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아청법 '앞과뒤'

“미성년 야동 받으려던 게 아닌데…” 졸지에 성범죄자 낙인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뒤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만화를 그려 배포하면서 아청법의 맹점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한 번의 클릭으로 단순히 파일만 잘못 다운로드받아도 아동음란물 배포자로 기소돼 멀쩡한 청년이 성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유명 웹툰작가 ‘마사토끼’가 의도치 않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마사토끼는 웹툰 작가답게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했다. 아청법 제도의 모순점을 생생하고 재치 있는 모습으로 지적한 것이다.

껍데기 까보니
엉뚱한 알맹이
 
지난달 28일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마사토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화가 겸 스토리 작가 양찬호(30)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masaruchi) 등에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라는 8편짜리 웹툰을 연재했다. 이 웹툰에 따르면 앞서 마사토끼는 지난 9월 경찰로부터 아청법상 아청법을 위반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문제의 사건을 떠올려 만화로 구성했다.
 
웹툰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어느 날 갑작스레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소지·음란물제작·배포 등)’ 그는 불안한 마음에 만화가 인생이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다. 자신을 성범죄자로 인식할 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마사토끼는 이 일을 평생 비밀로 안고 살아가려고 결심하던 찰나, 자신이 겪은 일을 만화로 정리하고자 결심했다. 이내 마사토끼는 불안했던 자신의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냈다. 자신과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라는 공익적인 목적도 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선 그는 출석요구서가 날라온 부산의 모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해당 서는 그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해줬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마사토끼는 P2P(peer to peer) 프로그램으로 한 파일을 공유했다. 경찰은 서울에서 조사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반성문을 써가면 좋다는 팁까지 알려줬다. 큰일이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이후 마사토끼는 자필로 준비한 반성문을 들고 인근 경찰서 사이버수사과를 찾았다. 분위기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날카로운 조사도 없었다. 그저 그가 다운로드 받은 영어와 숫자로 된 파일명을 알려줄 뿐이었다. 마사토끼는 파일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초 구체적인 파일명이 아닌, 검색어를 통해 다운로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파일 안에는 일본 여학생 나체사진이 가득했다. 에로 셀카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사실 마사토끼는 에로만화를 보기 위해 P2P 내에서 검색을 하던 중 특정 단어를 검색, ‘요정전설’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발견했다. 이 파일에는 만화 권수마냥 넘버링까지 붙어있었다. ‘요정전설 1, 요정전설2…’. 마사토끼는 이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파일은 클릭과 동시에 배포가 시작됐다.
 
마사토끼가 아청법 위반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받았던 파일의 제목과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요정전설’을 다운 받은 뒤 재생시켰지만 정작 요정과 전설과 관련된 내용물은 없었다. 아동 음란물이 나왔던 것이다. 당황한 그는 해당 파일을 즉시 삭제했다. 그러나 파일을 내려받는 즉시 업로드를 하게 되는 P2P 특성상 아동 음란물을 배포한 파렴치범이 된 것이다. P2P에서는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충격이 더했다.

클릭 잘못했다가…
성범죄자로 등록
 
마사토끼는 가짜 파일에 속은 뒤 곧바로 다른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그가 아동 음란물을 다운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사토끼는 결국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했고 며칠 뒤 사건 관할서가 서울로 옮겨졌고 검사가 배정됐다는 우편을 받았다. ‘마사토끼가 아청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 팬에 의해 그의 아동 음란물의 정체, 정확한 파일명이 ‘요정전설 13세의 성노예’인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토끼는 해당 웹툰을 통해 자신의 사례뿐 아니라 논란이 되는 아청법의 비현실적인 부분도 짚었다. 일례로 아청법은 아동이나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배포하거나 소지한 경우도 처벌하게 돼 있는데,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의 아이들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청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면서 “다만 기왕 규제할 것이라면 무엇이 미성년자 대상 범죄의 원인인지 파악해 현실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마사토끼는 비록 실수이긴 하지만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내려받고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마사토끼는 지난 11월28일 법원에서 벌금 200만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4시간 이수, 신상정보 등록 명령을 받았다.
 

