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에서 '유령당원' 명부가 발견됐다. 해당 명부에는 주소 한 곳에 최대 9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인물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진상규명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새정치연합 부산시당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당원명부가 조작됐다?"
지난 8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청호 금정구의회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치연합 금정구 당원명부에 '유령당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인물이다.
통진당과 동급
그의 폭로로 당시 원내 제3당이던 통진당은 해체위기까지 내몰렸었다. 이후 이 의원은 통진당의 모 의원이 "장군님 상중이니 술을 자제하라"고 발언한 내용과 이석기 의원이 자신이 설립한 CNC를 통해 선거비용을 부풀려 빼돌려 왔다는 의혹을 연달아 폭로해 유명세를 탔다.
이 의원은 이번 새정치연합의 유령당원 의혹이 통진당의 사례와 판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이날 공개한 부산 금정구 지역 당원명부에는 340명의 당원 중 무려 160명의 주소가 중복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 개의 주소에 최대 9명의 성별, 연령이 다른 사람이 등록되어 있기도 했다. 해당 당원 명부는 구의원 비례대표나, 시의원 후보 경선, 부산시장 경선에도 쓰인 것이다.
만약 특정세력에 의해 유령당원이 가입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선출된 후보들의 정당성은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이 의원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 부산시당은 공천을 기존 일정대로 모두 마무리 지어버렸다.
해당 의혹에 대한 부산시당의 해명은 간단하다. "정당에서 보내는 공보물을 자택으로 받기 꺼리는 당원들이 지인의 집 등에 주소지를 등록해놓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민등록법상 주소가 아닌 실제로 활동하는 지역에도 당원으로 등록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경원 사무처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자체 조사결과 한 주소지에 중복 등록된 당원들의 경우 해당 주소지 소유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소를 등록한 것이었다. 서로가 아시는 분들"이라고 해명했다. 정 사무처장은 바쁘다는 이유로 나머지 질문은 부산시당에서 배부한 보도자료를 참고하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고작 공보물을 자택으로 받기가 귀찮아 다른 사람의 소유 건물에 양해를 구하며 주소를 등록했다는 해명은 어딘가 어색하다. 부산 금정구 지역만 하더라도 340명의 당원 중 160명의 주소가 중복되어 있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절반 가까이가 그런 식으로 당원에 가입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2012년 통진당 부정경선과 판박이
되풀이되는 당원명부 유출도 문제
물론 주민등록법상 주소가 아닌 실제로 활동하는 지역에도 당원으로 등록할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해당 명부를 입수한 후 이 의원이 주소지가 중복되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샘플링 조사를 한 결과 상당수가 "지인의 권유로 당원 가입은 했는데 (나는 금정구에 살지도 않는데) 내가 왜 금정구 당원으로 가입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부산시당에 알렸지만 오히려 부산시당은 이 의원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사용해 샘플링 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이 의원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이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이 의원이 당원명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부산시당에서는 당원들에게 미리 단체문자를 보내 추후 있을 조사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산시당 측은 자신들은 결코 그런 문자를 발송한 일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 의원은 새정치연합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부산시당은 이 의원이 공정한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는데도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자칫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에게도 불똥이 튈 기세다. 이 의원 측은 "유령당원 사건을 문 의원 측에 전달했지만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문 의원은 사실상 부산지역에서 야권 맹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부산에서 공천된 대부분의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문 의원과 찍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후보직을 사퇴하며 무소속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긴 했지만 당초 새정치연합 부산시장 후보로 공천됐던 김영춘 후보도 경선과정에서 문 의원의 측근들이 대거 캠프에 합류하는 등 문 의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성 없는 해명
아울러 이번 사건에서 당원명부가 외부로 유출된 것도 큰 문제다. 하지만 부산시당은 이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지난 2012년에도 서울의 한 이벤트대행업체 사무실 컴퓨터에서 민주당 당원 2만7000명의 명단이 발견돼 곤혹을 겪은 경험이 있다.
이후 민주당은 당원명부 관리체계를 개선했고, 또 올해 1월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민주당은 당원명부를 아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재차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한 번 당원명부가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유출된 당원 명부에는 당원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만약 누군가 범죄에 악용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악용될 여지가 있다.
지난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 민주당은 정부 당국의 대국민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부산시당은 정작 이번 당원명부 유출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 등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통진당 부정경선 사태 때와 판박이지만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진 후 격렬히 저항했던 통진당 사람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