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등 돌리는 보수 ‘왜?’

박근혜 대통령 만든 노심 뿔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보수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정부는 두 살이 되었다. 축하받아야 할 기념일이지만 여론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지난 대선 때부터 꾸준히 지지를 보낸 50세 이상 보수층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기반이 흔들리니 청와대도 다급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쇠처럼 단단할 것만 같던 콘크리트 지지층에 왜 균열이 간 것일까. 노심(老心)이 뿔난 이유를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지난 2년간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마치 동해바다의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큰 폭으로 요동쳤다. 등락폭이 커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했다. 지지율 변화 그래프를 보면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1년간은 순탄했다. 한국갤럽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42%를 기록해 다소 낮은 감이 있었지만 꾸준히 상승해 2013년 9월에는 63%로 재임기간 내 최고점을 찍었다. 첫 번째 시기인 ‘상승기’였다.

균열난 지지층
떨어진 지지율

이후부터 2014년 4월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체기를 맞이했다. 큰 상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5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박근혜호가 순풍을 맞아 ‘안정기’를 보낸 것이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잠기면서 박근혜호도 함께 가라앉기 시작했다. 4월부터 5월 사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지지율이 무려 10%가 빠진 47%를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50%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락기’에 접어든 것이다.

하락기 동안 박근혜정부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연말까지는 40%를 유지했지만 2015년에 들어서는 이마저도 지켜내지 못했다. 결국 2015년 1월에는 33%까지 추락했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한국갤럽이 제공하고 JTBC <뉴스룸>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3년차 1분기 지지율에서 박 대통령은 32%를 기록, 5명의 대통령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내용을 보면 같은 기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9%로 가장 높게, 다음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44%를, 그 다음이 김영삼 37%, 노무현 33%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동안 핵심 지지층으로 불린 50세 이상 노년층 지지자들의 이탈이다. 연령대별 지지율 변화를 보면 모두 2013년 9월 최고점을, 가장 최근인 2015년 1월이 최하점을 나타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60대 이상은 최고가 85%로 막강한 지지율을 보였으나 이후 60%로 약 25%가 빠져나갔다. 50대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74%에서 41%로 33%가 하락했다. 그 외에도 40대는 61%에서 26%로 무려 35%의 지지층이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박 대통령은 물론 20대 총선을 준비하는 친박계 입장에서도 간담이 서늘해질만한 조사내용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하락기 내에서 나타나는 변화다. 세월호 사건으로 추락한 지지율이 조금씩 회복돼 갈 무렵 2014년 연말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되는데, 이때 위에서 말한 60·50·40대 지지율 하락이 나머지 30·20대의 지지율 하락폭보다 더욱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 시점이 ‘연말정산 사태’와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불거진 시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복지와 경제·세금 관련 공약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에 대해 평가한 많은 전문가들은 노년층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 복지 논란을 꼽았다.

떨어지는 지지율, 역대 대통령 중 최하
계속되는 거짓말에 보수층도 등 돌려

박 대통령은 ‘노인복지 공약’을 내세워 당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격적인 복지 공약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기존 20만원 지급되던 노인 일자리 수당을 40만원으로 올려주겠다던 것이 실상은 2년째 동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던 노인 빈곤층에게는 1, 2만원이 아쉬운 상황이라 박 대통령의 공약을 믿고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구의 한 80세 노인은 “대통령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며 “방값 내고 나면 하루살기도 버겁다”고 삶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70대 노부부도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하소연했다.

허상뿐인
노인복지

‘기초연금’ 문제로 들어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에게나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대선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문재인 후보와 날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된 후에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원래 공약에서 소득 하위 70% 조항을 추가함은 물론이고 이마저도 등급을 나눠 10만~20만원 사이로 차등 지급하는 등 기존 방침을 뜯어 고쳤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국가예산 확보 문제로 그런 것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수정안을 제시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치아관련 병원비는 다른 병원비용보다 높게 책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감상으로 치아가 좋지 못한 노인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65세 이상 노인들이라면 누구나 임플란트 비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노인 임플란트’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는 75세로 적용대상이 상향 조정됐다. 이 공약을 지지해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65세에서 75에 사이 노인들은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도 문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수많은 복지공약을 내놓으면서 증세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증세로 보이는 여러 정황들이 지난해 연말부터 터져 나오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조세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두고 ‘공약한 복지정책은 많은데 세수를 확보하기 힘드니 편법으로 증세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중 가장 논란이 크게 되고 있는 것은 담뱃값 인상이다.

