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러난' 롯데 상납고리 실체

얽히고설킨 비리사슬…신동빈 회장 충격 받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이 사상 최악의 ‘뇌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납품업체로부터 청탁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검찰수사는 주력계열사 핵심 CEO를 넘어 그룹 전체를 흔드는 모양새다. 롯데는 망연자실한 표정. 가뜩이나 ‘윤리경영’을 강조해온 그룹 이미지에 ‘뇌물 기업’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공교롭게 롯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뇌물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

지난 1일 롯데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롯데홈쇼핑 납품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는 이날 납품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고,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롯데홈쇼핑 전ㆍ현직 임직원 4명을 구속했다.

뇌물 뿐 아니라
자금 횡령까지

비리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소 납품업체로부터 청탁을 댓가로 뒷돈을 받은 뇌물 사건, 다른 하나는 회삿돈을 빼돌린 횡령 건이다.

뒷돈을 챙긴 뇌물 사건의 주요 인물은 이모 전 이사와 상품기획자 정모 전 팀장이다. 이 전 이사는 2008년 12월∼2012년 10월 약 4년간 각종 생활용품을 중간 유통하는 업체 5곳으로부터 방송출연 횟수와 시간을 편성하는 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억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팀장은 2008년 12월∼2010년 1월 약 2년간 유통업체 한 곳으로부터 고급 승용차 한 대를 포함해 2억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가족, 친인척 등 명의로 차명 계좌를 만드는 수법으로 뇌물 통장을 관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뒷돈의 규모가 20억원이 넘는다고 보고 있다.


횡령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롯데홈쇼핑 총무·관리 파트에 있는 이모 방송 본부장과 김모 고객지원부문장이다. 이들은 롯데홈쇼핑 본사 사옥 이전 과정에서 인테리어업체로부터 4억9000만원 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롯데홈쇼핑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양평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 본부장 등은 당시 임대 중이던 건물의 인테리어를 원상 복구하는 과정에서 업체에 비용을 과다지급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회사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챙긴 횡령 금액은 용역·공사 대금 청구건을 포함해 총 6억5000만원에 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 홈쇼핑 비리는 몇몇 부정한 직원의 단순 비리로 치부되는 듯 했다. 이후 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검찰이 이 본부장 등이 횡령한 돈의 용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 억원의 돈이 롯데그룹 최대계열사인 롯데쇼핑을 이끌고 있는 신헌 사장 계좌에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구매 담당자의 납품 비리가 회사 차원의 구조적인 비리사슬로 엮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 ‘뇌물 사건’ 후폭풍은 ‘롯데 그룹 상납고리’와 맞물려 일파만파로 번지는 분위기다.

최고위 임원
비리사슬 몸통?

신 사장은 이번 사건이 벌어졌던 2008∼2012년 사이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사정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신 사장은 당시 이들이 횡령한 돈의 상당액을 현금 뿐 아니라 신용카드 형태로 받아서 썼다. 외형상으로는 업무추진비 명목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신 사장 신용카드에 연결된 계좌가 이 본부장 명의의 통장 등 횡령한 돈이 들어있는 ‘비자금 창구’였다고 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대부분 상납 경로의 시작이 김 부문장에서 비롯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본부장이 경영지원 부문장을 지낸 2009∼2011년 당시 총무팀장이었던 김 부문장에게 업체에게 납품단가를 10∼15% 과다 지급하게 만든 뒤 그만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했고, 이를 비밀 계좌에 보관토록 했다는 것이다.

‘뇌물 스캔들’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원 구속
신동빈 회장 측근 신헌 사장까지 ‘일파만파’

이 본부장은 이후 비자금이 마련된 비밀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 수시로 신 사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한 자금이 들어있던 이 본부장 계좌의 신용카드도 신 사장이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 전 이사도 사내에서 ‘신 사장 라인’으로 분류된 대표 인사로, 별도로 신 사장에게 뒷돈 일부를 상납했는지 조사 중이다. 이어 신 사장이 임직원들로부터 건네받은 돈을 그룹 내 다른 고위층이나 정관계 인사에 로비 명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신 사장이 애초에 횡령을 전제로 임직원들과 공모한 것인지, 신 사장이 또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상납했는지 여부가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롯데홈쇼핑 현직 임원과 롯데백화점 현직 사장까지 연루된 조직적인 횡령사건으로 번지고 있어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장 최측근
도대체 왜…

롯데그룹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최악의 스캔들이 터졌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신 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있다.

롯데홈쇼핑 대표였던 신 사장이 자신보다 먼저 임원이 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 선배인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 등을 제치고 2012년 2월 롯데쇼핑의 백화점부분 사장 자리를 꿰찬것도 신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사장은 취임 후 ‘젊고 패션이 강한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며 소통경영, 현장경영, 윤리경영 등을 강조해왔다. 특히 직접 고객들 앞에서 마술쇼를 기획하는 등 뛰어난 소통능력과 함께 ‘스타 CEO’기질을 보여왔다.

