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재난 컨트롤타워 맡은 박인용

군인에 국민 안전을?…믿고 맡겨도 될까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조직을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난안전 체계 강화를 위해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앞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게 될 이 조직의 수장으로는 박인용 전 합참차장이 내정됐다. 흩어져 있는 조직을 한 데 뭉치기 위한 리더십 발휘가 시급해 보인다. 새 간판이 새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재난안전체계 강화와 공직개혁 등을 위해 이번에 신설한 장관급 국민안전처 장관에 박인용 전 합참차장을 내정했다. 이날 인사발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직후 이루어졌다. 범정부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에 해상·합동작전 전문가인 군인 출신이 투입된 것이다.

해상작전 전문가
“폭넓은 식견 보유”
 
민병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인용 신임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 배경에 대해 “일선 지휘관 및 인사와 전략, 교육 등 다양한 직책을 경험하며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고 폭넓은 식견을 보유하고 있어 범정부적인 재난 관리 컨트롤타워로 발족하는 국민안전처를 이끌 적임자로 기대돼 발탁했다”고 말했다.
 
19일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조직 정비와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간판 아래 여러 조직이 합쳐지는 만큼 화학적 통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안전처는 여전히 어수선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이 부처는 정부서울청사 일부(1·5·8·11·13·19층)와 인근 이마빌딩을 업무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다. 해양경비안전본부 조직은 인천 옛 해양경찰청 청사에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 등 일부 간부 사무실이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됐다. 재난 현장 대응이 강조되다 보니 국민안전처 조직 역시 전국에 점점이 퍼져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업무 통합 미비로 연결될 여지가 많아 박 내정자의 통합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마빌딩에는 안전정책실과 특수재난실이 입주해 있다. 이날 오전에도 국민안전처 공무원들이 분주히 광화문광장을 가로지르면서 신설부처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국민안전처는 옛 안전행정부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등이 통합돼 만들어졌으며 1만375명 19국 62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중앙부처 중 인적 규모 면에서 경찰청,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국세청 다음으로 큰 규모다.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를 두고 안전관리와 방재 기능을 각각 이어받은 안전정책실, 항공·에너지·화학·가스·통신 등 특수 재난에 대응하는 특수재난실 등으로 구성됐다.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의 본부장은 각각 소방총감과 치안총감이 차관급 본부장을 맡아 인사와 예산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또한 정부는 현장대응능력을 강화히기 위해 육상의 ‘119수도권지대’를 ‘수도권119특수구조대’로 확대개편하고 ‘영남119특수구조대’를 신설했다. 충청과 강원·호남 지역의 경우 2015년 이후 동일조직이 생길 예정이다. 해상의 경우도 남해해양특수구조단을 중앙해양특수구조단으로 확대개편하고 2015년부터 동해특수구조대를 신설한다. 이 밖에 현재 해경의 수사·정보기능은 경찰청으로 이관되고 해상사건의 수사·정보기능은 해양경비안전본부에 남는다. 대규모 재난 때는 국무총리가 중앙대책본부장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민안전처의 경우 분산돼 있던 조직이 합쳐진 만큼 하루빨리 조직원 간 화학적 통합을 이루고 지휘 체계를 확고히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내정자는 해군 예비역 장군으로 현장점검을 최우선시하는 현장형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 작전사령관 재임시 “참모들은 말로만 하지 말고 계획과 지시사항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현장에서 늘 점검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알려진다. 어떤 일이든 철저히 계획한 뒤 실행에 옮기는 신중한 성격이란 평가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두터운 덕장 스타일로 전해진다. 
 
4성 해군 제독 출신 “점검 또 점검”

작은 부분도…신중한 현장형 지휘관
 
특히 박 내정자는 임관 이후 매일 108배를 올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지휘관으로 새 조직을 맡으면 3개월 안에 상황을 장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도보정진에 나서 지금까지 2000km를 걷기도 했다. 청와대는 박 내정자가 2008년 3월 전역 이후에도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 온 사실까지 검증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들은 “전역 이후 방산업체에서 여러차례 영업 제의를 받았지만 ‘내가 왜 그런 자리에 가느냐’며 고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큰 틀뿐만 아니라 작은 부분도 간과하지 않는 치밀함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예편한 뒤 동해대학교 군사학과와 충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해온 그는 평소 학생들에게 “벼룩의 간을 분석한다는 심정으로 학업에 임하라”는 충고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만큼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 내정자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 국민안전처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직 장악과 관리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특히 박 후보자의 오랜 해상작전 수행능력이 국민안전처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대안전처?
죄다 군 출신
 
