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김기종 아이템’ 활용 노림수

종북숙주 VS 종북몰이 선거판에 때 아닌 북풍 “김기종 대체 넌 뭐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지난 5일 언론사들은 일제히 보도를 통해 다급한 현장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국민들은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사가 습격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김기종.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은 똑똑히 각인됐다. 칼을 휘두른 목적이 이것이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촉각을 다툴 만큼 위급하게 전개됐다. 사건 직후 과거 일 대사에게 콘크리트를 투척하는 등 그의 지난 행적이 드러나면서 ‘김기종’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 사태는 이념적 갈등을 지나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말한다.

미 대사 피습
김기종 사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25cm 과도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다. 현장에서 김씨를 체포한 경찰은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색 후 경찰은 중간수사 브리핑을 통해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한 증거 중 도서 17점, 간행물 26점, 유인물 23점 중 일부 증거에서 이적성이 의심되는 부분을 포착해 내용과 문구 등을 분석 중이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경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13점에서 이적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정치사상강좌>라는 유인물을 비롯해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 생각한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그가 가진 이념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쟁점은 그가 한 행동이 개인 일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두고 긴장감 넘치는 설전이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김씨의 기이한 언행을 근거로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행동’이라 규정한다. 현재 김씨는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북은 아니다”고 말하는가 하면 리퍼트 대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른 바로 다음날 웃으면서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7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갈지자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김씨를 두고 리퍼트 대사의 치료 전반을 책임졌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이 김씨의 ‘개인적 일탈’에 의해 발생했을 확률이 높음을 시사했다.

종북숙주
새정치연합

반면 보수 측은 이번 사태를 종북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택 <뉴스타운> 객원논설위원은 ‘종북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소위 종북세력에 대해 ‘숟가락으로 밥 먹고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사람일 뿐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인간이다’라며 ‘이번 미국대사 테러사건을 계기로 종북세력을 말끔히 소탕하고 국민 혈세만 빨아먹는 흡혈귀단체들도 싹 다 정리해 버리자!’고 강력 주장했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 3000여명이 모여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국민대회’를 열고 종북세력 척결을 촉구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길로 가려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종북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 쓸 때”
야당 “종북 올가미 덧씌우려는 속셈”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 간의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오히려 순수해 보일 정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야 모두 이번 사건을 발판 삼아 4.29재보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다. 치열한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원색적 ‘헐뜯기’부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향해 ‘종북숙주’라고 칭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야당은)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즉 새누리당은 김기종의 ‘배후세력’으로 새정치연합을 지목한 것이다.


당 지도부도 이에 합세했다. 김무성 대표는 리퍼트 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종북좌파들이 한미동맹을 깨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의 발언을 두고 “종북좌파를 명확히 언급함으로써 논쟁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 평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회의자리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해야 하고,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어느 정치권이 뭐라고 하든 이번에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 이런 세력이 이 땅에 더 존재하지 않는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불투명하던 4·29재보선 향방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망한다. 만약 사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계속적인 종북전략을 펼칠 것이라 내다봤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런 새누리당을 두고 종북몰이라 주장하고 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사건 직후 ‘새누리당은 비겁한 정치 행태 즉각 중단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당 대변인이 오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을 종북숙주라고 공격했다”며 “김기종의 과거행적을 들먹이며 야당을 걸고 넘어가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야당에게 종북올가미를 씌워보려는 그 속셈이 너무도 뻔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는 서 대변인의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함과 동시에 개인의 일탈행동으로 규정짓는 것”이라고 봤다.


사태가 누그러들지 않자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이군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김진태 의원, 하태경 의원, 심재철 의원에 대해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새정치연합을 종북세력의 배후로 지목한 인사들이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다. 유은혜 대변인은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씨는) 성균관대 법대 80학번으로 잘 아는 선배”라며 “워낙 개인적 돌출행동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성균관대 81학번으로 80학번인 김씨의 대학 후배다.

이어서 유 대변인은 김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명명했다. 또한 기자간담회 배경에 대해서는 “개인적 범죄행위가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번지거나 조직적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봐 정보 차원에서 개인의 삶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종북몰이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문 대표는 “미국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논평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마치 종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정치에 악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한미 양국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리퍼트 대사가 어제 퇴원하면서 한국말로 ‘동네 아저씨로 남겠다.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성숙한 미국의 대응을 봤다”며 “이와 반대로 우리는 무모하게 종북몰이를 하며 사실상 국익을 해치는 것에 심각히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정부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지지율(국정수행 긍정평가)에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일주일 전 대비 4.0%포인트가 반등한 39.3%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중동 순방과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둘러싼 종북 논란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며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에 근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야 ‘법적 대응’ 여 ‘부끄럽다’ 소송전 예고
박근혜 제부 ‘석고대죄’ 단식 “과하다”

사건 이후에 나온 북한의 반응도 지지율 반등에 한몫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지난 8일 “남측이 고의로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를 북한과 연계시키고 있다”며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며 억지 논리를 펼쳤다. 한 북한전문가는 “안중근 의사와 김씨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북한의 백마비마적 논리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반작용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제부까지 이번 사태에 뛰어들었다. 공화당 신동욱 총재는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때 아닌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석고대죄’란 글귀와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석고대죄는 예부터 왕실에서만 했다”며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현 대통령의 제부가 곡기를 끊고 길가에서 밤을 새면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단식을 분명한 ‘정치활동’이라 알렸다.

이러한 신 총재의 기행에 사회 각층 인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개인 SNS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중국 사신 앞에서 석고대죄한 신하는 없었다”고 잘못을 지적했다. 진중권 교수는 “꿈에서나 볼법한 어이없는 상황”이라 일축했다. 국민들의 시선 또한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는 김씨가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국내 종북세력이나 이적단체 등과 연계되지 않은 단독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수사관계자는 “김씨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위인이라고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국내 이적단체나 종북단체에 배후세력이 있겠느냐”며 “현재까지는 김씨 개인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욱 총재
석고대죄 단식

사건 당일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미국의 반응은 여야의 반응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즉 이번 사건을 조직적인 테러로 규정한다는 말이었다.

반면 미국 측은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이나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끔찍한 폭력행위였던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범행동기나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리퍼트 대사는 수술 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를 손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여당과 야당 모두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달리 현재 정치권은 서로 소송 전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예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이번 기회에 ‘종북’이란 단어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태경 "김기종 변호인이 더한 종북"

‘종북’에 대한 논란은 이제 김씨의 담당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에게까지 번진 상황이다. 황 변호사는 김씨를 두고 “예전에 분신을 해 수전증이 있고 손가락도 틀어져 있어 사실상 살해할 능력은 안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황 변호사를 두고 “김씨보다 더 한 종북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 의원실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변호사를 더한 종북으로 주장하는 근거가 있음을 알렸다. 자료를 살펴보면 한 포탈사이트에서 황 변호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글을 볼 수 있다.

문제의 글은 모두 특정사이트에 개제된 것으로써 2011년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지도자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며’라는 제하의 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행 열차에서 지병으로 갑자기 서거하였다. (중략) 내년은 강성대국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미대결의 종지부를 찍는 마당이었는데…”라고 적혀있다.

‘황장엽, 북한 핵융합 성공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에 링크를 걸며 ‘뒤늦게 찾은 뉴스다. 그렇다면 판은 끝났다고 봐야지. 음~~~’이라며 의미심장한 댓글을 달았다.

문제의 사이트는 현재 비공개카페로 전환돼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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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