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중노동 알바보다 못한 직업들

말이 좋아 전문직…쥐꼬리 월급에 "헉헉"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직장인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tvN 드라마 <미생>. 드라마가 종영된 지 4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미생>의 명대사가 회자되며 직장인들에게 위안이 되곤 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 상사 오상식은 신입사원 장그래에게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는 말을 남겨 직장인의 노고에 대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장그래가 대기업 신입사원이 아닌 연봉 300만원의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면 버티는 것만이 답일까. 열악한 근무 여건 속에서도 ‘꿈’이라는 열정으로 버텨내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지난 1월7일,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 ‘2014 청년착취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그동안 이상봉은 자신이 운영하는 패션디자인회사의 유급직원 견습생에게 월 10만원, 인턴사원에게 월 30만원을 지불해 왔기에 노동력 착취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이에 이상봉은 공식 사과문을 통해 패션업계 노동 조건 개선과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빛 좋은 개살구

패션업계의 노동력 착취는 이상봉 디자이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요시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패션 디자이너 3년 미만 근무자의 경우 월 30만∼100만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명한 디자이너일수록 견습 및 인턴 사원의 월급은 낮게 책정돼 있었다. 청담동의 유명 디자이너숍에서 근무하는 한 견습생은 월 30만원씩 2년6개월간 받고 있었으며, 한 패션브랜드회사의 디자이너는 1년 차에 월 75만원, 2년 차에 월 85만원, 3년 차부터 월 100만원을 받았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파리 유학을 2년간 다녀온 김모 디자이너 견습생은 “매일 오전 10시 시장조사와 원단 구매를 위해 동대문 원단시장으로 향한다”며 “매달 월급 30만원을 받고 있지만 왕복 교통비로 제하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마이너스 월급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일했다는 화려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맞춤정장숍을 운영하는 김모 디자이너는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은 사원을 모집할 때 집안의 경제력을 우선시한다”며 “월급이 워낙 적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후배 양성의 길로를 막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패션 업계의 노동력 착취는 스타일리스트가 더욱 심한 편이었다. 3년 미만 근무자의 월급이 30만∼50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관련 회사에 재직 중인 이모 스타일리스트는 경력 1년4개월 차로 지난해까지 월 20만원을 받아오다 최근 30만원으로 월급이 인상됐다.

국내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운영하는 스타일숍의 경우 6개월에 한 번씩 월급을 인상, 1∼6개월 차 30만원, 6개월∼1년 차 50만원, 1년∼1년6개월 차 80만원, 1년6개월∼2년 차 100만원 순으로 인상되고 있었다. 경력 6년차의 스타일리스트에 따르면 무보수로 2년 경력을 쌓은 후 3년 차에 50만원, 4년 차에 75만원, 5년 차에 100만원을 받아오다 6년 차에 유명 톱 연예인의 스타일을 담당한 후 월 220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해도 월 80만원
근로 아닌 교육 명목으로 30만원 봉급

이 스타일리스트는 “다른 스타일숍에 비해 상당히 높은 월급을 주는 편”이라며 “이마저도 만족하지 못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스타일리스트가 10명 중 8명은 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덧붙여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당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알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며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고 쉬는 날도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몇 년 바짝 고생하면 빛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진작가 업계의 노동력 착취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소위 어시스트로 통하는 서브 사진작가의 경우 최소 월 30만원, 일반적으로 60만∼80만원, 최대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 업계와 마찬가지로 유명 사진작가의 어시스트일수록 월급은 낮게 책정된다. 

청담동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사진작가)는 “유명한 작가의 어시스트로 활동한다는 것은 돈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는 것과 같다”며 “무보수라도 밑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생계형 작가들은 버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는 김모 어시스트는 “몇천만원 들여 대학까지 나왔는데 돈을 적게 준다고 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며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버티다 보면 완생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전했다.  

패션 및 사진 업계와 비교했을 때 방송작가 업계의 보수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으나 최저임금에는 미치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TV방송 막내작가는 월 100만원, 라디오방송 막내작가는 월 12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4장 제50조(근로시간)에 명시돼 있는 주 40시간보다 20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방송3사에서 근무하는 방송작가라 해도 모두 프리랜서로 간주,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최저임금 및 추가 수당 지불 명목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한 방송국의 막내작가의 경우 담당 프로그램의 방송 횟수에 따라 급여가 달리 책정됐으며 주 1회 방송에 30만원, 월 120만∼150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막내작가가 서브작가가 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3∼5년, 메인작가는 평균 5∼7년,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용사도 노동 환경은 열악한 수준이었다. 브랜드숍의 경우 80만∼100만원, 개인미용실의 경우 90만∼110만원으로 월급을 책정하고 있었으며 청담동 유명 헤어디자이너숍은 평균 50만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이 '미용업 실태조사' 자료를 공개해, 미용 스태프의 평균 시급이 2971원,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64.9시간으로 미용업계의 최저 임금 위반율이 100%에 달한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미용업계의 스태프 근무여건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청담동 개인미용실에서 2년간 근무한 한 스태프는 “50만원의 월급으로 월세와 교통비, 휴대전화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어 2년간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동력 착취

한편 고용노동부 기업지원과에서는 근로자성 판단 심사가 이뤄진다. 업무내용 지정, 취업규칙 적용(근로계약 해지 사유 적용), 업무수행 지휘감독, 근로시간 및 장소 구속, 업무 대체성, 보수의 대상성, 기본급 유무, 사용자에의 전속성(사직서 제출 등) 등의 요소가 부합되면 근로자로 인정, 근로기준법에 의해 규제받게 된다. 연습생 및 견습생이라는 교육 명목 하에 근로가 주어졌더라도 교육시간을 제외한 근로시간이 근로기준법에 모두 인정돼 최근 3년 이내의 부당 대우에 대한 임금 및 퇴직금, 연차·연장수당 등을 모두 변제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오정혜 담당자는 “근로자성 판단을 거쳐 부당한 대우를 보상받길 바란다”며 “청년들의 꿈에 대한 열정을 악용하는 대표들의 마인드부터 고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당부했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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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