그는 해군 인사참모부장과 제3함대 사령관, 해군 교육사령관, 작전사령관 등 해군 작전·인사·교육·조직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다. 합동참모차장을 거쳐 지난 2008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하지만 박 내정자가 군 이외 조직을 이끌어온 경험이 없고 재임시 큰 사안이 발생하지 않아 실제 위기관리 능력을 점검받지 못했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번 인사개편을 두고 초대 장·차관이 모두 군 출신이 기용된 데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군의 장점인 일사분란함과 신속한 대응체계 구축에는 효율적이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재난 발생에 유연한 대응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여야는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여당은 ‘기대’ 야당은 ‘우려’를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실무형 인사” “인사혁신” 등의 표현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가안전 시스템 강화와 공직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전문성을 높인 실무형 인사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해상합동작전 전문가인 박인용 신임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과 아덴만 여명작전을 기획한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기용을 포함한 재난안전부서 인선은 제2의 세월호를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설된 인사혁신처장에 민간기업 출신을 발탁함으로써 공직인사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마인드를 접목시켜 강도 높은 인사 혁신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군 장성 일색의 인사개편에 대해 “상식 이하의 인사” “군대안전처”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한 마디로 안보와 안전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식 이하의 인사”라고 혹평했다. 이어 “국민안전처를 군출신 인사로 포진시켰다. 국민안전처 장관에 내정된 박인용 전 합참 차장은 4성 해군 제독 출신이고, 차관에 내정된 이성호 안행부 2차관은 3성 장군 출신”이라며 “청와대를 군인 출신으로 지키는 것도 모자라 국가안전도 군인들에게 맡기겠다니 군인 일색으로 대한민국을 채울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군 외 조직 이끈 경험 전무

실제 위기관리 능력 ‘글쎄∼’
 
박 대변인은 “김영삼 정부 이후 군의 문민통제가 강화되어왔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군인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해양 경비를 맡을 해양경비안전본부장에 홍익태 경찰청 차장을 내정한 것은 해경 조직의 반발 및 조직 통솔의 어려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사혁신처장에 이근면 삼성광통신경영고문이 내정된 것과 관련해 “기업과 관료조직의 인사시스템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공직사회의 인사혁신에 적합한지는 역시 의문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방위사업청장에 임명된 장명진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이 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실인사로 국민에게 호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그간 여당의 무성의로 지지부진했던 방산비리 국정조사와 방위사업법 개정을 추진해야할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은 19일 <한수진의 SBS전망대>와의 전화인터뷰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장관은 별이 4개이고, 차관은 별 3개 출신인데 이른바 별 7개, 북두칠성이 국민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되고요. 특히 군 작전개념만으로 국민 안전을 다룰 수 있다는 그런 판단은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 역시 군인 출신의 국민안전처 인사에 대해 “국민안전처인지 군대안전처인지 알 수 없는 인사이고 국민 안전을 군대에 맡기는 격으로 매우 우려스럽다”며 “청와대가 군 출신 인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장관도, 차관도 군 출신”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한 불안한 조직에 편향적 인사가 더해진 격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박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다음달 4일 진행된다고 밝혔다. 여야는 박 내정자의 자질문제를 철저하게 검증할 예정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재난상황 발생시 현장의 즉각적인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을지 여부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경실련 주최로 열린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토론회에서 “1990년대 이후 국내 주요 재난 소관부처를 분석한 결과 1차 소관부처가 대부분 광역·기초단체였다”면서 “재난대응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대책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의 안전 전문인력의 채용 규모도 중요한 부분이다. 국민안전처가 안전 전문가 집단이 되려면 민간의 안전전문가 채용은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가 어느 정도의 민간 전문가를 채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는 제복 일색으로 지휘부가 구성된 상태다.
 
일반 행정인사들과 해경·소방직 등 특수직의 조직 융화도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꼽힌다. 기존 조직의 문화에 상당부분 차이가 있어 안전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이들 간 융화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문제도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한 상태다. 

조직 다잡을
리더십 절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단계적인 국가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명시하지 않았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관 등이 경기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국가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재설계에 관한 탐색적 논의’라는 논문에서 국가안전처가 출범하면 7000∼8000명의 해경보다 전국의 3만5000여 명의 소방공무원이 더 큰 규모일 수밖에 없어 소방공무원의 국가공무원 전환요구가 매우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khlee@ilyosisa.co.kr>

 
[박인용은?]
 
▲경기 양주 출생
▲경희고 졸업
▲해군사관학교 28기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해군 인사참모부 부장
▲해군 제3함대 사령관
▲해군 교육사령관
▲해군 전투발전단 단장
▲해군 작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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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