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병원들, 막가는 수술실 백태

환자 마취된 사이 의사·간호사 둘이…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병원 임상실습에 들어가기 전 간호학도들이 읊는 ‘나이팅게일 선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한 선서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 내용이다. 신성한 두 선언이 최근 일부 의료 종사자들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계의 현주소를 파헤쳐보자.

지난달 28일 한 간호조무사가 개인 SNS를 통해 올린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다.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J성형외과로 추정되는 병원 수술실에서 마취된 환자를 뒤로 한 채 생일 케이크를 들고 다니는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슴 성형에 쓰이는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등 몰지각한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수술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는가하면 돈다발을 들고 찍은 사진에는 수술용 1회용 장갑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장면이 함께 찍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 모습은 물론 환자의 신상이 적힌 ‘기록 카드’가 그대로 사진에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환자 뒤로하고
셀카, 생일파티

그녀들에게 ‘나이팅게일 선서’는 단순한 허례허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런 철없는 행동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했다. 언론 또한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간호조무사는 계정을 삭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료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당 사건에 대해 보건당국은 진상조사에 나섰다. 29일 관할 보건소인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병원을 실사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확인한 뒤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수술 중 생일파티를 한 행위와 1회용 장갑을 재사용 목적으로 말려놓은 부분은 각각 의사의 비윤리 진료와 의료법 위반에 해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의료법 제66조에 따르면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킬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장 1년까지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통상 관할 보건소가 보건복지부에 자격 정지를 의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보건당국은 보건복지부와 경찰 측에 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고 비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의료법 위반 여부 등을 검토 중이다”며 “피해자의 신고나 보건당국의 의뢰가 들어올 경우 즉각 수사에 착수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0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시의 한 대학 병원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이 누워있는 환자를 뒤로 한 채 서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해당 사진은 수술을 마친 뒤 촬영한 것으로 성공적인 수술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찍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논란은 거세져 갔고 결국 시 당국은 병원 원장을 비롯한 책임자 및 담당자를 면직 또는 감봉 처리했다. 사건의 유사성을 고려해 볼 때 처벌의 가이드라인으로 충분한 사례다.

해당 병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해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사진 촬영은 환자가 수술 뒤 회복 중일 때 촬영된 것이다”며 “(사진 속에 등장한 장갑은) 수술 끝나고 나서 수술 용기 같은 것을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장갑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사과문에는 “몇몇 직원들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해당 직원을 절차에 따라 징계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어 일부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사과문이 올라간 후 이를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상담의사 따로
수술의사 따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에 간호사가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버젓이 간호사 명찰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 그중에 간호사는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간호조무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중에는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한간호협회’는 법적 대응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이 대응을 준비하는 이유 중 핵심은 이 사건을 통해 간호사들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진을 통해 확인되는 명찰은 간호사를 사칭한 행위라는 것이다.

정신 나간 일부 의료 종사자들
수술 앞두고 찰칵…음주 집도도
실종된 의료 윤리에 국민 불안

1960년대에 간호인력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간호사 대체인력으로 신설된 간호조무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있으면 가능하며 ‘국·공립간호조무사양성소’나 ‘사설간호조무사양성학원’에서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을 받기만 하면 된다. 반면 간호사는 간호학과(3·4년제)를 졸업하고 국가(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간호사 시험을 합격한 후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해야 된다. 의료법상 지위도 간호사는 ‘의료인’으로 구분되는 것에 반해 간호조무사는 ‘간호보조인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경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는 급여가 훨씬 적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속여 근무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환자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료 영역에 의료인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비단 해당 사건은 간호조무사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에는 의사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등장하는데 설명에는 “원장님과 함께”라고 적혀있다. 그녀들을 관리·감독해야 되는 의사가 이 같은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고 있다.

이러한 의료계의 비도덕적 행위는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지난달 19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21살 여대생 정모씨가 끝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광대뼈와 턱뼈를 깎는 수술을 4시간 동안 받은 그녀는 수술 직후 회복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그녀를 집도한 담당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치과의사라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과의사가 안면 윤곽 수술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환자의 혈압저하 등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한다. 또한 숨진 정모씨는 당초 1000만원에 해당되는 수술비를 지불하는 대신 ‘비포-애프터’ 모델이 되는 조건으로 검사비 100만원만 냈다는 정황이 포착돼 정모씨의 수술에 일부러 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을 샀다.

