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⑦새누리당 유준상 상임고문

"정치인, 정치꾼 아닌 정치가로 거듭나야"

[일요시사=정치팀]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계원로의 충고 한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이정표를 잃어버린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에서 준비한 정계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요시사>가 이번 호에 만난 정계원로는 새누리당 유준상(71) 상임고문이다.

새누리당 유준상 상임고문은 1982년 11대 총선에서 만 39세의 젊은 나이로 당선된 이후 전남 보성·고흥에서만 내리 4선 의원을 지냈다. 1985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동교동계에 투신한 이후에는 신민당 부총무,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김 전 대통령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권유한 전남지사 출마 제의를 뿌리친 그는 이듬해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때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한 유 고문은 4년여간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공부와 경험을 쌓은 후 한나라당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제도권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정치권에 있을 때보다 요즘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으로 정보보안 전문인력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21세기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울트라마라톤연맹 명예회장, 롤러경기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며 IT, 정책연구,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2년 11월 하루 30~40km씩 달려 15일간 총 633km 거리의 국토종주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이 그의 왕성한 활동의 비결이다. 또 배움에는 끝이 없다며 4개 국어(일본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도 공부 중이다.

이외에도 정계원로로서 때로는 정치권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는 유 고문을 지난 3월27일 직접 만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꽉 막힌 정치권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다음은 유 고문과의 일문일답.


- '정치권에 정치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즘 여야 정치권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 1년의 정치권을 되돌아보면 정치는 없었고, 정쟁만 있었습니다. 야당은 대선이 끝난 직후 문재인 후보가 패배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 대선 댓글 개입 사건으로 정쟁만 부추겼습니다. 물론 여당도 야당과의 타협, 협상이 부족했지요. 그러나 1차적 책임은 대선 직후 정권 흔들기에 주력한 야당에 있다고 봅니다.

- 현재의 정치 난맥상이 야당 때문이라는 말씀이신지요?
▲ 대선후보가 패배를 인정하면 거기서 대선은 마무리 짓고 여야가 함께 국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야당이 처음부터 정권 흔들기에만 공을 들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습니다. 결국 국민들은 민주당을 외면했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바닥까지 떨어졌지요.

- 독자 신당 창당을 통한 새정치 실현에서 최근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방향을 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 도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 안철수 의원의 정치행보를 보면 승부사 기질이 다분해 보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선 YS(김영삼 전 대통령) 기질도 엿보입니다. 결국 혼자선 안 되니깐 무공천을 내세워 민주당과 합당을 했는데, 영리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안 의원의 선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선거를 지켜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신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나아가 통합야당도 잘 되기를 바랍니다. 다만 (안 의원) 주변 사람들이 자꾸 떠나는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안 의원이 주변의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결정은 독단적으로 하는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떠나가는 것이겠지요. 안 의원이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민심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으로서 민심을 잘 따라간다면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민심도 헤아리지 못한다면 실패한 정치인이 되겠지요.

"정치권 난맥상 1차 책임은 야당"
"승부사 안철수, YS 기질도 엿보여"

- 6·4지방선거가 통합야당(새정치민주연합) 출현으로 여야 1대1구도로 선거가 치러지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여야가 사활을 걸고 지방선거에 임할 태세인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결론적으로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됩니다. 이유는 첫째,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일관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둘째, 새누리당의 정당지지율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앞서고 있습니다. 셋째, 새누리당은 선거 준비가 잘 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지 못합니다. 넷째, 집권여당의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결국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앞서거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됩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신다면?
▲ 서울은 야권통합 효과를 가장 많이 본 박원순 시장이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경선 흥행이 제대로 된다면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인천, 충북도 반반으로 예상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위가 점쳐지는 곳은 호남, 강원, 충남 정도뿐입니다. 결국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0곳 이상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야당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박한 평가라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 야권통합 전 민주당은 계파갈등으로 시름했고,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를 외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통합을 선택했습니다. 화학적 결합이 아닌 물리적 결합을 이룬 것이지요. 이러한 이합집산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기 어렵습니다.

-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는 '박심 논란' 등 청와대가 후보 선정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 청와대의 개입은 아니라고 봅니다. 집권여당은 박근혜정부 성패와 직결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한 당 차원의 전술전략 측면으로 보입니다. 또 후보들도 이른바 '윗선'의 지시에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나름의 계산에 따라 손익 여부를 판단한 끝에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 국정원과 검찰이 유우성씨 간첩혐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에도 주요 이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양대 기관(국정원·검찰)이 기능적 측면에서만 사건을 다루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합니다. 검찰의 특별감찰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겠지만, 볼썽사나운 사건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정확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정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 금융권, 통신사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오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으로서 한 말씀 하신다면?
▲ 기업들이 정보보안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업은 네트워크에 다양한 보안솔루션을 설치했지만 개인정보는 계속 유출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보는 새고 있고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보안이 필요하지 않는 기업, 기관은 없지만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지요. 기업, 기관 책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 책임자들의 인식 전환 외에 다른 해법은 없을까요?
▲ 정보보안에도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한다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정보를 빼내는 사람들을 찾아내 신고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둔다면 정보유출 사고가 대폭 감소할 것입니다. 인적 측면에서는 정보 보안 책임자(CISO)가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며 책임을 할당해야 합니다. 중요성이 증대되는 만큼 보안인력의 연봉 등 근로환경 개선도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6·4지방선거, 새누리당 압승할 듯"
"야당 이합집산…국민신뢰 못 받아"

-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신다면?
▲ 박근혜정부의 지난 1년은 합격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안보·대북 관계에서 성공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내정치에서 야당과의 소통이 미흡한 점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또 각 부처의 책임자들이 권한만 가진 채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인사에서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 실제로 장관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 공무원사회는 복지부동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장관들을 보면 대부분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정무적 판단이 부족한 사람들도 보이구요. 하루를 일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신 있게 말하고 안 된다면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장관들의 창조적 리더십이 부족한데, 청와대에서도 장관들이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권 후배들에게도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 국회의원은 정말 소중한 자리입니다. 3선, 5선, 7선… 다선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번을 하더라도 족적을 남기도록 실천하는 정치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또 국회의원은 사무실에 있을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은 현장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 많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가라는 평을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본인의 정치사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 과거 김대중 총재(김대중 전 대통령)가 전남지사로 나가라고 했을 때 따랐다면 아마 저의 정치사는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지자체장보다 국회의원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행정경험을 쌓을 기회도 놓치고 공천에도 탈락했습니다. 이후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는데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 통일담론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를 제치고 전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시일 내 통일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일이 된다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발로 뛰거나 인라인을 타고 달려간 후 평양시장에 출마할 예정입니다(웃음).

 

대담=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유준상 상임고문 프로필>

▲ 새누리당 상임고문
▲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9·10대)
▲ K-BoB 시큐리티 포럼 이사장
▲ 21세기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 (사)대한롤러경기연맹 회장
▲ 국제롤러경기연맹 CIC 위원, 올림픽특별위원(롤러스포츠)
▲ (사)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명예회장
▲ 인천 아시안게임 자문위원
▲ 한국정보보호학회 고문
▲ <남도일보> 회장
▲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부총재
▲ 4선 국회의원(11·12·13·14대, 국회 경제과학위원장, 초대 정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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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