유명 웹툰 작가 만화 다운받다가 걸려
카톡 대표 얼떨결에 피의자 신분 소환
  
남일 인 줄 알았던 아청법을 피부로 직접 느낀 마사토끼의 실화를 접한 팬들은 그를 비난하기 보다는 현실과 맞지 않는 아청법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 팬은 “마사토끼는 비난받아야 할 아청법 위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실수한 부분을 무시하고 법전의 글자만을 근거로 입건한 경찰 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청법 관련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인과관계는 어디에도 없다”며 ”아청법은 현실 세계의 아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도치 않게 성범죄자로 몰린 마사토끼 사건의 핵심에는 P2P가 있다. P2P 파일 전송 네트워크는 서버란 개념이 없다. 어떤 사용자가 한 파일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내려 받는 방식이다. 올리는 쪽과 내려 받는 쪽 모두 동시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오디오나 비디오, 데이터 등 임의의 디지털 형식 파일의 공유에 적합한 서비스로 과거부터 꾸준히 사용돼 왔다.
 
이처럼 이용자 간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다 보니 일부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는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P2P에 떠도는 음란물 중 10%가량이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즉 지뢰찾기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콘텐츠를 다운 받고자 검색해서 클릭해도 막상 파일을 실행해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2P는 1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파일공유 서비스다. 어느 정도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그간 큰 문제 없이 수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청법 시행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파일 제목에 낚여 잘못 다운로드 받았다가 수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신상정보 등록 등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기존의 이용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설익은 법…
엉뚱한 화살
 
아청법의 화살은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에게도 향했다. 지난달 10일 이 대표가 아청법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대표는 10일 대전 서구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다음과 합병하기 전 카카오에서 대표로 있을 당시 ‘카카오그룹’을 통해 유포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해 사전에 전송을 막거나 삭제할 수 있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서비스 대표에게 아청법을 적용해 입건한 첫 사례였다.
 
이후 24일 이 대표는 아청법 위반 혐의를 받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말이 많다. 경찰이 이 대표를 검찰에 송치한 법률적 근거는 아청법 제17조 1항이다. 관련법에는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동음란물 배포 안 해도…줄줄이 기소

“본래 취지와 달리 과도하게 집행” 지적
 
이 법에 따르면 이 대표는 카카오그룹에 유통된 자료들 가운데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을 찾아내 즉시 삭제하거나 사전에 이러한 자료들이 이동할 수 없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설익은 법이 멀쩡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아청법을 따르자면 카카오그룹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봐야한다. 그러나 카카오그룹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청법을 실행하면 통비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통비법 제3조에는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정취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감청이란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거나 전기통신의 송·수신을 방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실시간 모니터링은 ‘감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아청법은 ‘사전적 기술조치’를 요구하지만 관련법 시행령에는 구체적인 조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현재 네이버나 다음은 성인음란물에 대해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 같은 수치)’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 기술적으로 음란물 유통을 막고 있다. 온라인 포털 또한 이용약관을 통해 아청법 관련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 감청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법률 간 충돌
과도한 법집행
 

반면 카카오그룹에는 동일한 적용이 어렵다. 통비법 위반 소지도 그렇지만 아청법 11조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즉 아청법에 위반되는 음란물 DB 구축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음란물 이동을 막을 길이 없다.
 
아청법은 지난 2011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던 최형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음란물이 온라인으로 유포될 때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9월15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 이듬해인 2012년 3월16일부터 개정된 아청법이 시행됐다.
 
아청법은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꾸준히 개정됐지만 17조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적 기술조치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통비법과의 충돌도 여전한 상태로 ‘미완의 법’으로 남아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소관부처 간 칸막이가 높아 의견조율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당초 법을 제정할 때 법 간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충분히 검토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교복 성인물’ 판결 보니…
“발육 상태로 성인 판단”
 
음란물에서 교복 입은 인물이 성행위를 하더라도 명백히 아동·청소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음란물의 제작·유포자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부산지법 형사합의 1부는 아청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기소된 채모(46)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만원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동영상 속 여성이 외모나 신체 발육 등에 비춰 아동·청소년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해 성행위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해당 동영상은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번 판결의 발판은 지난 9월에 있던 재판이었다. 당시 박모(34)씨도 앞서 채씨 처럼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해당 성인 동영상에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지만, 외관상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지 않는 만큼 아청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박씨에게 벌금 300만원에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 등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연출된 인물이 음란 행위를 하는 동영상은 일반인에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벌금 300만원과 성범죄 재발방지 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배포·제공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동 음란물 단속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수사당국이나 법원에서 사건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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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