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신선설농탕 '직원감시' 논란

직원끼리 서로 고자질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시스템이 구설에 올랐다. '다면평가'로 불리는 직원 상호간 평가 때문이다. 직원 개개인의 장·단점을 서로 평가하고 그 자료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것.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직원들에게는 "앞으로 잘 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받는단다.

신선설농탕은 외식업체 ㈜쿠드가 운영하는 국내 대표적인 설렁탕 프렌차이즈다. ㈜쿠드는 신선설농탕을 비롯해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시·화·담', 구이전문점 '우소보소', 한정식 전문점 '수련', 인테리어 브랜드 '이노데코' 등 5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 신선설농탕은 2009년 40%가 넘는 시청률 속에 방영됐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화제가 됐다.

겉으론 '좋은 기업'

㈜쿠드를 이끌고 있는 오청 대표는 1992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27세의 나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설렁탕 사업에 발을 들였다.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의 그에게 설렁탕 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방 매뉴얼을 만들고 고객서비스 헌장을 만드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94년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설렁탕 포장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95년 3월 오 대표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첫 점포를 냈다. 3개월가량 주방에서 근무하면서 식자재의 체계적 조리방법을 완성, 그에 따른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신선설농탕은 매장 수만 43개, 직원은 900여명에 이르는 거대 프렌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선설농탕은 대중들에게 모범적인 사회공헌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소득층에 설렁탕을 무료로 급식하는 '사랑의 밥차', 전 임직원이 계좌당 1004원을 후원하는 '1004모금운동', 개점 10주년을 맞은 매장의 일 매출을 해당 구청에 기부하는 '오픈매출기부', 쌀 9만포를 시가보다 2000원씩 비싼 값에 사들여 차액을 농가에 지원하는 '우리쌀값 지켜주기', 고객이 양이 적은 '나누미밥'을 주문하면 남는 쌀을 모아 아프리카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나누미 캠페인' 등이 신선설농탕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특히 오 대표는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기업인' '앞장서는 사회공헌활동' 등 그럴싸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그렇지 못하다. 직원 관리에 있어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직원이 직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다면평가' 때문인데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다면평가는 신선설농탕에서 시행 중인 직원 평가 시스템의 한 종류다. 직원 개개인의 인성을 상호 평가하는 시스템인데 사실상 직원이 직원을 감시하는 셈이다. 신선설농탕 직원들은 1년에 한번 서로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있다. 결과는 본사에 보고되고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임직원 상호간 장단점 평가 인사고과 반영
'나쁜 직원'에 "잘 하겠다" 서약서 강요도

본사는 해당 직원을 불러 결과를 발표한다. 장·단점을 적은 종이에 단점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이른바 '나쁜 직원'으로 분류된다. 직원들은 결과에 따라 등급도 부여받는다. A부터 F까지 6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선설농탕에서 근무 중인 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직원들은 그 수위에 따라 직위해제, 임금삭감, 임금동결 등의 징계를 받는다. 지난해 전체 직원의 5%가량이 임금동결 조치를 받았다.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신선설농탕의 직원평가 시스템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자칫하다가는 '인민재판' '인민감시'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 앙심을 품은 직원이 의도적으로 상대를 나쁘게 평가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선설농탕의 다면평가 방식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신선설렁탕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부터다. 신선설농탕에 근무했었다고 밝힌 A씨는 다면평가 방식을 공개하면서 "신선설농탕은 평가는 평가대로 하면서 직원에 대한 복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개제했다.

A씨는 "(신선설농탕)은 1년에 한 번 개개인의 인성을 서로서로 평가한다"며 "평가서에 한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하는 건데 대략 결과는 한 달이 지나고 각 매장 직원을 차례로 불러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예를 들어 장점과 단점이 각각 5줄이면 그 사람은 그냥 나쁜직원이 된다"며 "인간이 장·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TV로 비춰지는 좋은 이미지를 연기하지 마라"고 덧붙였다.

신선설농탕의 직원평가 방식 중 주목할 만한 부문은 또 있다. 바로 서약서 작성이다. 신선설농탕은 다면평가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 직원들에게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 하겠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개선하겠다"는 일종의 '각서'다.

