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강남 금싸라기 '한전땅' 쟁탈전

삼성이냐 현대차냐…4조 베팅 전쟁

[일요시사=경제1팀] 서울 삼성동이 들썩이고 있다. 삼성동에 위치한 한국전력 본사 부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려서다. 한전은 전남 나주로 이사를 떠나면서, 삼성동 부지를 팔기로 했다. 재계 ‘큰 손’들은 너도나도 이 금싸라기 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라 불리는 이곳. 삼성동 167번지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될까. 승부를 가를 변수를 짚어봤다.

코엑스로 유명한 서울 삼성동. 주변에 백화점과 특급호텔 등이 들어서 있는 서울 최대 상권이다. 이 노른자위 땅에 있는 한국전력공사(한전) 본사 부지가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전남 나주로 본사 이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 한전은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라, 내년 11월까지 삼성동 본사 매각을 완료해야한다.

알토란 땅
투자 저울질 

현재 삼성동 한전 부지는 축구장(약 7000㎡) 11배 넓이인 7만9342㎡(2만4000평) 규모에 달한다. 지상 22층, 지하 3층으로 지어진 본관과 지상 5층, 지하 3층의 별관, 지상 4층 건물의 후생관이 ㄷ자 형태로 지어졌다.

부지 면적만 따지면 서울 서초구 삼성타운의 3배, 여의도 LG트윈타워의 6배 안팎이다. 현재 국내 최고 123층 높이 빌딩을 건설 중인 롯데월드타워 부지와 비슷한 규모다. 공시지가로는 1조4837억원, 시세로는 3조∼4조원대에 이른다. 서울 강남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 땅’ 이다.

그동안 한전은 자체개발을 비롯해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자산유동화(ABS), 부동산투자신탁(리츠)을 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매각 방식을 검토했지만, 최근 단순 매각 방식으로 최종 가닥을 잡았다.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땅 값을 가장 높게 써내는 매입자에게 부지를 처분할 가능성이 커졌다.


오래전부터 한전 부지에 눈독을 들여온 후보 기업들의 행보가 변수로 작용하는 이유다. 우선 국내 재계 서열 1·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이 땅을 놓고 각축을 벌일 전망이다.

강남 마지막 ‘노른자위’
삼성동 167번지 운명은?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인수전에 참여할 채비를 갖췄다. 지난 2011년께 한전 부지 인근에 위치한 한국감정원 부지(1만988.5㎡)와 건물(연면적 1만9564.1㎡)을 2328억원에 매입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삼성은 당시 한전 부지, 감정원 부지 등을 포함해 삼성동 일대에 대규모 컨벤션타운 건설을 구상했다. 2009년에는 삼성물산과 포스코 컨소시엄이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제안서를 강남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삼성동’이란 지명이 그룹명과 같은 점도 삼성 그룹에 매력적이다. 지난해 5월 당시 변준연 한전 부사장은 “본사 인근 지하철 역명과 발음이 같은 삼성그룹이 삼성동 한전 부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부동산업계는 삼성그룹이 한전 부지까지 통째로 매입해 통합 개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삼성 측은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도 아직 구체적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적극적이다. 현대차 양재동 본사는 과거부터 ‘회사의 철학을 알 수 없는 오피스 건물’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전 부지는 양재동 본사 부지보다 3배 이상 넓은 만큼, 이런 수모를 씻어낼 수 있는 최적격 장소이다.

현대차는 2006년부터 성수동 뚝섬 인근 옛 삼표 레미콘 부지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초고층 빌딩을 짓는 청사진을 마련해왔다. 그룹 전 계열사를 입주시키고 3만여명의 직원을 한곳에 모으는 한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R&D) 기능도 통합한다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처럼 자동차 테마파크 등도 함께 짓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해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을 내놓으면서 무산됐다. 서울시가 50층·200m 이상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지역으로 정한 도심·부도심 범위에서 뚝섬 부지가 최종적으로 빠진 탓이다. 8년 가까이 공을 들여온 ‘뚝섬 프로젝트’가 폐기되면서 현대차는 한전 부지를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보고 뛰어들고 있다. 이만한 규모의 부지를 찾기 힘들뿐더러, 강남권의 교통 요지인 점도 매력 포인트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일 폭스바겐이나 BMW, 일본 도요타와 같이 전시장 또는 박물관을 갖추고 도심에 있는 새로운 본사 단지를 신축할 필요성이 있다”며 “한전 부지와 관련해선 아직 결정된 것이 없지만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미국 회사들도 ‘눈독’
인허가 쥔 서울시 선택 주목

