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기업인 가석방론 막전막후

기업이 살아야 경제도 나라도 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재계에 '가석방'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번 법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가 슬쩍 운을 뗀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정재계를 막론하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 주로 거론되는 재벌총수로는 연일 역대 최장기간 수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벌 봐주기'라는 것. 가열되는 '가석방 논란'을 조명해 봤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복역 태도에 대한 성적)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해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다.

개전의 정을 제외한 조건으로는 무기는 20년, 유기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해야 한다. 가석방 후에는 남은 형기를 경과하면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본다. 다만 기간 중에 금고 이상 형의 선고를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거나 보호관찰의 준수사항을 위반한 때에는 가석방 처분이 취소된다.

누가 되고
누가 안 되나

절차는 교정시설의 장이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적격심사를 신청하면 법무부 장관 소속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거친다. 사면과는 달리 가석방은 법무부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을 포함해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부 공무원, 교정 관계자 등 법무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 5~9명으로 구성된다. 

가석방 요건을 충족한 대기업 오너는 현재 3명 정도다.


재벌 총수 중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유일하다. 최 회장은 역대 재벌 총수 가운데 최장 기간 수감 중이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일(2015년 1월1일 기준·이하 기준 동일)까지 701일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2년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형기는 2017년 1월 말까지. 확정 형기 중 3분의 1(486일)을 215일 초과해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최 회장은 이외에도 병보석 신청도 없이 수감생활을 하고 옥중에서 사회적 기업 전문서인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내는 등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받은 보수 중 세금을 제외한 187억원 전액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활동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 그의 수감 기간은 618일. 최 부회장은 지난 2011년 12월 검찰에 구속된 후 다음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이듬해 9월 2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이다. 구 부회장은 2012년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확정받고 2년 넘게 수감 중이다. 함께 재판을 받은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의 경우, 징역 3년 확정 후 315일 동안 수감생활을 해 50일 이후인 오는 2월20일 가석방 요건이 충족된다.

장관·부총리 이어 여당 대표 가세해 군불
다가오는 설날 또는 3·1절 특사 가능성↑

수감 중이지만 가석방 요건을 채우지 못한 대기업 오너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12년 7월1일 구속됐지만 신장 이식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되면서 총 수감기간을 114일 채우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이 계속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면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회장 사건은 아직 대법원 선고 전이다. 이 회장은 아직까지도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질병을 이유로 각각 보석과 형집행정지를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수감기간이 가석방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 불구속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 회계분식 혐의로 270일 가까이 수감된 상태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가석방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가석방 요건이 안 된다. 4만명에 이르는 CP 사기 피해자들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지난해 9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불기 시작했다. 당시 황 장관은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에 최 경제부총리는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힘을 실었다.
 

재계는 기업인 가석방이 자칫 국민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을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 경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 창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실질적 결정권자인 오너들의 경영일선 복귀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엄정한 법 집행으로 역차별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정부가 경제살리기 정책을 펼치고 있고 경제민주화 기조가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 가석방은 선행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너가 부재 중인 주요 대기업들은 투자가 줄줄이 중단되고 신년 경영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아픔을 겪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2011년 6조606억원이던 그룹 투자 규모가 2012년 4조9283억원으로 쪼그라 들었으며 계열사인 SK E&S와 SK텔레콤이 추진했던 STX에너지와 ADT캡스 인수·합병 건이 중단됐고, 태양전지 사업과 연료전지 개발 사업도 도착상태다.

오너 부재 기업
투자 줄줄이 중단

CJ그룹 역시 총수 부재로 시련을 겪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물류터미널 거점 마련을 위한 충청 지역 2000억원 투자 계획은 전면 보류됐고, CJ CGV의 해외 극장 사업 투자와 CJ오쇼핑의 해외 인수합병도 중단됐다. CJ제일제당이 추진하던 베트남·중국 업체와의 생물자원 사업과 관련한 인수합병도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들었다.

