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기업인 가석방론 막전막후

기업이 살아야 경제도 나라도 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재계에 '가석방'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번 법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가 슬쩍 운을 뗀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정재계를 막론하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 주로 거론되는 재벌총수로는 연일 역대 최장기간 수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벌 봐주기'라는 것. 가열되는 '가석방 논란'을 조명해 봤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에 있는 사람이 그 행장(복역 태도에 대한 성적)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해 나머지 형벌의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일정한 조건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다.

개전의 정을 제외한 조건으로는 무기는 20년, 유기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해야 한다. 가석방 후에는 남은 형기를 경과하면 형의 집행을 종료한 것으로 본다. 다만 기간 중에 금고 이상 형의 선고를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거나 보호관찰의 준수사항을 위반한 때에는 가석방 처분이 취소된다.

누가 되고
누가 안 되나

절차는 교정시설의 장이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적격심사를 신청하면 법무부 장관 소속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거친다. 사면과는 달리 가석방은 법무부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을 포함해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부 공무원, 교정 관계자 등 법무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 5~9명으로 구성된다. 

가석방 요건을 충족한 대기업 오너는 현재 3명 정도다.

재벌 총수 중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유일하다. 최 회장은 역대 재벌 총수 가운데 최장 기간 수감 중이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일(2015년 1월1일 기준·이하 기준 동일)까지 701일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 자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2년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형기는 2017년 1월 말까지. 확정 형기 중 3분의 1(486일)을 215일 초과해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다.

최 회장은 이외에도 병보석 신청도 없이 수감생활을 하고 옥중에서 사회적 기업 전문서인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펴내는 등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받은 보수 중 세금을 제외한 187억원 전액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사회적기업 활동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 그의 수감 기간은 618일. 최 부회장은 지난 2011년 12월 검찰에 구속된 후 다음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이듬해 9월 2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도 가석방 대상이다. 구 부회장은 2012년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구속돼 징역 4년을 확정받고 2년 넘게 수감 중이다. 함께 재판을 받은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의 경우, 징역 3년 확정 후 315일 동안 수감생활을 해 50일 이후인 오는 2월20일 가석방 요건이 충족된다.

장관·부총리 이어 여당 대표 가세해 군불
다가오는 설날 또는 3·1절 특사 가능성↑

수감 중이지만 가석방 요건을 채우지 못한 대기업 오너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12년 7월1일 구속됐지만 신장 이식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되면서 총 수감기간을 114일 채우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이 계속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면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회장 사건은 아직 대법원 선고 전이다. 이 회장은 아직까지도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질병을 이유로 각각 보석과 형집행정지를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수감기간이 가석방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 불구속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 회계분식 혐의로 270일 가까이 수감된 상태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가석방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가석방 요건이 안 된다. 4만명에 이르는 CP 사기 피해자들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지난해 9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불기 시작했다. 당시 황 장관은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에 최 경제부총리는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힘을 실었다.
 

재계는 기업인 가석방이 자칫 국민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을 가능성을 염려하면서도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 경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 창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실질적 결정권자인 오너들의 경영일선 복귀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기업인들이 지나치게 엄정한 법 집행으로 역차별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정부가 경제살리기 정책을 펼치고 있고 경제민주화 기조가 바뀌어 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 가석방은 선행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너가 부재 중인 주요 대기업들은 투자가 줄줄이 중단되고 신년 경영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아픔을 겪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2011년 6조606억원이던 그룹 투자 규모가 2012년 4조9283억원으로 쪼그라 들었으며 계열사인 SK E&S와 SK텔레콤이 추진했던 STX에너지와 ADT캡스 인수·합병 건이 중단됐고, 태양전지 사업과 연료전지 개발 사업도 도착상태다.

오너 부재 기업
투자 줄줄이 중단

CJ그룹 역시 총수 부재로 시련을 겪고 있다. CJ대한통운의 물류터미널 거점 마련을 위한 충청 지역 2000억원 투자 계획은 전면 보류됐고, CJ CGV의 해외 극장 사업 투자와 CJ오쇼핑의 해외 인수합병도 중단됐다. CJ제일제당이 추진하던 베트남·중국 업체와의 생물자원 사업과 관련한 인수합병도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들었다.

