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폭로성 투서와의 전쟁 내막

“불륜에 횡령까지”윗사람 꼬투리 잡기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가 각종 악성 루머에 멍들고 있다. 최근 기업 내부를 중심으로 음해성 투서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특정인을 겨냥한 흠집 내기가 주 내용. ‘…카더라’, ‘…한다더라’와 같이 팩트가 분명하지 않은 의혹 제기가 대부분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사나 입증이 힘든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어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A사에 고발성 투서가 날아들었다. 사내 특정 팀(본부)을 겨냥해 작성된 투서에는 ‘용역대금 횡령과 사내 직원간 불륜’ 등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A사는 지난해 관련 분야에서 우수 회사로 선정된 바 있다.

체면 구겨진
‘우수’ 회사 

업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제보자가 정리한 투서는 ▲공공기관 용역 대금 횡령 ▲입찰 서류 위조 ▲직원들에 대한 사기행위 지시 ▲사내 직원간 불륜 등을 포함 총 6개 항목으로 세분화 돼 있다.
제보자는 A사가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 국제보트쇼 대행사로 활동하면서 세금계산서 등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적시했다.

제보자는 투서에서 “‘국제보트쇼’의 경우 ‘사업 정산 보고서 작성’이라는 이름으로 인턴 및 사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며 “하지만 이 업무의 실제 내용은 세금계산서를 포토샵으로 조작하고 사업과 관련 없는 영수증을 도용해 존재하지 않는 사업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예를 들어 하청업체에서 2000만원으로 A사에 발급한 세금계산서를 5000만원으로 조작해 해당 공공기관에 보고하고 A사에서 3000만원을 횡령하는 식이었다”며 “포토샵을 이용한 숫자 조작은 주로 인턴 및 평사원들에게 지시됐고 영문도 모르는 회사 직원들은 불법행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경기도 감사실에서 파악돼 조사에 들어갔다고도 주장했다.

제보자는 또 “약 3000만원 상당의 위조세금계산서는 감사팀에 의해 적발됐으나 그 외 억 단위 횡령 건은 다행히도(?) 적발이 되지 않았다”며 “경기국제보트쇼와 관광공사뿐만 아니라 ITU전권회의와 같은 기타 공공사업에서도 용역 대금 횡령이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고 고발했다.

이어 “공공분야 입찰서류로 제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서류인 실적 증명서도 매번 위조해 제출했다”며 “해당 기관을 통해 실적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함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가짜 도장을 팠고 그 도장 꾸러미를 본부 캐비닛에 보관, 공문서 위조를 빈번하게 해왔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내부 고발 문건에 돌아 골머리
신분 위조·성희롱·비리 등 의혹 봇물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보자는 2012년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사업 관련 토론회를 주도했을 당시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패널섭외에 난항을 겪다 자사 직원들의 신분을 위조해 대리 참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사내 본부장과 팀장의 부적절한 관계, 직원들에 대한 빈번한 폭언과 인격모독 등 민감한 내용의 사내 문제점들도 조목조목 열거했다.

A사의 경우 기업 또는 공공기관 등과 소비자들을 직접 연결시켜주는 창구 역할을 하는 만큼 무엇보다 도덕성, 공신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진위 여부에 따라 A사를 지난해 우수 회사로 선정한 국내 대표적인 학회 체면도 땅바닥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공금 횡령에
사내 불륜