태광그룹도 마찬가지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매출은 2011년 3조5000억원에서, 2012년 2조8100억원, 2013년 2조5196억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신사업 개발과 신규시장 개척 등도 답보상태다.

이런 가운데 김승연 회장이 복귀한 한화그룹은 요즘 한 마디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김 회장은 계열사 등기임원이나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데 제약은 있지만 이미 경영에 복귀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매일 출근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본사에 나와 사업개편을 이끌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인수하고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이 합병하는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의 복귀 전까지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며 공백 메꾸기에 나섰지만 투자와 경영전략 등 현안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서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상 신호가 감지되어 왔다. 김 회장이 복귀하자마자 달라진 한화그룹의 모습에 재계에 부는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지난 12월 초 발생한 '땅콩 회항 사태'는 여론을 급반전시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월5일 대한항공 항공기 일등석에 앉아 있던 자신에게 기내식 서비스로 땅콩을 봉지째 내온 승무원에게 화가 나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을 지시하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된 것.

복귀한 김승연
활기 띄는 한화

여론을 반영한 듯 연말 시행된 성탄절 기념 가석방 명단에는 기업 총수가 빠졌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수형자는 614명. 형기의 80~95%를 채운 모범수 중간처우자(26명), 외국인 수형자(24명), 중증질환 환자(21명), 10년 이상 장기수(8명), 고령자(8명), 소년수(1명) 등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이날 "통상 절차대로 실시한 것"이라며 "대상은 행형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고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나 특이 신분자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은 최 부총리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한 언론에 "일반인들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인데, 기업인이라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 드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최근 "경제가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당초 기업인 가석방에 부정적인 입장이던 이완구 원내대표도 입장을 바궈 "경제살리기 측면과 함께 국민대통합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가석방 문제에 관해) 야당과 협의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가석방을 제안하고 나섰다.

동아줄 기다리는 간절한 범털들
모범 수감생활 최태원 회장 유력

재계는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2월 설 연휴 또는 3·1절 등 가석방 시기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등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나마 지키는 몇 안 되는 공약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며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고, 비리 기업인에는 더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도 "재벌총수가 형기를 마치기 전에 나오면 경제가 활성화가 된다는 말인지 김무성 위원에게 묻고 싶다"며 "기업인의 가석방이 경제활성화를 가져온다는 구체적인 근거나 통계가 있는지 최경환 부총리께 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고위공직자나 기업인을 우대 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며 기업인 가석방을 찬성했고 이석현 비상대책위원도 "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기업인이라고 해서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민생사범+재벌
'물타기 작전?'

기업인 가석방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생계형 민생사범까지 포함해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서청원 의원은 "기업인 가석방 문제를 제기하려면 민생사범도 같은 법의 잣대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이 원내대표도 "경제도 살려가며 국민대통합이라는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의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야당은 '물타기 작전'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생사범과 재벌을 묶어 같이 풀자고 물타기 하는 수법은 비겁하다"며 "재벌만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신사다운 행동일 것입니다"고 비난했다.

불거지는 가석방 논란과 관련,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선을 그은 상태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석방·사면' 기대조차 못하는 총수들
"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다"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인 가석방과는 달리 사면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형을 전부 또는 일부 소멸시키는 일을 말한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며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며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포함해 특정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며 형이 확정돼 집행에 들어간 경우를 전제로 한다.

가석방 외에 기업인 사면이 실시되면 대기업 총수 중에는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켰거나 앞두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을 제외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예 중이다.

김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을 완수하고 지난 11월부터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이기 때문에 ㈜한화 대표이사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된 사람이 임원을 하면 화약류 제조업 허가가 취소되며, 사업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집행유예 기간을 모두 마친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한다는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규정 때문이다.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지난 4월 배임과 횡령 혐의로 1심 판결에서 징역 6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인 강덕수 전 STX 회장은 사면이나 가석방을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기성 회사채(CP) 발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현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 공판이 진행 중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상고심에서 재판이 계류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의 대상이 아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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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