환자로서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어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부지기수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를 악용한 사례도 다수 발생한다. 속칭 ‘쉐도우 닥터’라 불리는 사람이 대리 수술을 하는 것이다. 집도하는 의사의 수술 경험과 능력에 따라 외적 변화가 확연히 차이나는 성형외과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형외과의 경우 의사의 이름값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보니 몇몇 의사에게 환자가 집중된다. 그러나 실상은 유명의사가 환자를 상담한 후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면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눈뜨고 코 베인 격이다. 외국인들이 성형관광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 등 국내 성형시장이 팽창했지만 그에 맞는 인력 수급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 치부하기에 윤리적 공백이 너무 크다. 이미 물질만능주의가 성형외과 업계에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술 마시고 수술
위생은 뒷전

술을 마시고 수술대에 오르는 의사도 있다. 지난해 11월28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3살배기 남자아이의 봉합수술이 진행됐다. 바닥에 쏟은 물에 미끄러져 넘어진 아이는 턱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찢어졌다.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 아이를 안정시켜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집도하러 온 의사 A씨의 행동이 이상했다. 비틀비틀거리며 수술실에 들어온 A씨는 위생장갑을 끼지도 않고 찢어진 부위를 얼기설기 세 바늘 꿰맸다. 이를 본 아이의 부모는 병원에 항의했고 그제야 병원 측 관계자는 다른 의사를 불러 여덟 바늘을 꿰매 정상적으로 수술을 종료했다.


A씨는 그 당시 술에 취해 있던 것으로 판명 났다. 1년차 전문의인 그는 3년차 선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했고 당직실로 복귀한 후 응급실 당직 콜이 울리자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원래 이 수술은 본인이 맡아야 될 수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그 당시 당직 의사는 2년차 선배 B씨였는데 “1년차인 A씨가 선배 B씨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이 직접 들어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문제의 A씨는 해당 병원에서 파면조치 당했다.

생일파티에 보형물로 장난
찍은 사진 SNS에 올려 파문

이 사건으로 병원의 방만한 인력 관리와 허점투성이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됐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대학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도제식 인력관리와 응급 의료관리 시스템에서는 1년차 전문의가 술을 먹고도 응급실로 떠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A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위생 장갑을 끼지 않는 등 상태가 평소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근무자들이 A씨의 행위를 제지하지 못했던 점은 그만큼 병원의 응급 의료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12년 연속 ‘최우수 응급 의료 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올해 초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는 자신들의 수술 횟수를 홍보하기 위해 ‘턱뼈로 쌓은 탑’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되었다. 병원 로비 한편에 위치한 탑은 바로 수술을 한 환자의 턱뼈를 모아 쌓은 것이다. 인체의 적출물을 폐기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그것을 탑으로 쌓아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은 엽기를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했고 이를 본 시민들은 경악했다.

결국 해당 사건은 미국의 <타임지>에 까지 보도되었다. 이런 자신들의 행동이 의료 폐기물 관리법 위반인지도 몰랐던 병원장은 과태료 300만원을 물었고 당연히 ‘턱뼈 탑’에 대해선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병원과 의료계의 현주소가 이렇지만 소송을 통한 구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수술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수사를 하더라도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라 과실을 찾아내기 힘들다. 또한 증거 인멸 등이 행해져도 알아낼 방도가 없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간호조무사 셀카 사건’이나 언론에 보도된 사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져만 간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설사 처벌이 행해져도 병원 측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일 예약취소 등 환자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진료는 계속할 수 있다. 근무하는 많은 의사 중 사고를 낸 의사 몇 명만 쉬면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병원 명을 바꾸든지 아니면 새로 병원을 차리면 된다. 의사 자격이 박탈당하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목숨을 잃은 환자는 다시 살아날 방도가 없다.

환자 턱뼈로
병원 로비에 탑 쌓아

프랑스 태생의 의사이자 사상가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후대에도 존경받는 이유는 비단 그가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활동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생명을 존중했고 인류애를 강조했다. 그는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며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슈바이처의 정의에 따르면 몇몇 병원과 의사 그리고 간호조무사는 악이라 불러도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몇몇 사람으로 인해 국민은 물론 선량한 의료인들까지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관련 피의자의 죄질에 합당한 법 적용과 대승적 차원의 근무 환경 개선, 부도덕한 의료행위의 근절을 위한 지속적 교육 및 지도·감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환자 38명 살해, 악마 간호사 엽기행각

한 달 동안 무려 38명의 환자를 죽이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은 이탈리아 간호사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38명의 환자를 살해한 뒤 충격적인 사진을 촬영한 이탈리아 간호사’라는 제목으로 다니엘라 포지알리(42)의 행동을 보도했다.

포지알리는 단지 짜증난다는 이유로 사형수에게 쓰이는 독극물을 투여해 환자 38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살인을 저지른 후 죽은 환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다.

공개된 사진에 의하면 그녀는 사망한 환자 바로 옆에서 엄지를 올리는가 하면 입을 벌리고 찍는 등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은 그녀의 직장 동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 간호사는 경찰 조사에서 “포지알리에게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며 “그녀는 보복심리가 강했고, 단순히 다음 근무 조를 고생시키기 위해 환자들에게 설사약을 투여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포지알리와 동료 간호사는 모두 병원에서 해고된 상태며 포지알리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