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②비망록 실체 추적

준 사람 있는데 받은 사람 없는 ‘뇌물 수첩’ 진짜 있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주요 유류품은 총 3개다. 하나는 유서, 또 하나는 소위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는 메모 한 장, 다른 하나는 성 회장이 생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두 대다. 한 대는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나머지 한 대는 시신에서 15m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됐다.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를 의미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다른 자수성가 타입의 인사들에게도 보이는 특징처럼 메모를 생활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 또한 꼼꼼했었다는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또 다른 비망록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성 회장의 자살 이후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리스트 이름들
판도라의 상자

성 회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것들은 정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 중 하나인 ‘성완종 리스트’에는 8인의 이름과 수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이 적혀있는데 진위여부를 떠나 지금과 같은 사태로 이어진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실명이 거론됐다는 측면에서 검찰 수사의 큰 줄기는 메모를 기초로 진행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두 번째는 유서다. 유서는 한때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많은 추측을 불러온 바 있다. 그러나 유서를 본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세간에는 유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유서에는 정치인의 이름은 없으며 가족에 대한 당부의 말이 있을 뿐”이라며 “부인과 아들, 동생들에 전할 당부의 말뿐이었으며 로비라는 단어나 정치인의 ‘정’자도 없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성 회장이 한 언론사와 나눈 통화에 대한 녹취록이다. 북한산 형제봉에서 발견된 성 회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 오전 6시부터 50분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만 하루가 지나 발표된 녹취록에는 박근혜정부의 1기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허태열 전 실장, 2기인 김기춘 전 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일단 친박 7인·비박 1인 거론
집무 다이어리 기록된 사람은?

녹취록은 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더욱이 약 50분간의 통화 중 공개된 것은 8분여에 불과해 나머지 42분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최초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난 11일, 2차 녹취록이 공개됐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는 성 회장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사용하라며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성 회장은 “2011년 홍준표가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 6월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녹취록의 내용이 이완구 국무총리를 향하면서 의혹은 절정에 치달았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대정부질문이 ‘성완종 사태’에 대한 청문회 양상으로 진행된 바 있다. 이때 나온 이 총리의 답변이 성 회장이 녹취록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대치되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라는 패널을 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누구 누구 나오나 
녹취록 공개 파장

이어지는 녹취록 공개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문 공개를 요청했다. 다른 정계 인사들도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녹취록 공개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15일 자정쯤 <경향신문>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이 공개됐다. 내용은 기존에 공개된 내용을 포함해 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을 자랑할 정도로 방대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기자와의 대화 내내 성 회장은 ‘신뢰’를 강조했다는 점과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성 회장은 이 총리를 9개 대목에서 언급하며 섭섭함을 표현한 것으로 나온다.


전문이 공개되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리스트에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녹취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 등이다.

유 시장은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다. 리스트를 보면 3억이라는 금액과 함께 유 시장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 인천시당은 지난 16일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유 시장은 2014년 성 회장을 4차례에 걸쳐 만났고 지방선거에서는 유세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 3월에는 성 회장의 구명전화를 받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황없는 전화통화 중 이름이 누락됐을 수 있다며 단순 실수라는 설에 무게를 뒀지만 행적 하나하나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다 보니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MBN 보도 내용에 따르면 유 시장 측은 당연한 결과라며 평소대로 직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 시장은 이미 “성 회장과는 19대 국회에서 만난 동료의원 관계일 뿐”이라고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녹취 전문을 보면 MB 측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시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꼬집어 물어봤음에도 “자신보다 돈이 수백배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받으려 했겠냐”며 극구 부인했다. 이를 두고 친박계에서는 ‘성완종 리스트’가 모두 친박 인사들로 작성된 것과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은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성 회장은 반 총장을 언급하며 이 총리가 견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도 그러한 견제의 일환으로 시작됐다는 견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면 성 회장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닌가”라며 “반 총장을 의식해서 그렇게 나왔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그는 “내가 반 총장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충청)포럼 창립멤버인 것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반 총장 견제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대정부질문장에서 “마치 반 사무총장의 대권과 저의 문제가 결부돼 제가 고인을 사정했다는 심한 오해가 저간에 깔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비약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 반 총장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4일 JT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반 총장을 비롯해 새로운 인물들의 이름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야권 인사들의 이름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망록 다이어리
과거 약속 빼곡

