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국가기밀누설 의혹 대해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통령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간 또한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적 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이 전 대통령 또한 자신의 사저에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한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한차례 <대통령의 시간>으로 홍역을 치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기록물을 불법적으로 확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렸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국가기록원과 주고받은 정보공개요청 내용을 공개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강남구 사저
기록물 봤나

정보공개센터가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국가기록원에 ‘2010년 1월 1일부터 2015년 2월 23일까지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요구에 따라 온라인 열람 장비 등을 설치한 현황에 대해 설치일, 요청한 전직 대통령 이름, 설치 장소 등을 포함해 공개하라’고 서면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국가기록원은 ‘2013년 2월24일 서울 강남구 사저에 대통령 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했다’고 회신했다. 강남구에는 이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추가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측근·비서진과 주고받은 공문서 목록 및 문서사본이 있는가’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자 국가기록원은 ‘정보부존재’를 통지, 서로 주고받은 공문서 및 문서 사본이 없음을 알렸다.

의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대통령지정기록으로 관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교 및 남북관계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이 언급돼 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의문점을 파헤치던 중 기록원에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결국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 작성을 위해 자신의 사저에 온라인 장치를 설치해 두고 열람한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회고록이 출간된 시점에 수많은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과 맥을 같이한다.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시 비밀기록은 한 건도 남기지 않고 대부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전환했는데 책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 정상과의 회담과 전화 통화, 북한과의 비밀 접촉,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 등 지정기록물을 열람하지 않고서는 확인하기 힘든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친이계는 이러한 의혹에 전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시간>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한 언론사를 통해 “청와대에 마지막까지 있지 않아서 (사저에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했는지) 그 부분은 알지 못한다”면서 “근거 없이 추리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답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계자 중 한명은 “국민에게 추리를 하게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기록원의 분명한 해명만이 의혹을 없앨 수 있다”고 밝혔다.

불거지는 의혹에 기록원은 해명 자료를 게재했다. 내용을 보면 “이 전 대통령 사저에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한 장비는 설치되어 있다”면서도 “장비로는 대통령기록물 중 일반기록물에 한해 온라인으로 열람이 가능하며, 비밀기록물과 지정기록물을 온라인으로 열람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설치는 사실
열람은 거짓

이어서 기록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온라인으로 지정·비밀 기록물을 열람하였다는 정보공개센터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끝을 맺었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소관부서인 대통령기록관 기록제도과에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이번 건과 관련하여 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고, 법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하였다”고 짧게 답했다.

기록원의 해명이 있음에도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즉각적인 수사 착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김희경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간한 <대통령의 시간>에 대해서는 국익을 저해하거나 국가안보에 직결된 내용을 공개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청와대도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며 “법으로 열람이 금지된 대통령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을 보고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온라인 열람은 대통령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시민단체 “회고록 위해 온라인장비 설치?”
기록원·이명박 측 “설치했지만 보진 않아”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사건을 언급했다. 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정책연구와 집필을 위해서 온라인 열람을 호소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범죄자로 몰아간 당사자가 자신은 열람 장치를 버젓이 설치해놓고 편의를 누린다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일”이라며 “국가기록원은 지정기록물은 열람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철저히 조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거주하던 봉하마을에 ‘이지원’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유사하다 보고 있다. 2008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을 구축한 사실을 알고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대통령 기록물 반출의혹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였다. 또한 이후 ‘사초폐기 사건’ ‘NLL 대화록 사건’으로 이어진 시발점이라는 견해로 보면 한국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이에 과거 사건과의 형평성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봉하 이지원
사과 받아내


이 전 대통령 측은 설치 자체를 부인하다 최근 “지정기록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입장을 바꿨다. 즉 장비를 사저에 설치한 것은 맞으나 지정기록물을 열람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람을 하지 않고 회고록을 작성할 수 있었을까? <한겨레>에 단독으로 보도된 내용을 보면 그 해답에 다가갈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월1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대통령이 위임한 사람이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대통령기록물을 수차례 열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수석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참모들의 기억이 있고, 메모도 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 나오는 수치가 상세하고, 외국 정상들과 북쪽 인사들 발언이 직접 인용됐다’는 지적에 대해 “참모들의 기억이나 그때 배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종합해서 쓴 것이고, 정확한 내용은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조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기억과 메모를 기본으로 하되 수치와 같이 정확한 내용이 필요할 때는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조회를 한 것이다. 이는 이 전 대통령 측과 기록원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가 ‘부존재’했다는 내용과 대치되는 것이다.

봉하마을 설치 땐 고강도 수사…지금은?
퇴임 대통령, 기록물 대한 인식 바꿔야

이에 대해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이 말한 것처럼 이 전 대통령 측 사람들이 기록원에 방문해서 조회한 것이 맞다”면서 부존재로 답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문서의 존재 유무에 대한 공개 요청이기에 부존재라 적힌 것이다. 실제로 공문서를 주고받은 사실은 없다. 요청서를 주고받은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정보공개센터 측 관계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공문서라고 적시한 것이다”며 “만약 요청한 내용이 불확실했다면 담당자가 요청인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궁금해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데 기록원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보를 종합해보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저에 온라인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 등을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기록원을 직접 찾아가 열람한 사실을 알기위해 정보공개센터가 공문서 존재 확인을 요청했으나 부존재로 답이 왔다. 확인하고자 한 사실이 신청서나 요청서가 아닌 ‘공문서’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측근이 기록원을 방문해 조회한 내용을 회고록에 실은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만천하에 대통령기록물의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기록원이 밝힌 바와 같이 법을 위반한 사실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록물 인식
이젠 바꿔야”

2008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대통령 기록물을 가져가려 하자 강하게 이의제기했던 이 전 대통령. 그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 전 대통령 측의 반응에 참여정부 시절 주요관계자는 전화인터뷰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 때와) 똑같은 일인데 그때는 수사를 시작해서 사과까지 받아냈으면서 퇴임 후에는 본인이 그렇게 했다니…”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기록물을 가지고 나가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역대 대통령들 모두 그런 의혹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 원장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면서도 “퇴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한다. 사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원외교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여론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은 국회에서 열리는 자원외교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뉴스타파>의 의뢰로 이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 여부를 묻는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의견이 67.2%를 기록, 반대의견인 17.3%보다 4배가량 더 높게 조사됐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5.5%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증인 채택 여부에 대해서도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찬성의견이 58.7%로 반대의견 29.0%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2.3%였다.

10명 중 7명 “MB 증인으로 나서야…”

새누리당은 이 전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에 대해 증인 채택을 요구해 온 새정치연합에 노무현정부 시절 자원외교의 주축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증인 채택을 해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론조사가 발표된 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는 홍영표 의원 등 새정치연합 소속 자원외교국조특위 위원 7명이 이 전 대통령의 국정조사 청문회 출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회견문을 통해 “새누리당의 증인 채택 거부로 자원개발국정조사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이제는 이 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자원외교 국부유출의 주범인 이 전 대통령이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진실을 외면하고 여당 뒤에 숨는다면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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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