그렇기 때문에 신 사장의 뇌물 스캔들 연루는 그룹 내부에서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 사장 역시 그룹 비자금 조성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롯데그룹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는 반응도 있다. 롯데그룹은 비정규직 직원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직원 평균 연봉이 3801만원에 그쳐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롯데 임직원들이 낮은 연봉을 벌충하기 위해 납품업체에 손을 벌리는 것을 서로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신 사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도 8억9400만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타 대기업에서 신 사장 위치에 있는 임원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롯데그룹의 비리 검증 시스템은 전통적으로 약한 편이다. 롯데는 내부 비리를 적발하는 감사팀장을 부장급이나 초임 임원으로 급을 낮춰놔, 비리를 적발하더라도 소신 있게 대처하기 힘든 구조를 취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애초부터 감사시스템을 내부 고위층 외압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 놨다”면서 “이런 구조가 비리를 키우고, 뇌물 문화를 장착시켰다”고 지적했다.

‘돈이면 다 돼’
영화같은 로비전

사실 롯데그룹 내 뇌물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처럼 윗선과의 조직전인 상납구조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 꾸준히 ‘뇌물 스캔들’로 문제를 일으켜왔다.

우선 롯데그룹은 2006년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뒤 이듬해 롯데홈쇼핑을 출범시켰으며 인수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롯데는 태광그룹과 우리홈쇼핑 인수전쟁을 벌이면서 정·관계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슈퍼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불량식품 사건을 무마시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롯데슈퍼는 지난해 7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되자 행정처분 무마 조건으로 공무원과 민원인들에게 금품을 건넸다 적발됐다.


‘하청업체→임원→사장’ 상납구조
꼴찌 연봉·부실 감사시스템 지적

롯데건설은 그룹 ‘뇌물 비리’에 정점을 찍었다. 2011년 자금 유동성이 불안한 건설사로 지목되자 공격적인 수주전에 나섰고, 재개발 사업 추진 중 뒷돈 거래를 펼쳤다. 당시 롯데건설은 은평구 응암제2구역 주택재개발 공사를 따내기 위해 홍보용역 업체를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87억여원의 금품을 뿌린 혐의를 받았다.

2009년에는 영화 같은 로비전을 벌이다 적발됐다. 대형건설공사 공사수주를 받기 위해 입찰 심의평가위원을 상대로 억대의 금품 로비를 벌인 것이다. 당시 롯데건설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은 현장소장들은 입찰일 직전에 설계 설명 등을 명목으로 평가심의위원 후보자들을 접촉해 선물공세를 펼쳤다.

이후 입찰 당일 새벽에 공사관계자 수 백명을 후보자 집 앞에 대기시킨 뒤 후보자가 위원으로 선정돼 집을 나서면 곧바로 따라붙어 고액의 뇌물을 건네기로 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에는 뇌물을 주고 분양가 수백억을 부풀렸다 덜미가 잡혔다. 당시 롯데건설은 서울 청계천 일대의 롯데캐슬 재개발 건축 현장에서 전 현직 조합장에게 수 억원의 뇌물을 주고 공사비를 수 백억원이나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평당 분양가는 58만원이나 올랐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이 됐다.

롯데그룹의 잇단 뇌물 스캔들에 재계 한 관계자는 “갑을 관계가 명확한 우리 사회의 특성이 뇌물 비리를 고착화 시킨 것 같지만, 무엇보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가 기업 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뇌물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사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재수 없이’ 걸린 피해자들만 양산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롯데홈쇼핑 급성장 비결
‘갑질’로 덩치 2배 키워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롯데홈쇼핑이 지난 5년간 두 배 가까이 덩치를 키워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기간은 상납 의혹에 휘말린 신헌 롯데쇼핑 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절과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개별 기준 연매출 7732억원을 기록, 5년 전 연매출 3067억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매출 규모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52억원에서 738억원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이후 신 사장이 롯데홈쇼핑 대표로 취임된 이후, 폭풍성장이 가속화됐다. 신 사장 취임 당시 3067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4341억원으로 42%가량 성장했고, 2011년에는 636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7732억원의 연매출을 달성하며 매년 약 2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 커졌다. 2008년 452억원을 기록하던 영업이익은 2011년 959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 738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매년 10~15%를 기록하며 양호한 수익성을 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롯데그룹의 갑질이 롯데홈쇼핑 5년 성장 스토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공격적 마케팅과 채널 확보라지만, 그 이면엔 납품업체들의 눈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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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