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토사구팽 사연

140억 날릴 판…“매일 피눈물 흘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지하상가에 인생을 받쳐온 한 여성이 있다. 흉물스럽던 지하상가에 80억원을 쏟아 부어 현대화시켰고 다시 60억원을 투자하며 지금까지 역사를 함께했다. 지하상가 어디에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이런 그녀가 빈털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해서다.

성정애 ㈜매스펄 대표가 고속터미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3월 터미널 주변 광고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90년대 고속터미널 주변 옥외광고 및 내부 간판광고는 대부분 성 대표의 손을 거쳤다. 성 대표가 그간 모아놓은 자료 사진만 대형 파일케이스로 10여개에 이른다. 그의 자료만 봐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기업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인생사
하루 아침에…

성 대표에게 고속버스터미널 측이 임대사업을 제안해 온 것은 98년 초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하차장은 화훼상가로 운영돼 오다가 95년 6월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안전불감증이 불거지자 서초구청이 상가 허가를 취소한 상태였다.

화재예방설비는 물론, 환기시설, 전기시설이 낙후돼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성 대표는 ㈜화룡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98년 8월 고속버스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뒤 하차장 상가 1000여평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돌입했다.

공사 규모는 컸다. 워낙 제반시설이 부족해 50억원 정도의 비용이 시설비로 지출됐다. 1년 뒤 하차장 상가는 전국 각지 특산물을 판매하는 팔도 특산품 상가로 문을 열었다. 팔도 특산품 상가는 고속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주판매품인 전통가공식품협회 제품에서 중국산 소금과 염료 사용이 검출됐고, IMF까지 터지면서 오픈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성 대표는 30억원 이상의 시설을 보충해 '수입명품 및 귀금속 상가'로 전환, 오늘에 이르렀다.

성 대표의 ㈜매스펄과 고속터미널 사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8일 최병용 이마트 비식품매입본부 생활가전담당이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부터다.

신세계그룹은 고속터미널 호남선과 경부선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신세계는 2012년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 등을 소유한 센트럴시티 지분(60.02%)를 사들였고 이듬해 센트럴시티는 고속터미널 지분 38.7%를 인수했다.

2012년 5월1일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과 점포 임대차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조건을 ㈜매스펄이 승계하는 내용으로 임대보증금 10억원에 월 임대료 700만원,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제집처럼 가꿔온 사업장서 쫓겨날 위기
터미널 "임대료 체납해 봐줄 수 없다"

계약 후 성 대표는 2012년 8월부터 10월까지 15억원의 비용을 들여 매장을 소형점포 300개로 리모델링공사를 했고, 분양이 미진해 올해 3월부터 4월, 다시 20억원을 들여 소형점포를 합쳐 개방형점포로 하고 출입문을 6개로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반복하는 동안 임대료는커녕 관리비까지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30일 최 대표 명의로 내용증명 한통이 날아들었다.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가 체납되는 등 계약조건을 준수하지 않아 당사(고속터미널)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재차 통보하고 5월20일까지 미수금 전액을 납부해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고속터미널은 건물 및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매체광고를 일체 금하고, 만일 지속할 경우 계약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매스펄이 진행하고 있는 분양광고가 제3자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이를 양지하기 바라며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지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하차장 상가 출입문 6곳에 일제히 붙기 시작한 때는 내용증명 발송 불과 하루 뒤인 지난 5월1일이다.

고속터미널은 공고문을 통해 "당사 소유 하차장 지하 대형1호는 당사에서 ㈜매스펄에 '12년 5월1일부터 '17년 4월30일까지 임대한 임대점포로 소유권을 분양할 수 없는 점포"라며 "최근 ㈜매스펄이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한 경영주 모집광고에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바, 이에 제3자의 피해가 없도록 공고하오니 소유권 분양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제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성 대표와 하차장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던 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분양이 돼야 임대료가 발생하고 그 임대료를 고속터미널에 납입해야 계속 상가를 운영할 수 있던 터라 분양을 막는 공고문은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 대표가 고속터미널로부터 하차장 상가를 임대하고 이를 상인들에게 재임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른바 '전대차 계약'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수백~수천만명을 넘는 강남, 잠실 등의 지하상가는 서울 대표적 노른자위 중 하나다. 한정된 점포라는 점을 악용해 가게 주인이 뒷돈을 챙겨 재임대를 해주는 전대차 계약이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입은 소·영세상인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 적도 있다. 

