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대기업들이 작년도 공시를 끝냈다. 그러다 보니 이러쿵저러쿵 말들도 많다. 가장 많은 지적은 '오기'다. 숫자 또는 사람 이름 등을 잘못 기재해 도마에 오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대기업 맞나 싶을 정도다.
A사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잘못된 사업보고서를 공시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오류를 인정하고 서둘러 정정공시를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회사 직원들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계산 착오
A사는 지난 3월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국내 매출이 2조2378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매출액을 1조6244억원으로 수정한다고 다시 공시했다. 무려 6000억원이나 차이가 난 셈이다. 해외 매출도 처음 1조9714억원이라고 공시했다가 나중에 2조5847억원으로 정정했다.
A사는 발칵 뒤집혔다. 회사 관계자는 "재무팀의 단순한 계산 실수"라며 "국내사업과 해외사업 실적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계산이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회계 관계자들을 사규에 따라 엄정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기업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더구나 한두 푼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틀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 회사의 '산수 해프닝'은 처음이 아니다. 2011년과 2012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 실적을 잘못 표기했다가 급하게 수정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담당자들이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B사는 오너의 임기를 잘못 기재해 뒷말이 무성하다. 이 회사의 사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재선임됐다. 이에 따라 임기만료일은 2013년 3월22일에서 3년 늘어난 2016년 3월22일이 됐다.
그러나 B사는 그 직후 공시한 보고서부터 계속 임기를 2013년 3월22일 그대로 표기했다. 공시대로라면 이미 퇴직한 사람이었다. 사장과 달리 다른 임원들은 정확하게 적혀 있다. 사업보고서에 오른 등기임원과 미등기임원 수십 명의 임기는 모두 정상적으로 기재돼 있다.
B사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단순 오기라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공시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사장의 임기를 잘못 기재하는 실수가 있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며 "그동안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별도의 지적 사항도 나오지 않아 그대로 유지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류투성이 보고서 공시했다가 급수정 '진땀'
구멍가게도 아니고…숫자·이름 다르게 기재
특정한 의도가 의심되는 사례도 발견된다. C사는 의문의 정정공시가 도마에 올랐다. C사는 지난 1월 공시를 통해 지난해 영업이익 8740억원, 당기순이익 1816억원의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딴말을 했다. 사업 손실분과 소송 배상 등을 반영해 지난해 실적을 재집계한 결과 영업이익 8393억원, 당기손실 603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말을 바꿨다.
C사의 연간실적에서 적자를 낸 것은 창사 이래 처음. 실적을 정정한 공시를 낸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의도적인 정정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게 C사는 지난 1월 새 수장을 맞았다. 새로 취임한 수장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올해 포함될 적자 요소를 눈치껏 지난해 실적에 포함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C사 측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D그룹의 계열사들은 내부거래 금액을 낮춰 공시했다. 한 계열사는 '식구'들과 거래한 금액이 100억원이 넘었지만 '0원' 처리했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정정했다.
또 다른 계열사는 당초 내부거래 금액이 100만원대라고 사업보고서를 냈다가 업계에 이상한 소문이 돌자 사실은 36억원이라고 고쳐 신고했다. 회사 측은 "단순 오류"라고 잘라 말했지만, 외부 시선을 의식한 속보이는 공시란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몰락한 동양도 계열사 지원액 축소 의혹을 받고 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3000억원대 규모의 계열사 자금거래를 재무제표상에서 누락했다가 뒤늦게 이를 바로잡아 그 배경을 두고 의혹이 일고 있다. 단순 실수라고 하지만 규모가 커 동양 측이 계열사 지원금액을 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동양CP 피해자들과 노조는 "현재현 회장이 준비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상장사들이 정정공시한 것은 모두 1800여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 상장사들이 지난해 공시한 1만1065건 가운데 정정공시는 1828건(16.5%)으로 집계됐다. 주요 사유는 소규모 금액정정(변동폭 20% 미만)이 86.4%로 가장 많았다. 특히 주요정정(변동폭 50% 이상)도 23건이나 됐다. 당기순익을 흑자에서 적자로 수정한 경우가 그 예다.
실수? 의도?
공시 실수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19개 대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소속 367개사에 대한 공시 이행점검 결과(지난해 5월 기준) 577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해 과태료 7억8100만원을 부과했다. 이중 234건에 대해선 경고조치했다.
기업집단 현황 공시에서 임원·이사회 운영 현황 공시 위반이 175건으로 전체(353건)의 49.6%를 차지했다. 이어 재무 현황(53건), 계열사 간 거래에 따른 채권·채무 잔액(23건) 순이었다.
비상장사의 중요 사항 공시에선 임원 변동사항 공시 위반이 135건으로 전체(224건)의 60.3%를 차지했다. 중요 사항 공시 위반이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효성(112건)이었다. 이어 코오롱(76건), 웅진(59건), 세아(57건), OCI(42) 순이었다. 효성은 과태료 부과 대상 건수에서도 55건으로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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