B사는 사실상 실세 권력에 가까운 사업본부장과 관련된 소문들로 어수선하다. 우선 유부녀인 기획팀장과의 사내불륜설이다. 평판이 매우 안 좋은 기획팀장이 사내에서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배후에 사업본부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두 사람은 과거 사업본부장이 팀장으로 재직 당시부터 불륜 관계였으며 기획팀장은 이로 인해 남편과 이혼까지 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당 기획팀장은 평소 독단적인 성격으로 끊임없이 타부서와 마찰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많은데다가 팀장 맡은 이후 매출부진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능력에도 물음표가 찍히는 사람”이라며 “최근에는 디자인팀장과 새로운 불륜관계를 시작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스킨쉽, 은밀한 곳 출입 등의 부주의한 행동이 사내 직원들에게 자주 목격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문제가 회사 내부에서 제기됐지만 사업본부장의 수습으로 무마됐다는 말도 돌고 있다. 이 외 사업본부장과 기획팀장은 외주나 비용처리 등의 방법으로 공금을 유용, 횡령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B사 내부 사업본부장 반대세력들이 알력다툼을 위해 그에 대한 부정 자료를 소집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며 “B사는 이 외에도 현재 이런 저런 내부 문제들로 시끄러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C사는 팀장급 직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내부 비리 폭로 글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해당 직원은 이 글에서 C사 부사장을 지목해 독단적인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사내 파벌을 조장하고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직원은 “부사장은 노골적으로 ‘내가 있는 한 외부출신의 승진은 없다’ ‘사장도(임기가 끝나면) 나간다. 나한테 줄 잘서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총시즌·인사철마다 급증하는 루머
‘투서 전문 브로커’까지 개입돼 양산

부사장의 현금상납설과 성추행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공금의) 지출명목 허위작성은 일상화된 일”이라며 “일부 부서장들은 업무추진비는 물론 각종 회의비, 야식비까지 개인의 쌈짓돈처럼 쓴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약직 여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적인 저녁식사자리에 동참시킨 일도 있었다”고 파행을 폭로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부사장은 C사를 떠났다.
 

D그룹 임원은 자신의 불륜을 제기한 투서가 접수돼 곤혹을 치렀다. 전 직장에서 퇴사한 사유가 사내불륜이라는 소문이 현 직장 내에서 번진 것이다. 여기저기서 제보가 잇따르면서 해당 임원의 사내 입지는 현저하게 좁아진 상태.

회사 관계자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회사 안팎에서 떠돌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일부 여직원들은 이미 소문을 기정사실화해서 상당히 불쾌한 시선으로 임원을 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 떠도는 ‘루머와 투서’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사실무근”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B사 관계자는 “기획팀장이 최근 언론에 노출되는 등 외부 활동을 하고 있어 이런 뒷말까지 나오게 된 것 같다”며 “루머가 사실이라면 회사 내부에서 크게 문제가 됐을 일인데 전혀 그런 바 없다”고 일축했다.

D사 관계자는 “인사철을 앞두고 거래처에 투서가 먼저 접수됐던 것”이라며 “그간 접수된 투서가 대부분 상대방 헐뜯기에 그쳤던 점으로 미뤄 이 역시 특정인 흠집 내기 차원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음해성 루머
약인가 독인가

기업에 떠도는 투서는 대부분 음해성으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주총시즌이나 인사철에 몰리는 투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

감찰계 핵심 관계자는 “투서가 거의 매일 들어오지만 주총이나 인사철이 되면 건수도 많아진다”면서 “익명 투서는 무시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경우는 참고 자료 정도로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기관에서는 익명 투서는 참고용으로, 실명은 조사 후 회신하는 방식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져 있다.

최근에는 이 점을 이용해 전문 브로커들까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브로커들이 치밀하게 음해성 투서를 기획하고 작성해 사정반이나 수사기관이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은 것은 다수의 상처뿐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문제점 개선을 위한 투서문화는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각종 이해관계에 따른 감정적 고소고발은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양산해 사회를 좀먹는 병폐로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학 교수는 증가하는 기업 내 투서에 대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며 “인터넷의 확산이 갖가지 부작용도 일으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긍정적인 것처럼 내부고발자도 불투명한 사회의 제도와 법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 노조 관계자는 “민주주의는 절차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의 경영 형태는 아직 불합리한 점이 많다”며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계속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근거 없는 진정과 투서 남발로 사법기관의 내사와 수사가 진행돼 행정력 낭비와 직원들의 사기저하가 심각하다”며 “이해관계에 따른 무분별한 진정과 투서는 지역의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인사철 루머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유독 ‘카더라’가 난무하는 것 같다”며 “일부 맞는 얘기도 있지만 대부분이 개연성에 근거를 둔 것이고, 설사 맞더라도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건 기업이나 당사자 모두에게 해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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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