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에 묻힌 이슈들

정국 삼킨 블랙홀 “끝이 안 보인다”

[일요시사] 최현목 기자 = ‘성완종 사태’는 이슈마저 삼켜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4월 임시 국회가 시작된 지난 8일 이후 2주가 넘는 시간을 그대로 빨아들인 형국이다. 정치 현안에 발목 잡힌 국회는 현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이례적으로 야당의 지지까지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이 무상해지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치 현안이 국회를 발목 잡는 경우는 허다했다. 그러나 이번 ‘성완종 사태’만큼 강하게 또한 장기적으로 집어삼킨 경우는 드물었다. 혹자는 이번 스캔들을 두고 헌정사상 최대사건이라고 지목할 만큼 상황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일, 이완구 당시 총리가 직접 사의를 표명했을 정도로 성완종 사태는 정가에 떨어진 핵폭탄과 같다. 문제는 그로 인해 촉각을 다투는 현안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원국조
증인불발

성완종 사태가 집어삼킨 현안들을 분류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제, 두 번째는 민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회기가 2주 남짓 남은 상태에서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함에도 국회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리기로 했던 본회의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출석 문제로 파행을 맞았다. 그 여파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로 넘어갈 40여개 법안 처리도 30일에 있을 본회의로 밀려나게 됐다. 일각에서는 만약 30일 본회의마저 넘기게 되면 4월 국회 내 처리는 힘들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지난 23일 본회의 파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묻힌 이슈 중 하나인 자원외교국정조사(이하 자원국조) 증인 채택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요구한 ‘자원외교 핵심 5인방’ 중 최 부총리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끊임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5명의 증인 채택을 요구해왔다. 5인방은 이 전 대통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영준 전 산업자원부 차관, 윤상직 상업자원주 장관, 그리고 최 부총리를 가리킨다.


새누리당 민현주 원내대변인은 앞서 브리핑을 통해 “내일 본회의는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을 위한 안건처리를 위해 예정된 것이지만, 새정치연합은 최 부총리에 대해 긴급 현안질의를 요구하며 본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고 말해 불참의사를 밝힌 바 있다.

새정치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 자원외교 수십조 혈세낭비의 가장 핵심인 최 부총리는 자원외교 질문에 답변해야 할 임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한 이 상황은 새누리당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결국 자원국조 특별위원회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지난 21일 생명을 다했다. 여·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진상규명 성과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특위 외부에서 들려오는 평가다. 형식상 5월2일까지 특위가 유지되긴 하지만 청문회 증인 출석을 요구할 경우 요청서를 서면으로 최소 7일 전에 전달해야 함에도 의결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됐다. 연일 성완종과 관련된 비리 의혹들로 국민의 주목도가 떨어진 것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스캔들에 묻힌
세월호 1주기

‘세월호 1주기’는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이슈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지만 지난 10일 ‘성완종 리스트’가 언론에 전격 보도되면서 사실상 국민의 이목에서 멀어졌다. 설상가상 박근혜 대통령이 12일간 남미순방에 오르면서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6일 “이번 순방 출국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와 겹쳐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1주기 행사와 관련된 일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추모 일정은 차질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꼭 16일에 출국했어야 했냐”는 반응이 많았다.
 

순방 일정이 발표되고 난 후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는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월호 참사 1주년 합동추모식’을 전격 취소했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취소 사유에 대해 “정부가 현재까지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담화내용 전문을 받아봤는데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정부의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선언이 없으면 추모식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계속적으로 밝힌 바 있다. 추모식에는 희생자 가족과 종교계 대표, 시민 사회단체, 학생 등 총 5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지난 20일에는 세월호 추모집회를 두고 유가족과 경찰이 충돌했다. 1만2000여명의 경찰이 투입돼 유가족 28명이 연행되는 등 심각한 사회현상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언론이나 일반 시민들의 주목도는 약했다. 이날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며 집회 참가자들에게 자진 해산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과격하게 전개됐으며 이후 ‘과잉진압’이냐 ‘폭력시위’냐를 두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힘주고 시작한 국회 열기도 전 잿밥
해결책 찾지 못하고 여야 싸움 계속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채택 여부는 사안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진 듯하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지난 7일 마무리됐다. 그러나 임명동의안 채택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4월 국회가 마무리될 때까지 채택을 이끌어내겠다는 게 새누리당의 입장이었지만 이미 절반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여·야의 팽팽한 신경전이 지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정계전문가들은 성완종 사태로 인해 동력을 잃은 점도 한 요인으로 꼽는다.
 

