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러난' 롯데 상납고리 실체

얽히고설킨 비리사슬…신동빈 회장 충격 받았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이 사상 최악의 ‘뇌물 스캔들’에 휩싸였다. 납품업체로부터 청탁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검찰수사는 주력계열사 핵심 CEO를 넘어 그룹 전체를 흔드는 모양새다. 롯데는 망연자실한 표정. 가뜩이나 ‘윤리경영’을 강조해온 그룹 이미지에 ‘뇌물 기업’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공교롭게 롯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뇌물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

지난 1일 롯데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롯데홈쇼핑 납품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는 이날 납품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고,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롯데홈쇼핑 전ㆍ현직 임직원 4명을 구속했다.

뇌물 뿐 아니라
자금 횡령까지

비리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소 납품업체로부터 청탁을 댓가로 뒷돈을 받은 뇌물 사건, 다른 하나는 회삿돈을 빼돌린 횡령 건이다.

뒷돈을 챙긴 뇌물 사건의 주요 인물은 이모 전 이사와 상품기획자 정모 전 팀장이다. 이 전 이사는 2008년 12월∼2012년 10월 약 4년간 각종 생활용품을 중간 유통하는 업체 5곳으로부터 방송출연 횟수와 시간을 편성하는 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9억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팀장은 2008년 12월∼2010년 1월 약 2년간 유통업체 한 곳으로부터 고급 승용차 한 대를 포함해 2억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가족, 친인척 등 명의로 차명 계좌를 만드는 수법으로 뇌물 통장을 관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뒷돈의 규모가 20억원이 넘는다고 보고 있다.


횡령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롯데홈쇼핑 총무·관리 파트에 있는 이모 방송 본부장과 김모 고객지원부문장이다. 이들은 롯데홈쇼핑 본사 사옥 이전 과정에서 인테리어업체로부터 4억9000만원 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롯데홈쇼핑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양평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 본부장 등은 당시 임대 중이던 건물의 인테리어를 원상 복구하는 과정에서 업체에 비용을 과다지급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회사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챙긴 횡령 금액은 용역·공사 대금 청구건을 포함해 총 6억5000만원에 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 홈쇼핑 비리는 몇몇 부정한 직원의 단순 비리로 치부되는 듯 했다. 이후 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검찰이 이 본부장 등이 횡령한 돈의 용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 억원의 돈이 롯데그룹 최대계열사인 롯데쇼핑을 이끌고 있는 신헌 사장 계좌에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구매 담당자의 납품 비리가 회사 차원의 구조적인 비리사슬로 엮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 ‘뇌물 사건’ 후폭풍은 ‘롯데 그룹 상납고리’와 맞물려 일파만파로 번지는 분위기다.

최고위 임원
비리사슬 몸통?

신 사장은 이번 사건이 벌어졌던 2008∼2012년 사이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사정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신 사장은 당시 이들이 횡령한 돈의 상당액을 현금 뿐 아니라 신용카드 형태로 받아서 썼다. 외형상으로는 업무추진비 명목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신 사장 신용카드에 연결된 계좌가 이 본부장 명의의 통장 등 횡령한 돈이 들어있는 ‘비자금 창구’였다고 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대부분 상납 경로의 시작이 김 부문장에서 비롯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본부장이 경영지원 부문장을 지낸 2009∼2011년 당시 총무팀장이었던 김 부문장에게 업체에게 납품단가를 10∼15% 과다 지급하게 만든 뒤 그만큼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리라고 지시했고, 이를 비밀 계좌에 보관토록 했다는 것이다.

‘뇌물 스캔들’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원 구속
신동빈 회장 측근 신헌 사장까지 ‘일파만파’

이 본부장은 이후 비자금이 마련된 비밀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 수시로 신 사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한 자금이 들어있던 이 본부장 계좌의 신용카드도 신 사장이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 전 이사도 사내에서 ‘신 사장 라인’으로 분류된 대표 인사로, 별도로 신 사장에게 뒷돈 일부를 상납했는지 조사 중이다. 이어 신 사장이 임직원들로부터 건네받은 돈을 그룹 내 다른 고위층이나 정관계 인사에 로비 명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신 사장이 애초에 횡령을 전제로 임직원들과 공모한 것인지, 신 사장이 또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상납했는지 여부가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롯데홈쇼핑 현직 임원과 롯데백화점 현직 사장까지 연루된 조직적인 횡령사건으로 번지고 있어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장 최측근
도대체 왜…

롯데그룹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내부에서는 창사 이래 최악의 스캔들이 터졌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신 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있다.