여기에 해외자본의 출연도 새 변수로 떠올랐다. 중국 녹지그룹,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 등 외국 기업도 한전 부지 매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인 녹지그룹은 한전 부지 매입에 대한 사업성을 검토 중이다. 녹지그룹은 이미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에 9억달러(1조원)를 투자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녹지그룹은 제주헬스케어타운 77만8000㎡부지에 관광휴양시설과 의료서비스시설 등이 복합된 휴양거주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녹지그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개발 사업권 인수를 추진하는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상하이시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는 녹지그룹은 지난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이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해외 부동산 개발에 적극적인 회사다. 3조원에 이르는 한전 부지를 단독으로 매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력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카지노그룹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도 한진 부지 매입 경쟁에 가세했다. 샌즈 측은 최근 한전 부지에 카지노, 전시ㆍ컨벤션을 포함한 복합전시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서울시 측에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외자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 한전 측도 해외 자본 매각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전에 뛰어든 국내외 자본들이 어떤 전략카드를 내밀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면서도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이라는 상징성이 강해 외국계 기업이 이 부지를 매입하는 일은 국민 정서에 반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6·4 지방선거
결과에 주목

한전 본사 별관에 위치한 지하 변전소(삼성변전소)도 부지 매각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변전소 처리 문제가 생각처럼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삼성변전소는 1985년 한전 사옥 준공과 함께 지하 2층 깊이에 3924㎡(1천189평) 규모로 설치됐다. 154kV 지하복합변전소로 삼성동 일대 6035호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본사 부지를 팔아야 하는 한전 입장에서는 이 변전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지하주차장을 만들기 위해선 지하 2층보다 더 깊은 곳으로 변전소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코엑스 지하와 연계 개발 때는 아예 다른 곳에 대체 변전소를 만들어야 한다. 1초라도 전기 공급이 끊겨선 안 돼서다. 전문가들은 지하를 더 파고들어가든, 대체 변전소를 마련하든 그 비용은 부지 매각대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변전소를 시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들이 검토됐으나 마땅한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존치키로 했다”며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도 이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6ㆍ4 지방선거’ 결과다. 인ㆍ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전 부지 개발 범위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후 재정악화와 대규모 투자에 대한 어려움 등을 토로하면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 계획을 보류한 바 있다.

박 시장은 당초 뜻을 고수해오다 지난 1일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개발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코엑스~한전~서울의료원·한국감정원~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총 72만㎡를 ‘국제교류 복합지구’로 조성할 계획이라는 청사진이다.

또 도시계획변경 사전협상을 통해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하고 부지 면적의 40% 내외를 공공기여(토지, 기반시설, 설치비용)로 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개발계획이 실효성 있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6·4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개발계획이 수정 되거나 전폭 재논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시장과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은 부동산 개발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서울 시내 30여곳에 대한 대형 개발 사업을 허가할 뜻을 내비치며 박 시장과의 이견을 드러낸 바 있다.

올 상반기 중
매각 공고


이번 한전 본사 부지 매각은 감정절차를 거친 후 올 상반기 중으로 매각공고가 나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전 부지에 대한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해당 부지 매매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갖가지 변수가 자리하고 있어 부지 매각은 여전히 가변적”이라며 “이르면 이달 안에 청사진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은 여전히 ‘안갯속’”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삼성동 일대 개발 밑그림이 그려졌다”며 “한전부지 개발 가시화가 이런 흐름에 가속도를 붙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