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죽은 사람이 지분을 갖고 있다. 세상을 뜬지 22년이나 흘렀지만 주주명부에 떡하니 이름이 올라있다. 의도적일까, 단순히 실수일까. 아니면 무심해설까. 대림산업의 '유령주주' 미스터리를 풀어봤다.
대림산업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열고 주당 보통주 100원(2%), 우선주 150원(3%)의 현금배당안 등을 통과시켰다. 배당금 총액은 40억5000만원. 이에 따라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부회장(보통주 0.47%·우선주 0.18%)은 1700만원을, 차남 이해승(0.22%·0.03%)씨와 3남 이해창 부사장은 각각 800만원을 받았다.
배당금 어디로?
그런데 배당금을 챙길 대림산업 주주명단을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망자'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고 이재형 전 국회의장.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전 의장은 대림산업 주식 744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사망한 고인이 이번에 배당금으로 7만4400원을 받게 된 것이다.
1914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이 전 의장은 고 이재준 창업주의 손위 형으로, 이 명예회장의 큰아버지다. 이재형-이재준 형제는 각각 정계와 재계에서 서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대림산업은 이 전 의장이 자유당·공화당 시절 야당에 몸담아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주 곤욕을 치렀다. 이 전 의장은 상공부 장관(1952∼1953년), 국회의장(1985∼1988년) 등을 역임한 7선(1·2·4·5·7·11·12대) 의원으로 1940년대 후반부터 40여년간 정계에서 활동했다. 노태우정부가 시작된 이후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 은둔하다 1992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지모와 야성, 해학을 겸비한 이 전 의장의 주변엔 항상 파란과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며 "기업을 이끈 동생들과 상부상조할 수 있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항상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유명을 달리한 총수 친인척이 소유하던 지분은 상속 또는 매각 등의 방법으로 정리되기 마련이다. 유가족이 못 챙기면 회사 차원에서 처리한다. 대림산업의 경우 20년 이상 망자의 지분을 그대로 두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른바 '유령주주'를 두고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대림산업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이 전 의장이 주식을 소유하게 된 과정이다. 그는 대림산업이 공시를 시작한 1998년 이전부터 지분을 갖고 있었다. 동생 이 창업주로부터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2년 전 별세한 창업주 형이 주식 보유
죽었는데 주주명단에…의문·뒷말 무성
당초 744주보다 더 많았다. 보통주 2920주, 우선주 642주를 소유했다. 세상을 떠난 1992년 이후에도 한동안 이 지분은 이 전 의장 명의로 돼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뒤늦게 보통주 2176주, 우선주 642주가 장남 이홍용 전 서울대 교수에게 상속 형태로 넘겨졌다. 이씨는 곧바로 이를 모두 매도했다. 결국 나머지 744주가 남게 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주식은 상속되지 않은 것일까. 3월25일 종가(주당 8만5500원) 기준으로 이 전 의장 명의의 주식가치는 6400만원에 이른다. 주식의 일부 상속은 재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간혹 재벌가에선 후손들이 상속 재산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경우 고인의 지분을 해결될 때까지 그대로 두기도 한다. 대성그룹 일가가 그랬다.
고 김수근 창업주의 부인 고 여귀옥 여사는 2006년 작고했지만, 그의 자녀들이 '골육상쟁'을 벌이는 바람에 수년이 지나도록 대성산업 주주로 올라있었다. 때문에 대림가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의장은 부인 고 류갑경 여사와 사이에 이 전 교수를 포함해 총 8명(4남4녀)의 자녀를 뒀다. 대부분 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상속 다툼을 벌여도 20년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일각에선 가족들과 회사가 그의 지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방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과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대로 이 전 의장의 특별한 유언 또는 부탁 때문에 일부러 주식을 남겨둔 것이란 해석도 있다.
대림산업 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 전 의장의) 주식 보유 사실만 확인될 뿐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지분의 상속과 매각에 대해선 개인적인 문제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한 가지, 이번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 전 의장 몫의 배당금이 어떻게 됐냐는 것도 의문이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주당 500원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풀었다. 당시 이 전 의장의 배당금은 37만2000원.
대림산업은 공시를 시작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원∼2450원의 배당을 실시해왔다. 당연히 이 전 의장에게도 해마다 7만4400원∼715만4000원의 배당금이 떨어졌다. 그전부터 지난해까지 이 전 의장에게 책정된 배당금은 모두 수천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혹시 재산다툼?
배당금은 주주 당사자가 아니면 수령할 수 없다. 이 전 의장의 배당금은 대림산업 '금고'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상법에 따르면 이익 배당은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주 또는 등록된 질권자에게 지급하는데, 5년간 주주가 찾아가지 않은 배당금은 회사에 귀속된다. 대림산업이 주인 없는 수천만원을 '꿀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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