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김기종 아이템’ 활용 노림수

종북숙주 VS 종북몰이 선거판에 때 아닌 북풍 “김기종 대체 넌 뭐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지난 5일 언론사들은 일제히 보도를 통해 다급한 현장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국민들은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사가 습격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김기종.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은 똑똑히 각인됐다. 칼을 휘두른 목적이 이것이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촉각을 다툴 만큼 위급하게 전개됐다. 사건 직후 과거 일 대사에게 콘크리트를 투척하는 등 그의 지난 행적이 드러나면서 ‘김기종’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 사태는 이념적 갈등을 지나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말한다.

미 대사 피습
김기종 사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25cm 과도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다. 현장에서 김씨를 체포한 경찰은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색 후 경찰은 중간수사 브리핑을 통해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한 증거 중 도서 17점, 간행물 26점, 유인물 23점 중 일부 증거에서 이적성이 의심되는 부분을 포착해 내용과 문구 등을 분석 중이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경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13점에서 이적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정치사상강좌>라는 유인물을 비롯해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 생각한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그가 가진 이념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쟁점은 그가 한 행동이 개인 일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두고 긴장감 넘치는 설전이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김씨의 기이한 언행을 근거로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행동’이라 규정한다. 현재 김씨는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북은 아니다”고 말하는가 하면 리퍼트 대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른 바로 다음날 웃으면서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7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갈지자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김씨를 두고 리퍼트 대사의 치료 전반을 책임졌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이 김씨의 ‘개인적 일탈’에 의해 발생했을 확률이 높음을 시사했다.

종북숙주
새정치연합

반면 보수 측은 이번 사태를 종북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택 <뉴스타운> 객원논설위원은 ‘종북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소위 종북세력에 대해 ‘숟가락으로 밥 먹고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사람일 뿐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인간이다’라며 ‘이번 미국대사 테러사건을 계기로 종북세력을 말끔히 소탕하고 국민 혈세만 빨아먹는 흡혈귀단체들도 싹 다 정리해 버리자!’고 강력 주장했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 3000여명이 모여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국민대회’를 열고 종북세력 척결을 촉구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길로 가려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종북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 쓸 때”
야당 “종북 올가미 덧씌우려는 속셈”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 간의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오히려 순수해 보일 정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야 모두 이번 사건을 발판 삼아 4.29재보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다. 치열한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원색적 ‘헐뜯기’부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향해 ‘종북숙주’라고 칭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야당은)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즉 새누리당은 김기종의 ‘배후세력’으로 새정치연합을 지목한 것이다.


당 지도부도 이에 합세했다. 김무성 대표는 리퍼트 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종북좌파들이 한미동맹을 깨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의 발언을 두고 “종북좌파를 명확히 언급함으로써 논쟁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 평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회의자리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해야 하고,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어느 정치권이 뭐라고 하든 이번에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 이런 세력이 이 땅에 더 존재하지 않는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불투명하던 4·29재보선 향방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망한다. 만약 사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계속적인 종북전략을 펼칠 것이라 내다봤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런 새누리당을 두고 종북몰이라 주장하고 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사건 직후 ‘새누리당은 비겁한 정치 행태 즉각 중단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당 대변인이 오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을 종북숙주라고 공격했다”며 “김기종의 과거행적을 들먹이며 야당을 걸고 넘어가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야당에게 종북올가미를 씌워보려는 그 속셈이 너무도 뻔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는 서 대변인의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함과 동시에 개인의 일탈행동으로 규정짓는 것”이라고 봤다.


사태가 누그러들지 않자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이군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김진태 의원, 하태경 의원, 심재철 의원에 대해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새정치연합을 종북세력의 배후로 지목한 인사들이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다. 유은혜 대변인은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씨는) 성균관대 법대 80학번으로 잘 아는 선배”라며 “워낙 개인적 돌출행동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성균관대 81학번으로 80학번인 김씨의 대학 후배다.

이어서 유 대변인은 김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명명했다. 또한 기자간담회 배경에 대해서는 “개인적 범죄행위가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번지거나 조직적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봐 정보 차원에서 개인의 삶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종북몰이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문 대표는 “미국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논평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마치 종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정치에 악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한미 양국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리퍼트 대사가 어제 퇴원하면서 한국말로 ‘동네 아저씨로 남겠다.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성숙한 미국의 대응을 봤다”며 “이와 반대로 우리는 무모하게 종북몰이를 하며 사실상 국익을 해치는 것에 심각히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정부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지지율(국정수행 긍정평가)에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일주일 전 대비 4.0%포인트가 반등한 39.3%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중동 순방과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둘러싼 종북 논란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며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에 근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야 ‘법적 대응’ 여 ‘부끄럽다’ 소송전 예고
박근혜 제부 ‘석고대죄’ 단식 “과하다”

사건 이후에 나온 북한의 반응도 지지율 반등에 한몫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지난 8일 “남측이 고의로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를 북한과 연계시키고 있다”며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며 억지 논리를 펼쳤다. 한 북한전문가는 “안중근 의사와 김씨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북한의 백마비마적 논리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반작용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제부까지 이번 사태에 뛰어들었다. 공화당 신동욱 총재는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때 아닌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석고대죄’란 글귀와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석고대죄는 예부터 왕실에서만 했다”며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현 대통령의 제부가 곡기를 끊고 길가에서 밤을 새면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단식을 분명한 ‘정치활동’이라 알렸다.

이러한 신 총재의 기행에 사회 각층 인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개인 SNS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중국 사신 앞에서 석고대죄한 신하는 없었다”고 잘못을 지적했다. 진중권 교수는 “꿈에서나 볼법한 어이없는 상황”이라 일축했다. 국민들의 시선 또한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는 김씨가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국내 종북세력이나 이적단체 등과 연계되지 않은 단독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수사관계자는 “김씨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위인이라고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국내 이적단체나 종북단체에 배후세력이 있겠느냐”며 “현재까지는 김씨 개인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욱 총재
석고대죄 단식

사건 당일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미국의 반응은 여야의 반응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즉 이번 사건을 조직적인 테러로 규정한다는 말이었다.

반면 미국 측은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이나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끔찍한 폭력행위였던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범행동기나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리퍼트 대사는 수술 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를 손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여당과 야당 모두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달리 현재 정치권은 서로 소송 전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예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이번 기회에 ‘종북’이란 단어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태경 "김기종 변호인이 더한 종북"

‘종북’에 대한 논란은 이제 김씨의 담당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에게까지 번진 상황이다. 황 변호사는 김씨를 두고 “예전에 분신을 해 수전증이 있고 손가락도 틀어져 있어 사실상 살해할 능력은 안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황 변호사를 두고 “김씨보다 더 한 종북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 의원실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변호사를 더한 종북으로 주장하는 근거가 있음을 알렸다. 자료를 살펴보면 한 포탈사이트에서 황 변호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글을 볼 수 있다.

문제의 글은 모두 특정사이트에 개제된 것으로써 2011년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지도자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며’라는 제하의 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행 열차에서 지병으로 갑자기 서거하였다. (중략) 내년은 강성대국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미대결의 종지부를 찍는 마당이었는데…”라고 적혀있다.

‘황장엽, 북한 핵융합 성공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에 링크를 걸며 ‘뒤늦게 찾은 뉴스다. 그렇다면 판은 끝났다고 봐야지. 음~~~’이라며 의미심장한 댓글을 달았다.

문제의 사이트는 현재 비공개카페로 전환돼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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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