신선설농탕 한 직원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나를 평가한다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객관적 평가도 아닌 주관적인 평가에 따른 결과로 서약서까지 쓰는 것은 마치 반성문을 제출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회사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응이다. 다면평가는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방식 중 일부라는 것. ㈜쿠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고 퇴사한 전 직원이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글을 쓰다 보니 와전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와전…오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신선설농탕은 프랜차이즈라는 특성상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매장의 직원들을 일일이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면평가를 직원 평가 방식의 일부로 선정했다. ㈜쿠드는 직원을 6등급으로 나누고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다면평가 방식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매장 실적, 서비스 모니터링 등을 종합해 직원을 평가하고 있다"며 "관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호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고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알려왔습니다>

<일요시사>는 2014년 7월14일자 「<재계뒷담화> 신선설농탕 '직원감시' 논란」기사에서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방식 중 하나인 ‘다면평가’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신선설농탕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에 대해 신선설농탕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습니다.

▲다면평가. 직원 개개인의 인성을 상호평가하는 시스템, 사실상 직원이 직원을 감시하는 셈이다.

-당사에서 다면평가를 하게 된 계기는 2004년 광우병 파동을 맞으면서 매출이 급락하는 위기를 맞자 대표가 밤낮으로 열흘간 전 매장을 돌면서 현장직원들과 직접 한 명 한 명 면담을 했다. 이때 직원들이 매장내의 왕따나 편가름의 현실을 호소하거나 인성이 안 좋은 관리자의 전횡과 소왕국화, 선임직원들이 신입직원이나 파트사원을 함부로 다루고 차별대우 등을 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됐다.

심지어 왜 이제야 저희 얘기를 직접 들으러 오셨냐고 우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 면담을 계기로 점포 관리자의 평가를 본사 특정 부서에 맡기지 않고 각 매장별로 직원들이 관리자를 평가하는 다면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으며 주요 평가 항목은 인성과 표정, 미소, 의욕, 리더쉽, 업무능력 입니다. 당사의 인재상이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기에 그 중 인성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평가란에 좋은 점과 개선할 점을 기록하게 됐다.

이 후 당사는 다면평가를 통해 실제 현장에서 인성이 바르지 못하여 동료들을 힘들게 하거나 직위만 내세워 직원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며 권위적, 억압적 관리 형태를 바로 잡아왔다. 이로 인해 동료간의 갈등이 현저히 줄고 서로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는 근무분위기를 형성하게 됐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직원에게는 동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게 되어 더 높은 관리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로 장, 단점을 평가한다. 장점과 단점이 각각 5줄이면 그 사람은 그냥 나쁜직원이 된다.

- 신선설농탕은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으로 평가항목이 개인의 좋은 점과 개선할 점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인성 외 표정, 미소, 의욕, 열정, 업무능력, 리더십 등의 여러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리자가 직원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원도 평가에 참여하는 양방향 평가로 10여년 동안 운영 노하우를 쌓으며 진행되고 있는 당사 고유의 평가제도다.

또한 피평가자의 좋은 점과 개선할 점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평가에는 매출 등의 경영 성과, 모니터링 서비스, 위생평가, 교육 및 역량 등 다양한 평가를 종합하여 진행하고 있다.

▲다면평가에 따라 직위해제, 임금삭감, 임금동결 등의 징계를 받는다.

- 다면평가를 통한 징계는 하위 5% 정도만이 임금 동결에 해당되고, 직위해제나 임금삭감의 경우는 심각한 사건사고에 적용되며 이 또한 회사의 징계 절차를 밟고 진행된다.

다면평가를 잘 받지 못해도 직위해제, 임금삭감의 징계를 받지는 않는다.

또한 적극적인 개선을 다짐하기 위해 서약서를 쓰기도 하지만 평가 이후 스스로 고쳐나가고 개선된 모습을 보이면 좋은 평가를 받는 직원들도 많이 있다.

▲앙심을 품은 직원이 의도적으로 상대를 나쁘게 평가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다면평가는 같은 점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두 평가에 참여하는 것으로 일부 직원들이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으로 참여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점포별로 적게는 열명, 많게는 수십명이 동시에 평가를 하기에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평가를 하면 분석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럴 경우, 다면평가에서 제외되는 필터링 시스템이 있어 우려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명이 아닌 실명을 쓰고 평가를 하기에 앙심을 품은 의도적인 평가는 금방 드러나게 되어있어 그 내용은 제외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나를 평가한다.

-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면평가는 점포별로 진행됩니다. 점포 내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평가 할 수 없다.

▲직원 복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직원 복리가 거의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복리후생이 변경된 부분은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하락과 금값 폭등으로 장기근속 시상 중 금을 주던 것 대신 휴가를 늘리고 제품 시식권을 드리는 것으로 변경된 정도다.

그 외 경조휴가, 경조사 지원, 근속기념선물 및 정기휴가, 건강검진, 여가생활지원, 자기계발지원, 콘도 지원, 제품가격 할인 등을 운영하며 동종업계 중 상위의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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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