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충격적인 합당선언으로 정치권이 뒤숭숭하다. 특히 합당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양당의 거물급 인사들 사이에서는 연일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합당소식을 얼마나 빨리 접했느냐 하는 점이 향후 통합신당에서의 권력순위를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합당과정에서 물먹은 거물들은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선언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새누리당의 턱밑까지 치솟았다. 여야 모두 이번 합당선언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합당은 '007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워낙 극비로 다뤄졌던 만큼 양당 내부에서도 극소수의 인원들만 합당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경우 상당수 의원들이 기자회견 5분 전에야 합당 사실을 문자로 통보받았다.
문자 통보
심지어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도 발표 5분 전에야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또 새정치연합 윤여준 의장은 합당 발표 전날까지도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창당 사전작업에만 몰두하다 소식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측이 밝힌 통합 합의과정은 이렇다. 통합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28일이었다. 김한길 대표가 이날 소집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결정했다. 김 대표는 이 사실을 새정치연합 안철수 위원장에게 알리면서 합당을 제안했다고 한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가장 강력한 합당 매개체가 됐다. 민주당은 당내에서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워낙 많으니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안 위원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지난 1일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의 양자회동이 성사됐다. 두 사람은 양자회동에서 연대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날 저녁 8시경부터는 배석자를 대동하고 공식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에 최종적으로 합의한 것은 지난 2일 새벽 1시경이었다. 공식적으로 통합논의를 시작한 지 5시간여 만에 합당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양측은 지난 2일 오전 9시에 각각 최고위와 공동위원장단회의를 긴급 소집해 사후 추인 과정을 거쳤다. 양측 지도부도 이 자리에서야 합의내용을 알게 됐다.
민주당은 너무 갑작스런 결정에 대해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동위원장단 회의에서 합의안을 추인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안 위원장이 최대한 반발을 추스르며 추인절차를 마치긴 했지만 이후 김성식 공동위원장이 탈당을 선언했고, 박호군·홍근명 공동위원장도 통합신당 합류 여부를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양측 추인절차가 끝난 시간은 이날 오전 9시19분이었다. 공동기자회견이 시작되기 불과 40분 전이었다. 이처럼 통합신당의 탄생과정은 무척 급박하고 파격적이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전병헌 원내대표와 윤여준 의장, 김성식 공동위원장 등과 같은 거물들이 철저히 배제된 점이 눈에 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합당소식을 얼마나 빨리 접했느냐 하는 점이 향후 통합신당에서의 권력순위를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병헌, 윤여준도 발표 직전에야 통보받아
배제된 거물들 부글부글, 내부갈등 시한폭탄
그렇다면 그동안 양당의 중추역할을 했던 이들은 합당 조율과정에서 왜 철저히 배제된 것일까?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송호창 소통위원장은 "긴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었다"고 짤막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전병헌 원내대표와 윤여준 의장 등과 같은 거물들을 배제한 이유로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우선 정치권에선 양당이 깜짝선언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리 당의 중추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라도 합당소식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내부 조율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사실이 내부 조율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면 합당선언의 파괴력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그로 인해 합당 합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서 철저한 보안은 필수적이었고, 철저한 보안을 강조하는 가운데 의도치 않게 주요 당직자들이 소외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연대가 절실했고, 새정치연합은 창당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시기였다. 모두 합당에 대한 여망이 있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 쪽에서 의외로 합당에 우호적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내부조율을 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할 순 없었을 것"이라며 "민주당 입장에선 결코 불리할 것이 없는 통합이다 보니 속도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합당선언 이후 민주당은 조용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세 번째론 내부 조율과정에서 강한 반발을 예상한 양측이 합당을 기정사실화 해버리기 위해 발표부터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만약 양측이 합당논의 사실을 내부에 알렸을 경우 특히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강한 반발이 예상됐다. 실제로 윤여준 의장과 김성식 공동위원장은 합당 소식을 듣고 강하게 반발했다. 지방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공동위원장 등 거물 후보군들의 반발도 거셌을 것이다.
만약 이들에게 합당논의 사실을 미리 알렸다면 지금과 같은 전격적인 합당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새정치연합은 합당을 선제 발표함으로써 이들의 반발을 미리 잠재우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신뢰 척도
마지막으로 일각에선 안 위원장 측이 합당에 반발하는 세력은 쳐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분석도 있다. 안 위원장 측은 새정치를 표방하며 1인 보스 정치를 지양해 왔다. 하지만 독단적 의사결정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을 진정 따르는 사람들을 골라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합당소식을 언제 알렸느냐가 중요한 이유가 안 위원장이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합당으로 특히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새정치연합이다. 합당 발표 후 새정치연합 당사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는 전언이다. 이번 합당 선언으로 새정치연합의 내부 권력구도마저 크게 요동치고 있는 모양새다. 안 위원장의 새정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