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명장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사자들 조련 “쉽지 않았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연거푸 제패하면서 통합우승 4연패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일궈낸 적이 있지만 그 중 정규시즌 우승은 한 번 뿐이었다. 삼성, 그리고 류중일 감독이 만들어낸 통합 4연패는 그 의미가 깊다. 명장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류중일 감독이 사상 첫 통합 4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11-1로 완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삼성은 2011시즌 이후 4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며 통합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프로야구
새 역사 썼다
 
류 감독은 경기를 끝낸 뒤 “기분이 굉장히 좋다. 11월11일은 평생 못 잊을 거 같다. 1이 네 개라 1등을 네 번 하는 날”이라며 “삼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성원해준 덕분에 선수들이 힘을 내서 4연패를 할 수 있었다. 팬 분들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동안 ‘용병 잔혹사’를 겪은 삼성은 올 시즌 마운드에서는 밴덴헐크와 마틴, 타선에서는 나바로의 덕을 제대로 봤다. 이에 류 감독은 “올해는 용병 덕을 봤다. 그동안 용병 복이 없었는데 올해는 마틴, 헐크, 나바로가 잘 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류 감독은 “시리즈 MVP는 나바로인테 혹시 추천하고 싶은 선수가 있냐”는 질문에 “윤성환을 추천하고 싶다. 첫 게임에서 지고 작년처럼 홈에서 두 번 지면 어떡하냐 했는데 윤성환이 잘 막아줬다”며 “5차전도 극적으로 이겼지만 내일까지 갔으면 밴 헤켄에게 말려서 우승 놓칠 수도 있었는데 윤성환이 잘 끊어줬다”고 대답했다.
 

류 감독은 덕장이라는 말 보다는 지장이라는 소리를 더 듣고 싶어 했다. 그는 “(지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우리 그룹에 ‘스타비스(통합전략 야구정보시스템)’라고 타자와 투수 정보가 다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걸 틈나는 대로 많이 봤고 상대 선발 투수 유형도 보고 컨디션 좋은 타자들도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 앞으로 늘 공부해서 내년 5년차도 우리 선수들을 알고 더 잘 대처하겠다. 상대 전력도 더 파악해서 선수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우승했던 것과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는 “지금이 더 좋다. 지난 것은 다 잊어버린다”며 “항상 지금이 가장 기분 좋다. 올해는 좀 개인적으로 조금 기가 많이 빠졌었다. 아시안게임도 힘들게 했고, 그때 금메달 못 땄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도 들고, 우리가 매직 넘버를 남겨두고 5연패해서 2위로 떨어질까도 걱정했다. 신경을 많이 썼다. 다행히 정규리그에서 4연패하고 약 보름 이상 훈련을 많이 했는데 생각 외로 여러 가지 작전 야구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편하게 야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년을 걱정했다. 류 감독은 “내년에도 최선을 다 하겠다“며 5연패 프로젝트 가동을 예고했다.
 
사상 첫 통합우승 4연패 쾌거 달성
2011년부터 정규·한국시리즈 우승
 
류중일 감독은 프로야구 사상 첫 통합 4연패를 이끌었다. 류 감독은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임명된 이후 4년 모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운과 복이 따르는 지도자라는 얘기도 돌았다. 세간에는 선동열 전 감독의 성과가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통합 4연패는 감독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성적이다. 리더의 지도력과 열정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기록은 구단과 선수뿐 아니라 야구인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록이다. 과거 ‘왕조 해태’와 현대, SK 등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최강팀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는 스스로 운장, 복장, 덕장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BB아크’라는 야구사관학교를 만든 그는 올 시즌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은 박해민을 비롯해 이지영·심창민 등의 성장을 유도하며 세대교체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류 감독은 믿음야구의 선구자다. 그의 야구는 신뢰가 중심이다. 이승엽과 임창용 등 베테랑 선수가 부진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박한이는 “감독님은 베테랑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준다.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도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넥센과의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박석민과 김상수가 부진했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믿어야지 우야겠노”라며 6경기 모두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감독의 믿음이 선수단에게 용기가 되어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류 감독을 얘기할 때 ‘형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13일 구단 시무식에서는 1·2·3군 코칭스태프 회의를 소집해 3시간 여의 마라톤 회의를 했다. 1월 초 류 감독이 마련한 1박2일 골프 및 워크숍에 참석한 한 코치는 유익한 시간이라고 반기기도 했다.

푸르게 빛난
신뢰의 리더십
 
의견을 주고받을 때는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감독을 무서워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그만큼 열린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다고 전해진다.
 
물론 언제나 유한 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강하게 몰아붙이며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시즌 초 “올 시즌에는 엄마 리더십을 갖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면서도 무서운 사람이 엄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4승8패로 부진하던 지난 4월17일 대구 두산전이 우천 연기된 뒤에는 비 내리는 그라운드에서 투수·타자 합동 러닝을 지시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 5연패에 빠졌을 때에는 아직 1등을 확정한 게 아니라고 했고, 2승2패로 KS 5차전을 앞둔 휴식일에는 “후회없이 하자”며 전원 훈련을 유도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선수들을 소집해 독려한다.
 
