 1%, 상위 0.1%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집단의 규모는 작아지고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

정재계 명문가
한데 모여 단합
 
세계 1위 갑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중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인맥 덕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이끈 1등 공신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동창이다. 빌 게이츠 아버지의 교육방침 중 하나가 ‘부모가 자녀의 인맥을 넓혀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빌 게이츠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자산을 주지는 못했지만 인맥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물려줬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에게 인맥을 물려주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진입장벽이 높은 엘리트들의 ‘사교클럽’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낯설지만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중 ‘서울클럽’은 사교클럽의 원조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서울클럽은 상류층의 사교문화를 국내에 들여온 곳으로 1904년 고종황제가 외국인과 내국인의 문화교류 촉진을 위해 만든 사교클럽이다. 회원은 약 1000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회원 가입비는 7500만원 선이다. 90년대 말 회원가입비가 3000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5년 새 2.5배가 오른 셈이다.
 

서울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서울클럽 회원 2명의 추천을 받은 후 까다로운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기간이 대략 3∼4년 정도다. 회원 수가 정해진 사교클럽이기 때문에 기존 회원이 이탈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가입 후에는 매달 35만원의 회원비를 따로 내야한다. 
 
정치인, 고위관료, 군 장성, 기업인…
1% 상류층 만남 장소 ‘사랑방’역할
 
이처럼 가입 문턱이 높다보니 세간의 시선을 피하고자 하는 정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클럽은 1400여평 부지에 휘트니스센터와 레스토랑, 수영장, 테니스장, 어린이 놀이터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100여년의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어 내부에는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다.
 
서울클럽에 가입돼 있는 재계 회원은 현대중공업 그룹 일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일가,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등이 있다. 정치권 인사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있다. 그간 몇몇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이 서울클럽의 문을 두드렸지만 회원 공석이 없어 거절당했다가 오랜 시간의 대기와 심사를 거쳐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전해진다.
 
서울클럽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상류층이 서울클럽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아나운서의 자녀들이 이곳에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져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젊은 상류층이 서울클럽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회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국인과의 글로벌 인적 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주요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화를 중시하는 상류층에게는 외국인 회원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서울클럽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서울클럽 내에서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영어로 대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싼 회원권

없어서 못사
 
서울클럽 회원전용잡지 ‘테들러’(TATTLER)에는 서울클럽 회원들의 모임사진이 실리고 있다. 테들러 자료를 보면 서울클럽 내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교류라는 설립 목적에 맞게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나 독일의 옥토퍼페스트 등 각국의 기념일에 여는 소규모 파티를 열어 교류의 장을 만든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파티는 기본이다. 방학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회원 자녀가 함께하는 캠프도 운영된다. 상류층의 문화가 기성세대 일부만 누리는 것이 아닌, 가족단위로 누리고 있는 셈이다.
 
‘명우회’도 국내의 대표적인 사교클럽이다. 1956년 결성된 명우회는 당초 경기고등학교, 서울사대부고, 경기여고 등 명문 고등학교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 독서토론을 하는 교양 서클이었다. 자연스레 서울대,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명문가 자제들의 사교모임으로 발전했다. 이후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똑똑하고 집안도 좋은’ 재벌가 자제들의 연결고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경제호황으로 인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명우회의 위상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한 해 30명 안팎의 엄선된 신입회원만 받아들이고 재계에서 정관계 자제들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와 동방유량(사조해표의 전신) 신명수 회장의 딸 정화씨가 인연을 맺은 곳도 명우회다.
 
정보 교류·친목 도모
은밀히 뇌물 오가기도 
 
‘땅콩회항’으로 논란을 빚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들도 명우회 출신으로 알려진다. 서울대 재직 교수 가운데 명문가 출신인 이들도 학생시절 명우회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90년대 이후에는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져 정계와 재계 외에도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자제들도 가입이 가능해졌다. 회원가입 추천 기준이 과거보다 유연해져 회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남 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남클럽’도 대한민국 1%를 위한 대표적인 사교클럽으로 꼽힌다. 한남클럽은 서울의 상징인 남산 인근에 있다. 주 회원은 기업 오너, 변호사, 공인회계사, 의사, 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60대고 여성 회원은 극히 일부다. 회원권을 얻는 방식은 앞서 서울클럽과 비슷하다. 철저한 ‘물 관리’가 이뤄진다.
 