야권은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 전해철 의원과 인사특위 소속 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 야권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진행하는 게 의미가 없고 경과보고서의 채택 여부를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박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것만이 대법관 장기 공백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박상옥 대법관
동의안 표류

반면 여권은 밀어붙이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야당의 반대로 채택이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야당을 설득해보고 그래도 계속 거부하면 국회의장이 4월 국회 중에 직권상정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인사청문회법 9조에 따르면 청문회를 마치고 3일 이내에 경과보고서가 제출되지 못하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 있다. 이번 대법관 채택 문제가 여·야는 물론 법조계 전반의 논쟁으로 번졌다는 측면을 고려해 봤을 때 직권상정 시 불어올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무원 연금 개혁은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5월2일까지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파열음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실무기구와 특위는 바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명백한 입장 차만 확인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계속되는 지연에 다급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독촉하며 새정치연합에 ‘2+2 회동’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사태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강기정 새정치연합정책위원회 의장은 “새누리당은 친박비리게이트 국면전환을 위해 실무기구를 깨는 2+2 회담을 제안하지 말라”며 “김무성 대표의 제의는 우리가 주장하는 공무원연금 사회적 합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경제·민생 현안 산적 
이대로 가면 6월 넘겨

이에 새누리당은 피켓을 들고 나와 결의대회를 했다. 지난 23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이번 4월 국회에서 마무리 짓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호소문에서 김 대표는 “이번에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4·29재보궐선거보다, 성완종 사건보다 우리나라의 미래 재정에 중요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은 민감한 사항인 만큼 6월 국회로 가져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공무원연금 6월 임시국회 처리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부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다면 6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한다고 약속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6월 국회를 말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 문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모습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면 성완종 사태로 인해 불붙은 현안도 있다. 바로 개헌 특위 구성이 그것이다. 개헌을 주장하는 여·야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 등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개헌추진국민연대’는 지난 18일 4월 국회에서 개헌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된다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이 성완종 사태에 대해 언급해 화제가 됐다. 최근 ‘개헌 전도사’라는 별명이 생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이번처럼 덩어리가 큰 부패는 권력구조의 변화가 없으면 드러나지도, 처벌되지도 않는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것만이 부패를 없애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공무원연금
6월 넘기나

새정치연합 노웅래 의원은 “국민은 하루하루 살기 버거운데 정치판에서는 권력 실세라는 사람들, 총리에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르는 이런 분들이 억대의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며 “모든 권력을 대통령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측근이 돈과 권력을 다 차지하고 여야가 무조건 타협 없이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정치평론가들은 이례적이라 말한다. 그들은 “현재 국회의원들은 성완종의 ‘성’자만 꺼내도 손사래 치기 바쁘다”며 “그런데 이렇게 여·야가 한자리에 모여서 성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이념과 논란을 넘어선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월호 인양’ 중점은?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발표했다. 해양수산부, 국민안전처 등 17개 부처로 구성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은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어 해수부가 앞서 제출한 ‘세월호 선체 인양 결정안’을 원안대로 확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침몰한지 1년여만에 세월호 인양이 결정됐다.

중대본은 이날 회의에서 인양방식, 인양과정의 위험·불확실성, 소요비용 및 예산확보대책, 전문가·실종자 가족 의견수렴 결과, 인양 결정 후속대책 등을 검토했다.

인양은 관련 업체를 선정한 후 3개월간 설계와 준비작업을 병행할 것으로 전망되며, 현장작업은 9월중으로 착수될 것으로 보인다. 작업 기간은 1년에서 1년6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종자 9명을 수습하는데 중점을 둔 이번 인양은 유실 가능성이 있는 절단법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해상 크레인과 플로팅 독을 투입해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인양하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례가 없는 인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2차 안전사고 등에 대한 내용도 발표했다. 해수부는 세월호 무게로 인한 인양점 파괴, 휘어짐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해저면 추락 등 2차 사고위험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입장이다. 기술검토 TF 팀은 “속도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이번 인양과 관련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년 동안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앞으로 선체 인양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등 세월호 선체 인양과 실종자 수습에 범정부 차원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사회 각계는 “늦었지만 환영”하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세월호 인양은 당연한 것인데도 참사 1년이 지난 후에야 결정됐다”면서 “그래도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반가운 소식이며, 기술적인 검토까지 거쳐 최종 결론이 조속히 나서 다행스럽다”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협의회의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인양하겠다고 한지 6개월만의 공식 선언이지만 이제라도 인양을 공식 선언해 환영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가족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인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강조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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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