태광그룹도 마찬가지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매출은 2011년 3조5000억원에서, 2012년 2조8100억원, 2013년 2조5196억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신사업 개발과 신규시장 개척 등도 답보상태다.

이런 가운데 김승연 회장이 복귀한 한화그룹은 요즘 한 마디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김 회장은 계열사 등기임원이나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데 제약은 있지만 이미 경영에 복귀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매일 출근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본사에 나와 사업개편을 이끌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인수하고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이 합병하는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김 회장의 복귀 전까지 한화그룹은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며 공백 메꾸기에 나섰지만 투자와 경영전략 등 현안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서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상 신호가 감지되어 왔다. 김 회장이 복귀하자마자 달라진 한화그룹의 모습에 재계에 부는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지난 12월 초 발생한 '땅콩 회항 사태'는 여론을 급반전시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월5일 대한항공 항공기 일등석에 앉아 있던 자신에게 기내식 서비스로 땅콩을 봉지째 내온 승무원에게 화가 나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을 지시하고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된 것.

복귀한 김승연
활기 띄는 한화

여론을 반영한 듯 연말 시행된 성탄절 기념 가석방 명단에는 기업 총수가 빠졌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수형자는 614명. 형기의 80~95%를 채운 모범수 중간처우자(26명), 외국인 수형자(24명), 중증질환 환자(21명), 10년 이상 장기수(8명), 고령자(8명), 소년수(1명) 등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이날 "통상 절차대로 실시한 것"이라며 "대상은 행형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고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나 특이 신분자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은 최 부총리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한 언론에 "일반인들도 일정 형기가 지나면 가석방 등을 검토하는 것이 관행인데, 기업인이라고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기업인들의 가석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 드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최근 "경제가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당초 기업인 가석방에 부정적인 입장이던 이완구 원내대표도 입장을 바궈 "경제살리기 측면과 함께 국민대통합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가석방 문제에 관해) 야당과 협의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가석방을 제안하고 나섰다.

동아줄 기다리는 간절한 범털들
모범 수감생활 최태원 회장 유력

재계는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2월 설 연휴 또는 3·1절 등 가석방 시기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등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나마 지키는 몇 안 되는 공약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며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고, 비리 기업인에는 더 엄격히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도 "재벌총수가 형기를 마치기 전에 나오면 경제가 활성화가 된다는 말인지 김무성 위원에게 묻고 싶다"며 "기업인의 가석방이 경제활성화를 가져온다는 구체적인 근거나 통계가 있는지 최경환 부총리께 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의견은 갈리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고위공직자나 기업인을 우대 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며 기업인 가석방을 찬성했고 이석현 비상대책위원도 "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기업인이라고 해서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민생사범+재벌
'물타기 작전?'

기업인 가석방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생계형 민생사범까지 포함해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서청원 의원은 "기업인 가석방 문제를 제기하려면 민생사범도 같은 법의 잣대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이 원내대표도 "경제도 살려가며 국민대통합이라는 명제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의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야당은 '물타기 작전'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생사범과 재벌을 묶어 같이 풀자고 물타기 하는 수법은 비겁하다"며 "재벌만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신사다운 행동일 것입니다"고 비난했다.

불거지는 가석방 논란과 관련,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라며 선을 그은 상태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석방·사면' 기대조차 못하는 총수들
"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다"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인 가석방과는 달리 사면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형을 전부 또는 일부 소멸시키는 일을 말한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며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며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포함해 특정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며 형이 확정돼 집행에 들어간 경우를 전제로 한다.

가석방 외에 기업인 사면이 실시되면 대기업 총수 중에는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켰거나 앞두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을 제외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유일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아 현재 집행유예 중이다.

김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을 완수하고 지난 11월부터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로 출근하고 있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이기 때문에 ㈜한화 대표이사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된 사람이 임원을 하면 화약류 제조업 허가가 취소되며, 사업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집행유예 기간을 모두 마친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한다는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규정 때문이다.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지난 4월 배임과 횡령 혐의로 1심 판결에서 징역 6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인 강덕수 전 STX 회장은 사면이나 가석방을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기성 회사채(CP) 발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현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 공판이 진행 중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상고심에서 재판이 계류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의 대상이 아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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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