류 감독은 “우승하고 환호하고 헹가래 받고 인터뷰가 끝나면 ‘아,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5연패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큰 과제가 있다. 바로 ‘노령화’ 문제다. 삼성은 노장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진갑용은 올해 40세이며 이승엽과 임창용은 내년에 39세, 박한이는 36세, 배영수와 윤성환은 34세, 채태인은 33세가 된다. 신·구의 조화를 꾀하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지만, 삼성 노장들의 존재감이 무겁기에 세대교체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도 크다. 내년부터 KT가 1군 무대에 진입하면서 10개 구단 체제가 가동된다. 새 감독이 5명 등장한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삼성 외에도 걸출한 FA가 여럿 시장에 나온다. SK는 최정(27)을 포함해 6명, 롯데는 4명, LG·KIA·넥센은 2명씩 FA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 FA의 이동은 내년 시즌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류 감독 리더십은 이러한 요소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기에,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류 감독의 야구역사가 곧 삼성야구의 역사다. 류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를 졸업하고 1987년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 처음 출전했지만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버티고 있는 해태에 4전 전패를 당해 잠실구장을 밟지도 못했다. 김재박 이후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신인왕의 영광고 빙그레 이정훈에게 내주고 말았다.
 
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LG트윈스에게 4전 전패를 당했다. 잠실구장에서 2번, 대구구장에서 2번을 모두 지는 치욕을 겪었다. 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또 해태를 만났다. 삼성은 4차전까지 앞서고 있어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삼성은 잠실구장에서 열린 5, 6, 7차전에서 내리 3연패를 당했다. 이렇듯 선수시절 류 감독에게 잠실구장은 암흑 그 자체였다. 류 감독은 한국시리즈 기간 “선수로서 원 없이 우승해본 박한이가 부럽기도 하다”라며 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류 감독은 4연패도 선수시절의 한을 풀었다.
 
지도자 후 선수시절 한 풀었다
취임 후 한번도 우승 안 놓쳐
 

류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 이후 2000년 곧바로 김응용 감독 밑에서 수비 및 작전주루 코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명암이 교차됐다.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2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이때 김응용 감독의 ‘불패신화’가 깨졌고 류 감독은 또 땅을 쳐야했다.
 
2004년 한국시리즈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 내리는 날 잠실에서 사상 처음으로 9차전이 열렸다. 삼성은 현대에게 패해 2승3무4패로 패권을 내줬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5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선동열 감독 시절 류중일 코치는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잇따라 축배를 들었다. 2005년에는 두산에 4전 전승을 거뒀고 2006년에는 한화를 4승1무1패로 따돌렸다.
 
당시 류 감독은 코치로서 11년간 엄청난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감독이 될 자격을 하나씩 갖췄다. 현재 삼성야구의 근간 중 하나인 촘촘한 수비 역시 류 감독이 코치시절 확립한 수비시스템이 보완돼 발전한 것이다.
 
류 감독은 선수와 코치로 국내 최고 감독들을 전부 다 모셔봤다. 그 중에는 김응용, 김성근, 선동열 등 내놓으라 하는 명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류 감독은 언젠가 그 감독들의 좋은 점만을 본받은 게 지금 감독 생활을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응용 감독의 뚝심과 김성근 감독의 철두철미한 마운드 운영 등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들은 확실히 참고할 점이 있다. 류 감독을 그걸 포용하는 매우 중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에 4전 전패를 당하자 선동열 감독이 경질되면서 류 감독이 마침내 삼성 유니폼을 입은 지 24년만에 사령탑에 올랐다. 류 감독은 준비가 돼 있었다. 믿음과 신뢰, 확실한 선수육성 및 관리 시스템으로 승승장구했다. 감독으로 처음 나선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과거 삼성 선배였던 이만수 감독이 이끄는 SK를 4승1패로 제압했다. 5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초보감독으로 영광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도 SK 이만수 감독을 상대로 잠실에서 2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당시 류 감독은 우승 직후 “2010년대는 삼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담은 그대로 적중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을 꺾었고, 2014년에는 넥센을 맞아 잠실에서 4승2패로 4회 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류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 삼성은 4번의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했다. 3번은 잠실구장에서, 1번은 대구구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류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잠실만 오면 잘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삼성은 대장정의 마침표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이처럼 지난 4년 간 실패를 몰랐던 삼성이지만, 최근 2년간 부상, FA, 해외진출 등으로 팀 전력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매뉴얼에 따라 플랜B를 적시에 가동했다. 지난 2년 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안게임으로 잠시 삼성을 돌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류 감독 개인의 성장이 곧 삼성의 성장이었다. 류 감독이 최고의 유격수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올라서는 동안, 만년 우승문턱에서 주저 않았던 삼성야구도 우승을 밥 먹 듯하고, 한국야구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리딩구단으로 거듭났다. 류 감독 스스로가 최고의 리더가 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류 감독이 강한 리더로 거듭나면서 삼성야구도 강력해졌다.

쉬지 않는 야통
내년 5연패 시동
 
류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감독을 맡고 있는 올 시즌까지 28년간 삼성에서 뛰었다. 삼성야구에 류중일 감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류 감독과 삼성은 함께 성장했고, 새 역사를 창조했다.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는 삼성야구의 업적임과 동시에 류 감독이 일궈낸 업적이기도 하다. 그의 뜨거운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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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