전대차 명백한 불법
㈜매스펄은 '다르다'

㈜매스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98년 고속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운영을 시작하면서 ㈜매스펄은 '임대분양'이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를 써왔다. 남대문·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시설비와 개발비를 낸 상인들을 등기분양자와 달리 임대분양자로 표현한다. 상인들은 임대분양자에게 전전대자로 임대분양자의 투자비를 이자 지급형식으로 월세로 전대하는 경우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스펄은 지난 18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을 해왔지만 이제 와서 고속터미널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게 성 대표의 주장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지 2주 만에 답변을 보내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성 대표는 내용증명을 통해 "당사가 쓰고 있는 임대분양계약서는 귀사의 고문변호사의 조정을 받은 계약서이고 임대분양계약서로 인해 17년 동안 한 번도 귀사에 피해를 준적 이 없다"며 "공고문 부착 등은 당사의 영속성 문제 등 사업적으로 많은 장애가 되니 상의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2014년 7∼8월을 목표로 상가를 오픈해 밀린 임대·관리비를 지불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침몰사고로 경기 및 소액투자가 위축돼 개점지연 문제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자금사정을 겪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밀린 임·관리비를 납부하려 하니 영세소상인과 소액투자자와 당사의 사정을 감안해 한 번 더 분할해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를 비웃듯 고속터미널은 한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냈다. 내용증명을 보낸 지 정확히 44일만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대기업에 힘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작정 임차인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속터미널 측에 따르면 명도소송의 이유는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다. 고속터미널이 성 대표에게 보낸 내용증명에 따르면 ㈜매스펄이 올해 4월30일까지 밀린 임대료는 2억5900여만원(32개월치), 관리비 1억9500여만원(26개월치)에, 지연이자 2억1300여만원 등 총 6억6700여만원이다.

4월8일 신임 사장 취임
4월30일 내용증명 발송
5월1일 공고문 부착 시작
6월13일 명도소송 제기


㈜매스펄과 고속터미널간 점포 임대차 계약서 '임대차계약 특수조항' 제6조(임대료외의 제비용)를 보면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의 시설공사 및 임대분양기간 등 영업정상화 기간을 고려, 계약체결일로부터 5개월간 ㈜매스펄의 관리비 부과를 면제하고 6개월부터 12개월간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부과하며 이후 정상부과하기로 했다.

제10조(임대료 및 제경비의 체납) 항목에는 '임대료, 제경비, 기타 금전채무를 체납한 경우 체납액의 10%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가산 납부하고 체납액 및 연체료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해당월을 초과한 경우에는 매월 체납금액의 연 24%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추가납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임대료 및 제경비를 2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고속터미널은 동 금액을 보증금에서 공제 대체하고, ㈜매스펄이 15일 내에 현금으로 보증금을 충당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속터미널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용증명과 계약서간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이 규정이다. ㈜매스펄과 고속터미널이 계약을 체결한 지점은 2012년 5월1일. 내용증명이 보내진 시점은 이로부터 정확히 2년(24개월) 뒤다. 이에 따르면 ㈜매스펄이 계약 체결 후 임대료를 밀렸다면 24개월 분만 책정되어야 하며, 관리비 면제 규정에 따라 관리비는 19개월분만 계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내용증명 상 체납된 금액은 ㈜매스펄이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 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계약시점 이전 금액까지 합산된 금액"이라며 "명도소송 소장에는 계약기간 이후 체납금액만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해 밀린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원천 차단했다"며 "직원을 동원해 출입문을 막고, 터미널 이용객들의 출입을 방해하는 등 영업방해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이 서면으로 공사요청을 하면 문서로 승인하지 않고 항상 구두로 승인했다"며 "이 점이 재판 내내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주)매스펄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증금도 입금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고속터미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계속해서 내지 않고 있는 임차인과 계약을 지속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증거자료
재판 영향 있을까?

이 관계자는 또 "영업방해와 관련한 부분은 ㈜매스펄에서 형사고소를 진행했지만 무혐의 결정이 난 상태이고 미승인 공사 진행과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모두 해명을 한 상태"라며 "재판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선고를 약 20여일 앞둔 현재 성 대표는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매스펄 직원과 고속터미널 직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찾아냈기 때문. 성 대표가 공개한 대화에는 ㈜매스펄 직원이 공사 진행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고, 고속터미널 직원은 '수고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고속터미널이 ㈜매스펄이 진행한 하차장 상가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다는 얘기. 이 증거자료는 추후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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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