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기획> 망조 들린 '재벌가 집터'의 비밀

쫄딱 망한 회장님 “다 이유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때 재계를 주름잡던 회장님들의 초라한 말년이 눈길을 끈다. 자금난에 시달리다 자택까지 줄줄이 경매로 넘기는 처지가 된 것. 잘 나가던 집 주인들이 하루아침에 망하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터가 안좋다’는 집터 괴담까지 나돌았다. 과연 이들의 파란만장 인생사는 집터와 연관이 있을까. 경매 굴욕을 맛본 회장님들을 한 데 모아봤다.
 

재벌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이 속속 경매 법정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경매업계에 따르면 과거 잘 나가던 회장님들 자택이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한동안 잊혔던 이름까지 또 다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기구한 운명
‘아 옛날이여’

고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의 장남 양희원 아이씨씨코퍼레이션 대표가 소유한 성북동 단독주택은 오는 2일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고급주택이 밀집한 성북동 부촌 중에서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 집은 1970년 지어졌다. 대지면적만 1921㎡에 달하고, 지하1층~지상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777㎡ 규모다. 감정가는 73억 8000여만원. 지금까지 경매시장에 나온 성북동 고급주택 중 규모와 가격 면에서 단연 1위라는 평가다.

국제그룹은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1980년대에는 재계서열 7위까지 한 재벌기업이다. 고무신 생산 업체인 국제고무공장을 전신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탄생시킨 곳이다. 국제그룹은 이후 중화학, 섬유, 건설 분야 등에 잇따라 진출하고 무려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85년 전두환 정권에 밉보이면서 회사가 1주일 만에 공중분해 당하는 불운을 겪은 바 있다.

국제그룹처럼 이 집 또한 곡절이 많았다. 양 회장이 거주하던 이 집은 1987년 국제상사 명의로 넘어갔고 이후 1998년 11월 양 대표가 다시 되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10년만에 어렵게 되찾은 집은 다시 15년만에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았다 갚지 못한 탓이다.
 

양 대표는 2006∼2011년 이 집을 담보로 푸른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27억여원을 빌렸다. 하지만 원금은커녕 이자까지 갚지 못해 결국 경매당하는 처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등기부등본상 채무자가 아이씨씨코퍼레이션인 점을 감안해 봤을 때 양 대표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주인 줄줄이 망해 ‘경매 단골’된 빌라도
집터와 오너 궁합 중요 ‘길흉화복 원천지’

경매법정에 이름을 올린 회장 일가는 국제그룹 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일가가 거주하던 고급빌라가 법원경매에 나왔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고급빌라 밀집 지역에 위치한 이 빌라는 3층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면적 185㎡, 건물면적 316㎡에 달한다. 감정가는 15억원이다.

백 회장은 1998년 문 연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개발 성공을 발판으로 중견그룹을 일군 부동산 개발 사업자의 효시다. 이후 한글과 컴퓨터, 동아건설, 신안 프라임상호저축은행,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기세 좋게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잘 나가던 프라임 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건설 침체와 유동성 위기로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신안이 2011년 8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말았다. 백 회장이 동아건설 등 계열사와 보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줄줄이 파산
나쁜 기운 탓?

백 회장이 내놓은 빌라 역시 기구한 운명은 타고났다. 빌라의 이전 주인은 1980년대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던 삼미그룹의 김현철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삼미그룹의 부도 후 이 빌라를 경매에 내놨고, 2003년 11월 백 회장이 11억3351만원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백 회장 역시 이 집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액을 갚지 못해 빌라는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백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같은 빌라 1층도 빚을 갚지 못해 지난해 8월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 소유의 주택도 경매에 부쳐져 지난 1월 낙찰됐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채 회장 소유의 빌라 두 채는 각각 12억원, 12억2000만원으로 3번 유찰 끝에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채 회장은 600억원이 넘는 부실대출로 도민저축은행에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입혀 지난 1월 징역 4년을 확정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채 회장이 소유한 초고가 외제차 4대가 한꺼번에 경매에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종환 성창F&D 대표 소유의 자택이 매물로 나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유 대표 소유 집은 감정가 60억6966만원으로 경매에 부쳐졌다. 유 대표는 국내 최초의 대형 패션전문 쇼핑몰인 ‘동대문 밀리오레’ 성공 신화로 한때 주가를 높이던 인물이다.