한남클럽의 존재감은 역대 회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남클럽 초대 및 2대 회장은 김용우씨(전 국방부 장관·작고)였다. 3대 회장 김정렬(전 국무총리), 4대 회장 설국관(전 대한여행사 사장·작고), 8대 회장 정희택(전 감사원장), 9대 회장 김종규(전 서울신문 사장), 10대 회장 선우종원(전 한국조폐공사 사장), 11대 회장 이태호(전 수출입은행장·작고), 12대 회장 유종해(연세대 명예교수), 13대 회장 조해형(나라홀딩스 회장), 15대 회장 강신호(동아제약 회장), 18대 회장 서태식(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 등이다.

추천 없으면 
가입 불가능
 
서울 연희동의 ‘우정스포츠센터’도 한때 사교클럽으로 유명했다. 우정스포츠센터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 재계 등 상류층 인사들이 모이는 고급 사교장이었다. 당시 회원 수는 가족을 포함해 1000여명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전 애용해오다 이임 후 다시 정회원으로 등록해 한때 운동을 계속했다고 알려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92년 대선 전 이곳에서 수영하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우정스포츠센터에는 ‘우정회’라는 친목단체가 따로 운영되기도 했다. 명문가 자녀들의 자연스런 사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연희동 우정스포츠센터 자리에 14층 규모의 주거용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최근에는 특급호텔 휘트니스가 새로운 사교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함께 운동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종 정보를 교류하며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이익이 나오기 때문에 회원권을 얻으려고 난리다. 회원권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하지만 특급호텔 휘트니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매물부족 현상을 빚을 정도다. 지난달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특급호텔 휘트니스 회원권의 시세는 평년 동기 대비 15∼20% 가량 상승했다. 고급 휘트니스의 주요 고객층은 고위 공직자, 대기업 경영자, 연예인 등이다.
 
특급호텔 휘트니스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서울 반얀트리 클럽’이다. 신라호텔, 하얏트호텔, W워커힐 호텔, 조선호텔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인 탤런트 박상아와 그의 자녀들은 지난 2011년과 2013년 서울시내 반얀트리 수영장에서 목격돼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상위 0.1% 사교클럽으로 지칭되며 개인 회원권은 계약 기간만 20년이며 가격은 1억3000만원에 달한다. 특히 반얀트리 내 ‘카바나’ 수영장은 회원이 아니면 이용자체가 불가능하다. 
 
큰돈을 들여 회원권을 구입해도 200만∼500만원 가량의 연회비는 별도로 지불해야한다. 거래 가격은 거래소의 중매로 매수자, 매도자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매물을 찾기 힘들 만큼 인기가 많다.
 
 
이 같은 호텔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휘트니스 회원권을 보유하면 실내외 휘트니스는 물론 수영장, 스파, 사우나, 골프연습장, 테니스를 비롯한 스포츠 코트, 키즈클럽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부 호텔에서는 멤버십 고객에게 바우처를 정기적으로 제공해 숙박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사교모임이 이뤄지는 호텔은 여럿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JW메리어트 호텔’ 인근에는 법원이 있어 법조계 인사가 자주 찾는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특이한 판결을 놓고 논쟁을 벌이거나, 변호사들이 각종 사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리츠칼튼 호텔’에는 강남구 역삼동 주변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년 사모님들이 주 고객이다. 삼성동 테헤란로 인근에 있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피트니스클럽인 ‘메트로폴리탄’(그랜드)과 ‘코스모폴리탄’(코엑스)의 주요 고객은 강남부유층과 IT기업 임원들이다.


경기 불황은
머나먼 남 얘기
 
호텔 휘트니스 회원들은 각자 스케줄에 맞춰 클럽 휴게실에 모여 소소하게는 재테크, 양육, 유학, 결혼정보 등 정보를 교류한다. 뿐만 아니라 자금을 모아 공동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휘트니스 간판이 걸려 있지만 사실상 그들만의 소속감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사교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근래에는 이러한 특권의 향유가 젊은 층과 가족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알려진다.
 
대기업에도 사교모임의 장이 마련돼 있다. 삼성전자 사옥 5층에는 VIP를 모시기 위한 ‘코퍼리트 클럽’이 있다. 이 클럽은 접대용 레스토랑으로 삼성 계열사 부사장급 이상 임원만 이용할 수 있다. SK그룹은 사옥 35층에도 ‘다이아몬드룸’과 ‘루비룸’ 등 VIP레스토랑이 있다. 임원들은 주로 이곳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한다. 때문에 도청방지장치도 설치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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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