일각에서는 다이어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주의를 요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 회장의 다이어리는 단순히 약속을 기록해 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성 회장의 최 측근으로 알려진 박모 전 경남기업 상무는 자신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일부 언론이 보도한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와 관련한 내용은 ‘오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날짜와 장소, 만나는 사람이 적혀 있지만 약속에 나가지 않아도 다이어리에 그런 표기를 하지 않으니 실제로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모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이에 따른 해명도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지난 14일 ‘다이어리’를 참고해 보도한 “김한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는… 2013년 4월27일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조찬을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에 대해 김 전 대표 측은 보도자료를 내 반박했다.


주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의혹을 제기한 2013년 4월27일 같은 당 소속 인천시당 당직자-구청장 등과 인천 계양구의 설렁탕집에서 조찬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음을 알렸다. 즉 당시 성 회장을 만난 적 없으며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물증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이는 비망록이라 불렸던 기존의 자료들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메모와 녹취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와 보강자료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수사의 성패가 달린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미 지난 16일 경남기업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회계자료와 내부보고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보한 증거물을 토대로 ‘금고지기’로 알려진 한모 부사장 등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들과 회사 임직원들을 조만간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만나기만 해도 구설
“모른다” 피하기 급급

공개되지 않은 비망록이 있다면 그건 아마 USB가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 부사장이 검찰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USB 안에는 현장 전도금 32억원의 인출 내역이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USB 안에 정치인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한 정황이 포착된다면 ‘리스트’와 ‘녹취록’ 만큼의 파급력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녹취록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만 간다. 지난 1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한 부사장은 성 회장과 함께 금품수수 폭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회의에서 나온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이기는 하나, 회의 내용에서 구체적인 자금 전달방식 또는 전달책이 등장한다면 수사는 급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검찰은 내다보고 있다. 음성이 녹음된 파일은 검찰에 이미 전달된 상황으로 경남기업의 비자금 내역을 담고 있는 USB와는 별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또 다른 자료도 존재한다. 지난 17일 성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모씨로부터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이 담겨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부를 확보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장부의 분량은 A4용지 30장 정도이며 그 속에는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의 이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가 오랜 기간 성 회장을 보좌해온 점을 고려할 때 장부의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 범위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광범위 수사
물타기 작전?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사 범위 확대를 경고한다. 일찍이 이 총리가 ‘광범위한 수사’를 언급하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한 바 있다. 해석에 따라서 야당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작전’이라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었다. 의원 중 몇몇은 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검찰에게 은밀히 지시를 내리는 것과 진배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온 국민의 관심은 과연 ‘성완종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에 집중된다. 연일 언론을 통해서는 속보와 단독 기사가 빠른 시간 안에 보도되고 있다. 몇몇 정치평론가들은 사설을 통해 이러한 ‘속보 전쟁’을 우려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실게임’이 아닌 ‘부정부패 발본색원’이라고 지적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보니…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진태 검찰 총장의 지시 아래 새로운 수사팀이 꾸려졌다.

특별수사팀장에는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임명됐다. 김 총장은 “머뭇거림 없이 원칙대로 가라. 의심받지 않게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팀장은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이번 사건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진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러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직 구조상 현 정권을 상대로 수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주장이다. 특별수사팀장은 반부패부장이 임명한다. 반부패부장은 검찰총장이 임명한다. 그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이, 그 위에는 국무총리가 있다. 결국 문 팀장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자리라는 해석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문 팀장의 역량을 기대하는 눈치다. 문 팀장은 과거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 파견 검사로 있으면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강단 있는 수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최근 국민들의 뇌리에 ‘땅콩회항’으로 강하게 박혀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수사도 지휘한 이력이 있다.

그가 호남인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검찰에 입문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있는가 하면 수사를 둘러싼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호남 출신 검사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결국 이 총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 여부가 이번 특별수사팀의 향방을 가를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현재 피의자가 아닌 ‘피내사자’ 신분이다. 이는 정식으로 입건해서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범죄혐의에 대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은밀히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사기관을 통해 피내사자는 내사를 받다가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그때부터 입건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변하게 된다. 혐의가 없다면 내사는 그대로 종결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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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