롯데홈쇼핑 대표였던 신 사장이 자신보다 먼저 임원이 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 선배인 소진세 롯데슈퍼 사장 등을 제치고 2012년 2월 롯데쇼핑의 백화점부분 사장 자리를 꿰찬것도 신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사장은 취임 후 ‘젊고 패션이 강한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며 소통경영, 현장경영, 윤리경영 등을 강조해왔다. 특히 직접 고객들 앞에서 마술쇼를 기획하는 등 뛰어난 소통능력과 함께 ‘스타 CEO’기질을 보여왔다.

그렇기 때문에 신 사장의 뇌물 스캔들 연루는 그룹 내부에서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 사장 역시 그룹 비자금 조성에 이용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롯데그룹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는 반응도 있다. 롯데그룹은 비정규직 직원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직원 평균 연봉이 3801만원에 그쳐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롯데 임직원들이 낮은 연봉을 벌충하기 위해 납품업체에 손을 벌리는 것을 서로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신 사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도 8억9400만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타 대기업에서 신 사장 위치에 있는 임원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롯데그룹의 비리 검증 시스템은 전통적으로 약한 편이다. 롯데는 내부 비리를 적발하는 감사팀장을 부장급이나 초임 임원으로 급을 낮춰놔, 비리를 적발하더라도 소신 있게 대처하기 힘든 구조를 취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애초부터 감사시스템을 내부 고위층 외압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 놨다”면서 “이런 구조가 비리를 키우고, 뇌물 문화를 장착시켰다”고 지적했다.

‘돈이면 다 돼’
영화같은 로비전

사실 롯데그룹 내 뇌물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처럼 윗선과의 조직전인 상납구조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 꾸준히 ‘뇌물 스캔들’로 문제를 일으켜왔다.

우선 롯데그룹은 2006년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뒤 이듬해 롯데홈쇼핑을 출범시켰으며 인수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롯데는 태광그룹과 우리홈쇼핑 인수전쟁을 벌이면서 정·관계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슈퍼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불량식품 사건을 무마시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롯데슈퍼는 지난해 7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다 적발되자 행정처분 무마 조건으로 공무원과 민원인들에게 금품을 건넸다 적발됐다.


‘하청업체→임원→사장’ 상납구조
꼴찌 연봉·부실 감사시스템 지적

롯데건설은 그룹 ‘뇌물 비리’에 정점을 찍었다. 2011년 자금 유동성이 불안한 건설사로 지목되자 공격적인 수주전에 나섰고, 재개발 사업 추진 중 뒷돈 거래를 펼쳤다. 당시 롯데건설은 은평구 응암제2구역 주택재개발 공사를 따내기 위해 홍보용역 업체를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87억여원의 금품을 뿌린 혐의를 받았다.

2009년에는 영화 같은 로비전을 벌이다 적발됐다. 대형건설공사 공사수주를 받기 위해 입찰 심의평가위원을 상대로 억대의 금품 로비를 벌인 것이다. 당시 롯데건설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은 현장소장들은 입찰일 직전에 설계 설명 등을 명목으로 평가심의위원 후보자들을 접촉해 선물공세를 펼쳤다.

이후 입찰 당일 새벽에 공사관계자 수 백명을 후보자 집 앞에 대기시킨 뒤 후보자가 위원으로 선정돼 집을 나서면 곧바로 따라붙어 고액의 뇌물을 건네기로 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에는 뇌물을 주고 분양가 수백억을 부풀렸다 덜미가 잡혔다. 당시 롯데건설은 서울 청계천 일대의 롯데캐슬 재개발 건축 현장에서 전 현직 조합장에게 수 억원의 뇌물을 주고 공사비를 수 백억원이나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평당 분양가는 58만원이나 올랐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이 됐다.

롯데그룹의 잇단 뇌물 스캔들에 재계 한 관계자는 “갑을 관계가 명확한 우리 사회의 특성이 뇌물 비리를 고착화 시킨 것 같지만, 무엇보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가 기업 내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뇌물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사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재수 없이’ 걸린 피해자들만 양산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롯데홈쇼핑 급성장 비결
‘갑질’로 덩치 2배 키워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롯데홈쇼핑이 지난 5년간 두 배 가까이 덩치를 키워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기간은 상납 의혹에 휘말린 신헌 롯데쇼핑 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절과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개별 기준 연매출 7732억원을 기록, 5년 전 연매출 3067억원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매출 규모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52억원에서 738억원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이후 신 사장이 롯데홈쇼핑 대표로 취임된 이후, 폭풍성장이 가속화됐다. 신 사장 취임 당시 3067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4341억원으로 42%가량 성장했고, 2011년에는 636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7732억원의 연매출을 달성하며 매년 약 2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 커졌다. 2008년 452억원을 기록하던 영업이익은 2011년 959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 738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매년 10~15%를 기록하며 양호한 수익성을 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롯데그룹의 갑질이 롯데홈쇼핑 5년 성장 스토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공격적 마케팅과 채널 확보라지만, 그 이면엔 납품업체들의 눈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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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