정부는 2015년 새해에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세수확보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으나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일축했다. 그러나 이후 제기되는 각종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건강 목적보다 증세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민층의 흡연율이 높아 담배 관련 세금이 올라가면 고소득층보다는 서민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담배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소득역진성’이 심한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인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서민 호주머니 털기’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만기친람
오불관언

그러던 중 발생한 ‘저가 담배’ 논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효과로 작용했다. 최초로 발언을 한 사람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그는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저가 담배’를 검토해 볼 것을 당 정책위에 지시했다. 이를 두고 유 원내대표는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이 적지 않다는 여론 때문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럴 것 같으면 왜 담배가격을 인상했냐’며 반발했다.

저가 담배 논란은 국민건강 문제로까지 번졌다. 담배의 가격을 낮추다보면 자연스레 질은 떨어질 것이고 그럼 피우는 국민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는 그동안 정부에서 내세웠던 국민 건강 목적과 완전 대치된다는 점에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국민들은 ‘가난뱅이는 싸구려 담배나 피우다 병들어 죽으라는 것이냐?’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정윤회 문건 파동’ ‘증세없는 복지 논란’ 그리고 ‘세월호 사건’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연일 들려오는 ‘강한’ 소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때쯤 피부로 와 닿는 증세와 복지 문제가 터지니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라 분석한다.

저가 담배, 불어터진 국수 등 논란 확산
집권 3년차 쇄신하는 모습 필요 지적


사태가 악화되니 그간 보여준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은 그간 인사에서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식으로, 사고 수습은 오불관언(吾不關焉) 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박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믿고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써본 사람만 고집하면서 사고를 수습함에 있어서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국민들이 현 정권의 잦은 인사 실패와 세월호사태 때 보여준 모습들을 두고 사자성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3년차를 통해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선 산적해 있는 경제 현안들을 풀어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잔뜩 힘주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대정부 질문에서 한 발언만 봐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참 불쌍하다”며 “그런 불어터진 국수 먹고도 힘을 차리는구나. (중략)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들도 좀 통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에서 협조해 달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낸다. 발언이 있은 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해찬 의원은 “대통령께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그건 국가원수의 언어가 아니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어서 그는 “한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사고 능력을 보여주는데 대통령이 사돈 남 말하듯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면 안 된다”며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같은 당 소속인 박영선 의원도 “엉터리 같은 대통령 만나 고생하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가 불쌍하다”고 말해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앞으로 3년
새국면 필요

‘원박(원조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보다 대통령이 가진 부동산3법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 전 최고의원은 “박 대통령의 인식은 부동산3법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그렇게 보기 어렵다”며 “건설경기가 전체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박근혜정부에게 소통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정권이 경제활성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당장 소통을 통한 범국민적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경제활성화 정책들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그 효과가 미미해 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계에는 ‘박’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친박’부터 ‘멀박’ ‘탈박’ 등 이 용어들은 박 대통령과 얼마나 정치적 거리가 가까운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최근 언론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박의 추이를 알 수 있다. 갈수록 친박보단 멀박, 탈박 등 지척의 거리가 아닌 멀어졌다는 의미의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이는 그만큼 박 대통령을 떠나간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조차 점점 멀박의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대통령 입장에서 고민해 봐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2012년 당시 박 후보자가 당선된 후 미국의 ABC뉴스는 승리 요인에 대해 ‘한국 경제성장 동력을 불러일으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외신의 눈에도 박 대통령은 그 당시 이뤄낸 눈부신 경제성장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경제성장을 일궈낸 현재 50·60대 지지층이 더 이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약 사항을 이행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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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