경매와는 사례가 조금 다르지만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자택도 지난 1월 급매물 시장에 나왔다. 서울 서초동 고급 빌라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로, 시가만 약 100억원대에 달한다.

강 회장은 당시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우리은행 대출금 89억원, 하나은행 30억원 주택담보대출 금액 등을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최후의 방편으로 자신이 거주하던 집을 매각키로 했다. 이 고급빌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오너들도 소유해 유명해진 곳이다.

부도에 자살
흉흉한 괴담

최근 사례 외에도 회장님 집이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은 비일비재했다. 2012년에는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 자택이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박 전 회장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그룹 회장으로 두산그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서울 성북동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박 전 회장의 자택은 대지 310㎡, 건물 240㎡의 복층 주택으로 감정가는 15억원에 달했다.

한 때 대기업 총수를 지냈던 그의 자택이 경매에까지 부쳐지게 된 이유는 사업 실패에 따른 자금난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자택은 박 전 회장의 두 아들인 박경원·중원 형제가 공동소유하고 있었으나, 이미 2008년 12월 제일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이 6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해놓은 상태였다.

수십억대 ‘회장님들 저택’ 경매 쏟아져
국제그룹 회장 일가·프라임그룹 회장 등

‘비운의 총수’라 불리는 박 전 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2남이다. 두산가(家) ‘형제의 난’을 계기로 그룹에서 밀려난 뒤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노렸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오다 2009년 11월 이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전 회장이 불운한 삶을 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당시 재계 안팎에선 ‘집터 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터가 안 좋기 때문에 박 전 회장이 망했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다. 이후 이 집은 장남이 2011년 상속받았으며 채무도 그대로 떠안았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성북동 자택 역시 같은 해 강제경매에 부쳐졌다. 청구액 1억원을 갚지 못해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돈으로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회장이 1억원의 빚 때문에 집을 날릴 위기에 처하자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책정했던 이 집의 감정평가액은 33억1199만이었지만 서울 성북동에서도 손꼽히는 저택에 속하는 거주 여건과 특화성 탓에 감정가격을 뛰어넘는 44억여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이후 신 전 회장 부인 송모씨가 1억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뒤 집행정지를 신청하면서 경매는 사실상 취소됐다.

2008년에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이, 2007년에는 김중원 전 한일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역삼동 단독주택, 범양식품 박승주 전 회장 일가의 성북동 단독주택이 각각 경매됐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살던 서울 방배동 자택이, 2002년에는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이 각각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명당 집터가
기업 세운다

과거에는 몰락한 재벌의 집은 소위 ‘망조들린 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경매 시장에 회장 자택이 나와도 제 값에 팔리지 않거나 유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집터의 기운이 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이 컸다. 풍수 전문가들 역시 기업 미래는 회장의 집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양만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 교수는 “그룹의 흥망운을 정단할 때 물론 사옥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집터”라며 “집터와 회장의 사주가 잘 맞아야 취와 복의 괘를 가지고 길한 영향을 받게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종의 ‘경영 나침반’으로 활용되는 집터가 회사의 길흉화복 원천지”라고 거듭 설명하며 “경매에 부쳐진 집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집에서 살면 줄줄이 파산을 면치 못한다 해도 그 터의 사주와 잘 맞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파산한 재벌들이 살던 집이 경매에서 인기를 끄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는 “그룹 회장이 소유한 주택은 내부 인테리어가 잘 돼 있어 실제 가치가 감정가 이상으로 높은 경우도 종종 있다”며 “최근엔 고급주택의 낙찰가도 낮게 형성돼 저렴하게 고급빌라를 마련하려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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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